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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태일] 악남 06-10 | 인스티즈


06-10


악남

w.Maje










6_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조대표의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끝."

".................."

"샤바샤바 아이 샤바. 얼마나 울었을.........."

"나가!!!!!!!!!!!"





 조대표가 버럭 내지름과 동시에 지호가 움찔하며 뒷걸음질쳤다. 그러면서도 저 웃는건 멈추지않는다.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더만 '싱겁게. 좀따 봐요.'라며 문을 닫고 나간 지호의 등을 끝까지 노려본 조대표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십분전. 갑자기 할말이 있다며 대표 사무실 문을 쾅 열어제낀 지호였다. 평소 엉뚱하고 장난도 자주치는 지호였기에, 이번엔 또 뭔가 싶어 의심의 눈초리로 지호를 슬쩍 쳐다보던 조대표는 앉으라며 눈짓을 해보였다. 

지호의 표정은 아주 심각했었다. 마치 중대 발표라도 할것마냥. 하지만 나온말이라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따위였고, 또 당했다는 생각에 조대표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걸 간신히 억제했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유난히 장난기가 다분해보이던 지호였다. 처음 제가 거리에서 캐스팅을 했을때도, 계약서 성립 자리에서도, 입사후 회의자리에서도. 영 진지한 모습의 지호는 본적이 없는거 같았다. 그런 지호의 모습을 보며 모델이란 일을 잘해낼수있을까 사흘밤낮을 카페인으로 지샌 조대표에겐, 무대위의 지호란 그야말로 복권과도 다름없었다.


장난기 듬쁙 묻어있던 눈빛은 모두 사그라들고 모두를 제압하던 그 눈빛과 짧은 트레이닝에도 불구하고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을 워킹. 그리고 런웨이. 조대표는 진심으로 신께 감사하며 기도를 올렸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런웨이만 내려오면 백팔십도 변해버리는 지호덕에 조대표는 다시 카페인을 섭취해야만했다.


조대표는 손에 들고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옆에 놓인 신문을 집어들었다. 신문 메인 한칸에 적당한 크기로 실린 사진과 기삿글이 눈에 들어왔다.


['텀블러' 모델 우지호. 디자이너 정현아 S/S 컬렉션 런웨이]


 조금 있으면 있을 기자회견에서 발표할 내용이었다. 벌써부터 몰려드는 관심에 조대표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것도 잠시. 그 기사 아래 꼬릿말 처럼 달려있는 문장에 눈이 갔다. 


[같은 소속사 모델 표지훈에 대한 진실도 규명할수있을지.]


 신문지가 거칠게 구겨졌다. 우지호.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참깨빵 위에 순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그래. 소스가 문제다."





 태일은 심각한 표정으로 제 햄버거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유권을 슬쩍 쳐다보았다. 뭐가 그리 심각한지, 빵뚜껑을 열어보질않나 양상추를 집게 손가락으로 집어보질않나. 먹을걸로 장난치지 말라며 태일이 투박하게 말을 내던지자, 유권은 이건 장난이 아니고 진실된 마음이며, 치킨버거를 시킨 넌 제 마음을 모른다 꿍시렁거렸다.


우지호의 기자회견날. 누구보다 빨리가서 자리를 맡아야 한다며 새벽부터 나와서 아침은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 점심은 햄버거로 때우고있는 태일와 유권이었다.


표지훈 파트. 남은 한명인 재정은 급하게 끝낼 기사가 있어 못오고 남은 두명만이 굳건히 의무를 실행하고있었다. 비록 한명은 열정이 넘치고 흘러 압록강을 이뤘지만, 한명은 아무 생각 없는 동상이몽 상태라해도 말이다.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체질이 아닌 태일이 꾸역꾸역 양상추 한조각까지 입에 밀어넣었다. 그런 태일의 앞에서 유권은 아직까지도 투덜거리며 햄버거 소스를 모두 덜어내고있었다.



 기자회견은 네시에 있었다. 선착순 입장이라해, 부랴부랴 신분증 제시를 하고 도착한 기자회견장 홀에는 역시 전국 매거진과, 심지어 해외 기자까지 와있었다. 기자는 물론이거와, 한쪽엔 플랜카드와 화려한 포장지로 둘러싼 선물을 들고있는 팬들도 보였다. 플랜카드에 적혀진 문구는 하나같이 우지호, 우지호, 우지호......





"선배가 소스만 안가렸어도 10번대는 받았을거같은데."

".................그게 왜 내 탓이냐."

"새벽같이 일찍와서 100번대가 뭐에요. 맨 뒤에서 찍게 생겼네."





 태일이 볼멘소리를 뱉었다. 틀린말도 아닌지라, 꿍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유권이 카메라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야 이태일."

"예?"





 심각해진 유권의 목소리에 태일은 왠지모를 '불안'의 스멜에 제발 별일 아니기를 속으로 깊게 빌었다. 카메라를 여기저기 돌려보던 유권의 손이 멈춰있었다. 뭔가 있음이 분명했다.





"후드."

"예?"

"카메라 후드 어디갔어!"





 그러고보니 렌즈를 지키고있어야할 후드가 보이질않았다. 큰일났다. 워낙 셔터가 터지는 자리이고, 그 만큼 잡광도 많이 들어와 후드는 꼭 필요한데. 카메라는 여기까지 태일이 들고왔다. 당황한 태일이 우물거리며 손가락을 입에물자, 헛웃음을 터트린 유권이 태일에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어떻게된거야. 장난해?"

"............."

".......어떡할꺼냐고!!! 이제 삼십분남았어!"





 태일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찼다.





"차,찾아올게요."

"어딨는줄알고 찾아와!"

"다,다녀오겠습니다!"





 야! 야 이태일!

유권이 참 크게도 제 이름을 크게 내지르고있었다. 정신이 하나도없었다. 이리저리 치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태일은 달리고 또 달렸다. 삼십분. 빠르게 살핀다면 가능성이있을지도 몰랐다. 렌즈에 꼭 끼어져있는 그 후드가 어떻게 어디서 빠졌는지는 저도 정말 모를일이었다. 


시간은 꼭 이럴때만 빨랐다. 시험공부를 하거나, 제 발표순서를 기다리거나, 버스를 기다리거나, 취업면접을 보는 시간이 늦게 가는 이유는, 이럴때 빨리 가려 준비하고있기때문이라고 저번에 누군가가 그랬었다. 시계는 세시 사십오분. 뭘한게 있다고 벌써 십오분이 지나가버렸다.


도로에는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혹시나해서 덤불까지 모두 뒤져보았지만 정말 없었다. 마치 기는 모양새로 거리를 훑던 태일이 마지막으로 들어간곳은, 유권과 저가 점심을 먹었던 패스트푸드점이었다. 숨차게 들어가 서둘러 이층부터 밟고 올라간 태일이 테이블 아래를 샅샅히 둘러보았다 없다........없다...........있..........!





"아 안할래!"

"왜 또 갑자기!"

"안해,안해,안해,안해,안해!!!!!!!!!!! 안한다면 안한다는거야!!!!!!!"

"진짜 왜이러니 갑자기 또! 표지훈도 짜증나 죽겠는데 너도 이럴꺼야!?!"

"왜 그 형 이름이 여기서 나와! 몰라 안해!"

"햄버거 먹고싶다해서 먹여줬잖아. 콜라도 마셨고. 바로 코앞이야. 가서 그냥 묻는거만 대답해주면 되지!"

"몰라 안가. 사장님한텐 대충 아프다고해."





 태일은 슬쩍 고개를 올려보았다. 제일 구석자리에 두사람이 큰 언쟁을 벌이고있었다. 그냥 지나치면 되었지만, 그 대화에서 나온 '표지훈'이란 단어는 저를 잡아두기에 충분했다. 태일은 그 사람들 테이블 아래 저를 고고하게 기다리고있는 후드를 보았다. 이걸 어쩐담. 그 사이 시간은 또 흐르고 흘러 오분밖에 남지않은 상황이었다. 어쩔수없었다.


몸을 일으킨 태일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갈수록 소음은 더 커졌고, 태일의 가슴은 더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앞에 섰다.





".....................뭐야."

"............."





 말이 막힘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4시 기자회견. 그 주인공이 왜 여기서.





"...........팬?"

"...................."

"미안. 싸인이나 사진은 지금 안되요. 왜냐면 저 아파요 지금."





 우지호다. 말끔하게 수트를 빼입고, 왁스로 번듯하게 세운 머리가 저를 쳐다보고있었다. 그 옆에 있는건 매니저가 분명했다. 그리고 제가 들은 대화는.............기자회견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했고.





