너와 나, 그리고 우리 02
w. 솦이
그렇게 집으로 발을 딛지도 못하고 창섭에게 답장조차 하지 않은 채 창섭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걸어서 5분 거리. 머지않은 곳에 살아 우리 셋의 아지트는 창섭의 집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우리 셋은 하루 온종일 그곳에 있었는데, 나와 일훈은 학교를 다니느라, 창섭은 사진을 찍으러 다니느라
서로의 일에 치여 어느새부턴가 모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창섭은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겠지?
사실 난 일훈이 보다 창섭이 음악 쪽으로 진로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녀석은 노래를 정말 잘했으니까.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창섭이 노래를 할 때면 정말 빛이나 보였으니까.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창섭의 통보식 말은 그때의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 노래 안 해'
나와 마찬가지로 일훈도 큰 충격이었는지, 몇 달째 창섭과 대면하지 않았다. 음악은 그 둘의 공통점이자, 약속이었으니까.
그 뒤로 창섭은 음악은 생각하지 않겠다는 듯 보란 듯이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그리고 어느새 사진을 찍는 창섭이도 빛나 보였다, 그 녀석은 그런 녀석이었다. 빛이 나는 녀석.
그런데 왜 셀카는 발로 찍는 것처럼 못 찍는 거지?
설이는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창섭의 집으로 들어갔다.
띠 띠 띠 띠 띠로 우롱- 덜컥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건
소파에 누워 잠을 자는 건지, 그냥 누워있는 건지 모르는 이창섭.
설이는 살금살금 다가가 창섭의 앞에 무릎을 모으고 바닥에 앉아, 그의 얼굴을 감상했다.
하얀 얼굴에 기다란 속눈썹, 오뚝하게 뻗은 코, 동그랗게 예쁜 입술.
예쁜 녀석, 설이는 자신보다 예뻐 보이는 얼굴에 심술이나 창섭의 말랑한 볼을 아프지 않게 살짝 꼬집었다.
와, 진짜 아기야 어떻게 이렇게 말랑거리지?
설이는 기분 좋은 촉감에 코도 한번 톡-쳐보고 입술도 살며시 쓸었다.
"변태"
"어..어? 안잤네?"
"보고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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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린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창섭.
그 목소리 사이로 얼핏 느껴지는 여자의 향수 냄새에 설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한마디 하려다가도, 이내 꾹- 참고 고개를 돌려 밥을 차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일어나려는 순간
탁-
창섭의 큰 손이 설이의 얄팍한 손목을 잡았다.
"넌 왜 나한테는 뭐라 안 해?"
".. 뭘?"
"정일훈은 여자랑 조금만 있어도 어떤 여자냐, 착하냐 별의 별거 다 물어보면서
왜 난 안 물어봐? "
".... 하 "
따지듯 물어오는 창섭에 설이는 어이없는 웃음을 뱉었다.
질투라도 하는 것인지 찌푸린 창섭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톡톡-처 풀어주고는 씩- 웃었다.
"넌 그래도 내가 최고잖아."
의외에 말에 놀란 듯 창섭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난 헤헤 웃으며 손을 들어 창섭의 머리를 한번 비볐다.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이창섭은 절대로 그 수많은 어떤 여자보다도 날 첫 번째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와 100일 날 데이트를 했을 때도, 우산이 없다는 내 전화에 단숨에 학교 앞까지 우산을 들고 달려온 일도 있었고,
다른 여자친구 생일날, 배고프다는 나의 말에 곧바로 나의 집으로 왔던 녀석을 알기에, 그것도 여자친구의 케이크를 들고,
먹으라며 툭- 무심하게 주는 네가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케이크를 좋아하는 날 위해 가져온 건 고맙지 면 여자친구 생일 케이크는 너무하지 않아?
"맞지?"
"응..맞지"
재차 물어오는 내 말에 창섭은 기분이 풀린 건지 손목을 잡은 손을 스르륵- 풀어주곤 다시 눈을 감았다.
기분 좋게 걸린 창섭의 입꼬리가 오늘따라 더 예뻐 보였다.
#
"일훈아 손 좀 놔줘"
"싫어~"
"좀 놓지? 싫다잖아"
"너도 잡고 싶은데 괜히 못 잡아서 심통 부리는 거잖아"
일훈의 능글맞은 웃음에 창섭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일훈은 내 손을 보란 듯이 더 세게 잡고는 '놓으면 혼나 설아' 하고는 창섭에게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다 같이 창섭의 집에 모여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자꾸 일훈이 손을 잡는 덕에 술도 제대로 못 마시고 손에 땀이 나 차고.. 일 훈을 째려보며 심통을 부렸더니 크게 한번 웃고는
'알겠어 알겠어-'하고는 손을 놓아주었다.
창섭은 놓인 내 손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술을 마셨다. 안주 없이 먹는 모습에 나까지 써 새우깡을 입에 넣어주자 더 달라며 입을 벌리고
있었고, 일훈은 그 모습에 자기도 달라며 똑같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휴 미친놈들.
빈 술병이 어느덧 5병. 다들 이제 취하는 건지 양 볼이 붉어지고 눈이 살짝 풀렸다.
일훈이 옆에서 설이 술을 마실 때마다 손을 잡고 놔주지 않은 덕에 설은 셋 중에 가장 덜 마셔 똑바른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훈은 졸리다며 설이의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누웠고, 창섭은 풀린 눈으로 사진기를 만지고 있었다.
"섭아, 너 노래 왜 안 하는 거야?"
조심스레 물어오는 설이의 물음에 사진기를 만지던 창섭의 손도, 설이의 무릎에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던 일훈의 입도
고장 난 시계처럼 멈췄다.
지난 몇 년, 난 궁금해도 묻지 않았었다.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걸 알기에.
때가 되면 말을 해주겠지, 일훈이도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말해주겠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너희 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그때부터 비밀이 많아진 것 같았다.
입을 꾹 다 문체 창섭은 설이를 빤히 쳐다보았고 일훈은 창섭을 보았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창섭의 입이 열렸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 싫어해야 되니까"
#
잠든 설이를 자신의 방에 눕히고, 다시 제자리에 앉아 술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너는 창섭.
일훈은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낮게 웃음을 흘린다.
"지랄하네."
"..."
"너 그럼 사진도 못 찍어 새끼야."
"정일훈 "
"... 말해"
"나, 존나 노력한거 알지"
창섭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채운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곤 일훈을 눈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미안하다. 이제 그거 못하겠다."
일훈은 그의 말에 진심으로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바라던 바다, 새끼야"
쨍-
둘의 술잔이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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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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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쓰다보면 글이 수위가 높아질수도 있을것 같아요ㅠ
거북하신 분들은 미리 앞전에 말씀드릴테니 뒤로가기를..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