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 좋다.
바람은 서늘한데, 햇살은 꼭 봄볕마냥 따뜻했다. 열려있는 창문 틈 새로 이름모를 새 몇 마리가 지저귀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원 벤치에 앉아 햇살을 마음껏 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가기엔 공원은 너무 멀었고 내 다리는 너무나 짧았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리니 눈안 가득 햇살이 들어찼다. 행복한 느낌이 들어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지만 보는 사람은 없었다.
며칠 전부터 의사에게 항암제를 투약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리 싸워봤자 이길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몇 일을 더 살겠다고 꾸역꾸역 그 지독한 암덩어리와 싸워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반대할 줄 알았던 의사는 의외로 순순히 내 요청을 들어주었다. 아마 그도 내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예상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보다도 내 몸을 잘 알고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대신, 그는 내게 모르핀을 조금씩 놓아 주기 시작했다. 갈 때까지만이라도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사실, 나도 내 몸이, 내 숨이 멎을 때가 다 됐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두렵지는 않았다. 요즘은 조금 다행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드디어 날 놓아주는구나. 내 몸이. 내 세상이.
재효가 올 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그 때까지만이라도 버틸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마지막으로 널, 보고 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 나의 마지막을 지켜볼 너에겐 너무나 큰 고통이고 충격이겠지만. 나는 너무 이기적이어서 너에대한 미안함보다는 널 보고싶은 마음이 더 컸다. 미련하나 없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떠나간다는 사실을 시리도록 슬프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안재효 너였다.
'형의 마지막 사람이 되게 해줘. 이태일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
한달 전, 이미 바짝 말라버린 내 두 손을 그러쥐고서 네가 말 했다. 그 때에 넌 웃고있었지만 난 그 안에서 너의 울음을 보았다. 차마 내 앞에서 대놓고 울 수가 없었을 너는 웃음으로 울고있었다. 그 모습이 날 더 슬프게 만들었다. 내가 가고난 뒤에 혼자 남을 네가 아파할 게 두려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분은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있기 때문에 차마 네 마음을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동안 위태롭게 지켜오던 마음이 그 날 너의 고백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너에게 안겨 울었다. 울면서 빌고 또 빌었다. 무슨 벌이던 다 받을게요. 마지막으로 이 사람 잠시만 제게 주세요. 제발.
그 뒤로 재효는 매일 날 찾아왔다. 매일 날 찾아와 말을 걸어줬고, 함께 대화를 나눴다. 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후에도 그 일에는 변함이 없었다. 혼자서만 얘기를 하는 재효의 모습이 안쓰럽고 또 슬퍼 종이와 펜으로 대답을 하기도 했다. 요 며칠 새, 펜을 들 힘도 없어진 뒤로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재효가 하는 얘기를 듣고만 있게 되긴 했지만, 아무튼 며칠 전까진 그렇게나마 대화를 나눴었다.
어제 재효는 대학 얘기를 했었다. 수시에 붙었으니 앞으로는 눈치보지 않고 여기에 읽찍 올 수 있다고 그랬다. 잘 했다고, 멋있다고 말 해주고 싶었지만 입을 열어도 나오는 건 가쁜 숨소리밖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재효는 알았다는 듯 머리를 쓸어주었다.
'내일 일찍 올게, 형.'
문득 재효가 어제 했던 얘기가 생각나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약속한 시간이 다 돼 가고 있었다. 아마 20분에서 30분 정도 뒤에는 재효가 병실에 도착할 것이다.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널 보고 갈 수 있을지도 몰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오늘을 넘기짓 못할 것이라는 걸. 지금처럼 무겁기만 하던 몸이 갑자기 가벼워져 붕 뜨는 느낌이 들 때에면, 어쩌면 이대로 하늘까지 날아가 버릴지도 몰라, 하는 유치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젯밤에 밤새 속을 개워냈더니 조금 피곤한 느낌이 들어 이내 눈을 감았다. 조금만 자야지. 재효가 오면 깨울거야.
재효가 깨우면, 난 깰 수 있을까?
-
"형! 이태일!"
네 목소리가 들린다.
"형, 정신차려! 제발!"
다급하게 소리치는 네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있었다.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올리니, 네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일이 형, 정신이 들어?"
바보야, 왜 울고 그래.
말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울고있는 네 모습을 초점없을 눈으로 올려다보니,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일 것만 같았다. 언제 씌워졌는지 내 얼굴의 반절을 덮고있는 산소호흡기로, 힘겹게 숨을 이어갔다.
"형. 제발 죽지 마. 조금만 더 있다 가. 응?"
다 알고 있었잖아. 왜 그래. 너 나랑 안 울기로 약속 했으면서.
"우리 놀러가자. 단풍구경도 하러가고, 좀 더 추워지면 스키도 타러가자. 나 형이랑 하고싶은게 너무 많아, 가지 마. 제발.."
못 가는거 알잖아. 우리 그런 얘기는 꺼내지 않기로 약속 했잖아.
어떻게든 날 붙잡아두고 싶었는지 다급하게 말을 이어가는 재효의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힘겹게 손을 올려 그 얼굴을 쓸어주었다. 순간 급하게 이어나가던 말소리가 뚝 하고 멈추더니, 이내 그 눈이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떨리는 숨소리 사이사이로 작은 너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조금,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왜 난 네 마음을 받아줬을까, 그건 이렇게 널 아프게 할 뿐인데.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니 이내 내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효야. 너한테 너무 고맙다고 말 하고 싶은데, 왜 나는 이렇게 약한걸까. 말 안해도 알지? 너무 고마워. 희망도 미련도 없던 내 세상에 넌 한 줄기 빛이었어.
"형…."
나한테 행복이 어떤건지 다시 기억나게 해줘서 고마워. 혹시 다음 생에도 만날 수 있다면, 그 때에도 나한테 먼저 고백 해 줄래?
"가지 마, 제발."
아니다, 넌 가만히만 있어. 내가 너 데리러 갈게. 내가 꼭 데리러 갈 테니까, 답답해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야 해. 알았지?
'사랑해.'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어 거의 입모양으로 말 하듯, 너에게 이 말을 전해주었다. 그 뜻이 전해졌는지 이내 너는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나는 이내 더이상 들어올려지지 않는 눈꺼풀을 다시 닫았다.
더보기 |
ㅋ.....쓰라는 열병은 안 쓰고 지금 뭐 하는지 모르겠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효일 새드가 보고싶은데 찾아도 없어서...결국 목마른놈이 우물 팠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생각한대로 아ㄴ나와서 슬프지마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열병 기대하고 오셨을 독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내일 올릴게여......ㅎ....때리지만 말아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전 ㅌㅌㅌ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