"............지호야."

"안간다니까......."

"............네시야. 제발 부탁할께 형이. 응?"





 태일은 후드를 집어들었다. 허리를 숙였다 피자, 저를 아직도 쳐다보고있는 지호가 보였다. 어디선가 '네시!'하는 정각 알림음이 들려왔다. 


4시 기자회견의 주인공과, 취재기자. 참 얼떨떨하다. 태일의 핸드폰이 시끄럽게도 울려댔다. 유권일것이 뻔했고, 가볍게 핸드폰을 끈 태일이 입을 열었다. 





"T매거진 이태일 기자입니다."

"..........!!!!!"

"지금 홀에서 기다리고있는 기자분들이 많아요."

"............."

"가.......주셨으면하는데요."





 냉담한 기류가 흘렀다. 경쾌한 노래가 흐르는 패스트푸드점 이층 홀엔 태일과 지호, 그리고 매니저밖에 없었다. 기자라는 태일의 말에 입을 떡벌린 매니저. 그리고 표정하나 변하지않은 우지호. 그리고 이태일.


태일의 손이 조금 떨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용기낸적도 오랜만이거니와, 상대가 상대인만큼 긴장도 됬다. 잠깐의 시간이 더 흘렀다. 먼저 입을 연건 지호였다.





"가자."

"........."

"가자. 기자회견. 뭐해 안가고."





 그리고 태일을 지나쳐갔다. 마치 없는 사람인거마냥, 어깨를 툭치고 지나가는 지호의 등을 쳐다보며 태일은 눈만 껌뻑였다. 그리고 잠깐 생각한게 저는 정말 모델이랑은 운이 더럽게 없구나. 이 생각뿐이었다.










 태일도 뒤이어 서둘러 기자회견장으로 돌아갔을땐 술렁임이 바깥까지 들리고있었다. 시간은 네시 십분. 시간이 칼인 기자들에겐 십분지각도 눈엣가시였고, 먼저 도착한 디자이너의 초조함만이 조용히 자리를 겉돌고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태일이, 유권에게 가자 유권은 화를 열같이 내면서도, 그래도 아직 안와서 다행이라며 태일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어떻게 찾았어?"

"..................맥도날드에 있더라구요."

"그래? 근데 진짜 이상하네. 이게 왜 거기서......."





 제가 물을 말이었다. 가만히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내며 태일은 노트북을 꺼내들었고 유권은 카메라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셔터소리가 귀를 찢듯 들려오기 시작했다. 태일은 안경테를 바로 올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좀전 보았던 남자가 표정하나 없는 얼굴로 테이블로 나오고있었다. 네시 십오분. 제가 말하자마자 바로 온것이 분명했다. 디자이너는 안도의 표정을 숨김없이 내보였고, 유권을 포함한 기자들은 그런 디자이너와 지호에게 무자비한 셔터빛을 날리고있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 디자이너가 앵앵거리는 소리로 인사를 시작했고, 지호 역시 별 감정없는 목소리로 제 소개를 했다.





"이번 정현아 디자이너님  S/S 콜렉션 팀에서 활동하게 된 우지호입니다."





 태일은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을 타이핑했다. 곧이어, 디자이너는 무슨 컨셉이고 어디서 할것이며 어떤 인상을 남겨주고싶단 말을 숨도 쉬지않고 말을 했고 바빠진건 태일이었다. 게임 실력으로 단련한 800타 실력없이 발휘하던 태일이 잠깐 숨을 돌릴때였다. 





"파이널 런웨이로 나가게 됬............"





 이상하게 눈이 마주친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저를 언제부터 쳐다보고있었던건지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다시 봤을때도 눈이 마주쳐버렸다.





"..........이상입니다."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마냥 들리는 셔터소리와 번개같은 셔터빛 사이로 계속 눈이 마주치고있었다. 우지호와.





"그럼 우지호씨. 마지막으로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태일이 다시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다.





"같은 소속사이신 표지훈 모델일은 어떻게 된건지 혹시 설명해주실수있으신가요?"

"표지훈 모델은 지금 어디있습니까?"





 역시나 나올줄 알았다. 지호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있었다. 그것마저 의외라는듯 기자들은 더 열심히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몰라요."

"정말 모르십니까?"

"어디서 뭘 하고 뭘 먹고 어떻게 자는지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도 한솥밥 식구.........."

"아. 근데 이건 알아요."





 지호가 손으로 총 형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제 머리에 갖다댔다. 느닷없는 제스쳐에 당황한 기자들은 더 미친듯 달려들고있었다.





"이거 말하면 저 지훈이 형한테 이렇게 죽을지도 몰라요."

"뭐라도 좋습니다. 표지훈씨에 대한.........."

"지훈이형 잘때 손가락 빨고 자요."

".............!!!!!!!!!!?!??!"

"그게 자기 손가락이던 남 손가락이던."





 그리고 제 입으로 탕-하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히죽. 태일은 뻣뻣하게 굳었다. 오늘 아침 제 손가락을 입에 물고있던 남자가 생각났다. 열심히 타이핑을 하던 손이 멈췄고, 셔터소리는 더, 더, 더 커지고있었다. 지호는 그때까지 저를 쳐다보고있었다. 








7_


 기자회견을 마치고 벤에 들어갈때까지 지호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팬들이 건내는 선물을 받아들며 '빵빵'하며 총을 쏘는듯한 행동을 계속하는 지호를 가만 바라보던 매니저는 돌아버릴지경이었다. 그래. 조용히 지나갔다했어.


벤에 올라탄 지호가 '아 피곤해.'라며 얼굴을 제 손으로 덮었고, 매니저는 침착히 입을 열었다.





"............우지호."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우지호."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우지호!!!!!!!!!"





 지호가 그제서야 얼굴에서 손을 뗀채로 매니저를 쳐다보았다. 잔뜩 열이 났는지, 지호는 매니저의 코와 귀에서 나오는 열기를 볼수있었다. 한마리 성난 야생돼지같다 생각하며 지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너 정신이 나간놈이야?! 그런 진지한 자리에서! 기자회견중에 그런 말을!!!"

"사실인데 뭐. 표지훈에 대해 알려달라한건 기자들이야. 그래서 알려줬고."

".........우지호!!!!!"

"샤바 샤바 아이샤바. 얼마나 울었을까.........."





 지호가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프도록 쟁쟁히 울리던 셔터소리가 아직도 귀 주변에서 깔짝거리고있었다. 이래서 전 기자회견이고 뭐고 공식적인 자리가 싫었다. 런웨이때는 그나마 나았다. 일이분정도만 걷다가 들어가면 그만이니까. 가만히 흥얼거리며 손가락을 깔딱거리는 지호를 바라보며 매니저는 울분을 참아냈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근데 형."

"뭐 또. 지금쯤 기사 떳을거야. 각오 단단히하고 사장님 뵈라."

"아까.......그 햄버거 어디 누구라했더라."

"햄버거?"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했다.





"햄버거면 맥도날드. 너가 먹은건 치킨버거."

"아니아니. 햄버거 말이야 햄버거."

"그래 햄버거!!!!!!!!"

"아씨 그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한 햄버거!!!!!!!!!"





 뭐? 햄버거가 이래라 저래라? 가끔 지나치게 사차원적인 지호의 말은 이해가 안될때가있었다. 매니저는 벤을 계속 운전하며 지호의 말을 곱씹었다. 햄버거, 햄버거, 햄버거..........이래라 저래라한..............햄버거!?!





"그 기자?"

"응!!!!"





 맙소사. 매니저는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사람더러 햄버거라니. 그 기자가 약간 똥글똥글한 머리모양새였어도, 햄버거 까지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매니저는 현기증을 간신히 억누르며 기억을 더듬었다.





".......T매거진.........이태일이라 했던가."

"오케이!"





 지호가 팬들의 선물을 산만하게 열어보기 시작했다. '초콜렛이다! 여드름나라고 줬나보다!','양말이네. 내 양말 빵꾸 안났는데.' 이런저런 말을 요란스럽게도 재잘거리는 지호를 태운 벤은, 지금 대표실에서 얼음을 씹어먹으며 재떨이를 갈고있는 조대표가 있는 소속사로 열심히 달려가고있었다.










"너 바른대로 말해.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안때릴 마음은 있어."

"아 진짜 아니라니까요. 제가 그걸 어떻게!!!!!!!"

