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새로운 감정을 느끼면 우리는 발생합니다.
반대로 사람이 감정을 잊으면 우리는 소멸하지요.
한가지 더, 기사단의 경우 본분을 다하면 소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아마 새로 발생되는 것으로 채워지겠죠.
[방탄소년단] 흑백전선 5
“그건 이불처럼 안 생겼는데?”
잔뜩 실이고, 천이고 발 디딜 틈 없이 어지른 바닥 중앙에 앉아 있는 나를 책상에 걸터 앉아 구경하던 지민이 말했다. 작은 인형 같은 몸으로 발을 달랑거리면서 앉아 있는 게 여간 귀엽지 않았다. 우리 이불 만들어 준다며?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지민을 보며 나는 음흉하게 웃었다. 뭔가 직감한 건지 지민이가 흠칫하곤 공중으로 잽싸게 날아 올랐다.
“너 혹시 만드는 거… 옷이야?”
“야이씨”
내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던 윤기가 나는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궁시렁거리며 천장가까이 날아올랐다. 그리곤 가지가지 한다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 보는 것이다. 맞아 나는 가지가지 하지. 오이오이 하지 않아 푸헤헿. 막 시침질을 끝낸 윗도리를 손에 쥐고 번뜩이는 내 눈에서 광기를 읽은 기사들이 내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높이높이 떠올랐다.
공중에 떠있는 인형 같은 기사 넷과 진격의 거인처럼 일어난 내가 대치하게 되었다. 그들 눈에는 내가 진짜 거인처럼 크게 보이겠지?
석진과 남준은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지민이 전하기를 볼일이 있어 본인들 나라로 돌아갔다고 했다. 흑과 백의 나라로.
‘일 끝나면 바로 올 거야.‘
내가 무언가를 묻기도 전에 지민이 덧붙였다. 마치 더 물어볼까 싶어 싹을 자르듯. 시선을 피하고 티나게 화제를 돌리려는 지민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볼 수 없었다.
그래, 그네들이 일이었다. 그들이 내가 관여하기 바라지 않는다면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선 안 되는 것이다. 묻지 말고, 궁금해 하지도 말고. 왜냐면 내 일이 아니니까. 내가 알 권리도, 그들이 말해줄 의무도, 뭣도 없는 일인 것이다.
뭐, 나도 내 일만으로 머리가 복잡한 사람이었다. 도와달라고 하는 것만 도와주면 될 일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왠지 가슴 한 켠이 켕겼다. 우리가 무언가를 함께 공유하고 있고, 내가 그들을 돕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름 유대감과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닌 것 같아서. 선 긋고, 나를 배제하는 것 같아서. 알고 싶고 걱정이 되었지만, 그런 생각을 할만한 관계가 아닌 번외자가 된 것 같아 속이 쓰렸다.
마음이 같지 않다는 건 언제나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방에 대해 말하는 지민의 표정이 썩 밝지 않았기에 티를 낼 수 없었다. 그래, 침울해 하면 뭐해. 그럴 일도 아니고! 속속들이 알아 봤자 어차피 3달이면 떠날 건데.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다.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는 데는 육체 노동만한 게 없다고들 했다. 그래서 손을 움직였다.
기사들은 내 방 곳곳에서 생활 했는데, 내가 본 그들의 생리 활동은 자는 것뿐이었다. 뭘 먹는지, 싸는 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적도 있지만 넌 몰라도 된다는 윤기의 핀잔만 들었을 뿐이다. 여자애가 별걸 다 물어보네. 라며.
사람도 아닌데 안 먹고 안 쌀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생물체라고 생각하는 게 속이 편했다. 잠이라도 편하게 자라고 장롱 한 켠에 있던 방석을 꺼내 책상에 올려 두었더니, 밤이면 옹기종기 붙어 자더라. 퍽 추워 보여 이불보를 만들어 줘야겠다 싶었다. 배게도 필요할 것 같고. 근데 만들다 보니까 또 다른 것도 만들어 주고 싶은 게 아니겠어? 마치 옷… 옷 같은…ㅋ…
“미쳤냐?”
천장에 바짝 붙은 정국이 나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귀여운 것. 하지만 너는 성깔이 있어부러서 포기다. 민윤기도 마찬가지고. 옷장 위 틈으로 쏙 숨어들어간 지민이와 태형이를 노렸다.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냐. 흐흐 웃음을 흘리며 바짝 의자를 가져다 댔다. 의자를 딛고 옷장 위로 손을 불쑥 집어 넣었더니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우 먼지.
