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만 사무실은 시원하고, 우리팀은 여전히 바쁘고, 달라진 건 차장님 헤어스타일 빼고는 딱히 없는 것같음. 하루하루 출근-일-점심-일-저녁-일-퇴근의 반복이고 가끔 데이트도? 하고있음. 일이 워낙 많아서 밖에서 만나는 일이 좀 줄었지만 회사에서 매 번 보니 별로 문제될 건 없음.
아, 우리 팀에 인턴이 한 명 온다고 함. 내가 인턴으로 처음 왔을 때가 벌써 일년이 다 돼가고 (사실 마음속으로는 아직 일년...인가 싶음) 나도 직장인이 다 된 기분임.
"하계 인턴 뽑았다던데 우리 팀은 안오려나"
"우리 팀은 오래 없었지. 이제는 이사원도 있고"
"아니에요, 온데요 인턴. 저기 빈 자리"
"대리들도 모르는데 소식이 빨라 ㅇㅇ씨~"
박대리님과 이대리님은 네 대리님...? 네 아니요...? 하며 처음 입사했을 때 내 모습을 흉내내고 계심. 우리끼리 낄낄 거리며 얘기 중이었는데 여자 한 분이 우리 쪽으로 오심.
딱 보고 느낀 생각은 정말 예쁘다.? 이름이 이선빈이라는데 이름도 예쁨. 이대리님과 나는 서로 눈치만 보는데 사회성이 뛰어나신 박대리님께서 먼저 입을 떼심.
"지금 오셨나보네요. 인턴!"
호탕하게 한 마디 하시고 두분이서 초롱초롱하게 나를 쳐다보시길래 내가 자리 안내해주고 이것 저것 알려줌. 상사가 된 기분이라 뿌듯했음. 때마침 차장님도 들어오시고 서로 인사 나눔. 그리고 또 다시 점심까지 일-일-일 이었음.
"잠깐 어디 들렸다가 갈테니까 먼저 아무데나 가서 연락줘요"
"비싼 거 먹어도 됩니까? 새로 인턴도 왔는데"
박대리님이 너스래를 떠니까 차장님이 박대리가 더 신났네, 하고 웃으면서 나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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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님이 오시기 전에 외근나가신 이대리님 빼고 셋이 자리를 잡고 앉음. 박대리님께서 열심히 수다를 떨어주신 덕분에 분위기가 좋았음.
"스물 일곱이랬나? 우리 회사가 처음이에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니.! 내가 동생이라니.! 하며 적잖이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되게 동안이시다..! 하며 용기 내서 한 마디 건넴. 낯을 가리는 내 성격과 달리 상당히 밝아서 대리님과도 빠르게 친해짐. 차장님이 오셔서 밥을 다 먹고 나옴. 선빈씨가 커피를 쏜다길래 아싸! 저는 아메리카노! 외치려고 했음.
"아 어떡하죠... 저 지갑을 놓고 왔어요 죄송해요 ㅠ"
"아니에요 제가 살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같이 가요. 내가 사요"
"아 맞다, 차장님 아까 영업팀에서 서류 하나 빨리 올려달라고 했는데"
먼저 가세요~ 괜찮아요~ 하고 혼자 커피를 사러감. 커피를 사서 올라갔는데 차장님이랑 대리님은 옥상에 가신 건지 아무도 없고 선빈씨 뿐임. 최대한 생글생글한 표정으로 커피를 내밈.
"뭐 마시는지 몰라서 그냥 아메리카노 샀는데 괜찮아요?"
"아 제가 시럽 안탄 건 못 마셔서 그냥 이사원님 두 잔 드세요~"
네..? 아 네 하고 내밀었던 커피 다시 가져오는데 차장님이랑 대리님이 들어오심. 쏜살같이 내 손에 있던 커피를 대리님과 차장님께 건넴.
"차장님~ 대리님~ 이거 드세요"
대리님은 잘 마실게요 선빈씨~ 하시고 차장님은 네 고마워요. 하고 커피 받아서 자리로 가심.
[ 이사원 12 : 50 ]
뜬금없이 메신저가 왔길래 다음 메세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안와서 차장님 자리로 고개를 돌림. 눈 마주치니까 입모양으로 '잘마실게요' 하고 씨익 웃으심. 차장님 한마디에 괜히 기분이 좋아서 폭풍열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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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일만하며 지냄. 하루는 일이 좀 많이 늦게 끝나서 차장님 차 타고 집에 가기로 했음.
선빈 씨도 엘레베이터에 같이 탔는데 내가 1층에서 내리기도 안내리기도 이상한 모양새가 됨. 내리자니 차장님을 주차장까지 혼자 보내야 하고 안내리자니 선빈씨가 신경쓰이고.
"이사원님 안내리세요?"
"아.. 저.."
"둘 다 내 차 타고 가요. 나가있어요 차 끌고 갈게"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같이 차장님 차를 탔는데 선빈씨네 집이 더 멀어서 내가 먼저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옴. 그래도 나랑 차장님은 사귀는 사이인데 단둘이 차를 타고 가게 하고싶지 않았음.
