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타액이 섞이는, 색스러운 소리만이 방 안에 가득했다. 하얀 천에 막혀 답답한 비명만 내지르던 여자는 고통에 졸도하다 깨어나기를 반복했고, 엉켜있는 두 남자는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떨어질 생각이 없는 건 두 명이 아니라 한 명, 정국뿐이었지만 태형의 의사는 정국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길어지는 입맞춤에 힘이 풀리는지 자꾸만 휘청거리는 태형을 단단히 끌어안은 정국의 품속에서 거칠던 발버둥도 거의 멈춘지 오래였다. 태형의 혀를 입속에서 사탕처럼 굴리며 그 달콤함을 느끼다 살짝 입을 뗀 정국이 축축하게 젖은 태형의 입술을 짧게 빨아올렸다. 여전히 달았다. 아니, 오히려 처음 입 맞춘 순간보다 훨씬 달았다.
" 생각보다 민감한 편인가 봐요. 웬만한 년들보다 낫네. "
정국이 몸을 떼어내자마자 태형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감고 있던 눈이 뜨이고 제 앞을 가리고 있던 정국이 옆으로 비키자 피투성이가 된 여자의 모습이 여과 없이 눈에 담겼다. 차라리 꿈이길, 눈을 뜨면 입을 맞추던 정국도, 고통에 몸을 떨던 여자도, 그 모든 게 꿈이길 바랐지만 아무리 눈을 깜빡여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얗게 질리다 못해 파래진 채 정신을 잃은 듯 조용해진 여자의 옆에 서서 생글거리는 정국은 악마와 같았다. 천사의 탈을 쓴 악마가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정국을 올려다보던 태형이 몸을 바들바들 떨며 뒤로 물러났다.
" 선물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그래도 나름 예쁜 걸로 골라온 건데. "
" 흐으, 으… 살려주세요, 제발. "
" 살려달라니, 누구를요. 그쪽? 아니면 저 여자? "
태형과 여자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정국이 제 옆에 있던 카트를 태형의 앞에 넘어뜨렸다. 발 앞으로 떨어지는 피에 젖은 쇠붙이들에 놀란 태형이 신음하며 몸을 뒤로 뺐지만, 등에 닿아오는 차가운 벽이 태형을 막아 세웠다. 태형의 앞에 쪼그려 앉은 정국이 찢긴 살덩어리가 엉겨 붙은 도끼를 천천히 집어 들었다.
" 이건 이미 한 번 써서 재미없고. "
" 그만… 그만해요… 선생님, 아, 으… "
작은 도끼를 살피다 다시 바닥에 내려놓은 정국이 태형의 발치에 놓여진 수술용 메스를 들었다. JK. 광택을 내며 반짝이는 메스에는 정국의 이니셜이 각인되어 있었다.
" 내가 이걸로 몇 명을 살렸을까요? "
정국이 예리하게 빛나는 칼날을 쓸어내리자 긴 손가락에 핏방울이 맺히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국은 상대의 몸에 상처를 내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제 몸에 상처를 내는 것에는 서슴없었다.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기도 했다. 한 명을 죽일 때마다 하나의 상처를 내는 것, 이것이 진료를 보던 정국의 손에 붙어있던 밴드가 사라지지 않고 자주 자리를 옮기는 이유였다. 그동안 아무도 모르고 있었을, 이제는 정국과 태형만이 공유하는, 은밀한 이유.
" 그리고 몇 명을 죽였을까. "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아릿함에 미간을 좁히던 정국이 제 손가락에서 일정하게 떨어지는 핏방울을 가만히 응시하다 태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칠흑같이 새까만 태형의 눈동자가 조여오는 공포 속에서 하염없이 흔들렸다. 피식거리며 웃던 정국이 한 손으로 태형의 얼굴을 잡아 피가 떨어지는 손가락을 입안에 욱여넣어 거칠게 헤집자 피가 새어 나와 붉게 물드는 입술 사이로 헐떡이는 숨을 뱉는 태형의 혀를 내리누르며 미끄러지듯 손가락을 빼냈다.
" 오늘은 몇 명이 죽을 것 같아요? 한 명, 아니면 두 명? "
정국이 몸을 일으켜 여전히 미동조차 없이 누워있는 여자에게로 향했다. 이제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아직도 자면 어떡해. 여자의 뺨을 어루만지던 정국이 드러나 있는 하얀 허벅지에 손에 쥐고 있던 수술용 메스를 힘을 줘 꽂아 넣었다. 타는 듯한 고통에 크게 움찔하며 눈을 뜬 여자의 입에서 하얀 천을 빼낸 정국이 태형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 이 여자도 살고 싶다는데, 어떡하는 게 좋을까. 둘이 가위바위보라도 할래요? 누가 살아서 나갈지. "
50:50의 확률이 아닌 100:0의 확률을 가진 도박. 정국은 승패의 관계없이 태형의 손을 들어 줄 예정이었다. 태형이 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긴 했다. 절망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으니까. 순식간에 제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죽음에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태형이 보고 싶었다. 살려달라고, 눈물에 범벅이 된 얼굴로 저를 올려다볼 태형의 모습. 상상만으로도 뻐근해지는 아랫도리에 정국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태형은 마른침을 삼켜내고 백지장처럼 하얀 여자의 손을 쳐다봤다. 여자의 손 모양에 따라 자신의 목숨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사실은 태형을 공포심으로 몰아넣었다.
