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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민윤기 동생

X

W. 키치키치








 

 







[방탄소년단] 그 해 여름 1 上 | 인스티즈 

 


 

JIMIN. 


 


W. 민윤기 동생 


 


 


 


 

 야, 야. 박지민. 빨리 와서 이것 좀 봐. 다급한 목소리에 덩달아 제 마음까지 급해져 달려가보면, 너는 언제나 사소한 문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제가 먹을 아이스크림 종류를 골라달라는 등의 문제 말이다. 아주 사소한 선택을 가지고도 제법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너를 보면 말이야, 그 거리를 달려온 제 자신을 나무라면서도 허탈했던 마음이 싹 가라앉곤 했다. 그와 더불어, 이런 자그마한 일에도 내가 네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우쭐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뭔데. 유독 뿌루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네 볼을 쿡 찌르며 묻자 무슨 우유를 사 먹어야 할지가 문제란다. 몰려오는 허무감에 실없는 웃음을 내뱉다 너를 닮은 딸기 우유를 하나 골라주니 좋다고 가서 사 오는 게, 너는 여전히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시절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았다. 


 


 


 

 7살 시절의 박지민은 세상에 불만이 많았다. 이유가 뭐냐 묻는다면, 어머니에 의해 강제로 이발소에 끌려가 잘랐던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여름에는 머리가 짧아야 시원한 것이라며 이마를 훤히 깐 머리는 말이지, 정말로 최악이었다. 다시는 이런 머리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7살 박지민은 무턱대고 집을 나왔다. 물론 해가 아직 떨어지지 않은 밝은 대낮에 말이다. 그때는 아직 어렸기에 해가 질 적까지 밖에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를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의 매가 무서웠던 것이고. 불만을 표출한답시고 뾰족하게 부리를 내민 입으로, 나는 발에 채이는 깡통들을 차대며 집 옆 골목길을 걸었다. 웬일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 같이 놀던 형들이나 친구들은 코빼기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머리도 이 모양인데 같이 놀아줄 친구도 없고. 괜히 모든 것에 서러워져 벽에 기댄 채 털썩 주저앉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위로 작은 그늘이 졌다. 


 


 


 

“청원이냐.” 

“… ….” 

“아닌가. 그럼 준희 형이야?” 

“… ….” 

“형도 아니야? 그럼 누구야.” 

“난데.” 


 


 


 

 햇빛이 뜨거워 고개를 숙인 채 어울려 노는 무리의 이름을 하나씩 대보아도 대답이 없었다. 그럼 누구지. 땀이 비죽 흘러내린 뒷덜미를 긁적거리며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난데? 웬 여자애 목소리가. 햇빛이 역광으로 비쳐온 탓에 밝아진 시야를 좁히곤 그늘진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근방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근처에 여자애가 산다고 들은 적은 없었는데. 으차,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흙이 묻은 엉덩이를 탈탈 털며 일어서니 저보다 손가락 한 마디는 작은 아이의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햇볕을 쬔 적이 드물었는지, 외국 인형처럼 뽀얀 얼굴이 앳되었다. 물론 제가 그런 말을 할 처지는 못 되지만. 여자애는 당돌히 달려들어 내 손을 잡아챘다. 뭐 하는 거야. 당황해 손을 빼자 말간 얼굴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할 수 없이 다가가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아주니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여자애와는 교류가 적었던 지라 금방 귓바퀴가 화끈해졌다. 


 


 


 

“우리 친구 먹자.” 

“뭐?” 

“오늘 여기 이사 왔거든. 그래서 친구가 없어.” 

“아….” 

“그래서 그런데, 내 친구 좀 해주라.” 


 


 


 

 무턱대고 친구를 하자며 손을 꽉 잡아오던 어린 여자아이. 알고 보니 동갑내기였지만. 어쨌든 그게 너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어찌 이리 자세히 기억하냐 묻는다면, 글쎄다. 아마도 네가 내 첫 여자친구여서가 아니었을까. 아, 물론 여자인 친구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10살 때. 너는 나와 또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며 아직도 시무룩한 기색을 보였다. 괜찮다고 달래주기를 몇 번, 집에서 어머니 몰래 들고 나온 바나나 우유를 네 손에 쥐여주었다. 물론 빨대까지 꼽아서. 그나마 기분이 나아진 듯 옅게 웃음을 띤 얼굴이 보이고 나서야 안심을 하며 제 반으로 향했다. 있다가 끝나고 같이 가는 거 잊지 말구. 빨대를 입에 문 채 우물거리는 네게 손을 흔들었다. 3월, 봄의 내음이 성큼 다가온 한 달이었다. 


