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성
1
철없는 생각을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난 지금 당장 뭘 해야할까. 그 당시 이어진 생각들은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내게 시한부 선고를 누가 때려주었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언제 끝날 지도 모르며 살아가느니, 차라리 끝이 정해져 있는 삶이 더 좋을거라 생각했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그리고 참으로 쓸모도 없게,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암 말기. 진짜 이럴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건데. 뭐, 누가 생각했겠냐만은.
몇 달 전부터 자꾸 힘없이 픽픽 쓰러지곤 했었다. 그럼에도 단지 고3 스트레스로 인한 거겠거니 하며 온갖 영양제를 사먹이던 우리 엄마였다. 그랬는데, 별 탈 없겠거니 했는데.
엄마는 나를 부둥켜 안고 울었다. 태어나 엄마가 그렇게 많이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정작 본인도 이렇게 울지는 않거늘, 엄마는 자고 있는 날 부둥켜 안고는 목놓아 울었다. 미안하다며, 미안하다며.
마치 드라마 여자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이런 소재는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들 쓰이는 거니까. 차라리 트루먼쇼처럼 나를 상대로 누가 방송하는 거였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온갖 수치플 다 겪어도 좋으니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해야했다. 내게 남은 시간은 길어봤자 10개월 남짓. 가장 먼저 한 짓은 자퇴서 내기였다. 억지로 하는 공부에 휩쓸려 다니던 근 12년을 청산하는 아주 마음에 드는 짓거리 중 하나였다. 애초에 공부머리도 아니였던 터라 기분 좋게, 아주 당당하게 자퇴서를 냈다. 미련은 없었다. 친구들에겐 단지 이민 간다고 거짓말을 쳐놓았다. 연락한다는 것도 다 피해갔다. 나중에, 나중에 만나자며. 다시 한국에 꼭 오겠다며. 웃으며 보자는 거짓말을 했다.
첫 짓거리를 저지르고 나니 슬슬 마음이 조급해졌다. 뭔가, 뭔가 더 해야만 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더러운 내 책상과 서랍이었다. 그래, 저것들 언제 치우나 벼루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다며 곧바로 그것들을 갈아치우기 시작했다. 도대체 꾸겨 넣을 자리는 어디에 있어서 이렇게 촘촘히도 꾸겨 넣어 놓은건지 나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있던 때였다.
"이건 또 뭐야..."
정말 형편없는, 무색의 편지 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소복히 쌓인 먼지를 손으로 대충 털어내곤 편지 봉투 안을 열었다. 봉투 안엔 국적 모를 동전 12개, 어디에 쓰이는 건지 당최 알 수 없는 티켓 5장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정갈한 글씨로 무언가 쓰여져있는 카드가 있었다. 다른 건 뭔지 모르겠고, 그 카드부터 꺼내 보았다.
[Cloud, 잊지마.]
"클라우드? 구름?"
어렸을 때 독특한 놀이라도 한 모양인지 처음 듣는 이름에 잠깐 갸우뚱하다가도 너무나도 정갈한 글씨체에 그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클라우드. 구름? 한참을 생각하다 포기하고선 그 카드를 내려놓고 동전과 티켓을 꺼냈다. 동전은 12개 각각 다른 문양과 약간씩 다른 빛을 띄고 있었다. 어느 나라의 동전인지는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었다. 티켓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행인지 알 수 없는 글자들에 머리만 아플 지경이었다. 아랍어 같지도 않은 이 글자는 뭔지.
"영어도 있네?"
그 티켓을 한참 보던 끝에 티켓 끄트머리에 작게 쓰여진 영어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본 카드에서 적혀있던 것과 똑같았다.