태형은 어려서부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100원 뽑기에서 1등을 여덟 번이나 했었고, 수천 명의 사람 중 태형의 손에 들린 종이 쪼가리가 당첨돼 해외여행도 다녀왔었다. 이 밖에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그의 별명은 신이 사랑하는 남자. '신자 김태형' 이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태형은 무의식적으로 이 도박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 빨리 안 하면 과다출혈로 먼저 죽겠네. 어떻게 할래요. "
정국은 공황상태에 빠져 초점 없는 동태 눈깔을 하고 여자의 손만 쳐다보는 태형을 바라보며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정국이 보기엔 태형은 머리가 좋았다. 이대로 여자가 허무하게 죽어버리면 정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꼴밖에 되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고, 태형의 판단으로 두 사람의 목숨을 건 도박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 십 초만 기다리면 된다. 정국은 여유로이 웃으며 속으로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10
태형은 여전히 여자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9
8
7
태형이 크게 몸을 움찔이며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 정국을 바라봤다.
6
5
주체 없이 흔들리는 동공을 하고선, 망설이는 건지 빠알간 입술을 오물거렸다.
4
3
2
짧은 시간이지만, 태형의 눈동자에 서슬 퍼런 독기가 서려 있었다.
1
" 할게요. "
예상대로였다. 정국의 생각을 벗어나지 않은 태형의 대답에 정국은 방이 떠나가라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얼굴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 재미있네요. "
" … "
" 지금 수영 씨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으니까, 저한테 귓속말하는 걸로 할게요. 괜찮죠, 수영 씨? "
여자가 끄어어억… 앓는 소리를 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발목이 잘렸어도, 살고 싶다는 욕망은 자르지 못한 것이다. 여자가 죽기엔 여자는 젋고 아직 하지 못한 일이 많았기에.
정국은 태형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한 뒤, 여자의 뺨을 쓸어내리며 꽤 다정하게 물었다. 뭐 낼래요. 여자가 망설이는가 싶더니 가위라고 하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정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피로 온몸을 감싼 도끼를 잡아 여자의 손목을 내리쳤다.
" 끄아아아아아악…! "
" 조용히 해요. 태형 씨 듣잖아. "
정국은 여자의 입을 꽉 막으며 자신의 손에서 물 흐르듯 피를 줄줄 쏟아내는 손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엄지와, 약지, 새끼손가락을 차례로 접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들어와요. 멍하니 문에 기대있던 태형이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정국은 태형의 양손을 결박하고 있는 수갑 하나를 풀어 손목이 잘린 여자의 손목에 채웠다. 손이 없어 채우자마자 바닥으로 주르륵 떨어지는 수갑이 웃겨 비죽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다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 수영 씨는 이미 결정했어요. "
" …네. "
" 무승부면 제가 하고 싶은 대로할 거예요. "
태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호흡을 크게 했다. 정국이 약간 신이 난듯한 목소리로 태형을 비스듬히 내려다보며 작게 웃어 보였다. 가위, 바위, 태형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손을 내밀었다. 정국은 싱긋 웃으며 잘린 여자의 손을 내밀었다. 보.
태형이 내민 손은 쫙 펴져 있었다.
신은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정국의 마알간 웃음소리에 태형은 질끈 감았던 눈을 떠 두 개의 손을 번갈아 봤다. 가위와 보자기. 정국의 손에 들린 손을 보고 놀라기도 잠시, 태형은 자신이 졌다는 사실에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정국을 올려다봤다.
" 서, 선생님… 잘못, 했어, 흐윽, 요. "
" 김 태형 씨. "
"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
태형이 엉금엉금 기어가 정국의 손을 잡고 눈물을 터뜨렸다. 어깨를 심하게 떨며 눈물을 흘리며 제게 매달리는 태형이 색스러워 한참을 쳐다보다 점점 차가워져 푸르른 몸뚱아리를 한 여자를 흘끗 보고 더 늦어지기 전에 태형의 손을 뿌리치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수술용 메스를 집어 태형의 목에 들이댔다.
" 약속은 약속이죠. "
" 흐윽… 끅. 제발, 흑… "
" 만나서 즐거웠어요. "
태형은 바들바들 몸을 떨며 살려달라고 정국에게 애원했다. 색스러웠다. 아름다웠다. 흥분감에 사로잡힌 정국이 태형의 모습을 눈에 담아두다가 거칠게 태형의 티셔츠 목 부근을 칼로 찢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의 심장에 메스를 꽂아넣었다. 울컥이며 피를 뿜어내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숨소리가 끊겨버린 여자의 뺨을 툭툭 치고 쪼그려 앉아 눈물로 얼룩진 태형의 뺨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 전 이기라고 한 적은 없어요. "
" 하아… 흐, 으… "
" 이번 게임은 지는 게 이기는 게임이거든요. "
축하해요. 여자 대신 살아남은걸. 눈물 대신 피로 얼룩진 얼굴을 한 태형을 향해 살풋 웃어주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켜고 뻐근한 목을 빙글 돌렸다. 역사적인 날이네, 오늘. 정국이 나즈막히 속삭이며 여전히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는 태형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애정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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