 

학교가 끝난 후, 유난히 종례가 늦던 너의 반 앞에서 까치발을 들곤 창문 너머로 네 모습을 찾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른 여자아이와 앉더니, 아마 자리를 바꾼 모양이었다. 못 보던 남자아이와 손장난을 치며 종례를 듣는 너를 빤히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조금만 기다려. 입을 뻐끔대며 말하더니만, 옆에 앉은 남자아이에게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등을 돌려 낡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너를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지루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르륵 소리와 함께 교실 문이 열렸다.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사이에서 너를 찾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까부터 들고 있던 신발주머니를 건네주자 금세 받아 들며 제게 있었던 일들을 종알종알 말하기 시작했다. 방과 후 너와 함께 집을 가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들어주는 것.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던 때부터 내 하루 일과로 굳혀져 버린 일이었다. 


 

 아, 김태형을 만났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대구에서 전학을 왔던 녀석은 당시 피부가 아주 까맸다. 녀석과는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잘 맞아 금방 친해졌었다. 물론 일방적으로 김태형이 나를 놀리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하루는 김태형과 학교 인근의 분식집에서 떡꼬치를 사 먹기로 약속을 하고 하교를 하던 길이었다. 쉬는 시간에 반으로 찾아가 말해주었던 것을 잊어버렸는지, 태평하게 동네를 걷고 있자 뒤에서 빽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박지민! 뒤를 돌아보자 보이는 것은 시근덕거리며 서 있는 너였다. 너를 처음 본 김태형은 누구냐며 내 어깨를 쿡쿡 찔러왔고, 아무 생각 없이 이름을 알려주곤 네게 다가갔다. 얼굴이 새빨개진 것이, 저를 두고 갔다는 생각에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너 왜 나 두고 갔어?” 

“내가 쉬는 시간에 말했잖아, 바보야.” 

“… ….” 

“멍청이. 야, 태형아! 얘도 같이 꼬치 먹으러 가도 돼?” 

“난 상관없어.” 


 


 


 

 그렇게 셋이서 떡꼬치를 먹으러 갔었던 것이 우리 셋의 관계의 첫 시작이었다. 친화력이 좋았던 김태형은 너와도 금방 친해졌고, 그때부터는 꼭 셋이서 함께 다녔었다.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었지. 언제 한 번은 곧 대구로 돌아가야 한다며 만우절 장난을 치던 김태형 탓에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기억도 있다. 망할 김태형. 그때나 지금이나 바뀐 건 없지. 김태형뿐만 아니라 너와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느덧 우리는 8년이 지나 열여덟의 길을 걷고 있었다. 


 


 

*** 


 


 

“아, 빨리. 이거 선생님이 인원 수 3명 이상 돼야지 승인 해준다고 그랬다고.” 


 


 


 

 저건 또 뭐래냐. 김태형이 바리바리 싸 들고 온 만화책을 보다 고개를 들어 아까부터 징징대는 너를 흘긋 쳐다보았다. 1학년 때 그렇게 동아리 욕을 하더니만, 기어코 제가 직접 동아리를 만든 모양이었다. 머릿수만 채워주면 된다며 한참을 하소연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도 없어 네가 들고 있는 종이를 하나 뺏어 들었다. 내가 묵묵히 양식을 써 내려가는 동안에도 너는 여전히 김태형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거 해준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동아리에 들면 야자도 빠질 수 있으니까. 너를 거들어 도와주려다,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한 김태형의 표정을 보고는 웃음을 내뱉으며 마저 종이를 채웠다. 네게 종이를 다시 내밀 즈음에는 어느새 네게서 빠삐코 하나를 얻어먹은 김태형 또한 고분고분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네가 만든 동아리에서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미술 전공이 아니었던지라 그림을 월등히 잘 그리는 것도 아니었고, 가끔 만화책의 캐릭터를 따라 그리며 노는 것이 다였다. 어떻게 다들 데려온 것인지, 나와 김태형 말고도 동아리에는 제법 사람이 많았다. 다들 조용히 이젤 앞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니 괜히 오기가 생겨 캔버스에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한참을 그리다 보니 흰 캔버스 위로 생겨난 것은 엉성하게 그려진 네 모습이었다. 이게 무슨…. 내가 봐도 별로인 그림에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캔버스를 부욱 찢었다. 제 앞에는 열심히 그림에 집중하는 네가 보였다. 아, 덤으로 네게 장난을 치고 있는 김태형까지. 꽤나 긴 머리를 가지고 이리저리 장난을 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애새끼였다. 


