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신청해주신 독자님들
♥건빵♥ ♥병닭♥ ♥로보트♥ ♥^~^♥
으앙 댓글 달아주신 독자님들 감사해요 ♥
암호닉 신청 겁나 반겨요 ^▽^
내 사랑 머겅♥♥
저는 블락비의 사랑을 야금야금 먹겠습니다.
농담이예옇
로봇 02 |
[블락비/피코] 로봇 02
끄는 법을 몰랐다. 딱히 끄고 싶지도 않았다. 자는 지훈 옆에서 정각이 될 때마다 딱딱한 투로 정각을 알리는 지호에 지훈은 잠에서 깼지만 그리 싫지는 않았다. 2시. 3시. 의무적인 지호의 목소리가 낮게 웅웅 울렸다. 몸을 뒤척이다 다시 한 번 느낀 지훈이였다. 로봇 이긴 로봇이구나. 7시. 7시가 되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누워있는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지호가 몸을 일으킨다.
" 주인. 우지호 주인. "
" ……. "
찌뿌둥한 몸을 힘겹게 일으키는데 표지훈, 표지훈, 이라고 되새기는 지호에 지훈은 크게 숨을 토해냈다. 도저히 우지호에 대해 파악할 수 없었다. 지훈을 가리키며 표지훈, 그리고 자신을 가리키며 나는 우지호, 무슨 처음 말을 배우는 아기 같아서 지훈은 팔을 한 번 문지르고는 방을 빠져나왔다. 평소와 달리 몸이 축축 늘어난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사용 설명서가 눈에 띄어 주우니 역시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용 설명서에 눈을 떼지 못하는 지호에 지훈은 작게 미간을 좁혔다. 읽을래? 지훈이 낮게 물어보자 재빨리 끄덕이고는 사용설명서를 건네받는다. 자신이 로봇이라는 건 다 알고 있겠지…. 이리저리 펼치며 쭈욱 읽어내리던 지호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이런 거 읽지 마. 지호가 작게 중얼거린다. 잘못 들었나 싶어 지훈이 짧게 되물으니 읽지 마, 라며 딱딱 끊어서 말한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파고든다. 입을 비죽 내미는 지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지훈을 흘긴다. 그리곤 설명서를 품에 꼬옥 안는다. 왜 저러는 거지. 지훈이 띄는 행동 없이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이니 지호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뭐라 입을 못 떼겠다. '인간' 우지호처럼 모르는 사이 자신을 떠날까 봐, 혹시나 없어질까 봐. 괜히 정체 모를 불안감이 솟구쳐 올랐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지호는 몸을 움직여 부스스한 지훈의 머리를 손 뻗어 정리해준다. 향기로운 냄새가 지훈의 코를 간지럽혔다.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로봇에게서 왜 이런 냄새가 나지. 문득 예전에 유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로봇한테서 뭔, 좋은 냄새가 난다고. 그런데 지내다 보면 그 냄새가 점차 주인을 닮아간다더라.
" 표지훈, 우지호 주인. 밥 안 먹어? "
" … 배 안 고파. "
" 나 배고파. 밥 줘. "
어딘지 모르게 툭 내뱉는 건방진 뉘앙스가 푹푹 풍기는 지호의 말에 지훈은 벽에 걸린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로봇은 뭘 먹여야 하지. 사용 설명서에 다 나왔으니까 그냥 보기만 하면 된다는 박경에 들은 게 별로 없는 지훈은 지호 품 안에 있는 사용 설명서에 손을 뻗자 지호는 뒷걸음을 친다. 잠시만 볼게. 지훈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거세게 저으며 등을 돌려버린다. 아, 좀…. 툭툭 등을 돌린 지호의 어깨를 약하게 두드리니 몸을 움츠리며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잠시 어이없는 듯 허, 짧게 소리를 내보이며 어느새 문을 닫아 잠그는 지호에 지훈은 실소만 터져 나왔다. 열라고 문고리를 잡고 돌리니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런 거 보지 마. 나 싫어. "
" …뭐가. "
" 나 너 때문에 만들어진 거잖아. "
" ……. "
" 그냥 인간처럼 대하면 되지. 설명서, 이런 거 보지 마. "
… 마음대로 대하기가 어려워서 그러지. 그나저나 로봇이 이런 생각도 하나. 약간의 의문점과 함께 지훈은 몸 안 어딘가가 간질거리는 기분에 숨을 한 번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한참 말없이 가만히 있으니 굳게 닫힌 문이 느리게 열린다. 눈앞이 밝게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설명서를 손에 꼬옥 쥔 채로 눈을 끔뻑이는 지호를 저도 모르게 품 안에 안아버리는 지훈이었다. 아까 맡았던 좋은 냄새가 훅훅 풍겼다. 한참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공에 머무는 지호의 손이 이내 지훈의 허리를 조심스레 감싼다.