'Cloud-Castle'
*Cloud-castle ; 공상, 몽상
=+==
Airy, 왕, 재현
언제나 그랬듯 재현의 왕국은 평화롭다. 군주 미모 훈훈하지, 국정 운영 훈훈하지. 그야말로 주변국들의 이상국이나 다름없다. 총 네 개의 왕국을 다스리는 총국, 황국에서도 특히나 Airy, 이 곳을 예뻐한다. 여느 아침 때와 같이 평화롭게 차를 마시던 재현은 저 멀리서 뛰어오는 자신의 개인 비서 하늘의 모습에 씩 웃었다. 언제봐도 하늘은 귀엽다. 작은 체구에 열심히 일하는거 보면 그야말로 깨물어 주고 싶다나.
"군주님! 군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또 이렇게 허겁지겁 오시고."
열심히 뛰어온 하늘을 반기며 재현은 찻잔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하늘은 숨고르기를 하며 재현에게 할 말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그를 잠시 기다리며 재현은 자신의 방의 큰 창문을 통해 저 멀리 위치한 황국을 바라보았다. 역시, 근엄하고, 위엄있다. 또, 빛이 난다. 눈이 시릴 정도로. 곧 하늘이 진정이 됐는지 입을 떼었다.
"화, 황자님께서!"
"황자?"
"급히 황국으로 오시랍니다."
"갑자기 또 왜 그러신답니까. 평소엔 가도 안반겨주더니."
아- 오늘은 황자 얘기구나. 하며 재현은 자신보다 두어 해 어린 그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봤던게 언제더라 생각하니 벌써 꽤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놀란 재현이였다. 그 일 이후로 찾아가면 황자는 자신을 맞이하지 않았다. 언제 한 번은 황국 문 앞까지 갔으나 문 조차 열어주지 않고 쫓겨났던 적도 있다. 그 때 진짜 창피했는데. 하며 재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장난스럽던 그 표정은 이어진 하늘의 말에 차갑게 굳어졌다.
"그게,"
"주인님께서 곧 돌아오실 것 같답니다."
"........"
말없이 차가워진 두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재현은 곧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었다.
"가자, 지금."
"황국으로."
==+=
Blue, 왕, 유타
"오늘은 어땠어? 나는 오늘 꽃에 물도 주고, 새로 나무도 심었어. 내 방 가까이에 있는 정원에."
"근데, 근데 여주야,"
"꽃이 필 리가 없는데, 나무가 자랄 리가 없는데."
"웃기지, 나."
너 없는 곳에서 꽃이 피길 바라다니.
유타는 짧게 웃었다. 자기도 이 상황이 말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추운 왕국에서 그녀가 사는 곳의 식물이 서식할 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래도 유타는 신하들에게 심도록 명했다. 그녀가 좋아하니까, 그 꽃을- 그 나무를. 유타는 혼자 중얼거리다 아까 심어 놓은 꽃이 죽었으리라- 짐작하며 정원으로 나갔다. 분명 꽃은 이 곳에서 몇 분도 버티지 못함이 분명했다. 분명 그 꽃은,
"... 안죽었잖아."
죽어야 맞는건데. 꽃, 너. 왜 살아있는거야.
유타의 시선이 꽃에서, 얼음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 주위로, 눈이 내림과 동시에 저 먼 곳 황국을 응시했다. 아, 오는구나. 아니, 이미 그녀가.
"来たんだね。" (왔구나.)
===+
Moonshiny, 왕자, 태일
"선생님!"
"왔구나! 우리 이쁜이들~"
선생님 있잖아요, 제가 오늘요-
선생님으로 시작한 아이들의 말은 쉴새없이 터져나왔다. 한 아이의 말을 잠자코 듣고있자면, 또 한 쪽에서 물꼬를 트고. 또 한 아이 들어주자면, 저 쪽에서 선생님! 호출. 분명 이 나라의 왕자님 되시겠건만, 왜 저러고 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비서 류 였다. 암만 아기가 좋다해도 그렇지. 자발적으로 왕실에 유치원을 만들어버리다니, 이 무슨. 더군다나 담임 선생님은 왕자, 자기랜다. 환장할 노릇인거지.
"류 선생님! 이거이거. 해줘요."