"그럼 그걸 우지호 새끼.......우지호가 어떻게 아냐고!!!"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태일은 정말 억울했다. 때는 삼십분전으로 흘러간다. 고단한 기자회견 취재를 끝낸 태일과 유권은 서로 하이파이브를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각각 헤어졌고, 태일은 집에 오는 내내 오늘 있었던 기자회견일을 곱씹었다. 우지호. 태일은 집까지 돌아오는 동안 몇번이고 생각했다. 지호와 눈이 마주침이 저만의 착각인지 아닌지. 하지만 몇번을 생각해봐도 착각은 아니었다. 지호는 분명 저를 쳐다보고있었고, 눈이 몇번 마주침이 그 증거였다.


지호가 '지훈이 형 손가락 빨아요.' 발언을 했을때 태일은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같은 소속사이고, 같은 모델이니 그정도 잠버릇까지 아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머리에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저를 끝까지 쳐다보던 그 눈. 그 눈만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날씨가 추웠다. 분명 오늘부터 날이 풀린다 활짝 웃던 기상캐스터의 얼굴에 토마토를 던지고싶어졌다. 옥탑방에 가까워진 태일의 발소리가 골목에 공허히 울려퍼졌다. 빨리 들어가서 쉬고싶었다.


그러나 문을 염과 동시에 '야!!!!!!!!!'라 냅다 내질러오는 지훈의 고함에 태일은 잔뜩 놀라고말았다. '심장 떨어질뻔했잖아요!'라 저도 내질렀다. 그러자 성큼성큼 다가와 제 손목을 잡은 지훈은 저를 그대로 질질 끌어 티비 앞까지 끌고갔었다. 신발도 제대로 안벗었는데! 간신히 신발을 벗어, 현관에 던진 태일이 티비 앞까지 저를 끌고온 지훈을 올려다보았다. 순간적으로 세게 잡힌 손목이 아려왔다. 집에 오자마자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너. 우지호랑 알아? 아냐고!'

'그건 또 무슨 헛소....................'






여기까지가 지금까지의 일이다. 그러니까 지훈은, 저는 우지호와 같이 잔적도, 하물며 벤도 같이 탄적이 없으므로 우지호가 제 잠버릇을 알리는 만무하다고. 제 잠버릇을 아는건 기껏해야 너뿐이고, 그것도 오늘안것인데, 왜 제 잠버릇에 대한 기사가 오늘 떳는지 의심스럽다 이것이었다.


태일은 빨갛게 변한 손목을 매만지며 입을열었다.





"어쩌다 봤나보죠! 손목 아프잖아요!"

"어쩌다? 어쩌다일리가 없어! 그래 씨발, 기자는 믿을게 못돼!"

"뭐에요? 표지훈씨!"





 머리를 잔뜩 쥐어뜯던 지훈이 태일을 돌아보았다. 태일은 조금 열이 볻받쳐오르기 시작했다.. 대뜸 들어오자마자, 고함을 내맞지않나, 손목을 잡히질않나, 괜한 의심을 받지않나.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게다가 전혀 저를 믿지않고있는 지훈의 표정이라니!





"저 진짜 아니에요. 저 우지호씨 오늘 처음 봤어요. 못믿겠으면 전화해보시던가요!"

"근데 걔가 그걸 알리가 없다니까?!"

"그건 저도 모르죠! 그리고 제가 진작에 표지훈씨 배신할꺼면 여기있다고 기사썼지! 뭣하러 안쓰고 있겠어요!"





 지훈의 입이 다물어졌다. 태일의 말이 맞았다. 지훈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분명 아까전까지만해도 제가 앞서고있었는데(제 생각엔) 완전 뒤바껴버렸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지훈이 태일을 내려다보았다. 둥글둥글한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까맣고 굵은 뿔테안경안의 눈이 저를 매섭게도 쳐다보고있었다.





"제 말 틀렸어요? 왜 멀쩡한 사람을 의심하시고 그래요!"

"아 몰라 짜증나니까 나와."

"사과하세요!"

"나와 나와. 나 잘거야."





 지훈은 조금 창피해져왔다.그리고 분명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사과엔 전혀 익숙하지않은 지훈이었고, 그런 지훈을 모르는 태일은 더 열이 받아버릴뿐이었다. 잔뜩 화가 난 태일은 쾅하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로 들어갔고, 머쓱해진 지훈만이 자리를 지켰다. 소파에 몸을 꾸겨넣고 티비를 킨 지훈이 채널을 돌렸다. 그러면서 생각난것이 오늘 저를 멘탈붕괴에 빠트린 기사들이었다.


[우지호가 밝히는 표지훈의 비밀.]

[우지호. '표지훈 잠버릇 참 남달라.]

[표지훈 겉은 남자 속은 천상아기.]


 천상아기라니. 천상아기라니! 그 기사를 보며 지훈은 마우스를 으스러지듯 쥐었더랬다. 도대체 소속사는 이런 기사는 막지않고 뭐하고있는건지 심각하게 궁금해져왔다. 그러면서 이를 으드득 정말 많이도 갈았다. 우지호. 제가 없다고 여기저기 제 얘기를 하고 다니는 꼴하니 정말 조지고싶어 미칠것같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알았담? 지훈은 얼굴에 팔을 얹었다. 갑자기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단게 엄청도 고파졌다.


잠시후. 태일이 세수를 했는지 잔뜩 젖은 앞머리를 가지고 제 앞으로 나타났다. 잔뜩 젖기도 하거니와 잔뜩 열도 받아버린것같았다. 지훈에게 한마디 건내지 않고 태일은 이불안으로 쏙 들어갔다.


 조용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않았다. 탑 모델은 제 키보다 작은 소파에 누워있고 기자는 바닥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씩씩거리고있었다. 기자는 이불속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저 망할 모델을 제보할지 안할지. 맘같아서는 스포츠 신문까지 싹다 제보를 하고 타임즈에까지 제보하고싶었다. 뭐 저런 모델이 다있나 싶었다. 하지만 착한 제가 참자며 스스로를 합리화한 태일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시계바늘 초침소리만 울려왔다.




 그렇게 태일은 잠이 들었다. 하지만 지훈은 아니었다. 태일의 씩씩거림이 사그라들고 조용한걸로 보아, 잠이 든게 분명하다 생각한 지훈은 슬쩍 몸을 세워앉았다. 그러곤 태일을 흘끔쳐다 보았다. 이불이 오르락내리락, 태일이 숨을 쉬고있음을 보여주고있었다. 저렇게 자다가 언제 숨막혀 죽는게 아닌지 지훈은 잠시 심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훈은 단게 고팠다.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윙윙거리며 저려왔다.





"..................야."





  새근새근. 숨소리가 컸다. 가만히 태일이 들어간 이불을 쳐다보던 지훈이 제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짜다.





"............................아 씨발."





 제가 생각했던 그 맛이 아니다. 이제야 알게된 제 이상한 잠버릇에 회의를 느끼는 지훈이었다. 그 달던. 꿈에서였지만 달고 달았던 그게 자꾸 생각나 미쳐버릴지경이었다. 











 짧은 잠은 달콤하고 긴 잠은 피곤하다했다. 요 몇칠간 달콤한 잠만 자던 태일이 꽤 피곤한 잠을 자고 일어났을땐 열한시가 조금 넘은시간이었다. 쉬는날. 그 한단어 덕에 태일은 알람도 꺼놓고 숙면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허리가 아파져, 눈을 비비고 일어났을때, 시간도 시간 나름 놀랐지만 제 앞 소파에서 자고있는 남자의 모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다.


일인용 소파. 그 좁은 소파에 개마냥 몸을 말고 자고있는 모습이, 어제 싸우던 모습과는 백팔십도 다른지라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정말 개같았다. 큰 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커다란 털복숭이 개같았다. 순간 쓰다듬고싶다는 마음이 들은 태일이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 소리 덕인지 지훈이 몸을 움찔했고, 순간 숨을 멈춘 태일이 조심히 지훈의 위에 이불을 올려주었다. 지훈은 이불안으로 파고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태일은 저도 모르게 엄마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제 뺨을 찰싹. 


왜이러냐. 어제 너랑 대판 싸운 남자다.


 사실 지훈의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였다. 탑 모델인데 지금 한참 사망설에 쫓겨 잠적하고있는데, 이상한 잠버릇까지 떠버리면 얼마나 이미지에 타격이겠는가. 그래도 저에게 화풀이를 한다거나 의심을 하는건 도무지 참을수 없다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며 태일은 냉장고를 열었다. 베이컨과 계란을 꺼내, 베이컨은 굽고 계란은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먹는 집 아침이었다. 다 먹고 설거지통에 접시를 넣으려는때 지훈이 '우웅-'하며 꿈틀거렸다. 이제 일어나나보다. 지훈이 눈을 떴다. 잔뜩 내리앉은 머리가 눈을 살짝 가리고있었다.