 


 


 

“얌마, 열심히 하는 애를 왜 건들고 그러냐.” 

“아, 심심하잖아.” 

“심심하면 나랑 빠삐코나 먹으러 가자.” 

“네가 쏘는 거냐.” 

“무슨.” 


 


 


 

 계속해서 장난을 치고 있는 김태형을 보며 푸슬푸슬 웃음을 내비치다가도, 괜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냥, 너와 김태형이 그렇게 가까이 붙어있는 게 왠지 껄끄러웠다. 방금 전 찢은 캔버스를 구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태형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핀잔을 주듯 목을 꽉 감싸며 말하자 김태형은 억울한 목소리를 내며 내게 질질 끌려왔다. 그렇게 강제로 매점으로 녀석을 끌고 와서야 둘렀던 팔을 내렸다. 새끼야, 형님 숨 막혀 뒈지라고. 투덜거리며 제 목을 만지작거리던 김태형은 금세 해맑은 얼굴로 돌변하더니만 빠삐코를 사달라며 징징댔다. 그 모습에서 왜 네가 떠올랐는지. 멍하니 김태형을 보다 할 수 없이 빠삐코 세 개를 사 왔다. 하나는 징징거리는 김태형 입막음용, 하나는 내 거. 그리고 남은 하나는… 어, 네 거. 


 

 김태형과 사이좋게 빠삐코를 나눠 물고 계단을 올랐다. 아, 미술실 졸라 멀어. 벌써부터 힘이 빠진다며 내게 기대오는 김태형을 살짝 밀어냈다. 한 손에 든 차가운 빠삐코를 목에 슬쩍 가져다 대자 화들짝 놀라며 떨어진 놈이었다. 아까는 질식사더니, 이번엔 심장마비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김태형을 보고 있으니 문득 아까 전 제가 느꼈던 감정이 생각났다. 내가 대체 왜 그랬더라. 생각을 하느라 말이 없어진 저를 김태형이 툭툭 건드렸다. 하긴, 설마 이런 애새끼 같은 녀석한테 질투라도 한 거겠냐. 그것도 너를 상대로.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 상황이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묵묵히 5층을 향해 걸었다. 저번에 너무 얼어있으면 먹기가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던 네가 떠올라 손에는 딱딱한 빠삐코를 꽉 쥔 채로. 손이 아려왔다. 


 

 미술실에 들어서자마자 김태형은 바로 네게 달려갔다. 스케치를 마쳤는지 팔레트를 들고 오는 네가 보였다. 애완견처럼 벌써 네게 엉겨 붙은 김태형과 그를 떼어내려 애를 쓰는 너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빠삐코를 내밀었다. 물 떠오면 되지? 팔레트를 든 왼손 말고, 네 오른손에서 물통을 채갔다. 김태형에게 시달리느라 진절머리가 난 듯 질색을 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너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들어왔다. 콸콸, 수도꼭지를 젖히자 물은 잘도 쏟아져 나왔다. 왜 자꾸 배알이 꼴리는 건지. 네게 혼쭐이 났는지 풀이 죽은 모습으로 화장실에 들어오는 김태형을 보고는 놀라 물통을 쓰러뜨렸다. 물이 가득 담겨있던 탓에 하복 와이셔츠가 흠뻑 젖었다. 저 또한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김태형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주곤 다시 물을 담았다. 


 


 


 

“어, 박지민. 왜 젖었어?” 

“물통이 넘어져서.” 