"내가 왜 해야-"
"류, 뭐해. 해주지 않고."
"... 이리 주세요."
류는 이 상황이 자신에게 버거웠다. 저 왕자 하나 제대로 보좌하기도 힘든데 아기들까지 챙기며 저 눈치를 봐야한다니. 세상에 나보다 극한 직업이 있을까, 잠깐 생각하던 그는 사탕껍질을 까서 아이 입에 넣어주곤 한숨을 쉬었다. 그걸 보던 태일이 피식 웃더니 류, 하고 다시 그를 부른다.
"예, 왕자님."
"너 긴장 좀 해야겠더라."
"... 무슨 뜻입니까?"
"황자가 부르네, 날."
"그걸 언제 들으신,"
"아까. 요 꼬맹이 입에서."
요 꼬맹이. 하며 가리킨 아이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 태일은 곧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 표정에 류는 고개를 숙일 뿐이였다. 태일은 똑똑했다. 그래서 그를 보좌하는 일은 긴장과 긴장의 연속이였다. 자신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자신이 도울 일은 극히 소수니까. 그런데, 잠깐 익숙해졌다 생각한 사이에 또 한 발짝 놓치고 말았다, 태일을.
"죄송합니다."
"아아, 괜찮아. 너 잘못 아니야."
"....."
저렇게 말은 해도 속에선 이미 자신, 류에게 가차없이 마이너스를 날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저 꼬맹이가 말해줬다는게 말이 돼? 쟤는 어떻게 알고. 한참 혼자 골똘이 생각하던 류가 태일이 여자아이의 이름을 부르는걸 듣자마자 아, 하며 눈이 커졌다.
"하나에, 오늘은 일찍 집 갈까요?"
하나에. 얼핏 들어도 유타 왕국의 이름식이였다. 그렇다면 저 아이는 도대체,
"왜요?"
"음, 선생님이 아주 중요한 약속이 생겼거든."
"여자친구랑 데이트?"
"응, 하나에같이 예쁜 여자친구 만나러 가야해요."
이해해 줄 수 있지? 하며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태일이 다시 류에게 눈짓했다. 아이들 정리해서 내보내. 라는 뜻이였다. 그 뜻을 알아채곤 다시 류가 고개를 숙이니, 그의 곁으로 태일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미쳤다고 진짜로 유치원 영업하는 줄 알아?"
"....."
그래, 저 아이는. 태일이 심어놓은 꼬마 스파이인거지. 그리고 이 유치원에 있는 모든 아이들도- 마찬가지인거지. 하나에, 그 이름에 류는 헛웃음이 났다. 아, 역시 똑똑하다. 아무도 의심하지 못 할 아이들을 상대로 스파이라니. 역시, 역시 문태일.
".. 긴장하고, 열심히 하고."
"예, 왕자님."
"아 그리고-"
"황국으로 간다. 지금."
====
'똑똑,'
아침부터 뭐 그리 바쁜지 나오지 않는 딸에 엄마는 딸의 방문을 두드렸다. 평소같았음 응, 왜? 하고 안에서 대답이 들려야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아무 답이 들리지가 않았다. 혹시 자나, 요즘 이것저것 피곤한 일도 많긴 했지. 하며 엄마는 방문고리를 잡아 밀었다.
"여주야, 여주야 자니?"
"..........."
그러나 잔다면 침대에 있어야 할 딸은 차가운 방 바닥에 무언가를 꼭 쥐고선 그대로 쓰러져있었다.
"여주야!!!!!"
그녀가 그 때까지 쥐고 있던건, 그들에게로 가는 마지막 티켓이였다. 지금 간다면, 언제 또 다시 갈 수 있을 지 모르는. 마지막 티켓.
더보기 NCT 세계관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꿈과 관련된 것 같길래 끄적여본 망상입니다 (쭈뼛)
시대는 꿈 속이라 모든 것이 혼합되어있다고 생각해주시면 돼요!
♡^♡ (반응보고 적절히 연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