태일은 퉁명스럽게 미운척 말을 꺼냈다.





"아침 먹어요."

"어........나....으음.....어......"

"졸려요? 더 주무세요."

"아니 아니..........."





 지훈이 기지개를 펴며 몸을 일으켰다. 언제봐도 참 크구나. 태일은 고개를 내저으며 지훈의 베이컨과 스크램블을 담아냈다. 곧 세수를 하고 나온 지훈이 식탁에 앉아 눈을 비볐다. 아직도 졸리구나.





"졸리면서."

"안졸려."

"왜 쓸때없는데 고집을 부리세요. 자 베이컨."

"베이컨......"





 무식하게 입에 쳐 넣는다. 





"................야."

"다 먹고 얘기해요."

"어제 말인데."

"...................예?"

"미안해."





 그러곤 물을 거하게 벌컥벌컥 마신다. 그리고 쾅.





"................뭘봐."

".....................아 예."

"..........아씨."





 태일이 슬쩍 웃었다. 지훈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부끄러운게 분명했다.








8_


 T매거진 사무실. 사람들은 각자 맡은 일의 흐름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고있었고, 윙윙 돌아가는 복사기 소리 역시 사람만큼 바쁘기는 당연지사였다. 그 바쁜 공기 흐름 가운데서 태일은 입에 펜을 문채 까딱거리며 입장난을 치고있었다.


그 옆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사 몇건을 정리하던 유권은 맹하니 멍만 때리고있는 태일을 바라보다, 펜으로 꾹 태일의 옆구리를 찔러넣었다. 반응이 없었다. 계속 펜을 까딱거리고있는 모양이 갑자기 너무 얄미워진 유권은 다시 한번 세게 펜을 찔러넣었다. 그제서야 '아 뭐해요!'라며 반응을 해오는 태일이었다.





"뭐하냐. 일없어?"

"......찌르지마요."

"지금 한참 어제 우지호 일도있고, 뭐도있고해서 다들 바쁜데 뭐하는거야. 할거없으면 커피나 타와."

"................예."





 태일은 몸을 일으켰다. 사실 저는 지금 정말 할게 없었다. 어제 취재한 것도 다 정리해놨고, 유권이 찍은 사진도 오자마자 모두 정리를 해둔 상태였다. 가볍게 기지개를 피고, 태일은 휴게실로 향했다. 


이제야 스물스물 찾아오는 봄덕에, 늘 시리기만했던 복도는 훈훈한 기운이 한가득이었다. 두꺼운 점퍼를 벗어도되겠다는 생각에 태일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점퍼를 벗으면 가디건이나 저지를 준비해둬야겠다는 생각. 얼마전,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 매장에서 눈요기로 봐둔 저지를 살수도있겠다는 생각에 괜히 즐거워져왔다. 목표는 커피. 커피를 타러가는 길이었지만, 그 시시한 목표만큼이나 가는 길은 시시하지않았다.


복도를 건너 휴게실에 당도한 태일은 문을 벌컥 열고 커피자판기 앞에섰다. 주머니를 뒤적여, 동전을 꺼내들었다. 유권과 저, 그리고 같은 팀원인 재정의 커피값까지 계산할 생각으로 하나하나 동전을 세고있을 찰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재잘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여자 직원들인가 싶어 태일은 재빨리 머리를 한번 정리했다.





"완전 웃기지도않다니까. 그치? 어머! 태일씨!"

"이야 진짜 오랜만이다! 그동안 안보이더니 어디 지방 취재라도 갔다온거야?"





 요즘 대세라는 분홍 립스틱을 진하게도 바른 여자가 지나치게 반가운 내색을 보이며 태일의 손을 잡았다. 준비는 하고있었지만, 이런 방면으로는 영 쑥맥인 태일이었다. '예, 예.' 연신 고개를 내숙이며 인사를 받은 태일이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아니야. 태일씨 그.....뭐냐 표지훈 파트라며?"

"예? 예. 이번에 유권선배랑........."

"그래. 태일씨랑 김유권이랑 한재정. 이렇게 세명 맞지?"

"예."





 잔뜩 너스레를 떨어가며 태일에게 말을 붙여오는건, 바로 옆 팀의 팀원이었는데, 입사 초에 한참 유권과 썸이 있다던 여기자였다. 하지만 그것도 몇주 안되어 사그라드는 소문이었고, 유권과는 그냥 친한친구라는 말만들을수있었다. 여자의 분홍 입술이 쉴새없이 태일의 앞에서 움직이고있었다.





"어제 우지호 기자회견 갔다왔다며?"

"예."

"김유권 그거랑 같이가서 애나 먹지않았으면 성공한거지."





 태일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태일의 앞머리를 살짝 내누르며 여자가 웃었다.





"고생 했나봐?"

"안했다하면 거짓말같잖아요."

"솔직해서 좋다니까. 그래, 표지훈에 대한건 뭐 알아낸거있고?"





 여자가 짤랑이는 동전 몇개를 꺼내 자판기에 넣어, 밀크커피를 눌렀다. 탁-하며 컵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기계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요."

"뭐 어제 우지호가 폭탄발언 했다면서. 손가락 어쩌고."

"...............예."

"우지호가 또라이라는게 틀린말이 아닌가봐."





 또라이? 그래 또라이. 솔직히 막말로 조금 또라이 같긴했었다. 갑자기 제 머리를 겨누더만, 입에서 나온 말과 행동은 전 기자들을 모두 경악시켰으니까. 태일은 순간 열을 내는 지훈이 생각났다. 잠버릇이 온 세상 천하에 알려진 탑 모델. 헛웃음이 나오려는걸 간신히 참아낸 태일이, 자판기에서 여자의 커피를 꺼내주었다.


흡족한 표정으로 태일의 손에서 커피를 받아낸 여자가 싱긋 웃었다. 유권과 썸씽이 있었던만큼 예쁜 여자였다. 태일이 맞웃음을 지어주고 다시 동전을 깨작거렸다. 그리고 순간 제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놀란 태일이 움찔하며 고개를 들자 여자의 얼굴이 바로 앞에서 보였다.





"..........저,저,저...."

"마지막으로.........이거 비밀인데 말이야 태일씨."

"예?"





 여자가 태일의 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아주 작게 소근소근.





"이거.........태일씨가 너무 김유권때문에 고생하는건 아닌가 싶어서 알려주는거야."

".............."

"한참 여기자들 사이에서만 돌던 소문인야. 아직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뭐지? 태일의 얼굴 한가득 궁금함이 돌기 시작했다.





"우지호랑 표지훈."

"................."

"그 둘사이에 뭔가 있다고 하더라고."

".....................예?"





 여자의 얼굴이 멀어졌다. 태일이 멍하니 얼이 빠진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모델세계에선 흔하잖아. 게이고 이반이고 그런거."

"...................."

"그리고 표지훈 작년에 한참 섹스 스캔들 떳을때. 그것도 남자라는 소문이 항간에........."





 순간 구석에서, 여자의 동료가 여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는 다시 한번 생긋 웃어보이더니만 '그럼 나중에봐.'라며 제 동료에게로 슝 달려가버렸다.


태일은 아직도 얼이빠져있었다. 게이? 그럴리가없다. 제가 본 지훈에겐 전혀 그런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그냥 루머겠지. 태일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태일은 동전 여섯개를 기계 안으로 집어넣었다. 쩔컥쩔컥하며 기계는 동전을 맛잇게도 삼키고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커피 세잔을 받아낸 태일이 쟁반에 커피컵들을 올려놓고 조심히 휴게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모두 열리기도 전에 중간에서 턱 막혀버린 문덕에 태일은 커피를 쏟을뻔했다. 누군가가 문을 막고있었다. 





"저기요, 잠시만.........."

"...................."

"저기요, 저 지금 커피때문에 그런데 비켜주시면........."





 별안간 문이 한순간에 열렸다. 그 반동으로 쟁반을 손에 놓친 태일이 허우적거리며 어떻게든, 쟁반을 잡아보려 애를썻다. 그러나, 그것도 그저 '애'일 뿐이었다. 촤악-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 엎어져버린 커피잔. 뒤에선' 어머 어떡해.','유권이 닮아서 저런가.' 따위의 제 이야기가 나오고있었다. 누군지 얼굴이나 보고싶어졌다.  태일은 눈에 잔쯕 힘을 주고는 문을 열었다. 구두가 보였다. 그리고 쫙 뻗은 프라다 면바지가 보였다. 그리고 하얀 셔츠, 보타이.





