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떠나왔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내 병이 더 심해져서 큰 치료를 받기 위해 떠나온 줄 알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떠나온 이유는 딱 하나, 그입니다. 나는 영원히 고치지 못할 병에 걸렸거든요. 그에게 말할 수 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내가 그를 생각하듯 그가 나를 좋아해 줄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 나는 도망쳐 왔습니다.
- 석민이는 날 평범하게 대해 줘. 그래서, 네가 좋아.
내가 했던 그 말은, 그를 생각하는 나의 모든 감정들이었습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평범한 취급을 받지 못하며 자라왔지만, 그만은 달랐습니다.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바라봐 주었고, 평범한 사람에게 말하듯 내게도 말을 건넸습니다. 나는 그를 좋아했는데, 그는 그저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을까 봐 아무 고백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다만,
- 형. 지금이 여름이었다면, 바다라도 한번 보러 갔을 텐데.
- ... 다음 여름에 보러 가면 되지.
- 지금이 겨울이었다면, 눈이라도 한번 같이 맞았을 텐데... 지금이 가을이라, 낙엽밖에 보여 줄 게 없어.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이해할 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그저 웃고 말았던 그 기억이 납니다.
- 지금이 가을이라, 너와 함께 겨울을 기다릴 수 있어, 석민아.
그와 함께 겨울을 기다리려고 했는데. 괜히 허탈한 웃음이 나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지만, 왜인지 멈추지를 않네요. 사실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의 폭언이나 행동을 전부 잊을 만큼... 그는 나에게 너무 깊었습니다. 하마터면 내가 사랑받는 사람은 아닐까, 하고 착각할 뻔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첫눈이라도 같이 맞을 수 있었을까요.
- 나중에 나한테 편지 써 줘. 나중에.
내가 왜 나중에 써 달라고 했는지, 석민이는 아마 평생 모를 겁니다.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이유니까, 혼자 안고 살아가야죠. 내 병이 고쳐지는 날, 혹은, 그를 마음에서 지우게 된 날 다시 그를 찾아갈까 합니다.
- 내가... 글을 못 읽어. 흐으, 내가, 석민아, 사실... 끄으, 사실 눈이....
이 말을 했더라면, 그는 나를 이해해 줬을런지요.
석순 짱. 베이비 톡 톡 톡.
엄청 슬프게 쓰려 했는데, 덤덤한 어투가 되었어요... ㅠ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