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Som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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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겨울을 목전에 두고 있다지만, 아직은 이른 입김이 입술을 비집고 세어나왔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듯 쏟아지는 빗줄기. 그 가느다란 틈 사이로 입김이란 놈은 세상에 태어났다가 곧 사라졌다. 먹먹해진 '이것'이 몸인지 마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차가운 초겨울 빗줄기가 조금이나마 '이것'을 달랬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다. 이젠 가만히 맞고있기 버거울 정도가 되었지만 나는 그대로 흙탕물 범벅인 빈 공터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빗방울에 튀어오른 흙탕은 내 몸과 얼굴에 잠시 묻었다가, 끊임없이 내리는 빗물에 씻겨져 내려가길 반복했다. 동시에 스물스물 도둑고양이 마냥 기어나오던 핏물도 금방 저 물구덩이 어딘가로 자취를 감춘다. 흙탕물과 핏물로 점철된 셔츠는 누렇고 붉었다.
차갑다- 라는 감각을 잊어갈 즈음.
나는 눈을 감았다.
"왔어?"
"안 자고 있었어요?"
너 기다렸지이- 애교섞인 눈웃음은 하루종일 긴장상태였던 내 몸을 허무하게 녹인다. 깨어있을 줄 알았다면 괜히 잠들기를 기다리며 쓸쓸한 밤거리를 헤맬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잠을 깨우기 싫었던 내 사소한 배려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지만, 날 반기는 초롱한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그깟 물거품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는 생각도 들었다.
2인 병실이지만 며칠 전 비워진 옆 침대에 던지듯 몸을 뉘였다. 눕는게 일인 직업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그 어떤 호화로운 호텔의 킹사이즈 침대보다 1인용 투박한 병원 침대만큼 마음 편한 곳은 없을 것 같았다. 내 걸음이 옮겨짐에 따라 정자세로 누워있던 몸을 옆으로 뒤척이던 그녀, 용선언니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살짝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덕분에 나도 따라 어설픈 미소를 지어본다.
"오늘은 별일 없었어요?"
"응. 오늘은 치료할때도 안 울었어."
"그래요? 잘했네."
"....너가 잊고살아서 그렇지, 사실 나 너보다 언니야."
자길 어리게 대하는 내 목소리에 괜히 토라진 척 해보지만, 이미 잔뜩 올라가 버린 입꼬리는 언니의 속마음을 투영했다. 고작 한살차이- 라고 말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밤을 꼬박 넘기면서까지 한살차이의 무시무시함을 읊을게 뻔해서 그만 두었다.
치료날이라 유난히 피곤했을텐데 날 기다리느라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견디고 있는게 보였다. 내가 들어오면서부터 이미 반쯤 감긴 눈은 곧 긴 하품으로까지 이어진다. 졸려보여-. 내 목소리에 언닌 살며시 손짓한다. 그 의미를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하니 이젠 목소리로써 나를 부른다.
"너가 재워줘야지, 별아."
그녀를 닮아 괜히 좋으면서 싫은 척, 투덜거리면서도 내 몸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언니의 옆자리로 향했다. 가만히 옆에 눕자 알아서 내 팔을 베게삼아 베고, 내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부서지는 웃음을 한 번 내뱉고 머리를 잔잔히 쓸어주자 곧 도롱도롱 아기숨소리와 함께 잠에 빠진다. 이렇게나 피곤했으면서도 늦게 들어올 나를 기다려준 언니가 고맙고, 미안해서 나는 언니가 잠이든 후에도 한참을 처음처럼 잔잔히 머리를 쓸어주었다. 어린 얼굴에 문득 우리들의 처음날이 생각났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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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엔 어렸고, 웃기엔 컸다. 그런 나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 장마가 막 시작 된 어느 여름 날. 작은 과일가게를 운영하셨던 부모님은 언제나 이른아침 나가셔서 빨라도 9시, 늦은 밤이 되어서야 들어오시곤 하셨지만, 그날처럼 말 없이 늦은적이 없었다. 기다리던 내게 찾아온건 늦어서 미안하다는 엄마의 개구진 사과도, 아버지의 무뚝뚝 하지만 퍽 다정했던 손길도 아니었다. 그날밤 날 반긴건 시끄러운 전화 한 통과 싸늘하게 식은 부모님의 시신이었다.
상황은 그 순간부터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내 옷은 온통 까만 상복으로 갈아입혀졌고 -누가 입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낯선 장례식장에서는 덩그러니 나 혼자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을때에도 나는 혼자였고, 얼마 준비하지도 않은 조문객들을 위한 음식들은 식다 못해 쉬어갔다.
"안녕?"
삼일은 굶은것 같은데 배가 고프지 않은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던 내게 당돌히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낸게 언니였다. 그 뒤로는 다른듯 닮은 한 쌍의 부부가 들어왔고, 나는 그 만남 이후로 늘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납골당에 부모님의 뼛가루가 부족하게 들어갔을때에도 난 그들과 함께였다. 집을 정리하고 길거리로 나앉을뻔 했을 때에도 그들과 함께였다. 나는 그들이 살던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언니- 해봐."
"김용선."
"내가 한 살 더 많잖아. 언니. 언니라고 해야지."
"김용선."
철이 없었던 건지, 무식해서 용감했던 건지. 형제자매라곤 없던 내게 언니는 처음으로 생긴 또래였다. 하지만, 나는 언니에게 존댓말은 커녕 언니를 언니로 대하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는 언니의 친구들에겐 극존칭까지 써가며 극진히 언니대접, 선배대접을 해 주었지만, 정작 내게 그걸 바라던 언니에겐.
