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같은 아이였다. 그 새카만 눈을 보고있자니 심해의 어둠으로 계속해서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머리도 새카맸다. 그렇지만 목덜미는 희었다. 정확히 흑백으로 대비되는 무채색같은 아이가 비도덕적인 나를 구원해주면 좋겠다고 남준이 생각했다.
남준은 입양을 하기로 결심했다. 굳은 기독교 신자인 그로서는 선행에 대한 집착이 남들보다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왔고, 기부도 종종 행했다. 욕심은 불과도 같아 누군가가 부싯돌로 한번의 불꽃만 일으켜 주면 순식간에 산을 뒤덮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산속의 모든 것들이 탐욕스런 불꽃의 혀놀림 속에서 잡아먹힐 것을 남준은 잘 알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잘 모르는 이는 그를 하나같이 돈을 쫓는 악귀라 불렀다. 탐욕의 표상이 되어버린 그에게도 사연은 있다. 부모님이 단 하나의 유물로서 남겨주신 사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차라리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늪 속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그가 당하던 그 모든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며 피와 눈물로 점철된 돈뭉치들을 뜯어냈다. 그가 살기 위해서는 이 길뿐이었기에 이 길을 선택했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단추를 모두 뜯어낼 수 없다면 끝난 일. 이렇게 된 이상 누군가의 성스러운 축복을 받아 그 다음생에는 행복하도록 끝을 맞이하는 것이 그가 원하는 죽음이라면 죽음이다. 그런 속보이는 이유로 남준의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이 지민이었다.
누군가를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일, 그것도 선행이자면 선행이 아닌가. 입양을 하기 한 달 전, 남준의 생각이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처절하게 내세의 행복을 위해 뇌속의 쳇바퀴를 굴리는 것을 멈추고나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자주 봉사활동을 갔던 고아원에서 지민을 입양했다. 고아원에서의 지민은 마치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고 누구도 어울려 주지 않는, 곧 재가 될 중세시대의 마녀와도 같았는데 남준에게는 그를 구원해줄 천사라니. 모순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지민과 남준은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함께 눈을 뜨고 밥을 먹으며 같은 곳에서 잠을 잤다.
남준은 뱀을 키웠다. 그렇기 때문에 지민이 집에 온 첫날, 그는 지민에게 뱀이 있는 그 방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항상 우리에 넣어놓긴 하지만 혹시나 밖으로 나와 무지한 9살 지민이에게 상처를 입힐수도 있기 때문에.
부엌 옆에 이 방엔 뱀이 있어. 항상 우리에 넣어놓긴 하지만 혹시 나와있을 수도 있으니까 절대 들어가면 안돼.
....네
지민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가 살던 세상은 흰 도화지를 검은 크레파스로 난도질 해놓은 것과 같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고아원에 들어와서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모두 이렇게 암담한, 아니 암담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것을 보고 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슬프진 않았다. 지민은 원래부터 이렇게 살아왔으므로 상실감의 폭풍은 그를 비껴나갈 수 있었다. 고아원에서는 아무도 다가와주지 않았다. 그 나이대 아이들의 악의어린 순수함이 지민을 집단에서 철저하게 배제했다. 혼자만의 세상에서 하루는 항상 밤이었다. 휘영청 달이 떠있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찬 바람만이 지민을 때리고 가곤 했다. 그는 아이들이 잠드는 방문앞에서 쪼그려 새우잠에 들곤 했다. 그런 지민에게 나타난 달이 남준이었다. 아직 9살인 지민에게 선과 악을 굳이 구분해서 그를 판단하라면 그는 선이다. 남준의 집에서 처음 자게 된날, 그는 처음으로 따뜻한 이불을 덮고 몸을 곧게 펴고 잘 수 있었다.
그렇게 남준과 함께 살았다. 지민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개인적으로 점자를 읽는 교육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민의 세계의 대다수는 남준이 차지했다. 시계의 톱니바퀴는 남준과 함께 돌아갔다. 남준이 돌아오기 전까지 점자를 읽고, 쓰는 연습을 하다가 남준이 오면 얘기를 하고, 함께 밥을 먹고, 잠에들고, 그러다 눈을 뜨면 남준은 또 옆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준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는 왜 모두 잠들 채비를 하는 시간에 나가는지, 들어와 같은 공간에 있을 때면 왜 축축하고 비린 피냄새가 나는지도 안다. 지민이 지금껏 먹고 자고 입었던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끔직한 비명소리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청각이 예민한 지민에게는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민의 앞에선 남준은 전화소리를 줄이는 표면상의 예의도 갖추지 않았다. 하지만 늘상 지민에게 남준은 선이다.
