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셜스타-I'm OK(inst)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1: 검도부 걔네들
예쁜데 사람을 존나 무시해.
예쁜데 싸가지가 없어.
예쁜데 띠거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사람이 말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말은 문장의 꼬리에 두는 법이다. 한마디로 사람 존나 무시하고 싸가지가 없고 띠겁다는 게 중요하다는 건데, 그 수식어들은 영광스럽게도 나를 위한 수식어였다. 사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가졌던 바람은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조용히 살게 해주세요. 그래서 조용히 찌그러져 살았건만 너무 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아무리 조용히 살아봤자 주위에서 들쑤시면 그만이라는 것을.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살덩이가 불어나 실재가 되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겠냐는 말은 소문을 팩트로 둔갑시켰다.
"쟤 검도부래."
"뭐? 어떻게 들어간 거야?"
"존나 예뻐서 뽑아줬나 보지 뭐."
"아님. 쟤 검도 했었어. 우리 오빠랑 같은 도장 다녔는데 거기서도 다 후리고 다녔대."
"아 뭐야, 김태형 검도부 아님? 노렸네."
"내말이. 전정국이랑 박지민, 민윤기도 있다고. 존나 속보여."
여자애들은 내 달팽이관이 막혔다고 생각이라도 하는 건지 등 바로 뒤 사물함 앞에서 떠들어댔다. 아닌데? 머릿수 제일 없는 동아리가 검도부라고 해서 들어간 건데? 시발! 하지만 애초에 이런 말이 통할 거면 내 인생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나는 해명 대신 문제집 위에서 샤프심을 부술 듯 세게 움직였다. 물론 표정은 포커페이스다. 빡쳐라고 하는 말에 순순히 빡치는 걸 보여줄 수 없잖아? 잠깐 열 받아도 무시하면 편하다.
는 개뿔이다. 텅 빈 체육관은 카앙 카앙 죽도가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다. 내 신경질적인 공격을 내내 받아주던 상대의 호면 머리 위를 내리치자 상대가 죽도를 둘러 내리며 몇 걸음 물러났다.
"오늘 작정했네?"
마주한 검도 호면의 틈새 사이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숨을 몰아쉬며 죽도 잡은 손을 내리며 물러나자 나를 빤히 보던 눈이 휘었다. 무슨 일 있어? 나는 말없이 내 상체를 감싸고 있던 갑판의 어깨끈을 풀어 내렸다. 내가 무슨 일 있으면, 박지민 네가 어쩔 건데?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대꾸해주면 쫄래쫄래 따라오며 귀찮게 굴 것이 뻔했으므로 그대로 뒤돌아 맨발로 체육관의 매끈한 나무 바닥을 터덜터덜 걸었다. 곧 내 뒤를 바싹 쫓는 여유로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 착각했다. 대꾸 안 해도 귀찮게 한다. 박지민은.
"오늘 밥 먹으러 안 가?"
"안 가."
나는 체육관 구석에 마련 된 검도부 전용 부실의 문을 열었다. 바로 문을 닫으려는데 박지민의 손이 불쑥 나와 문을 잡아당겼다. 힘겨루기라도 하듯 잠깐 앞뒤로 들썩이던 문은 이내 활짝 열렸다.
"와 나 손 박살날 뻔했어."
"아쉽네."
"무슨 그런 살벌한 말씀을."
"나가. 나 옷 갈아입을 거야."
"그럼 같이 갈아입ㅈ- 아 농담이잖아!"
분노를 느낀 내가 죽도를 휘두르자 박지민은 실실 웃으며 부실의 구석탱이로 몸을 잽싸게 피했다. 힘으로만 치면 내 목검을 한 손으로도 잡을 수 있으면서 무서운 척 피하는 거 진짜 재수 없다. 나보다 검도도 잘 하면서 매일 매일 져주는 것이 짜증난다. 나는 그를 흘겼다. 거머리 같은 박지민 때문에 옷 갈아입기도 글렀단 생각에 소파에 털썩 앉자 박지민은 내 맞은편에 가 앉았다. 땀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머리칼 밑으로 호의 가득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실없다.
