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그래봤자 고3이라 설레는 것보단 긴장감이 앞섰지만 아주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켜 반배정 결과를 확인했을 땐 정말이지 컴퓨터를 뽑아버릴 뻔 했다. 내 이름 바로 밑에 있는 민윤기라는 이름 석자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설렘이 두려움으로 변했다. 망했다, 망했어. 민윤기 선배와 같은 반이 되면 아마 고생 좀 할 거라는 학주의 말이 떠올랐다.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쉬었다.
"내일 학교 어떻게 가지?"
아무래도 선도부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
22살 고딩 민윤기 01
"선생,"
"오, 잘 왔네! 탄소양 윤기군과 같은 반이라 들었네! 오늘부터 윤기군을 잘 부탁하네!"
"아니, 선,"
"나는 이만 바빠서 가보겠네!"
내 시야에서 멀어지는 학주를 바라보다 들고있던 책을 던졌다.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학생부실 앞에 멍하니 서있다 문에다 머리를 쿵쿵 박았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애써 자기위로를 했다. 망할 선도부는 왜 들어가서. 고1 아무것도 모르는 풋풋한 시절 싸가지 없게 생겼다는 이유로 나는 강제로 선도부에 입장하게 됐다. 그 뒤로 계속해서 나간다고 행패를 부렸지만 학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건데 이건 뭐 전학이라도 가야할 판이다. 마지막으로 크게 학생부실에 머리를 박고 나서야 아픔을 느끼고 이마를 부여 잡았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여기 더 있다간 정말 자살이라도 할 것 같아 책을 주워 이 곳을 떠나려 한 손은 이마를 짚고 다른 한 손을 뻗어 책을 주우려 하자 책이 위로 붕 떴다. 아니, 확실히 말하면 누군가가 내 책을 주웠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얼굴에 경악을 했다.
"..."
"..."
정적이 흘렀다. 민윤기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쭈그려 앉아 민윤기 선배를 올려다 보다 벌떡 일어나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엎어질 뻔 했다. 민윤기 선배가 잡아줘서 다행이도 엎어지진 않았지만. 실은 아침 조회시간에 자리를 바꿨는데 민윤기 선배와 짝꿍이 되는 바람에 선도부를 그만두겠다고 말 하러 온 거였다. 짝궁이 아니였어도 그만둔다고 말 하러 왔을 테지만. 짝궁이랑 선도부랑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해주는 건데 우리학교는 특이하게 한 번 자리를 바꾸면 그 자리를 그대로 유지한다. 뭐, 다른 학교도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쨋든 그렇게 되면 선도부인 나만 죽어나가는 거다. 생각해봐라. 3년 꿇은 선배랑 선도부. 분명 선생님들은 민윤기 선배를 졸업시키려고 온갖 지랄을 다 떨 거다. 물론 나는 그런 선생님들의 이용 수단이고. 작년에 나와 같은 희생양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선배 전학갔다. 그것도 눈에는 피멍 달고와서는 맞았다며 찌질하게 울면서 학교를 떠났다. 어쩌면 곧 다가올 내 미래일지도.
"음악실이 어디야."
"네?"
"음악실이 어디냐고."
"아,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 같이 가면 될 것 같은데."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아니, 근데 나보다 3년이나 더 다녔으면서 음악실을 몰라? 이상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한낱 찌질한 선도부니깐. 단지 싸가지 없게 생겼을 뿐이지 성격은 소심 중에서도 왕소심이였다. 민윤기 선배가 책을 건넸다.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뒤 음악실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색한 공기가 우리 주위를 둥둥 떠다녔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나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서 민윤기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도부 왜 나가."
"아, 그냥, 고3이니깐."
"나 때문은 아니고?"
"아뇨! 그럴리가요!"
"앞에 사람 조심."
내 팔을 잡아 이끄는 민윤기 선배에게 감사하다며 또 다시 허리를 숙였다. 아, 놀래라. 선도부 나가는 이유를 너무 콕 찝어서 말 하길래 좀, 많이 놀랬다. 괜히 민망함에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오늘따라 음악실은 왜 이렇게 먼지 책을 품 안에 꼭 안고 민윤기 선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종이 치자 시간에 딱 맞게 음악실에 도착했다. 대충 빈자리에 앉았는데 어째서인지 민윤기 선배가 내 옆에 앉았다. 선생님이 들어오고 자리 얘기가 나왔다. 바꾸겠지? 그래, 바꿀거야.
"자리는 지금 이대로 앉겠어요."
.. 망해라.
***
정호석과 함께 급식실로 들어오는데 머리가 핫핑크라 그런지 굉장히 눈에 잘 띄는 민윤기 선배가 보였다. 혼자 앉아서 밥 먹고 있는데 안쓰러워서 정호석에게 저기 앉자고 말하는데 무슨 소리냐며 내 팔을 때리더니 저런 무서운 곳에 앉는다니 미쳤냐며 내 이마에 손을 올리며 한참을 중얼거렸다. 미친 놈. 1교시, 그러니깐 음악 시간에 얘기 해 본 결과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그런 건데. 그래도 여전히 무섭지만. 혼자 투덜대며 밥을 프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정호석이
"먹을 거면 너나 같이 먹어! 난 무서우니깐 내 친구들이랑 먹을 거야!"