"안녕 햄버거!"

".................?!"

"여기가 휴게실이야? 개미집처럼 생겼다."

".............아,안녕하세........"

"안녕해요. 가자."

"..........예?!"

"네가 커피 쏟아서 머리카락에 튄거 같어. 머리카락 값은 물어내야지."





 뒤에서 여자들이 호들갑을 떨고있었다. 정말로는 처음보는데 죽인다는둥, 생각보다 잘 뻗었다는둥 난리도 저런 난리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일을 향해 히죽 웃어보인 지호는 그대로 태일의 손목을 잡곤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우지호. 그가 왜 여기있는지 태일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흑백의 조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심플하지만서도, 강조할건 다 강조하기 때문이다. 까만 면바지에 하얀셔츠, 까만 보타이를 찬 지호는 얼핏보면 영화에서 금방 튀어나온듯 회사 건물과는 전혀 어울리지않았다. 태일은 저보다 10센티는넘게 큰 지호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태일은 몇번이고 '저기요.'.'왜이러세요.' 등의 잡다한 말을 던졌지만 흥얼거리는 지호의 귀에는 들리지않는듯 싶었다.


지호가 멈춰섰다. 비상구 게단이었다. 





"잔챙이들 없다. 이제 진짜 숨었네."





 그러곤 태일의 손목을 잡은 제 손을 놓는다. 그제야 숨을 돌린 태일이 지호를 보았다. 왁스로 세운 머리카락을 몇번 매만지던 지호가 태일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고, 그에 놀란 태일이 움찔하며 고개를 푹 내숙이자 지호는 킥킥 웃기 시작했다.





"무서워 내가?"

"아,아뇨.......근데 그나저나 왜........"

"나랑 놀자."





 뭐? 숙여진 태일의 고개가 바로 올라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히죽거리는 페이스는 여전했다. 





"그게 무슨......."

"내가 놀자면 놀아야돼. 안그러면........."





 빵. 태일을 향해 총을 쏘는듯한 제스쳐를 보이고는 다시 씩웃는다. 어이가 없어진 태일은 정신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내 눈에는 미운사람만 보여."

".........."

"그래서 그때 너만 보이는거야. 햄버거 너만."





 그래. 그날의 눈마주침은 태일 저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눈이 마주침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였다.





'그런데 햄버거. 세상엔 미운 사람이 많으면 안돼."

"................"

"난 이미 한 손에 꼽을만큼 미운 사람이 많아. 궁금해? 그래 그럼. 오위는 우리 매니저. 말이 많고 시끄러워. 사위는 디자이너들. 뭘 할때마다 불러대. 시끄러워. 삼위는 코디들. 이거 입혔다 저거입혔다 정신도 없고 시끄러워. 이위는 우리 사장님. 시끄러워. 그리고 일위는."

"................"

"표지훈. 그냥 싫어."





 하. 그래서 저더러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다 싶었다.





"........저 그만 들어가볼게요. 놀 사람은 다른데서 찾으시는게...."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다. 이 말알아?"

".............."

"난 표지훈에 대해 잘알아. 죽었냐고? 안뒤졌어. 잘 살아있어."





 그건 저도 안다. 하지만 태일의 몸을 뻣뻣히 굳었고, 지호가 제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할때까지 움직일수 없었다.





"그리고 그 표지훈이 어디있는지도 알고."

".................."

"너 표지훈 파트라며. 내가 피드백해줄게."





 필요 없다 말하려했다.





"힘들거 없잖아. 그냥 놀아만 주면돼."

"전 필요 없..........."

"오케이."





 별순간 태일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지호를 눈치를 보며 핸드폰을 꺼내 발신인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 그리고 지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보였다.





"네 옆자리에 앉은 사람, 별거 다 잘 알려주더라."

".............."

"나중에 봐. 전화 안받으면......."

".............."





 히죽.





"기자회견이고 런웨이고 다 안나가버릴꺼야."

"............저기요!!!!"





 그러거나 말거나 지호는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잡으려 갈새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마냥 사라진 빈자리를 지키고 서있던 태일은 지호의 번호가 찍힌 핸드폰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어이없는 이 상황에 할말이 없어졌다.


정말 모델과 저는 무슨 살이라도 있는가 싶었다.








9_


 지훈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제가 보고있던 노트북을 신경질적으로 닫았다. 쾅!하는 소리와 작은 옥탑방이 울렸지만, 상관없었다. 방금 제가 본것에 대한 분노로 이건 약과였다. 태일이 출근하고 나면 지훈은 곧장 혼자였다. 매일 아침 허둥지둥하며 나가는 태일의 뒤를 쳐다보다, 꾸물꾸물 일어나 제가 제일 좋아하는 베이컨을 굽고, 굽다가 튀긴 기름에 혼자 성질도 내고, 태일이 해놓고 나간 하얀 쌀밥에 베이컨을 올려 먹으며 티비를 바라보고. 아침은 늘 이랬다. 그러다 점심때쯤되면, 제가 누운 소파 앞 탁자에 놓인 노트북을 집어들어, 인기검색어를 점검했다. 


'표지훈 사망설'이라던지 '표지훈'이라던지는 이미 내려간지 오래였다. 아직 주간 검색어 일위긴하지만, 일일 검색어 차트는 그나마 많이 내려간 편이었다. 대신 일일 검색어 상위를 매꾸고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게 참 거슬리는거다.


'우지호 극찬.'이라던지 '우지호 전망.'이라던지. 최근 우지호의 S/S 컬렉션 런웨이가 끝난게 시발점이었다. 파이널로 워킹을 하는 우지호를 보며 디자이너는 울었다나 뭐라나, 어찌됬던간에 제대로 한방 먹인것은 분명했다.


그와 동시에 국내 모델 검색순위는 판이 뒤집혔다. 몇달동안 부동의 1위였던 표지훈이 2위로 내려가고, 1위로 성큼 올라간 지호의 이름을 보며 지훈은 분노를 참아낼수가 없었다. 우지호가 저를 이긴다? 하 참나 말이 되질않았다.


지훈의 분노는 태일이 퇴근할때까지 이어졌다. 이 상황을 전혀 모르는 태일은, 퇴근길 즐거운 발걸음을하며 옥탑방 문을 열었더랬다. 그리고 제 금붕어 어항을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고있는 지훈을 보자마자 태일은 굳고 말았다.





"..........뭐하세요."

".............왔냐."

"내려놔요. 그거 위험해요."

"........싫어."

"좋은말 할때 내려놔요. 다른건 다 참아도 그건 못참아요."





 단호한 태일의 말에 지훈은 쩝하며 어항을 내려놓았다. 금붕어가 요란스레 어항 안을 헤엄치고있었다. 태일은 서둘러 가방을 내려놓았다.





"뭐에요. 무슨일있어요?"

".....................전혀."

"그런데 표정이 왜그래요? 





 지훈은 죽어도 말할수없었다. 입을 앙문 지훈을 가만 쳐다보던 태일은 한숨을 폭 내쉬고는 금붕어 밥을 집어들었다.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표지훈씨는."

"................."

"그렇지 않냐 붕아? 손가락 빠는 버릇치고는 사람이 참 답답하고 까칠해."

"너 죽을래!!!!"

"금붕어한테 한말인데 왜그래요! 봤지? 성질이 참 더러워요."

"너 이 음동설한에 나가고싶어서 환장했냐?!"

"무식하기까지한다. 음동설한이란다 음동설한. 엄동설한이거든요!"





 지훈이 벌떡 일어섰다. 어느새 금붕어 밥을 다 주고는, 헐렁하니 목늘어난 티에 편한 바지로 갈아입은 태일이 보였다. 안그래도 기분이 저기압인데, 앉아서 제대로 저를 엿먹이고있는 걸 보자니 더이상 참을수 없어진 지훈은 '금붕어 새끼랑 둘이 나가서 살아!' 라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시끄럽게도 울리기 시작하는 벨소리에 잠시 기다리기로했다. 아. 지훈 저는 제가 생각하기에 배려심이 너무 많은것같았다.





"여보세요?"





 맹랑한 태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예? 예. 이태일입니다."





 별안간 태일의 표정이 굳어짐과 동시에 지훈은 살짝 갸우뚱했다. 누구 전환데 저러는건지.