"회식 메뉴 갈비래. 윤기 형 지갑 털러 가자니까?"
"싫다니까?"
"정국이도 대회 끝나고 들른대."
"…뭐 어쩌라고."
"그냥 그렇다고."
갑작스런 정국, 그 이름에 내가 흠칫하자 박지민이 팔짱을 꼈다. 슬몃 웃으며 다 안다는 표정을 하고서. 그런 표정 하지 마. 진짜 때리고 싶어. 내가 입술을 꾹 물자 별안간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벗지 않은 호면덕에 그리 넓지 않은 시야를 가득 채운 그의 검은 도복만을 노려봤다. 혹시라도 헛짓거리 하면 날려버릴 생각으로 죽도를 꾸욱 쥐었다. 그 때 내 호면이 쑤욱 벗겨져 올라갔다. 순식간에 탁 트이는 공기에 나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얼굴이 온통 땀에 쩔어서 거의 수치플 수준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짐작컨대 박지민은 내 얼빠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떨굴 수 있다면 해야지 뭐.
"왜 마음대로 남의 호면을 벗기고 난린데?"
"예쁜 얼굴 보고 싶어서."
"실패네. 땀에 개쩔어서."
"개섹시한데?"
능구렁이 같은 그 멘트에 개빡친 나는 곧장 박지민의 천연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갑판 위로 풀스윙을 날렸다. 물론 결말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다 아는 결말이었다. 빡- 하는 딱딱한 소리와 함께 나는 주먹을 쥐고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다급히 숙였다. 아 시발 존나 아프네! 혼자서 몸부림을 치는데 괜찮아? 하며 내 주먹을 감싸 쥐는 손길에 고개를 들자 박지민이 웃겨서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의 광대가 씰룩거렸다. 그건 정말 웃겨서 울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박지민의 어깨를 확 밀치며 일어났다. 그런데 그마저도 밀려주지 않기에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돌아 가 문을 열고 체육관으로 다시 들어갔다. 문 앞에 서서 허리에 두른 갑상을 벗어 바닥에 내팽개치자(이걸 민윤기가 본다면 나는 한 시간 동안 잔소리를 들을 것이다.) 박지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따라 나왔다. 곧장 안에 받쳐 입었던 하얀 검도복 하의로 손을 가져다대고 허리끈을 풀기 위해 꼼지락대는데 박지민이 당황한 표정으로 내 팔을 덥석 잡았다.
"뭐 하냐?"
"네가 안 꺼지니까 그냥 여기서 갈아입으려고."
"미쳤어? 누가 보면 어떡해. 들어가!"
"아 씨, 이게 누구 때문-"
박지민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를 질질 끌어다 부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쾅. 문 닫히는 소리에 나는 이를 바득 갈았다. 이 학교에서 불같고 지랄 맞은 내 성격을 정확히 아는 것은 박지민 뿐일 것이다. 그것은 그와 내가 그만큼 특별한 관계라는 뜻이 아니라 박지민이 그만큼 나를 귀찮게 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이 검도부에 들어온 후부터 박지민은 강아지도 아닌 것이 나를 쫄래쫄래 따라 다녔고 능구렁이처럼 살살 웃으며 내 신경을 긁는 멘트만 골라 쳤다. 처음에는 나도 참을 인 석자를 새기며 웃는 얼굴로 좋게 밀어냈다. 나중에는 개무시를 하다가 결국에는 주먹을 날렸지. 안 그래도 순탄치 않은 학교생활이었는데 박지민으로 인해 더 피곤해졌고 요즘에는 더더욱 죽을 맛이었다. 사태가 더 심각해 진 것은 그 때부터였다. 얼마 전 박지민이 내가 전정국을 좋아하는 걸 알아챈 후부터.
오늘 작정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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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으헹 검도하는 방탄 흐읍 (오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