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화
없어, 없다...왜 없어!!
하루종일 돌아다니는데도 손수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접때 정윤보고 도망치다가 흘린 것 같단 말이지.
그 주위를 맴도는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천쪼가리는 커녕 돌멩이도 안 보인다.
남준이 선물해준 중요한 물건인데...멍청하게 잃어버리기나 하고. 제법 자조스러워져서 풀썩 쪼그려앉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포기할까 생각하다가도 어느 새 일어나 땅을 두리번거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딨지...어디.."
"...땅에 밥이라도 떨어진 거냐?"
"...2황자님? 아니거든요. 뭘 좀 찾고 있습니다."
"뭘 찾는데."
"있어요, 그런 게."
윤기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천방지축 왈패는 건방지기까지 하다고.
그런데도 자꾸만 눈길을 사로잡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너 이젠 조반을 가져다주러 오지 않더라."
"....저 대신 궁녀가 가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어째 지루하단 말이지.
윤기 황자는 열심히 땅을 둘러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나 싶더니, 쪼그렸던 다리를 쭉 피며 일어섰다.
가려는구나싶어 인사를 꾸벅하니 윤기 황자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명일 밤, 별을 보러 오거라."
"에?"
"네 별을 보고 싶다면서."
"아, 맞다. 알겠습니다!"
내 우렁찬 대답에 피식 웃은 윤기 황자는 손을 대충 흔들곤 돌아갔다.
굳이 그 얘기 해주려고 나를 찾은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손수건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화, 황자님..."
"쉿! 시끄럽다! 들키면 어쩌려고!"
"허나 황자님께서 어찌 이리 숨으려 하시는지..."
정국의 뒤에 있던 신하가 허리를 굽히며 머리를 조아렸다.
처자를 훔쳐보고 있는 황자라니, 품위와 체통은 어디로 갔느냔 말인가. 늙은 신하는 말하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그런 신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건물 뒤에 숨어서 아미를 지켜보던 정국은 바싹 마르는 입술을 축이곤 심호흡을 여러 번했다.
머리카락도 슥슥 매만졌다. 어째 이상하게 제 꼴을 확인하려 들게 된다.
헛기침을 하고 우연인 척, 그녀 앞에 나설 생각이었다.
"큼큼, 거기 혹시 아미 아닌..."
그러나 정국은 나가려다 말고 후다닥 다시 건물 뒤로 숨었다.
그녀 앞으로 다가온 인물이 있었기에. 이씨- 정국은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상황을 살폈다.
"안녕."
목소리에 숙였던 허리를 드니, 잔뜩 웃음을 머금은 채인 지민 황자가 보였다. 나도 반사적으로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먼젓번에는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태형 황자에게 들킬 뻔한 것을 숨겨주었던 일이 생각나 감사를 표했다.
잠깐 겪은 태형 황자의 성격이라면 정말 저를 훔쳐보았다는 이유로 칼을 빼어들지도 모르는 일이란 걸 알기에.
"그 땐 이야기 해볼 새도 없이 사라져서 아쉬웠다."
"아...음, 제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별 연고도 없던 황자가 내게 무슨 볼 일이 있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단 거지?
그런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났는지 지민 황자는 발그레 한 볼을 실룩이며 웃었다. 원래 얼굴에 홍조가 조금 도는 편인 듯싶다.
"왜, 너와 이야기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그건 아니지만...별 재미없으실 텐데요."
"호석 형님께 자주 찾아간다고 들었다. 형님은 네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시던데."
"아..."
별로 할 말이 없어 눈동자만 데룩데룩 굴리고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내겐 초조하거나 불안하면 손을 뜯는 버릇이 종종 있었는데, 지민 황자가 그것을 본 모양이었다.
"?!"
대뜸 내 손을 덥석 잡아올린 지민 황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예쁜 손에 생채기라도 나면 어쩌려고."
엄지로 손등을 슥 훑는 손길에는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다. 아니, 여기 황자들은 죄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어떤 얼굴을 해야할 줄 몰라 적잖이 당황했다. 아마 지금 빨개져서 터질 것 같겠지. 왜냐하면 지금 내 얼굴이 뜨끈거리는 게 느껴졌거든.
"아, 아닙니다."
서둘러 지민 황자의 손에서 손을 뺀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데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계속 땅을 보던데."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였어요. 하하."
"그래?"