"내일요? 내일 저 회사..........아 오신다구요? 저 내일 바쁜데............."





 왜 갑자기 제 눈치는 보는건지.





"...........그럼 내일 점심시간에 뵈요. 예.예 알겠습니다."





 지훈은 갑자기 불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통화를 끝낸 태일이 핸드폰을 다시 제 가방에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저를 향해 농을 던지던 태일이 갑자기 비맞은 똥개마냥 변해버렸다. 무슨일이냐 물어보려했다. 그러나, 갑자기 제 손가락을 입에 무는 태일을 보자마자 지훈은 돌하르방마냥 굳고말았다.


손가락. 잊고있었던 그게 생각나버렸다. 제가 달다 생각하고  물어버렸던 그 손가락.





".........표지훈씨?"

"............."

"................저기 표지훈..........."

"나 잘꺼야!"





 당황스러웠다. 지훈은 갑자기 뻗쳐온 열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왜그래요 또 갑자기........"

"자,잘꺼라고!"

"어디 아파요?"





 안아파! 하나도! 지훈은 이불에 얼굴을 뭍었다. 그리고 제 쿵덕거리는 심장도 뭍었다. 갑자기 왜이러는지 당황해도 제대로 당황해버렸다. 그건 태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말붙이기에 실패한 태일이 꿍시렁거리며 제 이불안으로 들어가고, 깜깜해진 옥탑방 안에서 고요함이 맴돌동안 지훈도 제 심장뜀을 가라앉히려 애쓰고 또 애썼다. 하지만 계속 쿵쿵 거리는거 하며, 지끈거리는 허리 덕분에 미칠지경이었다.


그날 밤 지훈은 밤새 잠을 이루지못했다. 좁은 일인용소파에서 뒤척거리길 몇번. 벽에걸린 야광시계를 흘끔 쳐다보니 시곗바늘은 두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젠장이다. 도대체 왜 제가 잠을 못자는지 지훈은 머리가 아려오기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콜콜하며 잘도 자고있는 태일이 보였다. 둥그러니 동글동글한 머리스타일하며 눈이 아플정도로 두꺼운 안경. 순간 지훈은 태일을 처음 봤을때가 떠올랐다. 제게 흙탕물을 흩뿌리곤 입을 다물지 못하던. 고물이 되어버린 카메라를 끌어안고 망연자실하던 그 모습들이 갑자기 주마등 처럼 휙 지나가는데, 왜인지는 몰라도 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떴다. 그걸 깨달은 지훈이 휘휘하며 고개를 저어봐도,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기분좋게 집을 나선 태일의 얼굴이 십분만에 한 문자를 받고는 급속도로 굳었다. 부랴부랴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일은 터져있었다. 갑자기 제게 달려와 손을 잡고는 '도대체 어떻게 저런 아군을 꼬셨니.'라 묻는 유권의 얼굴을 그대로 한대 날릴뻔했다. 꼬셔? 꼬시다니? 의문은 금방 풀렸다. 터덜터덜 걸어간 제 자리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노란 저 뿔같은 머리.





"샤바 샤바 아이 샤바, 얼마나 울었을...........왔네!"





 저 지치지않는 신데렐라 타령. 우지호다. 어제 지훈과 이런저런 일로 투닥거리고있을때,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는 지호였다. 받자마자 만나자는 말에 태일의 얼은 반쯤 빠져있었다. 바쁘다는 태일의 말에도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결국, 그나마 여유시간이 많은 점심때 만나기로했거늘. 지금 시각은 9시임인데도 불구하고 저 남자가 도대체 왜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지 태일은 이해가 가질않았다.





".......뭐에요."

"아 나 트레이닝 다 뺐어."

"............예?"

"괜찮아. 컬렉션도 끝났고, 오늘 스케줄은 없으니까."

"그래도 트레이닝은........"





 시끄러워. 나 시끄러운거 싫어하는거 알잖아. 여기까지 덧붙인 지호는 손을 까딱이며 태일의 사무책상을 여기저기 열어보기 시작했다. 





"점심때 만나기로 했잖아요."

"아침때 점심먹고싶으면 그게 점심이지. 점심때 저녁먹고싶으면 그게 저녁이고."

"...............우지호씨."

"난 브런치 좋아해."





 그러곤 호치케스를 꺼내들어 까딱까딱 장난을 친다. 여기저기 튀기는 철심을 지켜보던 태일이 가방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지호의 옷깃을 내잡았다.





"그만하고 나와요."

"어어. 나가서 놀자."





 애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엄청 철이 없는 아이. 지훈보다 더하면더했지 이정도는 아니었다. 


태일이 지호의 옷깃을 잡아들고 도착한곳은 그때 그 비상구 계단이었다. 지호는 멈춰선 태일 앞에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태일은 단호히 말하려했다. 난 당신과 놀 생각이 없으며, 이런 애같은 짓은 말고 회사로 돌아가라고. 허나 입이 떨어지기도전에 제 얼굴을 잡아드는 지호였다.

저보다 키가 10cm는 넘게 큰 지호였다. 허리를 숙여, 제 얼굴을 두손으로 잡고는 눈을 마주친다. 그러곤 씩 웃더만 질문을 내던진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오락은 자위이며 섹스래."

"........!!!"

"거기다가, 키스는 섹스의 축소판이래. 그럼 혀에도 콘돔을 씌여야할까?"

"..................예?"





 갑작스러운 음담패설이었다. 태일은 당황도 잔뜩 당황해버렸다.





"정말 완전하게 안전한 섹스를 하려면 콘돔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쓰고 섹스를 해야될지몰라. 안그래?

"우지호......."

"그래 그래. 그럼 그 얘긴 여기 까지하고."





 순간이었다. 춥-하는 소리와 함께 제 입술에 닿았다 떨어진것은. 그리고 그제서야 제 얼굴을 놓고 히죽 웃어뵈이는 우지호였다. 태일은 단단히 굳었다. 감히 뭐라 말을 꺼낼수도 없었고 행동조차도 할수없었다.





"가장 안전한."

"................."

"섹스를 한거야 우린."





 태일은 어떤말도 할수없었다. 그 어떤 행동도 할수없었다. 감히 어떤 표정도 짓지못했다. 제 앞에서 섹스를 거론하며 히죽거리는 얼굴이 흐릿해져왔다. 정신이 차려지질않았다.





"여기까지 놀았으니까 표지훈 비밀 넘버원!"

"................하. 저기요."

"표지훈은 멍청이다!"





 그렇게 태일은 흐려지는 앞을 바로잡지못하고 중심을 잃었다. 놀란 지호의 표정이 눈앞에 잠깐 스치고, 풀썩 쓰러져버렸다. 충격 탓이었다.










"배고프다고 쓰러지는 놈이 어딨어!!!!!!!!"

"그런거 아니래도!"

"우지호씨가 곁에있어서 망정이지, 너 아무도 발견못했으면 그대로 아사야 아사!"

"무슨 아사에요!"

"근데 이게 지금 선배한테..........."





 태일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때 보인건 유권의 턱살이었다. 회사 내 양호실. 가습기에서 폴폴 나오는 연기가 태일의 얼굴위로 떠다니고있었다. 태일이 정신을 차리자 호들갑을 떨며 물을 건낸 유권이 지호에게 감사하라했을때 태일은 물을 뿜고 말았다. 누,누가 누구한테 감사를 해!!


그게 무슨말이냐 묻자, 대답이란 참 가관이었다. 갑자기 우지호가 창백한 얼굴로 저를 업고 와서는 갑자기 쓰러졌는데 어떡하냐며 발을 동동 구르더랬다. 상상이 가질 않았다. 제 앞에서 섹스고 뭐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낄낄거리던 사람이 창백한 얼굴이라니.


놀란 유권이 어떻게 된거냐 묻자, 지호는 제가 갑자기 '아 배고파.'라며 쓰러졌다했더란다. 태일은 어이가 찼다. 





".............너 업어다 주고 다시 기획사로 간거 같더라."

"......다음부터 들이지마요 우지호. 괜히 분위기도 안좋아지는거 같고....."

"아니! 그게 무슨소리냐. 우지호가 얼마나 금덩이 복덩인줄알아?"

"예?"





 유권의 말이 가관이었다.





"우지호, 파리 런웨이 나가. 표지훈 자리였던거 땄나봐."

"....................예?"

"그거 우리한테 젤 처음 말해주는거라고 하던데. 다음달 중에 기자회견있데."

"....그게 무슨."

