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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정한] 장미를 키우는 남자는 미치광이다 

 

 

 

 

 

 

 

 

 

 

 

 

 

-장미가 참 예쁘다, 여긴. 

내가 사는 곳에선 꽃을 구경할 수 없었는데. 나지막이 웅얼대며 아스라한 미소를 흘리던 소년이 제 키보다 큰 장미의 줄기를 잡고 꽃에 제 입술을 대었다. 장미 가시가 손가락을 따끔거리게 만들었지만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한아!" 

 

 

 

한참동안 장미의 곁에서 떨어지질 못하다가, 멀리서부터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서야 긴 머리칼을 가진 소년은 장미가 가득한 정원에서 멀어졌다. 이제 자주 찾아와야지, 하는 다짐을 하고서. 

 

 

 

 

 

[민혁/정한] 장미를 키우는 남자는 미치광이다  

 

 

 

 

 

 

 

 

 

 

 

 

 

 

* * * 

 

 

 

"구경은 재미있었어?" 

 

 

 

"그럼- 왜 재미가 없겠어?" 

 

 

 

민규의 다정한 물음에 정한은 옅은 미소를 띄며 반론했다. 민규는 이 도시에서 정한과 유일하게 아는 사이인 인물이었다. 정한은 고향에서 이곳으로 이사온 뒤론 쭉 민규에게 의지해왔고, 민규도 이젠 익숙하다는 듯 제법 능숙하게 정한을 챙겼다. 

 

 

 

"그래서, 몬리타 주는 마음에 드십니까? 윤정한 씨." 

 

 

 

"너무 좋아... 특히 꽃이!" 

 

 

 

정한은 머릿속으로 꽃송이가 만개한 거리를 그리는지 양손을 모은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민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민규는 이 도시의 꽃송이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방방 뛰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분에 넘치도록 귀엽네, 민규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정한은 민규의 집 안에 제 짐을 모두 풀자마자 다시 장미 정원을 찾아왔다. 무슨 짐 푸는데 삼일 씩이나 걸리냐며, 깔깔 웃던 민규는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한지 오래였다.  

 

 

 

정한은 장미 정원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아름답게 피어난 장미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빠알간 꽃잎들이 겹쳐져 한 봉우리에 모여있다는 것도 신기한 모양새였지만, 무엇보다 책에선 느낄 수 없는 꽃의 향기가 마음에 들은 이유였다. 그 장미들과 정한의 평화를 깬 건, 난생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헉- 깜짝 놀란 나머지 정한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며 제 두 손으로 장미 꽃들을 가렸다. 그러나 힘 조절에 실패한건지 장미 줄기가 빠득 소리를 내며 꺾여졌다. 설상가상으로 그 주위의 분위기로 보아 그는 이 장미 정원의 주인인 듯 했다. 

 

 

 

"그게, 저기..." 

 

 

 

정한의 말문이 턱 막혔다. 저에게 말을 건 이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단연 눈에 띌 정도로 화사한 금발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목 부분에 특이한 모양의 넥타이를 메고 와이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채, 한 손으론 제 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가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의 얼굴엔 손의 그림자가 져있었다. 

 

 

 

"저번에도 온 거 알아요." 

 

 

 

"..." 

 

 

 

"냉차 한 잔 하실래요?" 

 

 

 

의외의 질문에 당황한 정한은 그에게서 냅다 달아났다. 장미 정원을 지나, 번화가로. 다행히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남자는 더이상 정한을 쫒아오지 않았다. 정한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래서, 결국 거기서 줄행랑을 치셨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깔깔깔 경박하게 웃어대는 민규를 마주하며 정한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이 웃음소리는 분명히 부승관한테 옮은 것이리라, 하고 확신하면서. 

 

 

 

"...그치만 되게 인상적이었어. 금발 머리에다가, 음... 여튼 다음에 다시 만나고 싶긴 해. " 

 

 

 

"그럼 첫인상을 잘 잡았어야지. 이미 그 사람은 너 도둑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민규의 짐짓 예상하는 말에 정한이 식탁에 턱을 괴고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아닐걸? 그러나 민규는 침묵한 채였다. 