“칠칠아…. 내 후드집업 줄까?” 

“안 작으려나.” 

“별로 안 작아. 자.”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던 네가 쪼르르 달려와 내 앞에 섰다. 이렇게 걱정을 해주는 것에 왜 또 기분이 좋아지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감정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와이셔츠가 다 젖었다며 몸에 달라붙은 천을 떼어내 탈탈 털어주던 네가 미술실 저편으로 뛰어가 제 후드집업을 들고 왔다. 얼마 전에 샀다고 애지중지 입고 다니더니. 나중에 다시 빨아서 줘야겠다. 여름이라 금방 마르겠지. 툭툭 말을 내뱉으면서도 입꼬리는 슬며시 올라갔다. 얼른 말려. 볕이 잘 드는 창문 쪽으로 나를 민 네가 빠삐코를 입에 다시 물었다. 차가운 것을 먹은 탓에 빨개진 입술이 눈에 띄었다. 


 


 


 

“왜? 여기 뭐 묻었어? 

“어, 어. 아니.” 

“뭐야, 그럼. 나 다시 그림 그리러 간다? 얼른 말려. 알았지.” 

“오냐.” 


 


 


 

 홱 몸을 돌려 제가 앉아있던 자리로 향하는 네 뒷모습을 보며 몰래 웃음을 짓다, 미술실 안으로 들어오는 김태형과 눈이 마주쳤다. 옘병. 민망함에 바로 정색을 하니 장난을 치려는 듯 내게 뛰어온 김태형이 가볍게 창틀에 걸터앉았다. 세수를 하고 온 것인지 김태형의 얼굴에 물기가 남아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침을 꿀꺽 삼키고는 저 또한 김태형의 옆에 앉았다. 


 


 


 

“야. 아까 왜 변태처럼 웃고 있었냐.” 

“뭐래.” 

“너 아까 완전 문학 같았는데. 웃는 게.” 

“이 새끼가, 싸우자고?” 

“아, 장난. 장난이라고!” 


 


 


 

 웃으며 뒤로 넘어가는 김태형의 목을 쥐고는 달달 흔들다, 조용히 하라는 네 말에 금세 잠잠해져 바로 앉았다.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고개를 숙였다. 여름 감기라도 들었나. 코를 킁킁거리다 훅 끼쳐오는 네 향에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향수는 안 쓴다고 그랬는데. 원래 이렇게 냄새가 포근했나. 소매를 들어 냄새를 맡자 김태형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냥 섬유 유연제 냄새가 좋길래. 횡설수설 변명을 하곤 손을 내려 여전히 그림에 집중 중인 너를 응시했다. 그냥, 좋았다. 네 향이. 


 


 


 

*** 


 


 


 

“아, 기름 냄새. 와, 진짜.” 

“어쩔.” 

“뭐, 별로 심하지도 않구만.” 

“박지민 저거 지금 돌려서 말하는 거야.” 


 


 


 

 미술실 문을 열자 곧바로 진동하는 기름 냄새에 김태형은 인상을 가득 찌푸렸다. 아마도 냄새의 주범은 너일 테지. 며칠 전부터 유화 물감으로 작품을 시작했다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던 너니까. 내부로 들어가 창가 옆 캔버스를 보면, 아니나 다를까. 유화 물감 전용 붓을 든 채 채색에 열중 중인 네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제 코를 손으로 쥔 채 미간을 좁히고 있던 김태형은 너를 보자마자 탄성을 지르며 단숨에 네게로 다가갔다. 장난끼가 섞인 말투로 너를 툭툭 치는 김태형과, 방해를 받은 것에 신경질이 났던지 짤막한 대답을 하는 너. 한 발짝 떨어져 둘을 지켜보다 결국 김태형을 끌고 나왔다. 


