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션 로즈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민은 9시부터 쭉 기다렸지만 10분이 되어도 15분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뭐지, 다시 휴대폰을 꺼내 그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어디야?’
그는 바로 답장을 주었다. ‘지금 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추운 날씨에 입고 있던 코트를 더욱 여미었다. 학교 뒷 편은 가로등 빛 하나로 의지한 채 그 곳을 밝혀내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발걸음이 멀리서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태형과 만나기로 했는데, 발걸음이 한 명인 것 같지 않았다.
자신과 모르는 사람이 오나 싶어 겁을 으레 먹고 몸을 더욱 웅크렸다.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지민!”
“…”
“간 거 아냐?”
“아니, 저기 있네. 박지민!”
“…”
태형이 지민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여러 막대기들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아, 니가 박지민이야? 태형이 지민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의 팔을 돌려 그의 로저 색을 확인하고는 실소를 지어냈다. 빨간색이다, 빨간색. 이 새끼 진짜 게이인가 봐. 더러워.
태형이 지민의 손목을 던지듯 내려놓으며 말하자 뒤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태형이 손으로 지민의 턱을 붙잡았다. 이리저리 돌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야.”
“…”
“너 진짜 나 좋아해?”
“…”
“게이야?”
“…”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이렇게 더럽게 놀아?”
“…”
“좋아하면 속으로만 좋아해. 니가 뭔데 티를 내고 지랄이야.”
“…”
“시발, 엮어도 더럽게 엮었네. 제발 내 눈앞에 띄지 말아줄래? 수치스럽고 기분 개 같으니까.”
“…태형아.”
“헐, 얘 봐. 내 이름 불렀다. 미친 거 아니냐.”
태형이 지민의 명치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윽 소리와 함께 지민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태형이 뒷 걸음으로 살짝 물러서자 뒤에서 각목과 파이프를 들고 있던 아이들이 지민을 마구잡이로 패기 시작했다.
“어어, 죽이진 말고. 나 갈게 지민아. 니 분수를 알아.”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간 태형을 보던 눈가에는 눈물이 듬뿍 고였다. 몇 분 동안 몽둥이질을 당했다.
그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지민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 몸을 두드려 맞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지민이 겨우 움직이던 팔로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은 액정이 박살이 나 있었다. 다행히 안 까지는 고장이 안 났는지 휴대폰의 화면이 켜졌다.
갑자기 들어오는 밝은 빛에 표정을 찡그린 지민이 다이얼에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이수였다.
“…이수야.”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나 좀…살려줘.”
“너 지금 어디야.”
“학교..뒤…”
“지금 갈게. 무슨 일 있었어?”
“…”
“야, 박지민! 박지민!”
지민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수가 몇 분 뒤에 학교에 도착했다.
발견한 지민은 온 몸이 피투성이로 멍들어 있었고 로저는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지민을 어깨에 둘러맨 이수가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눈을 떴을 땐 쾨쾨한 병원냄새가 났다. 지민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갑자기 밀려오는 고통에 인상을 구겼다. 옆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쓰러지기 전 지민이 기억하고 있던 일들을 거꾸로 짚어갔다.
이수한테 전화를 했어. 그리고, 사람들한테 몽둥이로 맞았고, 태형이를 봤어. 태형이는 나에게 만나자고 했어.
생각보다 충격이 컸는지 그는 혼이 나간 듯이 창 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이가 더러운 건가. 지민의 머릿속에는 태형이 한 말만 둥둥 떠다녔다.
“이 새끼 진짜 게이새낀가. 더러워. “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이렇게 더럽게 놀아?” “지민아, 니 분수를 알아.”
현재까지 당당하게 살아왔던 지민에게는 큰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동성애라는 것이 자연스러워진줄 알았지만 저렇게 심한 호모포비아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민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옆에 잡히던 휴대폰은 배터리가 가득 차 있었다. 누가 충전 한 거지.
날짜를 확인하니 태형과 학교 뒤에서 만나기로 한 날보다 3일이나 지나있었다. 내가 3일 동안이나 잠을 잤구나.
곧바로 SNS를 켜 태형의 이름을 검색한 지민이 검색하다 말고 손을 멈추었다.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지. 그렇게 때렸고 그렇게나 싫어하는데.
하지만 머리는 그렇게 생각해도 손은 자꾸만 그의 접속상황을 확인했다. 2분 전에 접속했네. 보고 싶다.
지민이 무의식적으로 내 뱉은 말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제 뺨을 내려쳤다. 쟤가 왜 보고 싶어?
하지만 계속 생각나는 태형의 얼굴과 악랄한 대사들은 지민을 계속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지민은 한참 동안 끙끙 앓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인정을 무척 빨리 해 버렸다.
나는 태형이를 계속 좋아하고, 이 사실만큼은 내가 생각이 바뀌기 전까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바꿀 수 없을 거라고.
지민은 빠른 회복을 위해 병실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걷는 도중 이수가 방문하는 탓에 얼른 병실에 들어갔지만.
“괜찮냐?"
“..어.”
“무슨 일 있었는데.”
“음..”
“빨리 말해, 답답해 죽겠으니까.”
“아니, 그냥 돌아다니다가 시비가 붙어서..”
“야, 학교 뒷편이였으면 학생 이였을 거 아냐. 누군데.”
“아냐, 그냥 다른 학교 날라리들이였어. 너무 걱정하지마. 이제 그런 쪽으로는 안 가야겠다.”
.”칠칠맞은 새끼, 혼자 좀 다니지마라. 그렇게 비실한 몸 끌고 잘도 안 맞고 다니겠다.”
“그래. 태형이랑 다녀야겠네.”
“미친놈.”
지민이 무척 빠른 회복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얼른 학교로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였다. 지민은 태형의 선입견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얼마 입원을 안 했기에 금방 퇴원을 하고 집으로 향한 지민은 텅 비어있던 집에 들어가 한 숨을 내쉬었다.
집이 왜 이렇게 차가울까. 온기 없는 집 안은 평소보다 더 외로워 보였다. 부모는 내가 아픈지도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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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줘서 고마워요!
다음편은 가벼운 지민이 가족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가 전개 될 예정입니당
궁금한 점이 있으면 마음껏 물어봐주시고
지적도 콕콕 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