 

 

 

 

 

 

 

 

 

 

 

 

 

* * * 

 

 

 

그 날 이후 며칠 만에 장미 정원을 찾아온 정한의 엄지손톱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고민의 흔적이랄까, 그 날 그 남자에게 들켜버린 것이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빨개질 만큼 민망한 일이었어서 오기를 꺼렸건만 이 정원이 아닌 곳에는 어디에도 장미를 키우지 않았다. 이렇게 예쁜데 왜 키우지 않는걸까... 정한의 궁금증은 그렇게 날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없나? 정한은 그의 목소리가 환청으로나마 들리는 것만 같아 괜히 두리번거리며 그의 모습을 찾았다. 고개를 가로젓자 하나로 묶은 정한의 머리 끝이 찰랑댔다. 남자 치고 긴 정한의 머리칼은 짙은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정한의 손가락 끝에 장미 꽃잎이 닿았다. 순간 놀라 손을 거두던 정한은 장미 줄기들 사이로 얼핏 튀어나온 철제 기둥을 발견했다. 장미 줄기와 꽃잎에 가려진 부분들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기둥의 단면을 손으로 만져가던 정한의 눈동자에, 다시 한 번 금발이 나타난 것은 정원의 모퉁이에서였다. 그의 뒷모습을 마주하고 숨을 훅 들이킨 정한이 모퉁이의 장미들로 제 모습을 가리고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그는 정한을 등진 채 한 송이의 장미 꽃잎들을 줄기 끝 봉우리에서 뽑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기괴해보여서, 정한의 뒷꿈치가 절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장미들을 건드려 인기척을 낸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장미 좋아하시나봐요." 

 

 

 

인기척을 낸 정한 자신도 놀랄 만큼 큰 소리에, 뒤이어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까지. 정한은 말 그대로 정신을 놓을 지경이었다. 정한에게 건넨 목소리의 주인은 아직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혹시 그에게 혼나지는 않을까, 정한의 떨리는 목소리가 입속에서 튀어나왔다.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요... 어차피 장미는 가져갈 수 없을테니까." 

 

 

 

그는 정한이 알 듯 말 듯한 기묘한 말들을 내뱉으며 봉우리에서 멀어진 장미 꽃잎들을 정한의 손에 쥐어주었다. 정한은 그의 특이한 행동에 제 손아귀의 꽃잎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제 마른 입술을 훑었다. 

 

 

 

"근데, 장미는 왜 꺾는 거에요?" 

 

 

 

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다 정한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정한은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두려움에 그에게서 한 발 물러섰다. 어느새 그와 정한 사이의 거리는 손을 뻗어도 서로에게 닿지않을 만큼 커져있었다.  

 

 

 

"장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렇게 큰 정원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뭐에요? 정한은 그의 이야기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반문했다. 그러나 민혁은, 정한의 물음엔 대답하지 않은 채 엉뚱한 말을 했다. 

 

 

 

"다른 주에서 오셨나봐요." 

 

 

 

담담하게 정한의 고향을 어림짐작한 그가, 이번엔 성큼성큼 정한에게로 다가왔다. 정한의 어깨가 흠칫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다. 정한은 그가 제 코 앞에서 멈춰서고 나서야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게 오늘이 처음인 그와는 가까운 거리가 부담스러웠다. 아무 말이나 해야겠다, 정한은 속으로 고민을 거듭하다가 판단을 내리자마자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세틴, 주에서 왔어요.... 얼마 전에 테러 당했던... " 

 

 

 

"그럴 줄 알았어요, 이 주에 사는 사람은 감히 여기를 들어올 리가 없거든." 

 

 

 

정한의 어리벙벙한 태도에 그의 눈꼬리가 처음으로 호선을 그렸다. 빛나는 눈웃음, 그리고 입꼬리 끝의 사선 보조개가 새삼 그의 밝은 머리색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싱긋 웃으며 정한에게 악수를 건넸다. 

 

 

 

"이민혁이에요, 이 정원 주인." 

 

 

 

 

 

 

 

 

 

 

 

 

 

* * * 

 

 

 

정한은 민규의 집에서 한참을 그와의 대화를 곱씹어서야 그와의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큰 정원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물어보자마자 민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능숙하게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 모습에서 정한은 그에게 남에게 숨겨야할만한 아픈 일이 있었을거라고 직감했다.  

 

 

 

"...윤정한? 윤정한!" 

 

 

 

민혁의 얇은 목소리를 많이 들어서일까, 그날따라 민규의 목소리가 걸걸하게 들렸다. 정한은 제 기억 속 민혁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민규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좋은 꿈을 꾼 것 같이 기분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깨버린 민규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민규는 이런 정한의 속을 알 리가 없겠지만. 

 

 

 

"오늘 기분 좋은 일 있었나봐?" 

 

 

 

"응." 

