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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는, 아니 태형은 이곳 남학교에서 이름가는 괴짜라고 했다.
같은 방 쓰는 학우를 어떻게든 내쫓으려 기이한 자살 시도를 해서 시도때도 없이 선도에게 끌려가 곤장을 맞았다고 했다.
학우들은 그런 태형의 배짱을 암묵적으로 인정해줬고 이젠 학교의 인기인이라고도 했다.
태형의 한 마디가 교장의 백마디보다 더 의미있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태형은 나를 아키모토라고 부르지 않았다.
"유키. 배 안 고프니."
태형이 하도 나를 유키라고 부르길래 어느날 날을 잡고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너는 왜 나를 유키라고 불러?"
"왜, 싫으냐?"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다."
유키, 눈이라는 뜻의 일본어로 보통 여자 아이들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고 했다.
정말 일본 이름과 내 얼굴과 어울리지 않아서 그러는 건가. 나는 금방 잊어버리기로 했다.
다음날, 기상 종소리에 맞춰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책가방을 챙기고 커튼 뒤에 숨어 교복을 단정히 입고. 모든 준비를 하고 있는 반면에 태형은 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이제 곧 학교에 가야 하는데, 나는 쭈뼛거리는 걸음으로 태형에게로 가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야, 사무라. 안 일어나?"
"태형이라고 불러."
"그래도 돼?"
"사무라라는 이름 지겨워."
사무라라고 부르지 말라는 태형의 말에 나는 다시한번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태형아. 학교 안 가?"
"이제 가."
태형은 곁눈질로 내가 옷을 다 입은 것을 보고는 그제야 침대에서 일어나 잠옷을 벗고 교복을 입었다.
"왜 이제 준비해?"
"앞으로 너 준비 다 하면 나 깨워. 잠 좀 더 자려고."
태형은 아직 입지 않은 교복 자켓을 침대 위에 올려 놓고는 세면 도구를 챙겨 화장실을 찾아 걸어나갔다.
나는 태형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어제 아버지가 준 편지를 읽어야겠단 생각에 책상 위에 올려 놓은 편지를 집었다.
"첫 날부터 지각이면 볼 만 하겠네."
그때였다. 태형이 나가면서 방 문을 제대로 닫지 않은 탓에 문 틈이 나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어제 보았던 학생회장이 있었다.
"여, 여긴 왜……."
"마중."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교장 선생님 명령이야. 둘째 날까지 네 수발 드는 거."
"난 괜찮으니까 그냥 네 갈길 가."
"다른 학교 학생회장이라면 그랬겠지만 난 아니야."
내가 계속 뜸을 들이자 학생회장은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와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나는 황급히 편지를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고는 학생회장 앞에 섰다.
"저기……."
"김남준."
학생회장에게 가방을 달라고 말하려던 차, 태형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학생회장의 이름을 태연하게 부르며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학생회장의 눈빛이 묘연하게 풀렸다.
"너 벌점이야."
"니가 선도냐."
"조선말 쓰는 건 누구나 고발할 수 있어."
"알았다. 츠카사."
일본인이 아니었다. 김남준이란 조선 이름을 가진 조선인이었다. 나는 내 가방을 들고 있는 남준을 바라보았다.
남준은 여전히 느긋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조선인이 학생회장을 할 수가 있는거지, 의문이 들었다.
"늦었어."
"어, 어떻게……."
"준이치로. 너도 가방 챙겨."
남준이 앞장 서 방을 나가자 태형이 그의 뒤를 따라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