“악!! 저리, 저리가!”
“아니 치수 재게 잠깐만 입어봐!”
“싫어! 이 변태야!”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게 하이톤으로 쏟아지는 비명자락에 킬킬 웃으며 손을 더 뻗어 마구 휘저였다. 나 S였나봐. 왜 이렇게 즐겁지? 그러다 뭔가가 손끝에 닿는 것 같았는데 몸이 부웅 뜨더니 별안간 의자에서 내려졌다. 앗 할새도 없이 누군가가 또 내 허리를 잡고 나를 부웅 들더니 침대로 던지는 것이다. 그리곤 재빠르게 내 양 손목을 결박하고 나를 침대위로 넘어뜨린 후 내 위로 올라탔다. 엄마야…놀라 토끼 눈이 된 내 코앞에서 커져버린 정국이 눈은 사늘한데 입만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곤 닿을 듯 얼굴을 가까이 대고 또 다시 이를 가는 것이다. 헉… 무섭….
“벗어줘? 어? 한 번 입어봐?”
가까이서 들리는 낮게 끓는 목소리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진짜 S가 따로 있었네… 따로 있었어….
며칠 뒤에 홀연히 사라졌던 석진과 남준이 돌아왔다.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척 피곤한 듯 했다.
카운팅 계속 되고 있네요. 거짓말 안 했나 봐요. 착해요.
살며시 웃는 석진 눈 밑에 그늘이 짙게 내려 앉아 있었다.
“윤기야… 죽었니?”
윤기 팔을 콕콕 찔렀다. 수업시간이고 나발이고 잠만 퍼 질러 자고 있다. 5교시가 지나고 ‘전학생’과 내가 몹시 친하다고 생각하는 반 애들이 내도록 잠만 자는 윤기가 이상했는지 내게 물어왔다. 요새 종종 ‘전학생’ 덕에 애들이 말을 거는 경우가 있었다. 윤기 어디 아파? 5번째 듣는 질문에도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슬슬 나도 좀 걱정이 되던 차였다. 등교해서 내리 잠만 자는데.
진짜 어디 아픈 건가?
살며시 비어있는 윤기 앞자리로가 잠든 윤기를 보았다. 마치 햇살 아래 잠든 고양이 같았다. 뽀얀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 나있다. 작았을 때 말투도 그렇고 하도 애 늙은이 같은 소리를 많이 해대서 교복이랑 안 어울릴 것이라고 예상 했는데 생각보다 무척 잘 어울렸다. 피부도 뽀얗고 어깨도 직각으로 넓어서 군청색 교복이랑 딱 잘 어울렸다. 쉬는 시간이어서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운 데도 윤기는 미동 하지 않았다. 내가 콕콕 찔러도 무반응이었다.열이라도 있나 싶어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는데, 닿기 전에 갑자기 윤기가 내 손을 잡는 바람에 간이 다 떨렸다. 아 씨 깜짝아!
“깼어? 아니 나는 너 어디 아픈가 해서… 그냥 걱정 되가지고..”
“안 아파…”
놀라 허둥거리는 내 말에 눈도 안 뜨고 윤기가 답했다. 목소리가 잠에 잠겨 잔뜩 긁어져 나왔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엎드린 자세 그대로 있으면서 계속 내 손을 잡고 있다. 생각보다 손이 크고 울퉁불퉁 했다. 그리고 뜨거워. 진짜 남자 손. 그렇게 손이 붙들린 채 어쩌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데 수업시작 종이 울렸다. 동시에 윤기가 스르륵 힘을 뺐고, 미끄러지듯 내 손이 빠져 나왔다. 윤기는 솜털 한 올 안 보여줄 마냥 더 웅크렸다. 종례 전까진 깨지 않을 기세다. 머쓱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자리로 향했다.
무사히 하교길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마음이 가볍다! 오늘도 나는 진실을 사수했다이거야! 몹시 뿌듯했다. 순전히 오늘은 내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낸 것이다. 그렇게 자고도 옆에서 눈에 졸음을 주렁주렁 매달고 걷는 윤기를 봤다. 거짓말 안 하게 도와주겠다고 와서는 잠만 자고 간다.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느릿느릿 눈꺼풀이 움직이는 것이 저러다 전봇대에라도 박겠다 싶어 팔을 툭 쳤더니 힐끔 나를 본다.
“그래도 좀 성격은 맞춰야 되지 않겠어?”