 

 

 

짧은 단답으로 그친 목소리에 민규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아도 정한은 눈치채지 못한 듯 혼자 실소를 지어내고 있었다. 장미 정원에 가더니 사람이 이상해졌어, 민규는 새삼스럽게 이 도시에서 퍼진 괴담이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 * 

 

 

 

정한은 지금 제가 마주한 그의 눈동자가, 그의 머리색이, 그의 이목구비와 그의 몸선 하나하나를 신기하다고 느꼈다. 그는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정한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것들을 경험하게 했다. 장미 정원을 매일 들락날락 거리는 것이라던가, 아니면 금발 머리의 친구를 만나는 것. 그리고 정한의 머릿속에 단 하나, 그의 생각만 가득 차는 것.  

 

 

 

"또 왔네요." 

 

 

 

화려한 민혁의 이목구비는 미소로 하여금 정한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민혁은 밑입술을 가볍게 깨물고서 정한의 머리카락 끝을 응시했다. 그러자 꼭 정한 자신이 불안해하는 듯이, 정한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여기저기를 휩쓸고 다녔다.  

 

 

 

"장미가... 신기해서요." 

 

 

 

"이 주에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 뿐일 거에요." 

 

 

 

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민혁의 한마디에 정한의 고개가 느릿하게 갸우뚱댔다. 이렇게 예쁜 장미인데도요? 정한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건 정한이 말할 때의 단순한 습관이었다. 

 

 

 

"이 주 사람들은 장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장미에 관련된 안 좋은 옛말이 있어서." 

 

 

 

그러면서 민혁은 목을 큼큼 다듬더니, 이내 그 옛말의 내용을 말해주었다. 

 

 

 

"장미를 키우는 남자는 미치광이다." 

 

 

 

....하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네요. 순간 싸늘하게 표정이 굳어버리는 민혁에 정한은 약간의 어색함을 느꼈다. 그러나 민혁은 그 말이 사실이라걸 인정한다는 듯 그 문장을 정한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굳는 게 예사롭지 않아서, 정한은 일부러 장미에 대해 물었다. 

 

 

 

"근데, 제가 책에서 봤던 장미보단 많이 큰 것 같아요." 

 

 

 

"...넝쿨 장미라고 해요." 

 

 

 

민혁은 수많은 장미의 가지 중 제 눈에 띄는 것을 골라 똑 부러트려 정한에게 건넸다. 정한은 미묘한 표정으로 그가 건네는 장미 한 송이를 받아들었다.  

 

 

 

"이름이 뭐에요?" 

 

 

 

"정한, 윤 정한 이에요." 

 

 

 

정한은 제 이름을 묻는 민혁의 목소리에 답하고 난 뒤, 그가 꽃을 꺾은 것에 대한 의중을 물었다. 그러나 민혁은 특별한 의미는 없었는지, 고개만 도리도리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꽃을 꺾지 말라고 훈계하는 정한에게, 그 행동 하나로 예민하게 구는 정한을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태연하게 정한의 말을 받아쳤다. 

 

 

 

"꽃을 꺾어도 가치는 남잖아요?" 

 

 

 

"...무슨 가치요?" 

 

 

 

마치 어릴 적 보던 연예인에 대한 환상이 깨지듯, 정한은 제 속에서 신비로운 민혁과 그의 장미 정원에 대한 환상이 깨졌음을 느꼈다. 정한은 온 마음을 다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특이한 가치관을 가지고 계시네요, 라 말하려던 건 꼭꼭 눌러담은 채. 

 

 

 

"..." 

 

 

 

서로가 입을 꾹 닫고만 있으니 장미 정원 전체가 어색한 공기에 휩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정한은 괜히 태양이 어디쯤 있을런지 확인해보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눈부심의 근원지는 아직도 정수리 위에서 존재했다. 정한은 등 뒤로 제 두 손을 모아 겹쳤다. 뒤쪽에서 저에게 오는 햇살이 오늘따라 유독 뜨겁다고 느꼈다.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해도 괜찮아요." 