"표지훈 사망설따고 잠적한지 꽤 됬잖아. 소속사에서도 이제 맘이 급한거지. 우지호로 땜빵치나봐. 뭐 안그래도 우지호 요즘 잘나가고하니까."





 태일 머릿속엔 단 한생각 뿐이었다. 제 집 안에서 가만히 노트북을 두드려보고있을 표지훈. 그게 전부다.







10_


 지훈은 제 앞에 있는 라면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작은 네모 창안에 자잘하니 적혀있는 설명들이 눈안으로 들어왔다. 물 550ml........

물 550ml를 어떻게 계산해서 넣으라는건지! 이를 으득간 지훈은 아래 자그맣게 덧붙여있는 글씨들을 눈에 담았다. 큰컵으로 세컵?





"..............큰컵."





 건조대 위에 아무렇게나 세워져있는 컵을 꺼내들었다. 허나 지훈이 생각하기에 제가 지금 들고있는 '컵'은 전혀 '큰'컵으로 보이지않았고, 다시 내려놓을수밖에 없었다. 아 뭔 놈의 집에 큰 컵도 없어!


베이컨만 주구장창 처먹은지 어언 이주일째다. 베이컨 밥, 베이컨 밥, 베이컨 밥. 이렇게만 먹다보니, 몸의 거부가 절실히 느껴졌고, 뭐 다른 건 없나 찬장을 뒤지다 발견한것이 바로 이 라면이다.


지훈은 살면서 제가 라면을 끓여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사내 손에 물한방울 묻히려 하지않았던 부모님의 영향은 물론이거와, 모델의 길로 들어서면서, 매니저는 인스턴트 식품이라곤 질색을하며 모두 갖다 버리곤했으니. 일본 런웨이 갔을때 먹은 라면을 제외한 한국의 꼬불랑면발을 먹은건 다섯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적었다.



 결국 모든 찬장을 뒤적거리던 지훈은 '큰'컵을 쥐어들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훈이 '큰'컵이라 생각한건 태일이 가끔 커피를 담아가곤했던 텀블러였지만, 지훈의 눈엔 그저 크게 보였으니 말 다한거다. 문제 하나를 해결한 지훈의 코에서 흥얼거림이 새어나왔다. 룰루랄라 흥겹게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꺼내고, 정확히 세컵(세 텀블러)을 담아내, 냄비에 들이부었다. 그 후는 꽤 쉬웠다. 물이 팔팔 끓기만을 기다리다, 면을 넣고 그 위에 스프라는것을 끼얹었다. 야채 건더기는 넣지않았다. 지훈 저는 야채를 별로 좋아하지않으니까.


그렇게 지훈이 평생 처음 끓인 라면은 실패함이 당연한일이었다. 세 컵도 아닌 세 텀블러로 물은 왕창에, 면은 팅팅 부을정도로 끓였으니, 맛이 있을리 만무했다. 한젓가락을 뜨자마자 지훈은 '아씨 뭐야.'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바로 싱크대에 처박았다. 라면? 저게 뭐가 맛있다고 드라마고 영화고 냠냠쩝쩝하는 장면만 나오는지 정말 이해할수가 없었다.


싱크대에 처박힌 냄비는 말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머리를 벅벅 긁으며 티비를 켠 지훈이 리모컨을 입에 물었다. 이주새 생겨버린 잔버릇중 하나였다. 한참을 채널을 돌리던 지훈이 갑자기 앵앵 울리는 벨소리에 멈칫했다. 집전화? 집전화다. 이 빌어먹을 옥탑방엔 꼴에 집이라고 집전화가 하나 있었는데, 지훈은 한번도 울리는걸 보지못했다. 거의다 태일의 핸드폰으로 전화하곤했기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지훈은 조금 당황해버렸다. 처음듣는 벨소리인데다, 처음으로 울리는 집전화. 저걸 받아야하나 말아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할필요도없었다. 끊길 기미가 보이지않기에, 지훈은 낮게 욕을 중얼이며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뭐야. 이거 눌러?





"여보세..........."

「지훈이냐.」

"........................예."





 조대표였다.





「밥은 먹었냐?」

".........예."

「표지훈 답지 않게 왜이래. 무슨 일있냐?」





 일? 일이라곤 많았지. 지훈은 조금 섭섭하기도했지만 그에 앞서 화가 치밀었다. 이제야 연락하는 제 소속사 사장이라니. 어이가 없다.





"........무슨일이세요."

「아직 돌아오란 소리는 아니야. 그건 일단 알아두고.」

"..........."

「올해 파리 런웨이, 우지호가 나가기로했어.」

"......................예?"





 제가 잘못들었나 싶었다. 주먹에 힘이 실렸다. 누가? 누가 나간다고?





「아직 네 일처리 많이 남았다. 십억은 그러려니 넘겼어. 그런데 그 다섯명중에 두명이 죽어도 합의 안해준댄다. 그리고 김유정이랑 네 일 아는 기자가 좀 많아졌어.」

"............안됩니다."

「고집부리지마. 지금 네 위치를 보라고.」

"..............."

「한달후에 기자회견이야. 놀라지말라고 미리 말해주는거다.」





 뭐? 그럼 한달동안 날 여기 둘 생각이었나?





"그럼 지금 여기 한달동안........"

「그정도 걸릴꺼야 나머지 일 처리는.」

"........싫어요. 안됩니다. 그냥 다 터지라 둬요. 제가 가요."

「너 정말 한방에 훅가고싶냐? 봐. 너 사망설 뜬지 이주가 다 지나가. 그래도 아직 검색어 상위랭크고, 온갖 설이 나도는 가운데 진짜인 말도있어.」

".........."

「말 들어라. 네 인생 네가 망치지말라고.」





 전화가 끊겼다. 지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통하지 않게 세게 깨물었다. 아려왔다. 우지호를 내보낸다. 누군가 뒤에서 후라이팬으로 가격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지호를 저 대신 파리에..............말도 안된다.


잠적하던 그날. 왕자님 어쩌고를 운운하며 저를 놀리던 지호의 얼굴이 제 앞에 그려졌다. 거칠게 그걸 흩어내었다. 안돼. 절대 안돼.










 먹어! 아 안 먹어요! 지금 사람 성의 무시해? 아 진짜 안먹는다구요!

유권과의 실랑이가 있었다. 기사 몇건을 올리기 무섭게, 삼각김밥 네다섯개를 말없이 건내는 유권은 포커페이스였다. 뭐냐고 묻자, '배고플때 먹어. 쓰러지지말고.'라 말하는게 기가찼다. 이 남자, 아직 제가 정말 배고파서 쓰러진줄 알고있다. 허나, 솔직히도 말할 형편이 못됐다. 어찌 '우지호가 나한테 뽀뽀해서 디비 기절했다!'라 말하냔말이다.


결국 종류별로있는 삼각김밥을 받아낸 태일은 꾸역꾸역 하나를 까먹는 모습을 보이며 퇴근을 준비했다. 가방끈까지 모두 맨 태일이, '안녕히 계세요!'하며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유권이 툭 던진말에 뒷덜미가 잡혀버렸다.





"오늘 술마시자."

"예?!"

"그냥 우울해. 술친구좀해줘."





 싫다하려했다. 허나 말이 나오기도전에, 외투를 가지고 와선 저를 엘리베이터에 밀어넣는 유권이었다.





"뭐에요 진짜 오늘!!"

"선배 말이 하늘이지. 닥치고 따라와."

"아 진짜 짜증나!!!!!"

"뭐? 뭐가 어째?"





 결국 질질 끌려와버렸다. 회사 근처에 있는 선술집. 몸을 꾸겨넣다싶히, 구석자리로 들어간 태일은 입을 쭉 내밀었다. 확실한 '삐짐'의 표현이었다.





"입탱이 집어넣어라 잘라버리기전에."

"잘라봐요 잘라봐. 진짜 매번 제멋대로에요 선배는."





 유권은 가볍게 오백 두잔과 안주를 주문했다. 태일은 여전히 삐진상태였다. 마카로니를 입에 우적우적 집어넣으며 유권을 쏘아보는것도 잊지않았다. 그러길 십분. 머리를 틀어올린 여 종업원이 술과 안주를 내려놓았고, 가볍게 고맙다 인사를 건낸 유권이 바로 잔의 반을 꿀떡꿀덕 삼켜버린다.





"와 진짜 매너도 없다. 어떻게 짠도 안하고."

"기집애도 아니고 짠이 뭐냐 짠이. 너도 마셔 마셔."

"술 못한다고 입사한날부터 말씀드렸던거 같은데요."

"예예 이기자님. 잘나셨습니다."