여전히 남준은 봉사활동을 하러 나가고, 기부를 하고, 지민을 열심히 키운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선행의 지푸라기들을 꼬아 지옥으로 떨어질 자신이 잡을 동아줄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다음생에는 행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속물적이면서도 참 순수하지 않을 수 없다. 올지 안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처절하게 이번생의 몸뚱아리를 갈아넣다니. 지민은 남준의 깊고도 얄팍한 생각은 알지 못하지만 가끔은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민이 18살 정도에 일렀을 때다. 남준이 조각난 도덕성을 겨우 끌어모아 만든 비루한 성이 금이 갈 뻔한 일이 발생한다. 점차 남준이 지민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을 남준 그 자신이 먼저 알아차렸다.
저 아픈거 같아요
어디가?
여기, 입 안쪽이 헐은거 같아요
..입벌려봐
가만히 입을 벌리고 앉아있는 지민의 모습이 왜 방아쇠를 당겼을까. 남준의 사고는 총소리에 놀란 경주마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처럼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입 안쪽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놀란 지민이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벌렸다. 입 안쪽에서부터 손가락을 미끄러트려 도톰한 입술을 쓸어내렸다. 마치 손가락을 빠는 것 마냥 물기어린 소리가 났다. 눈을 더 아래로 하니 늘어난 티셔츠 위로 지민의 쇄골이 보였다. 쇄골까지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허용했다가는 그 후에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데인 것 마냥 손을 떼버렸다.
이빨을 못닦겠어요
...왜?
저기 아픈데를 제가 계속 찔러요.....도와주시면 안될까요?
칫솔을 들고와 가만히 남준의 앞에 지민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칫솔을 든 남준이 지민의 턱을 잡고 자신의 앞으로 끌어왔다. 멍하고 검은 눈동자가 인형마냥 남준을 바라봤다. 지민은 남준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남준에게는 그의 시선이 마음까지 꿰뚫어보는 것 마냥 느껴졌다. 치약을 짜서 칫솔질을 시작했다. 살살 이빨을 문질렀다. 햐얀 거품이 뭉글하게 일어났다. 칫솔을 쥔 손이 지민의 입안을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칫솔을 다시금 꽉 잡아쥐고 하나하나 닦아줬다. 내가 수전증이 있었나. 아니, 아니다. 덜덜 떨리는 것은 손이 아니라 마음이어서 이리도 혼란스러운 것 같다고 남준은 생각했다.
미묘한 기운이 집안을 두르고 있던 날들이 흘러가던 중,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지민은 결국 들어가 상처를 입었다.
저 뱀에 물린 것 같아요.
희고 작은 손에 상처가 나있었다. 남준이 지민을 앉히고 홀린듯 입을 손에 갖다댔다. 벽에 기대어 있는 지민은 가만히 손을 내주었다. 남준이 입을 사용해서 피를 뽑아냈다. 그의 의도는 피를 뽑아내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손을 빠는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손을 핥았다. 상처를 혀로 살살 굴리다가 피를 빨아 거실 한구석에 뱉었다. 피가 거실 바닥에 계속해서 고여갔다. 상처가 아닌 부분까지도 입으로 어루만졌다. 상처가 있는 곳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희고 통통한 손이 자신의 입안을 휘젓고 있는지 머리를 휘젓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왜인지 모를 흥분감이 남준에게 서서히 밀려왔다. 지민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지민의 입이 벌어진다. 지민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창 손을 빨다가 하얀 다리로 시선이 향했다. 손의 피는 이미 멈춘지 오래이다. 그렇지만 남준은 그 손을 놔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들어가지 말랬잖아. 내가 하고싶은 행동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도덕적인지 비도덕적인지 남준의 사고는 폭풍우 앞 바람개비마냥 팽팽돌아가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옳은것일까? 도덕적인 것인가? 그것만을 위해 살아온 남준은 고민한다.
저 다리도 물린 것 같아요.
다리에는 상처가 없었다. 남준을 구원할 아이는 그를 허락했다. 그의 도덕성을 무너뜨리지 않고. 언제부터였을까. 저 방안에 있는 뱀이 실은 독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남준에게 손을 내줬던때부터? 그의 손을 입에 담았던 때부터? 혹은 어렸던 시절 지민에게 빛이 되었던 그때부터? 아니. 굳이 지금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남준은 지민의 다리에 입을 갖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