 

 

 

민혁은 갸르릉 대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의 깜빡이는 검은 눈동자 속에 무엇이 있을지, 정한의 시선이 그의 눈동자를 따라갔다. 그의 눈동자는 데구르르 굴러가는 것도 잠시, 이내 정한을 똑바로 마주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정한에게 닿아온 강렬한 눈빛에 정한의 가는 어깨가 움찔거렸다. 이국적인 보랏빛깔 머리칼도 옅게 찰랑였다. 민혁이 무거운 공기를 달고서 정한에게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망설임이 없어보였다. 그의 입술은 그대로 정한의 입술을 덮쳤다. 정한은 당황한 나머지 안색을 창백하게 물들이며 제 뒤로 물러나려다가, 등 뒤가 장미 덩굴이라는 것을 알고 뒷걸음질을 멈추었다. 정한의 앙증맞은 등이 장미의 가시에 긁힌 듯 따끔거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혁은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정한의 입술을 탐했다. 정한은 특별한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제가 그에게 먹혀감을 느꼈다. 빠알간 꽃잎들이 가득한 장미 정원에서의 키스는, 정한이 전에 해본 모든 키스들보다 더 위험하고 더 순종적인 키스였다. 그리 오랫동안 입술을 맞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정한의 입술에서 민혁의 입술이 떼어졌을 때 이미 정한의 몸뚱아리는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가까워진 둘의 거리 그 사이에선 분명 어색한 기류도 흐르고 있었다. 

 

 

 

"...민혁, 씨..." 

 

 

 

도저히 입을 뗄 수 없는 어색한 분위기에서, 정한은 제 밑입술을 한 손의 엄지와 검지로 매만지며 민혁의 이름을 불렀다. 어떤 칭호도 민혁에게 어울리지 않아 급하게 그의 이름 뒤에 씨, 하고 존칭을 붙인 정한의 눈동자의 색깔이 금발로써 물들여졌다. 그는 정한의 당황으로 물든 얼굴을 흥미롭다는 듯 손을 제 턱에 부비며 응시했다. 정한은 그의 노골적인 시선에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이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당신은 장미를 닮은 것 같아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서 민혁은 뚜벅뚜벅 장미 정원의 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를 붙잡으려 허공에 뻗었던 팔이 중력의 힘에 의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한 발 늦게 그가 사라진 방향으로 쫒아갔으나 이미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후였다.  

 

 

 

 

 

 

 

 

 

 

 

 

 

 

 

 

 

 

 

 

 

 

 

 

 

 

* * * 

 

 

 

"...말이지, 장미 같단 소리는 무슨 뜻이야?" 

 

 

 

정한의 두 손이 소파 위 검은 쿠션을 껴안았다. 민규는 그 순간까지 아직 정장을 벗지도 못한 채 집에 산더미만큼 쌓인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 진도가 나가질 않자 귀찮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종이짝을 내팽겨친 민규는 정한의 앙상한 다리에 등을 기대었다. 고개를 들어 정한을 바라본 민규의 목젖이 들썩였다. 

 

 

 

"...정말 그런 얘길 들었어?" 

 

 

 

순간 민규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정한은 그 뜻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그들 사이에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점점 정한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뭔데, 비장하기까지한 정한의 목소리에 민규가 즉각 답했다. 

 

 

 

"이 도시에는 장미에 대한 속설이 있어." 

 

 

 

" '장미를 키우는 남자는 미치광이다'? " 

 

 

 

"...20년 전에 주의 지사가 부인을 죽였어. 장미 정원에 시신을 은폐하고 매일 정원을 들렀다는데." 

 

 

 

"..." 

 

 

 

"또 장미 정원에 간 거지? 너." 

 

 

 

정한은 민규의 추측성이 짙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제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급기야 딸꾹질을 시작한 정한은 하하, 하고 작위적인 헛웃음을 지어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정한의 떨리는 목소리가 차차 기어들어갔다. 민규는 정한에게 돌아앉아 정한의 하얀 무릎에 입술을 대었다. 

 

 

 

"가지 마, 위험할거야." 

 

 

 

"...위험하지 않아." 

 

 

 

따끈한 입술의 온기가 정한의 무릎팍으로 전해졌다. 정한은 아이처럼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나로 묶인 머리 끝이 정한의 어깨 밑에서 거의 뛰어놀다시피 했다. 격렬한 도리짓에 민규는 제 무릎을 잡고 일어났다. 

 

 

 

"알았어, 알겠는데... 정신을 놓게 만들진 마." 

 

 

 

응?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되묻는 정한을 뒤로하고, 민규는 터덜터덜 제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장미 정원은 정한을 제외한 그 어떤 외부인도 쉽게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안에서의 정한과 민혁은 둘 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어느새 장미 정원을 방문하는 일은 정한의 생활 속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민혁," 

 

 

 

-씨, 하고 존칭을 붙이기도 전에 정한의 몸뚱아리는 장미 정원의 담으로 밀어붙여졌다. 그의 돌발행동에 놀라 입을 벌린 정한의 안으로 그의 말캉한 것이 급습했다. 정한은 토끼눈을 뜨고서 제 입안을 휘젓는 그를 바라보았다. 정한의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키스를 주도하던 그는 이내 정한의 토끼눈을 보고서 혀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서서히 멀어지는 서로의 입술 사이에서 진득한 타액이 실처럼 늘어졌다. 어깨를 담으로 밀어붙였던 그의 두 손까지 정한에게서 멀어지자 비로소 마비가 되어버린 듯 아무런 감각이 없던 어깨가 얼얼했다. 그는 정한이 뭐라 목소리를 내기 전에, 정한의 목을 껴안았다. 그의 숨결이 정한에게 훅 끼쳐왔다. 