라고 말하며 지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정호석이 앉기 싫다길래 안 앉으려 했었는데 나 혼자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렇게 된 이상 철판을 깔고 민윤기 선배 앞에 앉아야 겠다. 조심스래 민윤기 선배가 있는 곳으로 가 앞에 식판을 놓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밥을 먹다 말고 나를 바라보는 민윤기 선배였다. 이해한다. 나 같아도 그랬을 거다. 오늘 처음 본 그것도 자신보다 3살이나 어린 애가 친하지도 않은데 자신의 앞에 앉는다면 속으로 이 새끼 왜 친한 척이야, 하며 욕 했을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지금 민윤기 선배에게 친한 척 하는 애로 보일게 뻔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나가기도 민망하고. 결국 내가 내린 결정은 체해서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있어도 빨리 먹고 빨리 나가는 거였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다.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는 민윤기 선배가 신경 쓰였지만 지금 나는 이 곳을 떠나는게 중요했다. 5분도 안 되서 밥을 해치운 뒤 자리에서 일어나자 민윤기 선배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급식으로 나온 요구르트를 내게 줬다.
"..."
"잘 먹길래."
"..."
"너 먹어."
안 받으면 때릴 것 같아 우선 받았다. 감사하다며 허리를 숙였다. 벌써 오늘만해도 3번째다. 대충 음식물을 버리고 급식실을 나왔다. 민윤기 선배가 내 옆을 졸졸 따라왔다. 아니, 이 선배 생긴 거랑 안 어울리게 왜 이래.
"밥 엄청 잘 먹더라."
".. 급해서."
"체하는 거 아니야?"
"저 잘 안 체해요. 괜찮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보건실 가서 소화제 먹고 와."
"진짜 괜찮아요. 아프면 가서 먹을게요."
그 뒤로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반에 들어와 양치 도구를 꺼내 개수대로 향했다. 근데 이 선배 자꾸 따라오는 이유 좀 알려줄 사람? 손에 칫솔 든 걸로 봐선 자기도 양치하러 온 것 같은데 꼭 내 옆에 붙어서 해야 하는 건가, 응, 그런 건가? 그래, 어차피 1년보고 말 사람이고 학교도 3년이나 꿇은 불쌍한 사람이다. 나라도 챙겨줘야지, 나 아니면 누가 챙겨주겠어. 양치를 하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세상에 나보단 착한 사람은 없을 거야. 혼자 자아도취에 빠져있는데 옆에서 살짝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민윤기 선배뿐이였다. 정색한 체 나를 쳐다보는 선배의 표정에 내가 잘못 들은 거겠거니 하고 입을 행궜다. 옆에서도 입을 행궜다. 누가 보면 거울인 줄 알겠네.
"퉤!"
침을 한 번 뱉고 민윤기 선배 옆에 서서 선배의 양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선배가 가자며 나를 데리고 교실로 행했다.
아니, 근데 내가 왜 민윤기 선배랑 같이 다니지?
***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5교시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아무래도 체한 것 같다. 배를 부여잡고 책상에 엎드렸다. 개학 첫 날부터 되는 일이 없었다. 아까 전 선배가 준 요구르트를 마이 주머니에 넣어둔 뒤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 아, 아차 죽겠네.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진짜 잘 안 체하는데. 오늘은 운이 안 좋은가 보다. 손 들고 보건실 갔다 오면 안 되냐고 그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도저히 말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
"거기 뒷자리. 이 문제 좀 풀어볼래요?"
"..."
"거기 머리 묶은 여학생."
".. 저요?"
"그래요."
아픈 배를 이끌고 어기적, 어기적 앞으로 걸어갔다. 아, 진짜 왜 이렇게 아프지. 분필을 들었다. 이상한 숫자들이 둥둥 떠다녔다.
"모르겠,"
시야가 흐려진다. 아무래도 단단히 체했나 보다.
***
눈을 뜨자 보이는 풍경에 벌떡 일어났다. 미친!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에 침대에서 내려왔다. 우선 병원은 아니라 다행이다. 커튼을 젖히고 침실을 나왔다.
"어?"
보건 선생님의 자리에 앉아있는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왜 여깄지? 선배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약을 건넸다.
"먹으래."
"..."
"선생님한테 말하고 온 거니깐 걱정하지 말고."
약을 건네 받았다. 약을 입에 넣자 친절하게 물까지 떠다주는 선배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뒤 물을 마셨다. 선생님 어디 가셨어요? 수업. 저희도 가요. 괜찮아?
"네?"
"배 아픈 거 괜찮냐고."
"아, 네."
선배가 손을 뻗어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쓰다듬기는 무슨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보건실을 나가는 선배였다.
"왜 저래."
진짜 생긴 거랑 안 어울리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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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잘못 올렸는데 보신 분 없죠? 없을 거라 믿어요.
제가 꾸준히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암호닉 받을게요.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