내가 생각하기에 애들은 ‘전학생’을 그냥 하나의 인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 기사단이 바뀌어도 모르는 거겠지. 그럼 되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석진이랑 남준이는 그래도 행동이 비슷했는데, 윤기는 무기력 해도 너무 무기력했다. 내도록 잠만 자고. 아무리 애들이 눈치채지 못한다 그래도 그렇지. 오죽하면 선생님이 양호실을 가라 그러니. 안 그래도 피부도 허연 녀석이. 작게 궁시렁거리자 기지개를 켜며 늘어지게 하품을 한 윤기가 연속동작으로 자연스럽게 내 뒤통수를 톡 쳤다. 바보냐?
“내가 뭐 하러 수업을 들어. 공부해서 대학이라도 갈까?”
하긴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내가 뭐 공부하랬나. 애들이 의심할까 봐 그렇지. 오늘 얼마나 애들이 물어봤는데 아프냐고.
“난 오늘 임무 다했다? 너 거짓말 안 하게 챙겼잖아. 내가 자고 있는 것 같아도 다 듣고 있어 임마.”
“웃기시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하세요.”
지지 않고 툴툴거리는 내 입을 큰 손으로 텁 막은 윤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윤기 손에서 박하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이제 그만. 더 말하면 거짓말 할 수도 있으니까 안돼.”
이것도 거짓말! 분명 귀찮아서 그러는 거다. 칫.
“완성!”
이불 3개, 배게 6개! 반짇고리에 앉아있던 지민이랑 태형이가 박수를 짝짝 쳤다. 흐뭇했다. 오늘 뿌듯한 일 많다. 양말 꿰매다가 구멍을 더 크게 만드는 실력인데 이번엔 제법 괜찮게 만들었다. 이건 정신승리야. 어서 베 보라고 지민이와 태형이에게 건넸더니 바로 머리를 대고 누워 엄지 척! 편하다고 말해준다. 기분이 좋았다. 지민이랑 태형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다. 실도 꿰어주고 솜도 넣어주고. 다른 기사들한테도 보여주고 싶어서 찾았더니 벌써 다 자고 있었다. 시계를 봤더니 몰랐는데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몰랐는데, 이렇게 늦었네.
방석에 대자로 뻗고 자는 남준이랑 석진이 머리를 살며시 들어 베개를 베어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크기도 낙낙하니 썩 괜찮았다. 잠 많은 윤기도 이건 좋아해줄 것 같은데,
오늘은 정국이와 윤기가 없었다. 볼일을 보러 나라로 갔다고 했다. 석진이랑 남준이처럼. 석진과 남준은 돌아온 뒤 정신을 못 차리고 잤다. 줄곧 잠을 자지 못했던 것처럼. 뭘 하고 온 걸까? 궁금해하면 안 되겠지? 물어보면 난처해할 것이 그려져 꿀꺽 질문을 삼켰다.
이불을 덮어주자마자 차내는 남준이랑 반대로 목까지 꼭 끌어안고 자는 석진이를 보다, 나도 이제 자야겠다 싶어 둘러 보니 이미 지민이랑 태형이가 내가 어질러놓은 것들은 다 치워놓은 상태였다. 기특해라.
“고마워.”
쪼그려 앉아서 이불까지 착착 개고 있는 태형이와 지민이에게 말했더니, 지민이가 내 얼굴 가까이 날아 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가 고맙지.
“우릴 도와주고 있잖아. 배게도 만들어주고, 이불도 만들어 주고. 우리가 더 고마워.”
웃음기 없이 진지한 지민의 말에 쑥스러워져 웃고 말았다. 조그맣고 동그란 눈이 진심으로 반짝였다. 정말로 고마워하는 선하고 깨끗한 마음에 망울망울졌던 괴리감이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알면서도 또 그런다.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만이 마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또 욕심을 낸다. 이렇게 진심이면 됐지. 진심이면 되지.
스위치 앞에서 내가 침대에 누워 이불 덮는 것까지 확인하고 태형은 두 손으로 불을 껐다.
잘자.
어느새 가까이 들리는 낮은 인사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두. 너두 잘자.
백(白)의 기사단 자유의 상징. 민윤기
본격 쓰니만 재밌는 글 |
방탄 천일 축! 윤기 생일 축! 앞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오래오래 만나길.
윤기야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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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는 분이 계시긴 할까요...? 알 수가 없어여 ㅠㅠ 쓰는 나만 재미있는 것 같은데...울뛰ㅠㅠ
일기장에 쓸 걸 그랬어.. 그럴걸 그래써...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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