 

 

 

"...미안해요, 어제 일 때문에 안 올 줄 알았어..." 

 

 

 

그의 심장박동이 정한의 가슴에까지 느껴졌다. 정한은 그의 어꺠를 붙잡고 저에게서 떼어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지만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책에서 어렴풋이 읽은 것만 같았다. 

 

 

 

"...당신은.... 외로워보여요." 

 

 

 

"보라색 장미를 키우고 싶어졌어요." 

 

 

 

정한의 그와의 의사소통이 특별하다고 느꼈다. 그와 나누는 대화는 정한의 머릿 속을 순식간에 백지 상태로 만들었다. 구름은 천천히 해를 가리며 흘러갔다. 정원에 잠깐이나마 그늘이 졌다. 정한에겐 그의 얼굴에 진 그림자마저 신비로워 보였다.  

 

 

 

"...이상한 얘기를 들었어요." 

 

 

 

그 시점에서 왜 민규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 건지, 정한은 혹시 그의 상처를 곪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주저하다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뭔데요?" 

 

 

 

"몬리타 주지사의 부인이 여기서 돌아가셨다는 거..." 

 

 

 

정한은 일부러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살인 사건은 누구에게나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민혁의 미소가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좋지 못한 사정이 있음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의 무거운 입은 도통 열리려 하지 않았다. 어쩔 줄 모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정한은 자신의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결국 먼저 입을 여는 쪽은 정한이었다. 

 

 

 

"...죄송해요." 

 

 

 

그의 사과에 민혁은 범죄자처럼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셨어요." 

 

 

 

"..." 

 

 

 

"장미 정원에서 잠든 그녀는 언제나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해요." 

 

 

 

찌는 더위 사이 잠깐의 한기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래서 정한은 자신이 그의 이야기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린 아이의 시선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꽃이 다시 피는 계절엔 그녀도 다시 깨어난 것 같았겠지, 원래 생각이 어릴 땐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마련이니까. 

 

 

 

"...그럴 수 있어요, 이해해요." 

 

 

 

정한은 담담한 그의 목소리에서 오히려 더 큰 우울함을 느꼈다. 그는 어떻게 보더라도 정한보다 어른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습에 의지해 추측한 나이는 정한보다 두세 살 쯤 위, 그러나 아직 미성년자 타이틀을 떼지 못한 정한에겐 제법 큰 차이였다. 벙쪄선 민혁과의 첫만남 부터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내려간 정한은 그와 저의 관계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다고 느꼈다. 그러다 문득 돌아본 민혁은 모퉁이의 장미 덩굴을 끊어내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꽃을 뜯어내다가 정한의 시선을 느꼈는지 정한에게로 몸을 틀었다. 활짝 웃는 얼굴에 온 세상이 밝아진 것만 같았다. 

 

 

 

"...아, 보라색 장미를 심으려고 덩굴을 덜어내는 중이에요!" 

 

 

 

네, 보라색 장미도 빨리 꽃을 피웠으면 해요. 정한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덕담까지 마치고서 민혁의 눈치를 살폈다. 아, 민혁은 무언가 떠울랐다는 듯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더니 정한에게서 천천히 멀어졌다. 시간이 늦었어요, 이제 그만 돌아가요.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그의 뉘앙스에서 정한은 그 역시 자신과 장미 정원을 둘러싼 소문들을 알고 있음을 인식했다. 그러나 정한은 이제 달아나는 것 대신 민혁에게 더욱 다가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혁이 정한의 다가오는 걸음에 맞춰 뒤로 물러났다. 

 

 

 

"내일도 올 거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민혁은 제가 하고 싶은 말만 속사포처럼 내뱉고 정한의 앞에서 물러났다. 정한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닫았다. 꼭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지, 어른이라는 말 취소. 붉은 노을이 쏟아지는 장미 정원에서 씩씩대며 거리로 나온 정한의 뒷덜미를 붙잡은 건 반가운 얼굴이었다. 

