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외국인이라는 힘든 고비를 두번이나 넘기고 만난 한국인은 굉장히 무기력하게 생겼다. 동그란 큰 눈을 가진 남자는 확실히 잘생겼지만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보인달까. 아까 만났던 둘에 비해 키가 작은건지 덩치도 아담한게 어째 성인남자로는 안보인다. 초면에 실례되는 생각이려나? 살짝 웃어주며 들려오는 인삿말에 고개를 까딱하고 바로 앨범을 내밀었다. 이번엔 좀 빨리빨리하고 넘어가보자. 어림잡아 열명이라 치더라도 무려 일곱명이나 더 남아있다. 길고 긴 행렬을 보자 굉장히 지친다. "누구 만나러 왔어요?" 그런 사람 없는데요. 그룹명이 엑소인것도 아까 그 외국인이 말해줘서 안건데 멤버이름까지는 무리다. 앞에 이름들이 타우와 레아였나? 판타지소설에서나 쓰일법한 이름인게 이런 이름이 앞으로 최소 7명... 하. '나나요' 어차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름을 쓰느니 친구년이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사람의 이름을 사칭했다. 아무도 모르겠지. 나만 입다물고 있으면 될 일이니까. 그나저나 나나라니, 남자이름치고 굉장히 안어울리지만 아까 레아도 있었는걸보면 그냥 그룹컨셉인가보다. "그 쪽 저희 팬 아니죠?" 움찔, 뜨끔. 천천히 싸인하던 남자는 내가 쓴 종이를 보더니 피식웃고는 확신을 담아서 말한다. 난 딱 세글자썼는데 댁이 그걸 어떻게 알아? "표정보니까 들키신것같은데, 어떻게 오셨어요?" '친구 심부름/마저하고 주실래요?' 안그래도 느리게하던 싸인을 중도에 멈추고 눈을 마주치며 물어오는 남자다. 어차피 들킨거 숨길것도 없겠다싶어 대충 휘갈겨 답하자 이런 내가 웃긴건지 답이 어이가없는건지 눈을 찡그리며 웃는다. 사람 면전에 두고 혼자 웃을건 뭐야 기분나쁘게. "아, 미안해요.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그럼 본인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바로 사과를 하는걸보니 그래도 됨됨이는 괜찮나보다. 근데 남의 이름은 왜 물어보는거야? 팬도 아니라는데 싸인이나 주고 다른 팬이랑 짝짝꿍하면서 놀것이지. '알아서 뭐하시게요' "이 참에 제 팬좀 늘려보려구요." 동그랗던 큰 눈이 휘어지며 싱긋 웃고는 입꼬리도 예쁘게 올라가는게 웃는게 굉장히 이쁜 남자다. 이런걸 팬서비스라고 하나? 이쁜건 이쁜거고 그다지 이쁜거에 감흥이 없는 나라 또 대충 휘갈겨썼다. '나여주 팬아님 그쪽은?' "크큭, 디오예요. 본명은 도경수. 제가 오빠맞죠?" 고개를 끄덕이니 또 그 큰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며 경수오빠라고 불러보라한다. 이게 일반인을 팬으로 끌어드리는 매력인가? 연예인들은 이런거 하나하나 다 신경쓰려면 되게 피곤할것같다. '싫음.' 단호하게 온점까지 찍어주고 다 쓴 싸인이 담긴 앨범을 주워들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자 예의 그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싫으면 제 팬하세요. 다음에 올때 누구 팬이라고 물으면 제 이름 말해요. 내가 확인할거니까." 다음에 올 일 없거든요? 그리고 내가 왜 그 쪽 팬입니까? 무시하고 가려는데 이번엔 웃음소리가 들린다. "다음엔 목소리로 듣고싶어. 글로 쓰느라 수고했어요." 의도한건 아니지만 괜히 찔려서 돌아보자 아까 그 외국인과의 일을 다 봤다고한다. 그렇게 큰 목소리로 사과하는데 못 듣는게 이상한거랜다. 허헐... 눈에 띄는건 딱 질색인데. 이제부터는 진짜 싸인만 받고 바로 가야지 안돼겠어. 물론 그게 내 맘같이 되면 난 지금쯤 집에 있었겠지만. 곧바로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자 굉장히 까칠해보이는 사람이 앉아있다. 한 성깔하게 생겼네. "안녕?" 안녕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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