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눈에 반했거든요."
" 잘 먹었습니다. 그 말은 못 들은 걸로 할게요. 회사에선 사적인 얘기는 안하는게 원칙이거든요."
사실 밖에서도 사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저 사람 마음에 안 들어. 일 잘하는 신입사원이라기엔 뭔가가 좀.. 위화감이 든달까?
첫 눈에 반했단 말은, 뭐. 듣기엔 좋네.
" 언제 시간 되세요? 제가 커피 한 잔 사드릴게요."
" 됐어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당분간은 회사 나오기 더 싫어지겠어.
딱히 약속이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뜻하지않게 시간이 지체되어 상당히 짜증이 난다.
이런 대낮에 돌아다니는 것도 질색이고.
" 무슨 여자 걸음이 그렇게 빨라요?"
뭐야, 언제 따라 온거지?
" 무슨 용건이시죠?"
" 이번엔 사적인건데, 까페가서 해도 될까요?"
" 죄송하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요. 중요한 게 아니라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 왜 이리 사람이 까칠해요, 다가갈 틈은 줘야죠."
...
내가 미쳤지. 왜 그때 풀죽은 개가 생각났는지. 에휴.. 이게 무슨 꼴이람..
" 00씨는 나이가 몇이세요?"
" 스물 일곱이요."
" 두 살 연상이시네요. 제 이상형이 연상이거든요. 뭐 좋아하는거 있으세요? 여기 케익이 맛있는데 하나 먹어봐요."
" 조금 전에 점심을 먹어서요."
" 맞다. 그러네요. 말 놔도 되죠? 회사도 아니니까."
" 편할대로 하세요."
사적인 얘기라더니 이건 뭐 취조도 아니고. 게다가 왜저리 해맑게 웃는건지.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싶은데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고..
" 00누나는 나한테 뭐 궁금한 거 없어?"
" 딱히요."
" 에이, 누나도 말 편하게 해. 내가 어린데."
" 이게 편해요."
진짜 커피만 한 잔 마시고 가려했는데 무슨 입을 쉴 틈을 안주네. 귀찮고 짜증나고 지루하고.
대훈이랑 놀고싶다.
" 00아."
"...반말하라고는 안했습니다만?"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앞에 앉아 있는 사람 무안하게."
" 실례했네요."
" 누난 남자친구 있어?"
왜 저 질문이 안나오나 했다. 없지만 있다고 딱잘라 말해야 귀찮게 안하겠지?
" 있.."
" 여기 있어요. 누나 남자친구."
...?
이대훈?
" 누나 여기서 뭐해요. 나랑 놀기로 해놓고, 얼른 가요."
" 아... 응. 먼저 가보겠습니다."
얼떨결에 인사하고 나오긴 했는데 뭐지 이 상황은?
윽, 손목이 저릿한게 꽉 잡혀있다. 힘 좀 빼주지. 멍 들겠네.
조금 걸어 사람이 뜸한 한적한 곳에서 멈췄다.
" ...누나."
" 어, 어?"
" 누나 왜 그래요. 내가 나중에 근사하게 고백한다고 했잖아요. 왜 다른 남자 만나고 있어요?"
이상하다. 난 잘못한게 없는데 왜 이렇게, 왜 이렇게 미안해지는거지?
조금 큰 눈에 살짝 물이 차있고 목소리도 약간 메이는게...
" 대훈아..."
" 나 하는 거 봐서 받아준다면서요. 왜 나 안 보고 다른 사람 만나요."
" 응, 잘못했어. 미안해. 누나가 미안하니까, 응?"
" 사실 누나가 다른 사람만나는거 내가 뭐라할 입장은 안돼는데, 불안해서, 내가 불안해서 이래요. 난 누나 좋아하는데 누난 그게 아니잖아요.
...멋대로 데려와서 미안해요."
지금 내 감정이 동정심인지 연민인지 사랑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정말 대훈이를 좋아하는건지, 그냥 동생으로서의 호감인건지도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냥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고 싶다.
이것저것 따지지말고.
" 누나..?"
" 불안해하지마. 네가 고백할 때 까지 어디든 안 갈테니까. 내가 너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네가 내가 좋아하게 만들면 되잖아?
너 불안해하는 모습 보니까 내가 더 불안하고 걱정된다. 그러니까, 응?"
금방이라도 울 것 같으면서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의 대훈이를 그냥 안아주었다.
조금 뒤 따뜻하게 내 등을 감싸오는 팔에 내가 안긴 꼴이 되버렸지만.
/오글오글 켁; 이로써 기성용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