 

 

 

"윤정한." 

 

 

 

"김민규?!" 

 

 

 

그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낮았다. 정한은 제 몸 전체로 아드레날린이 급속도로 커져가는 걸 느꼈다. 얼굴을 가리고 눈을 꾹꾹 짓누르자 민규의 눈썹이 들썩, 하고 위로 올라갔다 금방 원위치로 돌아왔다. 그의 안면근육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정한은 얼굴을 가린 제 손가락 사이사이로 똑똑히 보고 있었다. 

 

 

 

"나보다 늦으면 어떡해. 데리러 왔어." 

 

 

 

"미안... 퇴근시간 지난 줄 몰랐어." 

 

 

 

민규의 팔이 정한의 어깨를 안았다. 정한의 어깨가 약간 움츠러들었다. 괜히 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민혁의 모습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 민규가 막무가내로 발걸음을 옮기는 바람에 장미 정원을 제대로 돌아볼 새도 없이 정한은 정원에서 멀어졌다. 

 

 

 

 

 

 

 

 

 

 

 

 

 

 

 

 

 

 

 

 

 

* * * 

 

 

 

파아란 파스텔 톤의 집은 아침부터 냉전이었다. 전날 밤까지 이어진 말다툼은 결국 정한이 제 방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민규는 쓸쓸하게 혼자 식탁에 앉아 굳게 닫힌 정한의 방문을 자꾸만 흘깃댔다. 그러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서는 그의 하얀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문이 잠겨있진 않아서 민규는 쉬이 문을 열 수 있었다. 손님방이라고 내어준 아담한 방은 이미 정한의 물건들로 가득차있었고, 정한은 침대에 누운 채 민규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의 날개뼈가 튀어나온 등을 바라보며 민규가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윤정한." 

 

 

 

"..." 

 

 

 

"오늘 밤에 나랑 얘기 좀 해, 빨리 올게." 

 

 

 

정한은 목소리를 내어 대답을 건네긴 커녕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 민규가 알 수 있는 그가 깨어있다는 신호는 그저 불규칙한 숨소리 뿐이었다. 민규는 저에게 돌아보지 않는 정한을 홀로 빤히 응시하다, 조용히 집을 나갔다. 

 

 

 

 

 

 

 

 

 

 

 

 

 

 

 

 

 

 

 

* * * 

 

 

 

무거운 한숨과 함께 정한은 자신의 맨팔을 스스로 어루만졌다. 그것은 다 괜찮아질거란 스스로의 위로였다. 그렇게 힘이 주욱 빠진 채로 터덜터덜 걷던 정한은 갓 장미 정원에서 빠져나오는 민혁을 마주쳤다. 백반바지에, 면 티셔츠 그리고 얇은 가디건을 걸친 그는 처음으로 장미 정원이 아닌 길목에서 정한과 마주했다. 

 

 

 

"정한 씨? 오늘은 좀 늦었네요." 

 

 

 

따사로운 햇빛처럼 저 자신에게 빛을 주는 존재, 정한은 그 날 그의 모습을 그렇게 통용했다. 

 

 

 

"민혁 씨." 

 

 

 

민혁은 정한의 오른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 정한에게 따라오라는 듯 골목을 앞서 걸었다. 어디 가냐는 정한의 물음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한은 그 자체로도 희망찬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손을 맞잡은 채 그들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정한은 민혁의 빠른 발걸음에 맞추기 위해 발을 쉴새없이 옮겼다. 그러자 그는 도통 진위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민규의 집보다 약간 더 커 보이는 하얀 지붕의 집에서 멈춰섰다. 정한은 그의 곁에서 자꾸만 그를 흘끔댔다. 아무래도 민혁의 설명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우리 집이에요, 오늘은 많이 더울 것 같아서." 

 

 

 

민혁은 태연하게 화려한 장식이 달린 집의 대문을 열었다. 정한은 제 유독 긴 구렛나루를 귓바퀴 위로 말아올리며 민혁을 따라 마당을 걸었다. 민혁은 대문도 제대로 닫지 않은 채 열쇠로 집의 문을 열었다. 

 

 

 

"슬리퍼 신고 들어와요." 

 

 

 

"그럼, 실례할게요." 

 

 

 

정한은 민혁이 내어준 체크무늬 슬리퍼로 갈아신고서 그의 집 안으로 발을 디뎠다. 거기 앉아요, 민혁의 다정한 목소리에 정한이 순순히 집의 마루에 앉았다. 그늘에 앉아 여기저기 둘러본 집은 집이라기보단 숙소에 가까웠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마당의 잡초들과 집안 가구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물건들. 

