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미나리
04. 다행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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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로 선배와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일방적으로 선배를 피하고 있는 꼴이었다. 예를 들자면 오늘 아침처럼..
(오늘 아침)
선배를 피하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도 시간은 참 빨리 갔다. 눈 코 뜰 새도 없이 바빴다. 아니 이놈의 일은 왜 매일 하는데도 차고 넘치는지. 오늘도 월급 도둑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럴 때면 이 회사 일한 만큼 돈 준다는 말이 딱인 것 같다.
"아으,"
어깨며 팔이며 온 몸이 찌뿌둥한 것 같아 양팔을 높이 올려 의자에 몸을 잔뜩 기댄 채 기지개를 켜는데, 고개를 위로 하는 순간 놀라 자빠질 뻔했다.
"...."
"엄마야-"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가려는 내 몸을 큰 손이 덥썩 잡았다. 아.. 선배. 뒤로 자빠질 뻔한 내 모습에 선배도 어지간히 놀란건지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아.. 놀라게 하려던건 아니었는데'라며 머리를 긁적인다. 난 선배를 어디서 어떻게 보든지 놀라운 그런 사람인데 이렇게 작정하고 놀래키면 어떡해요..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정말 ㅠ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선배를 올려다보는데, 놀란게 진정되고 나니 이제 미친듯한 어색함이 밀려온다. 어떡하지.. 도저히 선배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겠어서 애꿎은 눈알만 굴리는데 선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바빠?"
"아.. 어.."
"안 바쁜 거 같은데 커피 마시러 가자"
이 상황을 피할 그렇다할 변명거리를 찾지 못했다.
어느새 난 선배와 휴게실에 두손으로 커피를 쥔 채 마주앉아 있었다. 시선은 여전히 갈 곳을 못 찾는 중이며 손에 뭐라도 쥐고 있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선배도 내 눈치를 보는 건지 입을 뗄 생각을 안하고.. 하, 내가 먼저 말을 해야하나.
"선배,"
"꿀벌아"
아, 타이밍. 빌어먹을 ㅠㅠ
"아.. 네, 선배."
"요즘 왜 나 피해?"
..돌직구다.
약간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선배가 물었다. 왜 피하냐고. 하긴 그렇지. 너무 대놓고 피했지 김꿀벌. 선배의 물음에 대답할 말을 또 찾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문 채 커피가 든 컵만 만지작거렸다.
"...."
"그날 일 지호형한테 대충 들었어"
"아.."
"나도 다 기억나"
기억 안해주셔도 되는데.. 선배 필름 끊긴 것 같았는데 왜 그런건 기억하고 그러세요ㅜㅜ.. 그 날 일이 다 기억난다는 선배의 말에 괜히 혼자 긴장해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뭐라 말을 해야할까.
"선배, 그 날 일은.."
"미안 꿀벌아"
"네?"
"그 날 많이 당황했잖아."
"...."
"나는 너 불편하게 하려던 거 아니였는데.."
"아.."
"다음 날에 바로 사과하려했는데, 너는 마주치려하지도 않고. 밥 먹을 때도 나랑 멀리 떨어져 않고 자꾸 피하고.."
웅얼웅얼 자기 생각을 말하는 선배가 또 귀엽다. 자기는 진짜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었다는 듯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얘기하는데, 아.. 나는 이렇게 선배를 신경 쓰이게 만들려던 게 아니였는데. 선배는 내가 그 날 일로 선배에게 좋지않은 감정을 가져서 불편하게 되어 자기를 피한다고 생각해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렇게나 피해 다녔으니 그럴 만도.. 아무래도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아 용기내어 선배와 눈을 맞추곤 입을 열었다.
"선배"
"응-"
"그냥 저 혼자 쪽팔려서 그랬어요.."
"어?"
"쪽팔려서요.. 그 날 제가 괜히 거기 가서 분위기만 이상하게 만든 것 같구 선배는 제정신도 아니였고.. 막상 다음 날 되니까 선배 얼굴 보는게 창피해서, 그래서.."
"...."
"그래서 잠깐 피했어요.."
내가 말하면서도 중간에 자신이 없어져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가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다 저 혼자 그냥 선배 얼굴 볼 자신이 없어서 그랬던 거에요.. 결국 또 고개를 숙이고 선배 반응만을 기다리는데 선배는 대답이 없다. 불안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선배를 바라보는데 어느새 선배 얼굴이 내 가까이에 와있다.
"다행이다"
흐흫, 하고 웃으며 선배가 말했다. 나는 괜히 걱정했네. 표정 좀 풀어 김꿀벌~ 금새 웃는 표정으로 말하는 선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괜히 쫄았다.. 선배는 저렇게 해맑은데.