"야, 밥 먹어."
친구나 다름 없었다. 처음엔 버럭 화도 내보고 부탁도 해왔지만 내 태도가 그리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는 걸 어린 언니도 느꼈는지, 후에는 아주 받아들이고, 되려 저가 동생인것 마냥 행동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챙기는 것도 내 몫이었고, 언니다운 배려도 내 몫이었다. 아줌마, 아저씨 -엄마,아빠라고 부르라 하셨지만 끝내 부르지 못한- 는 그럼에도 나를 예뻐해 주셨고, 친딸처럼, 어쩔땐 친딸보다 더 나를 아껴주셨다. 과분한 사랑. 나는 남들 사춘기로 속 꽤나 썩힌다는 중학교 2학년을 내게 주어진 과분한 무언가들에 감사해 하며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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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은 멈췄지만, 바라보는 눈길은 도저히 거둘 수 없었다. 안보이면 보고싶고,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신기하고 새로운 사람. 그렇기에 매일 다시 설레는 사람. 마음 같아서는 통통한 볼을 한 입에 베어물고 싶지만, 살이라고는 고작 적당한 볼살이 전부인 언니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사랑스러움을 참지 못한 내 손이 다시 언니에게 향할때, 작은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잠귀가 어두운 편이라 저 정도 소리엔 발가락 하나 꼬물거리지 않을 언니란 걸 잘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얼굴을 살핀다. 미동없이 평온한 얼굴이다.
"어, 웬일?"
"웬일은. 링거 교체."
내 정신 좀 봐-. 까딱하면 저번처럼 혈관에 공기 넣을 뻔. 아차 싶은 마음에 괜히 뒷머리를 긁적이자 간호사, 그러니까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자, 친구가 된 휘인이 밉지않게 옆구리를 찌른다. 애인관리 잘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사람 좋은 미소를 띄워줬더니 되려 표정을 썩힌다. 고작 한 달이지만 제법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금방 링거를 갈아 끼우는 휘인이. 멋진 성격 탓에 우리와 친해진 이 병원에서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가 '탓'이라 정의한 까닭은 친해진 탓에 이렇게 못난 애인을 둔 언니를 따로 돌봐주고, 어쩔 땐 간병인 노릇까지 해 주어야 하는 불상사를 겪고있는 휘인을 위함이었다.
"잠깐 나갈래?"
"커피는 너가 쏴."
"....치사한 새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주문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카드를 내미는 사람은 휘인이었다. 문득 주머니를 뒤져보면 잡히는건 고작 백원짜리 2개와 오십원짜리 1개. 자판기 커피값도 안돼는 갯수다. 진동벨을 받아들고 가장 전망이 좋은 창가자리로 가서 앉는다. 그다지 감상적이지 못한 성격이라 구석자리를 더 선호하는 나지만, 휘인이를 위해서니 이정도 배려는 감수할 수 있다.
"....일은?"
"뭐, 똑같지."
"내가 니들 사정 다 아니까 딱 잘라 말하지 못하지만, 그 일 오래하지는 마. 널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용선언니를 생각하면 더 그러면 안돼."
알았지?-. 대답을 바라는 뒤 늦은 물음이 한 번 더 들려올때까지 나는 결국 입술 한 번 달싹이지 못했다. 자발적이든, 아니든,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가장 간절한 사람은 어쩌면 나였다. 하루에도 수 천, 수 만 번을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지만, 당장 하루라도 치료를 미룰 경우 금방 증세가 악화되버리는 저 안쓰러운 사람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혹시라도 내가 도망쳐 버리면, 내 죗값을 남은 언니가 치루게 될 것 같아 더더욱 이를 악 물 수 밖에 없었다. 더 묻지는 않았지만 눈빛으로 대답을 강요하는 휘인을 자리에 두고, 울리는 진동벨을 들어 카운터로 향한다.
신입이라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 없다며 먼저 일어난 휘인이는 끝내 내 대답을 듣지 못 했다. 하지만 휘인이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내 진심과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대립을. 휘인과 언니를 닮아가는지 카페마감으로 인해 자리를 옮기게 된 내 걸음이 닿은곳은 이미 영업이 끝나 굳게 문을 걸어잠근 창경궁의 홍화문 앞, 길거리였다. 감상에 젖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오늘의 밤 공기는 날 그렇게 만들었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밤거리는 여전히 휘황찬란했고, 연인, 친구들 끼리의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후우.."
내뿜는게 그저 한 숨이었던 시절은 어느새 꽤 오래 흘러가버린 과거가 되었다. 뿌연 담배연기가 연한 봄 밤하늘에 흩어졌다. 세상이 변해 담배 피우는 여자를 아니꼽게 쳐다보는 눈빛은 드물었지만, 강제 간접흡연의 피해자로써 나를 따갑게 쏘아보는 눈초리가 흔했다. 그럼에도 나는 니코틴 품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지이잉-. 내 앞에 떨어진 꽁초는 3개가 넘어갔고, 입에 물려진 4개째도 반 이상이 타들어갔을 무렵.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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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마마무팬픽 쓴 사람 내가 처음!!!!!!!자부심!!!
+) 개인블로그에서 쓰던건데 내껀데도 퍼온글 해야하나요...?
신알신 안해도 됩니다^^
이 다음부터 내용이 좀 그래서 여기 못올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