 

 

 

"냉커피 좋아해요?" 

 

 

 

퍼뜩, 하고 정한은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민혁은 그의 바로 등 뒤에서 양손에 한 잔씩 컵을 든 채 싱그럽게 웃음짓고 있었다. 민혁이 건네는 유리컵을 받아든 정한은 컵 안을 힐긋 보고선 몇 모금을 들이켰다. 예전에는 쓰기만 했던 커피가 새삼 달콤하게 느껴졌다. 민혁은 정한의 곁에서 마루에 걸터앉아 티백이 물 아래에 가라앉은 얼음녹차를 들이키고 있었다. 서로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정한이 민혁에게서 약간 멀어졌다. 민혁은 컵을 제 다리 옆에 두고서 아이처럼 마루에 걸터앉은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정한의 시선은 한참동안이나 그의 앙상한 다리에 머물러있었다. 민혁에게서 멀어지는 바람에 정한이 정면으로 쐬게 된 태양빛에 정한의 정수리엔 열이 잔뜩 올랐다. 

 

 

 

"정한 씨." 

 

 

 

"네." 

 

 

 

"이리 와요, 거긴 햇빛 때문에 덥잖아요." 

 

 

 

민혁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제 맨 무릎을 팡팡 쳤다. 그러다 정한이 눈을 맞춰오자 피식 눈웃음을 흘렸다. 그는 정한이 주저하자 제가 먼저 정한에게 다가가 정한의 허리를 잡고 들어올렸다. 마른 두 팔으로 쉽게 저를 들어올리는 모습에 정한은 저를 들어오리느라 힘줄이 선 그의 팔에 시선을 고정하고 눈꺼풀을 빠르게 껌뻑였다. 그의 허벅지에 옆으로 걸터앉아 돌아본 민혁은 정한보다 낮은 시선에서 정한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한의 코끝에 장미 향기보다 더 꽃같은 향기가 닿아 시큰거려왔다. 

 

 

 

"정한아." 

 

 

 

"..." 

 

 

 

"사랑해." 

 

 

 

그가 언제 말을 놓았는지 깨닫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고백에 정한은 아무 대답 없이 손끝으로 그의 볼부터 턱까지를 훑고 내려갔다. 민혁은 어느새 제 얼굴에 장난기를 거두고서 정한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정한은 그대로 허리를 조금 굽혀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닥쳤다. 정한이 눈을 감으니 민혁이 언제나처럼 키스를 주도했다. 처음엔 정한의 뒷목에 손을 두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쇄골, 갈비뼈, 골반 순으로 정한을 훑고 내려갔다. 또 동시에 치열을 훑는 그의 혀에 정한은 정신을 놓을 지경이었다. 탄산음료를 마신 것처럼 온몸에 찌릿함이 올라왔다. 그의 골반을 지분대는 손길에 정한은 외마디 신음을 흘렸다. 후으... 민혁은 정한의 팔으로 제 목을 감싸게 했다. 서로 입술을 부닥친 건 오늘로 세 번째였지만 정한은 이제서야 그와 저 사이의 기류가 전과 달라졌음을 느꼈다. 그러나 어린 정한에겐 민혁과의 스킨십은 언제나 빨랐다. 정한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좋아, 해요." 

 

 

 

"떨지 마요... 내가 잘못했어." 

 

 

 

그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정한은 그의 구긴 인상을 발견하곤 자세를 구부렸다. 다시 발을 동동 구르는 민혁의 발에서 슬리퍼가 마당으로 떨어져나갔다. 그제야 민혁은 산만하게 제 발을 구르기를 멈추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어제 정원까지 데리러 온 사람 누구에요?" 

 

 

 

넌지시 어제의 일을 묻는 그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잠시 주저하던 정한의 머리를 그는 제 어깨에 기대게했다. 정한의 발목 정도의 높이인 마당의 잡초 사이사이로 풀벌레 냄새가 겹쳐졌다. 정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의 어꺠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든든하게 정한의 머리를 받치고 있었다. 

 

 

 

"...친구에요, 소꿉친구..." 

 

 

 

"그렇구나, 같이 사나봐요?" 

 

 

 

그의 목에서부터 전해오는 진동은 정한이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정한은 나른한 목소리로 그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며 담담하게 선을 그었다. 서로 신경을 쓰긴 하지만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민혁은 재미있다는 듯 소리내어 웃었다, 꼭 미치광이처럼. 