 유권과 저는 항상 이런식이었다. 매번 서로를 향해 툭툭 내뱉으며 가끔 지나치리만큼의 농담도 던지곤하지만, 정작 둘은 신경쓰지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편하기 탓이었다.


결국 유권이 권유에 못이긴 태일이, 두세모금을 목으로 넘겼다. 아직 태일에겐 쓰고도 쓴 술이다.





"으웩."

"그러니까 애 소리 듣지. 그러니까 여자들이 널 남자로 안본다 이거 아니냐."





 뭐요? 흘김도 잠시. 뜨거운 감자튀김을 입에 물곤, 데었는지 '으뜨뜨'하던 유권이 입을 열었다.





"표지훈 파트는 세명인데 꼭 너랑 나랑만 일하는거 같아."

".............재정인 다른 일로도 바쁘니까 그렇죠."

"난 이번일에 아주 깊은 의의를 두고있어."

"..............."

"이번만 해내면 너나 나나 길은 따놓은 당상이니까."

"............그러게요."

"그러니까 화이팅하자고. 재정이는 뭐 편집장 눈에 들었으니, 길이 많겠지만 말이다........."





 너나 나같은 삼류 기자는 아직이거든. 유권이 낄낄거리며 감자튀김을 하나 더 집어들었다.





"이번에 나리가 말해준게 하나있거든. 난 그거 파볼 생각이다."

"예? 뭐요?"

"걔 한참 표지훈 좋다고 따라다녔잖아. 편집장이 뿔났을때 기억나? 너가 무슨 표지훈 빠순이짓하려 여기 들어왔냐고 난리났었을때."

"아.................언제더라......"

"이주? 이주 된거같다."





 감자튀김 가득히 케챱을 찍어들어 제 입에 쏙 넣는다.





"나리가 나랑 엄청 투닥거려도, 정보는 꽤 많이 공유하거든. 근데 이번에 나리가 나 표지훈 파트 났다고하니까, 알려준게 있는데 대박이야."

"뭔데요."

"표지훈 사망설이 왜떴는지에 대한."





 뭐? 태일의 고개가 들어졌다. 저도 처음 듣는소리였다. 그러고보니 지훈에게 물어보지않았다. 왜 옥탑방까지 숨어들어왔냐, 무슨일이 있었던거냐. 하긴 대답해줄 지훈이 아니였다. 기자는 믿지않는다 단호히 말했던 지훈이니까. 그런데 그 이유를 나리씨가 알고 이젠 김유권까지 알고있다. 도대체 뭔데?





"김유정 알지 김유정."

"....................김유정이요? 그 날아라 신데렐라 나오는?"

"응. 걔랑 섹스스캔 뜬거 가라앉힐라 그런건가봐."

"...........섹스 스캔이요?"

"그거 말고도 더 있더라. 도박으로 돈도 날렸단 소리도있고.........."

"..................."

"........그러니까 이번일. 엄청 중요하다구."





 유권이 헤실거리며 웃었다. 분명 웃어야했다. '맞습니다 우리 이번에 정말 대박터트립시다!'하며 웃어야하는게 맞았다. 하지만 태일의 얼굴엔 조금의 웃음기도 보이지않았다. 섹스 스캔이라. 도박이라..............'





"뭐냐? 갑자기."

"애 소리 그만들을라구요."

"그거가지고 되나...........더 시킬까?"

"한잔 더요."





 쓴 술이 이상하게도 달게 느껴졌다. 태일은 수능후에도, 어디 모임에서도 마시지않던 술을 왕창 부어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신난건 유권뿐이었다. 갑자기 술을 꿀꺽꿀꺽 물마냥 마시는 후배의 모습은 처음인데다 신기하기까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일은 묵묵히 마시고 또 마셨다. 그에 온몸에 바로 힘이 풀림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두시간을 마셔라 부어라하던 태일이 흐느적한 몸으로 유권에게 인사를 건내고 길을 걷기 시작할땐 솔직히, 아무 감각이 없었다. 걸을수있다는것도 신기했다. 저를 데려다주겠다 했던 유권을 뿌리친덴 이유가 다 있었다. 


.........표지훈을 들키면 어떡하나. 이상하게도 제 속엔 걱정만이 가득했다. 그러다 문득 지호가 생각나버렸다. 제 입술에 빠르게 닿앗다 떨어진 지호. 머리를 저었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걱정만해도 충분히 머리가 아팠다.


골목길을 돌아 파란 양철문에 당도한 태일이 물끄럼, 옥탑위를 바라보았다. 불이 꺼져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정각을 넘긴 시간이다. 자고있겠지. 헛웃음이 나왔다. 술에 이렇게 취한적도 처음이었다. 헤실헤실웃으며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던 태일이 결국 힘이 풀린 다리를 주체못하고, 주저앉았다. 찬 새벽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고있었다.





"..................아 힘들다......"





 정말 힘들었다. 다리엔 힘이 들어가지않았고, 머리는 포화상태였다. 여기까지 생각하다보니 이상한 상상을 해버렸다. 저 꺼진 옥탑방 불이 켜지고, 지훈이 나와 저를 발견하여 업고들어가는 아주 말도 안되는 상상을. 태일은 킥킥 웃었다.


그러길 잠시. 태일이 상상할동안 별똥별인 내렸나 싶었다. 딸칵-하고 아주 작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환해진 옥탑방. 그리고 놀란 태일이 뒤를 돌아보기 무섭게, 그 자리에 서있는건 지훈이었다. 무표정으로.





"뭐해."

"..............."

"술먹었어?"

"...........히."





 정말 지훈이다.






***



반가운 분들을 요기서도 뵙다니 기뻐요 T_T엉엉...

악남 처음부터 읽어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민망하기도하고 이걸 언제 다썼나 내심 올ㅋ이런기도하고 ㅋㅋㅋ


악남은 지훈이와 태일이, 오일 위주지만 지호와 태일, 코일!!도 섞여있어요. 읽으실때 참고 바라면서..

부족부족 많이 모자란글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구럼 다음 이시간에 봐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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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마제님...?진짜마제님.....?사랑해요..여기서뵐줄이야...엉엉...저란레기 그때단편 팬아트그린다면서 안그린 레기....악남팬압꼭그려서바치겠나이다ㅠㅜㅡ마제님사람해어ㅠㅜㅜㅜㅜ
11년 전
독자2
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 으아 금손이 따로없네.... 냐닐이 시험인 저를 이렇게 못자게하면 어떠케여유ㅠㅠㅠㅠ엉우우워우어우우유류융유유
11년 전
독자3
근디 왜 하나하나 안올리셔여? 그럼 인기 많아질텐데 ㅠㅠ 뭉텡이로 올라오니까 자꾸 묻히는 기분... 이런글이 춰럭글에 올라야하는데...ㅠㅠㅠ
화끈하게 불마크 막 달고 그르세옇 ㅎ 진짜 초록글 가서 모두가 봣음 조컷음 ㅠ 마제님 화이팅 ㅎㅋㅎㅋ

11년 전
독자3
헐 어디에서 냄새안나요? 금손님냄새 킁크읔킁킁킁!!!!
11년 전
독자4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렇게 글이 좋으면 어떡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5
진짜 재밋어요!!! ㅠㅠㅠㅠ태일이 나중에 곤란해질까바 걱정이에요 ㅠㅠㅠㅠ
진짜 잘보고갈게요!!ㅎㅎㅎ

11년 전
독자6
헐진짜금손이시네요ㅠㅠㅜㅜ완전대박ㅠㅠㅠㅠㅠ신알신하고갈게요~
11년 전
독자7
와ㅠㅠㅠ대바규ㅠㅠㅠ아진짜ㅠㅠㅠㅠ대박이에혀ㅠㅠㅠㅠ으어유ㅠㅠ 짱이에요 짜유ㅠㅠ 엉엉 이런보물을이제야보다니다나디다ㅠㅠㅠ엉어엉진짜 재밌슴니당ㅋㅋㅋ핳ㅎ하 아 지호..겁나 사차원이네옇ㅎㅎㅋㅋㅋ아 재밌슴당 다음편기대됭혀ㅠㅠㅠ.
11년 전
독자8
너무 재밌어요!!ㅜㅜ다음편빨리읽구싶어요ㅜㅜㅜ
11년 전
독자9
으앙 항상 잘 읽고있슘다 글이 길어서 많이많이기더렸다가 한방에 보는ㄴㄴ그런 개운한느낌이에여ㅜㅜㅜ지호랑 지훈이가 드디어 태일이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군녀!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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