그렇지만 집에는 가야 하니까 내림. 차장님이 나만 보이게 손을 흔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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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회사에 갔는데 탕비실에 선빈씨와 마주침. 둘 다 아무말 없이 정적속에서 커피타고 있는데 선빈씨가 먼저 말을 검.
"차장님 정말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 인턴을 우리팀으로 와서 참 다행이에요"
"맞아요 ~좋은 분이시죠"
이때까지만 해도 괜히 내가 뿌듯해서 실실 웃었음.
"어제도 저랑 둘이 차에서 어색할까봐 계속 재미있는 얘기 해주시고 ㅋㅋㅋ"
'둘이'라는 단어가 매우 거슬려서 마음속으로는 어쩌라고, 어쩌라고요. 예 좋으셨겠습니다. 백 번 외쳤지만 아 ㅎㅎ^^ 맞아요 ^^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함.
자리에 앉아서 일하는데 선빈씨가 커피를 들고 걸어오더니 어맛! 하며 커피를 쏟음. 덕분에 나도 비스듬히 커피벼락을 맞음. 뜨겁고 짜증났지만 중앙 탁자에 정리해놓은 서류가 생각났음. 화들짝 놀라서 뒤 돌아보니 이미 커피를 잔뜩 먹고 늘어져있음. 어쩔 수 없이 다 다시 하고 있는데 차장님이 하필 이 때 그 서류를 급히 찾으심.
"ㅇㅇ씨, 어제 그 서류 좀 부탁해요"
"아 그게 지금 하고있는데.."
"놀지 맙시다"
진짜 지금까지 일했는데 놀지 말라는 말에 괜히 울컥하고 억울해 죽을 뻔함. 옷도 갈아입고 싶고 짜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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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내 신경을 살짝살짝 긁던 일이 많았는데 꾹꾹 참다보니 어느새 3개월이 지남. 선빈씨는 이제 인턴 PT만 남겨두고 있고 우리팀은 송별회겸 저녁을 먹으러 갔음.
내가 아니라 선빈씨가 차장님 옆자리에 앉음. 이 때는 차장님도 나도 서로 일 때문에 감정 소모가 너무 심해서 아 그냥 그런가보다 함.
"제가 사원되면 우리 똑같은 직급이네요~ 말 놔도 되나?"
"네?"
"그렇잖아요~ 저보다 한 살 어리신데"
몇 잔 마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었음. 차장님과 대리님들도 좀 당황하신 눈치였음. 박대리님이 선빈씨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하시고 넘김.
박대리님은 수정언니한테 전화와서 받으러 나가시고 이대리님은 잠깐 화장실 가심. 그 뒤로도 선빈씨의 진상짓은 계속 됨. 차장님께도 정말 극심하게 치댐.
"차장님 저 꼭 2팀으로 오고싶어요~"
"네, 그럼 좋겠네요"
"저 꼭 뽑아주세요 열심히 할게요! 진짜로요 ~"
"이선빈씨"
"네?!"
"부서배정은 인사과에서 하는 거고"
"에이 그ㄹ.."
"여긴 회사에요. 나한테나 다른 직원들한테나 적당한 선은 좀 지켜줬으면 하는데."
"네..? 아 저는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회사에는 나이 없습니다. 다른 부서 가서도 이사원한테 했던 것처럼 그런 말도 안되는 얘기 안꺼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
"아까 그 소리를 내가 직접 들었으면 정말 어이없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아.. 네 .. 주의하겠습니다."
처음보는 차장님의 싸늘한 모습에 조금 당황한듯 보였으나 이내 다시 활발한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옴. 뭐 그런 차장님 덕분에 나만 사이다 완샷!함.
너무 피곤해서 정신을 놓칠랑 말랑 할 때 회식이 끝남. 선빈씨는 택시 태워 보내고 대리님들도 다 가시고 나는 차장님 차에 탐.
"선빈씨가 좀 예쁘긴 해요, 그렇죠"
"아니 별로"
"..."
"이사원이 훨씬 예뻐요. 내숭떠는 여자 내 스타일 아니야"
+
5개월만이네요ㅜ 필력도 감도 잃어갑니다..
사랑합니다!
[♥]
여름/군밤/유성매직/덤벙/윤/아가야/구가/발가락/시카고걸/즌증국/정우아저씨/904/스티치/발가락/튜브/하루/워더/킬링썸머/치통/별오/고망맨/강변호사/레몬/감사해요/따스한/멘탈박살/오리/고기/상사/빡소몬/막내/푸름푸름/헐/찌루/징지잉/하설렘/팔칠/망둥/밥/팅커벨/감귤/27/린/고소한 아몬드/자몽에이드/기묘/메이/게이쳐/코코몽/쿠기/우리샘/4885/더럽/마시멜로우/새벽/흐려진/예고기/피죤/우유/이졔/둥이/새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