 

 

 

 

 

 

 

 

 

 

 

 

 

* * * 

 

 

 

정한은 뒤늦게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어깨에서 깨나 오랫동안 잠들어있었던건지 목이 뻐근했다. 일어났어요?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 제게 묻는 그는 어느새 정한이 잠들기 전 맛봤던 커피까지 다 마신지 오래였다. 

 

 

 

"머리 무겁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보기보다 약하지 않으니까." 

 

 

 

그는 옅게 웃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길 모르죠? 이만 정원으로 돌아가요. 정한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처음과 마지막은 정원에서였다. 정한은 대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들을 끼워넣었다. 민혁은 갑작스레 손에 닿은 정한의 손에 놀라 땅을 바라보던 시선을 들었다. 정한의 머리끈은 느슨해진지 오래여서, 이내 머리카락 끝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바닥에 머리끈을 떨어트리기 전에 민혁은 그의 머리 끝에서 머리끈을 낚아채 정한에게 건넸다. 

 

 

 

"나랑 같이 걸으면 이상한 소문 날텐데, 괜찮아요?" 

 

 

 

이제 소문은 신경 안 쓰기로 했어요, 사실이 아니니까. 정한은 제 머리끈을 팔목에 걸고 보란듯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자유로워진 머리칼들이 정한의 옆머리를 감쌌다. 정한은 그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저와 같은 색의 눈동자임에도 그의 눈동자가 참 신비롭다고 느꼈다. 그저 그의 모든 걸 사랑한다는 그런 애매한 대답이 아니라, 그의 무엇이 어떻게 좋은지 이제 정한은 또렷이 말할 수 있었다. 전보단 사그라들었으나 아직 따뜻한 햇살 때문인지, 아니면 민혁과 저 사이의 미묘한 기류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한의 귀에 화끈하게 열이 올랐다. 정한에게 발걸음을 맞춰 걸어주던 민혁은 큼큼 하고 한참만에 다시 목소리를 냈다. 

 

 

 

"밤에는 그 친구랑 둘이 있는거에요?" 

 

 

 

"네. 아직 여기선 집을 못 구해서..." 

 

 

 

정한은 유쾌해보이지 않는 실소를 흘렸다. 민혁은 뚱한 표정을 하고서 정한과 눈을 마주쳐왔다. 그러다 또 정한과 맞잡은 반대손으로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그의 손아귀가 무언가 작은 물건을 잡고 있는 것도 같았으나 정한은 그런 세세한 것들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장미 정원에 도착할 때까지 정한과 민혁이 마주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민혁은 다시 정원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정한은 눈동자가 정원 중에서도 잠깐 비워놓은 보라색 장미를 키울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은 이미 장미 몇 송이만이 남아있었다. 꽃송이에게 다가간 정한의 두 손가락이 얇은 철기둥을 만지작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빨간 장미는 어느새 붉은 노을에 더 아름답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정한아." 

 

 

 

가까이서 들리는 민혁의 부름에 정한의 허리가 약간 비틀어졌다. 정한의 어깨에 조금 못 미치는 보랏빛 머리칼이 찰랑였다. 정한이 그를 제 시야에서 찾기도 전에 민혁은 그의 입술 사이를 침범했다. 이번이 네 번쨰였지만 그의 입술은 늘 버거웠다. 정한은 그에게서 제게로 넘어오는 액체를 별 의심없이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동안 뇌가 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한은 에서 잘만 돌던 사고회로가 고작 그의 입술 하나로 멈춰섰다고 생각했지만 몇 초 후 휘청이는 제 몸을 느끼고 그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정한은 넝쿨 장미가 타고 올라간 철기둥을 아무렇게나 붙잡았다. 덕분에 장미 줄기가 힘없이 꺾였다. 다시 들은 그의 목소리엔 광기가 어려있었다. 

 

 

 

"...왜 아버지가 어머니를 이곳에 가둬놓았는지, 이제 알겠어요." 

 

 

 

정한의 시야가 점점 까맣게 물들었다. 그 역시 속을 게워내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민혁은 제 입을 손으로 막고서 말을 이었다. 

 

 

 

"당신의 살결에서 피어난 장미는 분명 당신만큼 아름다울거야." 

 

 

 

점점 정한의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던 오른팔의 근육도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그의 선명했던 목소리도 차차 흐려졌다. 

 

 

 

"사랑해, 정한아." 

 

 

 

오늘 밤에, 민규와 얘기해보기로 했는데...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한 저를 향한 민규의 감정을 정한은 제 몸이 쓰러질 때서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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