 

 너를 구경한답시고 볕이 잘 드는 창틀에 가만히 앉아있으니, 그렇게 졸음이 몰려오더라. 점심을 먹은 후여서 그런지 더욱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눈을 비비며 너를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돌려 이미 졸고 있는 김태형도 한 번 노려봐주고. 그러다 침까지 흘리며 자려는 기세의 김태형에 기겁을 하곤 김태형의 어깨를 툭툭 쳤다. 새끼, 이래도 일어나질 않네. 할 수 없이 김태형의 입술을 손수 닫아준 뒤 창문에 기대 편히 잠을 청했다. 햇볕도 따뜻하고, 기름 냄새 사이로 네 향기도 풍겨오고. 잠을 자기엔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대로 잠에 들었나. 미술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몇 번 더 눈을 깜빡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자 곧 문 앞에 서 있는 네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전과는 달리 울상이 된 얼굴에 하품을 쩌억 하며 네게 다가가니, 상장이라도 보여주듯 너는 내 눈앞에 제 손을 들이밀었다. 그림을 그리다 묻은 것치고는 아예 손바닥 전체가 얼룩덜룩하게 물든 모양새에, 두리번거리며 미술실 안을 살폈다. 넘어진 캔버스, 떨어져 있는 팔레트. 조금 전의 상황이 절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못 살아. 진짜 칠칠이냐.” 

“일부러 넘어트린 거 아니거든?” 

“알았어. 이거 안 지워져?” 

“응. 방금 씻고 왔는데도 안 지워져.” 

“아, 잠깐만.” 


 


 


 

 중구난방으로 물든 네 손을 붙들고 살펴보다, 문득 제가 저번에 두고 갔던 섬유 탈취제가 생각나 손을 잠시 놓았다. 아마도 더 이상 그림을 그리기엔 무리일 테고. 교실에 가면 또 냄새가 난다며 징징거릴 네가 눈에 선해 가져왔던 섬유 탈취제였다. 방금 전까지 잠을 청했던 자리에서 섬유 탈취제를 들고 오자 금세 환해진 네 얼굴이 눈에 띄었다. 제 얼룩진 손바닥을 어느새 잊어버린 것인지, 어서 뿌려달라며 두 팔을 쫙 뻗은 모습이 퍽 단순해 보여 웃음이 절로 났다. 


 

앞에 두 번, 뒤에도 두 번. 뿌리자마자 바로 퍼지는 향을 맡더니, 너는 평소처럼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말간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도 가슴이 콩콩 뛰는 것이… 아. 아무래도 제 몸 한구석에 탈이 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보는 그 얼굴이 유독 더 눈부시게 보일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멍하니 그 얼굴을 들여다보다, 재빨리 정신을 차리곤 섬유 탈취제를 내려놓았다. 미쳤지, 박지민. 괜히 저 혼자만 어색해진 분위기에 뒷덜미를 쓰다듬었다. 


 


 


 

“근데 이거 진짜 안 지워져?” 

“진짜. 아까 김태형한테도 묻혔는데.” 

“못됐네, 못됐어.” 

“아니거든.” 


 


 


 

 머쓱해진 기분에 다시금 네 손을 붙잡았다. 제 손과 엇비슷한 자그마한 손에 가을처럼 가득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이리저리 손바닥을 뒤집어보며 네 시선을 피하고 있던 중, 또다시 들려오는 문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너와 마찬가지로 물감이 잔뜩 물든 손을 털며 들어오는 김태형과 눈이 마주쳤다. 야, 저거 불쌍한 척 하는 거야, 박지민. 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채 툴툴거린 김태형이 문득 시선을 내렸다. 아, 아직도 손잡고 있었구나. 급히 손을 떼자 김태형의 시선 또한 제자리로 돌아왔다. 곧이어 미술실 내부로 5교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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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냐냐냐!!!! 자까님 사랑해여!!!! 열여덟 지민이 만나고 저는 열여덟 태형이 데리고 오겠습니다!!!
7년 전
비회원77.98
허류ㅠㅠㅠ 작가님 그냥 이 글은 혁명이네요 혁명 나중에 결혼할 부부는 누구고 ㅠㅠㅠㅠ 아 진짜 너무 좋잖아요!!!!!! 이거 진짜 장난아니고 좋습니다 어떡하면 좋죠?
암호닉 신청가능하나요? 그러면 [낙엽]으로 신청합니다!!! 감사합니다!!1

7년 전
독자2
프롤로그에 글 남겼었는데 못 보셨나봐요ㅠㅜ
지민이 입장에서 풀어나간 글이 너무 잘 그려져요.

7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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