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하는 법
w. 밀키문
입김이 나지만 따뜻한 어느 날 오후, 딸랑이는 종소리와 함께 유리문을 밀고 카페로 들어섰다. 내가 왜 그가 말하는 장소에, 그가 말한 옷을 갖춰 입고 나온 것인지 자존심이 상해 입술을 꾹 물었다. 그는 나를 늘 이 카페로 불러냈다. 오늘은 가볍게 소매가 넓은 니트에 허리부터 딱 조여 양옆으로 벌어진 청스커트를 입었는데 그의 취향은 늘 확실해서 헷갈릴 것이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보고 웃으며 앉아있었다. 그 얼굴에 숨이 턱 막혀 예쁜 소리를 내며 흩어지는 종소리가 사라질 즈음이 되서야 바닥에 붙은 듯 무거운 발을 겨우 움직여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존재만으로도 나를 짓누르는 존재. 같은 공간에 있는 것 만으로도 어쩌면, 시선이 닿는 것 만으로도 나를 억누르는 존재. 하얀 얼굴과 호선을 띈 빨간 입술에서 느껴지는 위압감과 특유의 거부할 수 없는 기운이 내 가슴 부근에 가득 찬 기분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명치께가 뻐근했다.
그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테이블 위로 손가락을 탁, 탁 소리내어 내리치며 손장난을 쳤다. 이쯤 됐으면 자신을 쳐다보라는 무언의 표시다. 길게 잘 뻗은 손가락을 보니 목구멍이 바싹 말랐다. 슥 내리깐 시선조차 타의로 들어올려졌다. 진하고 동그란 그의 눈을 마주하니 눈빛 하나, 손짓 하나, 말 하나 모두 그를 통하지 않고선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무기력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가 하자는대로 따라야 했다. 나는, 그에게,
"오빠 봐야지, 여주야. 오늘 예쁘게 입었네."
겨우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 할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니까. 긴장한 탓에 입고 나온 스커트 자락을 꼭 말아쥐고 어색함에 당겨오는 턱을 힘줘 내리눌러 수동적인 끄덕임을 만들어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멈추기도 전에 어느새 내 옆에 앉아 겨우 둘이 앉을 수 있는 소파 헤드에 팔을 걸치곤 여느 때처럼 생글 웃고 있었다. 소파에 기댄 내 등 뒤로 쭉 뻗은 팔에 마치 그의 품에 안긴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몸이 경직되었다.
그와의 거리가 가깝다. 그는 언제나처럼 웃는 낯으로 걸친 팔을 접어 얄쌍한 턱을 떡하니 얹고 내 얼굴 곳곳을 집요하게 살폈다. 앞머리가 없어 드러난 이마를 시작으로 눈썹을 지나 공들여 화장한 눈과 속눈썹을 빤히 바라보는 눈에 결국 시선을 반쯤 아래로 떨궜다.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데. 이러면서 매번 눈을 마주하길 바란다니, 과한 처사다. 내 마음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 건지 오히려 상체를 내게 가까이 숙여 집요하게 따라온다. 왼쪽 귀 뒤로 넘어간 머리칼과 귓바퀴에 걸린 피어싱을 지난 그의 시선이 이상하게도 내 입술에 머문다. 움찔, 몸을 살짝 웅크리며 소파에서 몸을 떼어냈다. 순간 날카롭게 쳐다봐오는 그의 눈과 허공에서 딱 부딫혔다.
"..."
"자, 잠깐."
단단한 팔이 순식간에 허리를 감아오고 힘주어 당기는 힘에 몸뚱이는 속절 없이 딸려갔다. 강한 힘에 자연스레 그의 어깨를 한 손으로 꼭 쥐고 몸을 지탱하니 마치 아기라도 된 것만 같은 부끄러움과 익숙하다는 듯 우리를 보고 할 일을 하는 주인장을 보곤 수치심에 얼굴에 열이 올랐다. 이런 나늘 정확히 알고 달래려는 듯 그는 다정히 내 뺨에 입맞췄다. 쪽, 하고 떨어지는 입술이 이번엔 더 아래 쪽에 닿았고 다시 쪽, 하고 떨어진 입술의 종착지는 좁아지는 턱 끝이었다. 살짝 빨아당기고 떨어지는 생경한 느낌에 멍하니 턱 끝을 매만졌다. 분명 새빨간 자국이 남았을 것에 온 몸에 힘이 축 빠졌다.
"오늘은 뽀뽀해도 돼?"
이미 했으면서. 다정히 물어오는 말투와는 다른 그의 행동에 어쩔 도리 없이 그저 그의 어깨를 꼭 쥐었다. 눈을 마주하기가 무섭게 입술에 달라붙은 그의 입술이 언제 맞닿았냐는 듯 다시 떨어져 있었다. 여전히 빨간 입술은 호선을 그리고 있다. 익숙해지지 않은 촉감에 입술이 움찔댔다.
쪽, 쪽.
그러나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두 차례나 더 그의 입술을 받았다. 짧은 입맞춤에도 힘을 실어 꾹 눌러오는 그 덕분에 허리가 잡힌채 상채를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휘어진 상체에 도드라진 갈비뼈를 달래듯 손가락으로 토닥이는 손길이 퍽 다정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니 허리를 안은 그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다시 부딫혀오는 입술에도 눈을 감진 못했다. 그저 최대한 속눈썹을 내리 깔았다. 아까와는 달리 그의 턱이 틀어져 맞물렸다. 애정 가득히 내 아랫입술을 입술로 물기도 하고, 어린아이가 하듯 짧게 입을 맞춰오기도 했다. 입술이 맞닿을 때 마다 이상하게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내 머리칼을 살살 당기며 말하는 목소리가 달콤했다. 여주야, 키스 할 때는 입 벌리는 거야. 그 말은 꼭 어린아이에게 사탕과 같고, 마약 중독자에겐 마약과 같았을 말투라 속이 울렁거렸다. 정말 너무해. 잔뜩 내리깐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한켠에선 두근대듯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심장에 입을 앙 다물었다.
"입, 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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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서 글잡으로 옮겼습니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이렇듯 짧은 글들로 찾아 뵐 예정입니다! 연재 주기는 장담해드릴 순 없지만 몇 달 전 글인 이 글이 최근 스크랩 10이 됐다는 쪽지가 와서 감격했어요,,,♥(자랑)(뿌듯)(하트) 요즘 심플과 함께 자주 듣는 노래인데 글이랑 가사가 소름 돋게 잘 맞네요.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 암호닉은 편하게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