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
뒤를 돌아보니, 그 애가 없었다. 어디 간 거야. 성용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연아 언니가 없으면, 나도 없어요…. 그 애의 마지막 말이 계속 맴돌았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성용 저를 죄여오는 기분이었다. 숨이 막혔다. 그 담담한 어투에 흔들려버린 것일까. 성용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어쩌면 그 애의 무표정을 가장한 여러 군데에 베인 마음에 이끌려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 게임에 관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파이어들이 그 조그만 애를 노리고 있다. 겁도 없이 뱀파이어들을 건들여버린 그 애를 지켜야겠다고. 고작 김연아를 지키겠다고 저의 목숨보다 위험한 내기에 발을 들인 그 애를 좀 알아야겠다고. 성용의 입으로 내뱉었다. 내가, 너를 지켜줄게…. 그제서야 나른한 웃음이 성용의 얼굴에 걸쳐졌다. 그 애가 벗어둔 원피스를 집어들어 저의 코를 갖다댔다. 방 안의 공기가 그 애의 냄새로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그 애의 체취가 자신을 구원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 애의 원피스를 끌어안았다. 너는 내가 지켜. 그 말을 다시 한 번 뱉었다. 그 말이 면죄부인 양 성용은 거듭 그 말을 중얼거렸다.
ㅇㅇ
ㅇㅇ은 칼을 단단히 쥐었다. 두 번째 살인. 다행히 첫 번째 그 판사보다는 역겹지 않다. 칼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연아 언니, 내가…, 내가 언니 지킬게…. 찌르기만 하면 된다. 마약과 술에 빠져 제 아이들을 죽인 이 여자를, 벌해준다고 생각하고 찌르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 여자만 죽이면 뱀파이어들과 치뤄야 할 게임이 시작된다. 칼을 뒤로 멀리 뻈다가 눈을 질끈 감고 심장 부근에 찔러넣었다. 여자가 윽- 하고 ㅇㅇ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이 저의 마지막 희망이자 구원이라는 듯이. ㅇㅇ은 차갑게 그 추잡한 여자의 손에서 저의 손을 빼내었다. 뜨거운 피가 바닥에 고여 ㅇㅇ의 원피스를 적셨다. 당신이 느끼고 있는 그 고통을 당신의 아이들이 겪었어. 여자의 가슴에 꽂힌 칼을 ㅇㅇ은 거칠게 뽑아냈고, 그와 동시에 피가 사방에 튀었다. 빨간 피가 묻은 얼굴은 기묘하게 엉크러져 있었다. 웃는 것 같다가도 우는 것 같은.
이제 곧 13월이 다가온다. 여기저기 묻은 피와 적셔진 피로 엉망이 된 원피스 위로 두터운 점퍼를 입었다. 손에 엉켜붙은 피를 여자의 옷에 쓱쓱 닦아버렸다. 피비린내가 ㅇㅇ 저를 광기에 이르게 하려고 쫓아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홀린 듯 바닥에 고인 피에 입을 가져다 대려다가 주먹을 꽉 쥐고 서둘러 그 곳을 빠져나왔다. 아직도 핏내가 코끝을 맴도는 것이 기분을 역겹게 만들고 있었다. ㅇㅇ은 쫓기듯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다. 곽에서 하나를 꺼내 익숙하게 입에 물었다. 성용이 주었던 라이터로 불을 붙이니 담배가 타들어가면서 담배 연기가 뭉글뭉글 피워 올랐다. 담배의 냄새가 핏내를 거진 덮자 그제서야 걸음을 서둘렀다. 타락…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연아
연아는 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꾹꾹 눌렀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습니다- 하는 딱딱한 음성이 들렸다. 집, 들어가기 싫다….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동생이 너무 그리워서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때가. 아무 소리도 없는 방에 외톨이처럼 소파에 앉아 불안하게 공허한 눈으로 TV를 보고 있는 저의 모습이 지독하게 슬플 때가. 혼자만의 냉기에 뼛속까지 시리는 것 같아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멍하니 누워있는 것이 미치도록 위태로울 때가. 의미 없는 숨을 내쉬다보면 오늘 하루도 다 가겠지- 하고 억지로 잠이 들 때가. 동생의 온기가 필요했다. 다시 혼자가 되는 건 미치도록 싫었다. 연아는 차라리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의 문을 열고 들어온 연아는 온 몸에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종일 ㅇㅇ을 찾아 다녔으니 힘이 빠질 만도 했다. 닫힌 문에 가면히 벽에 등을 기대어 주저앉았다. 추워…. 으슬거리는 몸을 저의 팔으로 감쌌다. ㅇㅇ과 함께 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려다가 애써 지워버렸다. 좋았던 기억들은 언제나 잔인하다, 혼자가 되었을 때 그 좋았던 기억들은.
자철
아…. 또 그 여자 애. 자철은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그 여자 애…. 여리여리한 것이, 아무리 보아도 성용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니,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랑에 빠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성용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의 성용은 달랐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어도 언제나 시선은 그 여자 애에게 닿아 있었다. ㅇㅇ이라고 했었나…. 타는 속에 차가운 혈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몸 속으로 나른한 기운이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옆에 앉아 지긋이 내려다보며 자철은 곧게 뻗은 성용의 콧대를 툭툭 쳤다. 그의 눈 앞에서 손을 휙휙 저어보며 자철은 그의 옆에 누웠다. 기성용, 자-? ……. 자나보네…. ……. 자는 것 맞지?
항상 네가 하는 일은 발 벗고 도와줬었는데,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자철은 잠잘 때 그나마 사람같이 쌔근쌔근 자는 그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변명은 없어. 그냥 난 널… 사랑해….
용대
병원에 이대로 놔두어야 하냐는 성용의 물음에 용대는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병원에 있으면서 쉬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잡고 싶었던 것은…, 하루만이라도 그녀를 기성용이 아닌 이용대 저의 곁에 두고 싶었다. ㅇㅇ이 큰 성용의 뒤에서 저의 곁으로 조심히 와 뒤로 서는 것에 용대는 희열을 느꼈다. 성용은 내일 올게, 라며 끝끝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ㅇㅇ을 보고 성용이 돌아섰다. 용대는 몸을 돌려 ㅇㅇ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 무너질 것 같은 표정. 용대는 ㅇㅇ을 살짝 안아보았다.
"힘들면… 나한테 기대도 돼."
일단 이까지 써봤어요
쑨양, 태환은 예고가 없네요ㅠㅠ....
관계랑은 아예 다른 분위기일 것 같아요
ㅠㅠ망상글, 망상고르기 둘 다 빨리 쓸게요..♡
쓰고싶은 건 많고 벌려놓은 것도 많고 어휴..
필력이 부족하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세요..!
저기 포스터랑 사진들은 그냥...넣었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
참 연아 시점, ㅇㅇ 시점으로 나눠서 나중에는 합쳐질 것 같아요
홀수편은 연아, ㅇㅇ시점 짝수편은 성용, 태환시점 이렇게...?
시점이 다양할 것 같아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