"그럼 밥 먹자. 이따가"
"네?"
"사기로 했잖아 내가"
아 맞다. 밥. 선배의 말에 금새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내 모습에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김꿀벌 이 팔불출. 기분은 또 왜 이렇게 이랬다저랬다야. 너무 좋잖아.
"시간 괜찮지?"
"네!"
"이따가 보자"
또 피하지말고!
습관처럼 선배는 내 머리에 큰 손을 한 번 얹고는 휴게실을 나갔다. 정수리가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아까는 선배를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였는데 이제는 이따가 선배를 볼 생각에 또 설렌다. 오늘 내가 화장은 제대로 했었나. 옷도 예쁜 옷 못 입었는데 ㅠㅠ 화장이라도 고쳐야겠다.. 허으, 선배랑 밥이라니.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오후 다섯시. 얼마 안있으면 퇴근시간이고 퇴근을 하면 선배와 단 둘이 저녁을 먹는다. 아무래도 일이 손에 안 잡힐 것 같다. 그래도 일은 끝내야지. 정신을 부여잡고 업무에 집중했다. 아까까지만해도 일이 많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또 괜찮은 것 같다. 역시 사람 심리란..
"저녁 먹으러 가야지, 다들."
어느덧 시간은 흘러 6시. 저녁시간이 되자 저녁 식사를 위해 하나둘 일어나셨다. 저녁 먹으러 가자는 이대리님의 말에 그저 엑셀 파일만 정리하고 있자 의아한 표정으로 대리님이 물었다.
"꿀벌씨, 저녁 먹으러 안가?"
"아.. 저는 약속이.."
"남자?"
아, 방심했다. 훅 들어오는 이대리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런 내 표정을 캐치하신건지 대리님은 특유의 웃음을 지으셨고 '얼른 퇴근해요'라고 말하며 어깨를 토닥이곤 가버렸다. 아.. 김꿀벌 멍청이. 남자랑 밥 먹는다고 아주 광고를 해라 그냥!!
속으로 나 자신을 원망하며 정리한 엑셀 파일을 닫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다들 식사를 하러 가시고 선배와 나 둘 뿐이다. 선배도 약속이 있다고 했을까. 대리님이 의심하시면 어쩌지.. 괜히 혼자 걱정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선배가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말을 건낸다.
"일 다했지? 아무도 없을 때 퇴근하자"
"네?"
그럼 더 의심하실 것 같은데.. 근데 아무래도 나 혼자 이런 걱정 중인 것 같다. 선배는 내 이런 걱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 해맑게 웃으며 빨리 가자고 날 재촉했다. 역시 선배는 내게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 주위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건가..
"뭐 먹을지는 생각해놨어?"
"네? 아!"
"뭐야, 김꿀벌~"
"진짜 생각 못했어요.. 어떡하지.."
ㅜㅜ. 뭐 먹을지나 생각해 둘 걸.. 쓸데없는 걱정할 때가 아니였는데.
당황한 얼굴로 선배를 바라보다 두뇌를 풀가동하고 눈알만 굴리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선배가 작게 '으유~'하며 웃더니 내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깜짝 놀라 선배를 바라보는데, 아무렇지않은 당당한 선배 표정이 더 놀랍다. 아니, 작은 터치에도 이렇게 반응하는 내 모습이 더 놀라운 것 같기도하다.
"꿀벌이 니가 안 정해놨으니까 내가 가고싶은 곳 가야지"
"어디 갈려구요 선배??"
"비이밀~ 나만 믿어"
또 흐흫 하고 웃으며 선배는 내 손을 이끌었다. 얼마나 맛집이길래 저렇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날 이끄는 건지 궁금하면서도 그저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선배가 너무 귀엽고 좋다. 솔직히 말하면 선배라면 어떤 음식점에 데려가도 상관 없다. 그냥 어색하지 않은 이 상황이 난 너무 좋다.
정말 다행이다. 멀어지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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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
너무 오랜만에 왔죠?
제가 쓰기차단을 자꾸 당해가지구 ㅎ_ㅎ.. 조심 좀 해야겠어요!
# 예쁜 독자분들 #
커피우유 / 왱왱 / 구름위에호빵맨 / 백수꿀벌 / 알티스트 / 벗 / 두부 / 요랑이 / 블넹
혹시나 암호닉 누락된 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
이번 편도 양 조절에 실패했어요.. 밥 먹는 씬까지 넣을까 하다가 애매모호하게 끝날 것 같아서
아마 다음 편까지 연재 후에 지훈이 버전으로 올 것 같네요
주말에 올 수 있음 꼭 올게욥 ㅠㅠ!
(BGM 안어울리는 것 같아서 수정했어요!_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