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그림을 그려다 줄까?
재환이는 어리둥절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진짜 자신의 집 앞이였다.
조금 어지러웠지만 그런 느낌은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지금 꿈을 꾼건가?
혼란스러운 재환이는 그제서야 자신의 두 손에 들린 시계를 봤다. 그가 건네준 시계.
시곗 바늘은 12시를 가르키고 있었고, 움직이지 않았다.
"진짜야..."
시계를 뚫어져라 보다가 레오가 뭘 찾으라는 말이 생각이 난 재환이는 주위를 슬며시 두리번 거렸다. 바닥에 뭔가 떨어져 있다거나
누군가가 뭘 들고 있다거나 그런거 아닐까 하고.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바닥엔 쓰레기와 전단지가 나뒹굴고 있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그럴리가 없지. 내심 기대했던 재환이는 낮게 한숨을 내뱉었다. 시계를 바지 주머니에 구겨넣고 자신의 집을 쳐다봤다.
아무도 없어 불이 꺼져있는 자신의 집이 차가워 보였다.
아까 그렇게 레오에게 말하고 나서 더 우울해졌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유난히 길고 높아보였고, 손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무거웠으며, 머리 속은 이미 작업을 멈춘지 오래고,
눈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쫓을 수 없었다.
그는 집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옮겨 편의점에 들렀다. 도저히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서오세요, 편의점 알바생의 목소리가 잠겨있다. 피곤하겠지. 이 밤에 돈벌려고 이렇게 악을 쓰고 일을하는구나,
재환이는 측은한 어께를 감싸며 맨 안쪽으로 들어와 맥주캔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놨다.
"3500원 이요"
재환이는 주머니에 구겨넣은 돈을 꺼내려다가 시계를 떨어뜨렸다.
3000원을 지폐로 꺼내 올려놓고 뒷 주머니에서 간신히 500원을 찾은 재환이는 마져 건네주고 바닥에 떨어진 시계를 주우려고 엎드렸는데 시곗바늘을 보니 긴 바늘이 1분 움직여 있었다.
'어? 이게 움직였나?'
시계를 집어들고 일어났다.
이재환은 이상한 기분이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주변에 감각이 없어진 느낌,
믿기 힘든 광경을 봤다. 재환이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오백원을 집어든 알바생은 그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편의점의 문을 열고 들어오려던 사람도 두 발자국은 문 안쪽으로 들이밀지 못한 채 멈춰버렸다.
재환이는 맥주캔을 남겨두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거리는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을 정도 였다.
츄리닝을 입고 운동하던 사람도, 뛰어가던 아이들도,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는 고양이도, 떨어지는 고인 물도, 달리던 오토바이도
다 제자리.
당신이 봤다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아무말도 나오지 않겠지.
재환이도 그 자리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지금 뭘보고있는건지, 살아있는건지..눈 앞의 광경을 믿지 못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움직이는건 재환이와 움직이는 시계 뿐이였다.
"지금 나한테 뭘 쥐어준거야 그 사람은..."
재환이는 조금씩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람들 사이로 걸어들어 갔다.
짧은 치마를 입고 걸어가던 여자 앞에서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자신보다 키가 절반이나 작은 아이들이 들고가던 공을 잡고 허공에 두고 띄워도
공은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신기했다.
조금씩 당황했던 재환이의 얼굴근육이 풀리기 시작했다. 장난 꾸러기 같은 표정이 보였다.
세상의 시간이 멈추고 그걸 볼 수 있다는게 재환이에게는 정말로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였다. 신기했던것도 잠시, 재환이는 더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인사동 근처, 횡단보도
많은 사람들이 가로질러 건너고 있었다. 아니, 그 위에 멈춰 있었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재환이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결국 초록불을 대기하고 있던 차 위에 앉았다.
밤에 켜진 불빛들이 사람들의 눈동자를 빛내게 하고 있었다. 네온사인이 길거리를 물들였다. 가로수는 벗꽃을 피워 꽃잎들을 한 잎씩 보내고 있었다.
넋을 놓고 바라봤다. 이런 일상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대박이다..."
재환이는 무릎을 두 팔로 감싸안고 턱을 무릎에 대고 한 10분 정도 그렇게 앉아있었다.
"그림, 그리고 싶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그 말에 재환이도 놀랐다. 그제서야 자신의 손이 근질거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가슴속에서 뭔가 끓고있었다.
누군가가 말하는게 들렸다. 지금 그림을 미치도록 그리고 싶다고,
붓을 들고 싶다고
누군가가 재환이의 귓속에 속삭였다.
하지만 붓과 종이가 없었다. 재환이는 급한대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사진으로 담아가려했지만
"이런 미친"
핸드폰도 시간과 함께 멈춰버린 관계로 홀드키를 눌러도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재환이는 차에서 내린다음 화방을 찾아 뛰기 시작했다.
숨이 차올라 터질꺼같았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였다. 얼마만인가 이렇게 그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게.
그의 머리속에서는 이미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화방을 찾으러가는 동안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반듯한 돌담길, 작은 꽃가게, 경복궁, 연인들, 웃음, 한복을 입은 사람들...
다 아름답다고,,,
낡은 화방을 찾았다.
안경을 쓴 할아버지께서 신문을 보고 계셨다. 재환이는 종이 5장과 파스텔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갔다.
"할아버지! 이거 계산이요!"
재환이는 마음이 너무 급했던지라, 잠시 시간이 멈췄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어쩌지, 지금 현금을 들고 있지 않은 재환이는 옆에 있던 펜과 메모지를 들어 자신의 번호를 적기 시작했다.
' 종이와 파스텔 가져갑니다, 보답하러 꼭 오겠습니다'
-화가, 이재환-
재환이는 재료를 들고 경복궁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아까 그곳으로 가서 그리고 싶었지만, 오다가 본 밤의 풍경에 마음을 뺏겨버렸다.
사진을 찍고있던 연인들을 보고 부러워하던 것도 잠시, 재환이는 연못 한 가운데 있는 누에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경회루,
외국의 사신을 영접하고, 연회를 열던 누각.
이름 뿐만이 아니라 연못에 비춰지는 그림자까지도 아름답다고 하는 누각.
밤에 비추는 불빛들도 그림자를 둘러싸면서 더 빛났다.
나무에서 떨어지던 꽃잎들이 허공에 흩어져있다.
재환이는 종이 한 장을 자신의 앞에 들어올려 손을 노았다.
"아 이거 편한데?"
삼각대 없이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너무 편하다.
재환이는 중얼거리면서 파스텔을 한개씩 꺼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이 알록달록하게 물들어가는건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그저 이 시간동안 한 획이라도 더 긋고 싶을 뿐.
시곗바늘은 어느새 두시를 넘기고 있었다.
재환이는 알고있었을까,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게 이렇게 많을줄 몰랐다는 것을.
이렇게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종이에서 흰색배경이 다른 색으로 채워지고 있는걸 보면서 뿌듯했다.
다른사람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됬다. 나만이, 내가 그리고 싶은걸 그릴 수 있었다. 전혀 다른사람들은 내가 뭘 그리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같은 마음으로 이걸 봐라봐준다면
그걸로 족할 수 있을것 같았다.
"다 그렸다."
3시.
다시 세상의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장미빛 고래 입니다.
제가 너무 늦었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아진짜 새내기라 바쁩니다 ㅠㅠㅠ
죄송해요 진짜 반성하겠습니다.
더 좋은 글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다려주신분들께 너무 고맙고 죄송합니다.
경복궁 야간개장가보세요 두번가보세요
항상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