지민 황자는 입꼬리를 올린 채 눈동자도 위로 올렸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장난스러운 눈치였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다음에 또 만나자꾸나. 나도 호석 형님께 해주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저 별 말 안 하는데요...(울먹
지민은 털레털레 돌아가는 작은 여인을 보며 풋하고 웃었다. 솔직하게 찾고 있다고 말하면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아니, 실은 아니었나.
실제로 호석에게 들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도 했고, 아미는 몰랐겠지만 그녀는 이미 황자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사였다.
당차고 여기저기 눈에 띄는 여인. 윤기 형님의 말로는 사내로 태어났으면 대장군이 되지 않았을까-란다.
그런데 조금 전 손을 잡으니 빨개져서 당황하는 모습이 의외였다. 왈패라 해도, 여인은 여인이었는지 우물쭈물대는 것이 퍽이나 귀엽다.
그래서 그녀를 만날 핑곗거리를 서둘러 내치고 싶지 않았다. 지민은 소맷단에 넣어둔 그녀의 물건을 조금 더 지니고 있기로 했다.
"야."
"아, 깜짝이야. 정국 황자님? 무슨 일이세요."
손수건 찾는 데 실패하고 돌아가려던 찰나 불쑥 내 앞을 막아서는 정국 황자에 식겁했다.
아, 얘는 자꾸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근데 저 심통난 얼굴은 뭐람;;
"....(쒸익쒸익)"
"...?"
"...우린 벗이다."
"어...ㄴ, 네?"
"네가 벗은 나뿐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내, 내가 그랬나? 어...
기억을 마구 더듬고 있는데 정국 황자의 표정이 좋지 않아보여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여기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이곳에서는 나이가 같으니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러니 형님들과는 벗이 아니지?"
"예..? 어, 뭐...황자님들과 제가 감히 벗이라니 당치 않죠."
정국은 그녀의 말에 '나도 황잔데...?'하며 약간의 멘붕이 왔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달라!' 하는 합리화를 하며.
"좋아. 그럼 나와 출궁하자."
"예?"
"출.궁.말이다. 나와 밖으로 나가자고. 벗이니까. 나도 한 번쯤은 벗과 출궁해보고 싶었다."
네...???????
정국 황자의 뒤에 서 있는 신하들을 놀란 얼굴로 보니 저들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 황자님 지금 무리수 던진 것 같은데...?
"제가 황자님과 출궁이라니, 가당치 않아요. 그리고 저는 오라버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여건이 안 됩니다."
"....왜."
"...예?"
"윤기 형님께는 조반도 가져다주고."
"...."
"호석 형님과는 종종 담소도 나누고,"
"....(땀)"
"남준 형님과는 잠행도 나갔다면서..."
"....(땀땀땀)"
아니, 얘는 이런 걸 어떻게 다 아는 건데.
슬쩍 눈만 들어 정국 황자를 보는데, 딱 정색한 얼굴이 나를 보고 있는 게 낯설어 금방 눈을 깔았다.
"내가 싫으냐?"
"아니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근데 왜 나랑은...지민 형님이랑도 잘 말했으면서, 손도 잡으면서..."
구시렁거리는 반응이 심상치 않아 샅샅이 그의 얼굴을 살피면....
얘 설마 나 좋아하나.
딱 불퉁한 것이 말해주고 있었다. 정황상 조금 전 지민 황자의 스킨십을 보고 심술이 나 출궁이라는 무리수를 던진 것도 같은데.
난감해졌다. 갑자기 황자의 관심이라니.
일단 이런 싸한 분위기를 지속할 수는 없었기에, 애써 웃어 보이며 그를 살살 구슬렸다.
"7황자님, 그게 아닙니다. 7황자님 정말 좋은 분이신 거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라버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황자님과 출궁하여도 황자님을 재밌게 해드리지 못할 것이기에 안 된다 한 것입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마셔요."
"그럼 후에 네 오라비가 병석에서 일어나면, 나와 출궁하자. 꼭 내가 밖을 구경시켜 줄 테니까."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정국 황자의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솔직한 그의 감정 변화를 보고 있으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지닌 황자님이었다.
순수한 연정을 받다니 오히려 내가 다 영광인 기분.
꽃의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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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주인공은 여러분이니 여주를 부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당ㅠㅠ 그리고 여주는 여신이 아닙니다!! 흔한 여자 아이입니다! 늘 읽어주시고 감상평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