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하늘도 공기도 모든 것이 시리다. 그 시린 공기를 뚫고 오늘따라 한적한 한강을 걷고 있는 내 볼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나는 아무런 병도 없고 건강한데, 너는 과연 이 날씨에 어떨까. 천식이 있어 날씨를 비롯한 많은 것에 영향을 받던 네가 생각나 다시 가슴이 쓰려온다.
이 시린 공기에 어떻게, 넌 좀 괜찮아?
또, 또. 또 네 생각으로 모든 게 이어진다. 집에 박혀 있다가도 울컥울컥 치솟는 네 생각에 야상과 목도리를 달랑 두르고 이렇게 뛰어 나왔는데도 여전히 나오는 건 네 생각이고, 네 걱정이다.
너에게 무감각해졌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우린 합의하에 안녕을 고했을 뿐이다. 그런데 네가 없다고 이제와서 이렇게 아파오는 가슴이 원망스럽고 슬프다. 공기는 여전히 시려서, 터질 것 같은 머리를 가라앉혀주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섞인 소음, 그리고 내 귓가에 맴돌고 있는 건 한 때 네가 불러준 노래. 너와 나는 노래 듣는 취향이 참 달랐다. 넌 랩이 들어간 힙합 장르를 좋아했다면 난 발라드, 알앤비.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취미와 성격을 가지고 있던 우리지만 용케도 우린 사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가 나에게 이어폰을 주며 틀어준 노래.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멜로디가 나오고 있었다.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챠우.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긴 반주가 끝나고 보컬의 목소리가 나올 때 쯤. 내 귀는 이어폰보다는, 내 옆에서 바로 들리고 있는 네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듣기 싫지 않은 목소리로 너는 내 옆에서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눈을 살짝 감고 내 어깨에 몸을 살짝 기대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널 빤히 바라보다가 나도 천천히 눈을 감았었다. 너의 목소리에 맞춰 나도 같이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4분이 넘지만 가사는 저 한 문장밖에 없던 노래를 끝까지 따라 불렀다.
그 때도 우리 여기 있었어, 지호야. 우리 그 날도 여기서 같이 한강에서 있었어. 그 날도 공기가 시리고 차가웠어. 그 날 너는 춥다고 징징댔고, 난 그럼 카페나 들어가지 왜 춥게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널 핀잔줬었어. 그래도 같이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나서 우린 추운 것도 잊고 둘이 손을 꼭 붙잡고 한강만 바라보고 있었어. 그 때 난 아마 좀 설렜어. 참 오랜만에도 설렜었어.
태일이 형.
시끄러.
태일이 형.
난 안 들려.
태일이 형.
"부르지 마!"
혼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주변에 사람이 없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아마 다들 날 이상하게 봤을 것이다. 갑자기 코 끝이 찡하니 아려오고 속에서 뭔가 왈칵왈칵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우린 왜 이렇게 됐어, 지호야.
형, 나는요.
노래를 끝내고 한동안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있다가 네가 입을 열었다.
항상 형 목소리가 들려요.
으응.
듣기 싫을 때도, 좀 조용해졌으면 싶을 때도 형 목소리가 들려요. 싸워서 형이 미울 때도 형 목소리가 들려요.
뭐야, 거짓말. 어떻게 내 목소리가 맨날 들리냐.
진짠데. 형은 안 그래요?
난 안 그런다, 바보야.
그러자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던 너. 나도 뭐가 그리 우스웠는지, 너를 따라 웃었다. 그 땐 들리지도 않던 네 목소리가, 네가 내 곁을 떠나고 없을 때에야 들린다. 네가 날 설레게 해주려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던 그 때와는 달리, 지금은 아무리 막으려 해도 들려오는 네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천천히 느릿느릿 걷고 있던 발을 빠르게 옮기기 시작했다. 너를 찾아서. 나는 네가 지금 어디있는지 모른다. 다만 달리고 싶을 뿐이다. 뛰다 보면 네가 나올 것 같아, 지호야. 내가 뛸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얇은 운동화를 신은 발바닥이 아파오고 숨이 가쁘다. 차가운 공기와는 정 반대로 몸에서는 열이 나오고 있다.
우린 참 멍청했어.
어떻게 말 한 마디로 모든 관계를 정리하려 했을까, 우린. 처음의 설렘따위 없이 편한 사이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변한 것도 아닌데. 난 그 때 나를 몰랐었던 것 같아. 난 너에게 질린 게 아니었나봐, 지호야. 내가 잘못 생각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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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 참 좋아하는 노랜데 오늘 정말 오랜만에 듣게 됐네요 그냥 코일이 쓰고 싶었어여...ㅁ7ㅁ8근데 똥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