' 로봇은 밥 같은 거 없어. 아, 충전이라면 모를까. '
" 배고프다던데. "
' 그게 충전해달라는 소리지. '
그렇구나. 통화를 끝내고 눈을 돌려 소파에 누워 발장난을 치는 지호에게 머물렀다. 아뿔싸. 충전을 어떻게 하는지 안 물어봤네. 주머니에 쑤셔 넣은 핸드폰을 다시 꺼내려는데 소파에 이리저리 움직이던 몸이 중심을 못 잡고 결국 바닥에 쿵 하고 떨어진다. 잔뜩 뻣뻣했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짐을 느낀 지훈이었다. 얼굴이 일그러진 채 몸을 일으키다 지훈과 눈이 마주친 지호는 작게 웃음을 띤다. 「충전은 어떻게 해.」지훈은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문자를 보내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지호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나, 나가고 싶어. 지호의 말에 지훈은 창가 너머 멀리 큰 건물 방향의 하늘을 응시한다. 지호의 말에 하루를 이렇게 계속 집에서 찌들 수 없음을 느낀 지훈이였지만 괜히 나가기가 꺼려졌다. 일단, 너 밥 좀 먹이고…. 주머니 속에 있는 핸드폰이 지이잉 간지럽게 울린다. 「내가 잘 땐 끄랬잖아. 안 끄니까 배터리가 빨리 나가지. 충전 그거 자위하면 됨.」… ? 예상치 못한 박경의 답장에 지훈은 몇 초간 넋 놓았다. 혹시나 잘못 봤나 싶어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오히려 문자 내용이 더욱더 선명하게 지훈의 눈에 박혔다. 자… 뭐?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지호를 억지로 소파에 앉히고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익숙한 번호를 꾹꾹 누르는데 계속 삐걱댄다. 힘겹게 번호를 제대로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니 뚜르르, 건조한 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이내 뚝, 끊기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지훈의 귀에 파고든다.
' 여보세요. '
" 자위? 뭔 소리야. "
' 아, 니가 자위하는 게 아니고 로봇이…. '
" 씨발. 그게 아니고, 왜 자위냐고. "
'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왔어. 아무래도 순수한 목적으로 로봇을 만들어달라는 손님이 거의 없으니까. '
" ……. "
' 아무래도 욕구 충족시키려고 찾는 손님이 많지. '
" …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
' 그냥 자위하듯이 문질러주면 돼. 니가 직접 해주던가. 아니면 하라고 시키던가. '
" 하…. "
' 그나저나 벌써 배터리가 다 닳냐. 너 잘 때 안 껐지. 내가 끄라고 했…. '
박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화를 끝내버리고는 방을 빠져나왔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뭐라 흥얼거리는 지호가 눈에 들어왔다. 지훈은 얕게 한숨을 푹 쉬었다. 지훈의 기척을 느꼈는지 이리저리 뒤척이던 몸을 부르르 짧게 떨더니 지훈을 바라본다. 통화를 왜 그렇게 오래 해. 지호가 몸을 돌려 읏차, 힘겹게 일으켰고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한 번 느리게 삼켰다. 방금까지는 따뜻하던 거실에 한기를 느낀 지훈이었다. 밥, 밥! 지호가 몸을 가볍게 방방 뛰며 말했고 지훈은 지그시 아랫입술을 물었다.
" 배 많이 고파? "
" 으음, 사실 그렇게 고픈 건 아닌데. "
……. 밖에 나갈까? 지훈의 말에 약간 울상을 짓던 지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얇게 흰 티에 바지만 입은 지호를 끌어 야상을 입히고는 목도리를 칭칭 목에 감았다. 답답한 듯 캑캑 거리는 지호에 느슨하게 풀고는 지훈도 따라 옷을 대충 껴입었다. 어느새 잔뜩 들떠있는 지호가 먼저 현관문을 열어 빨리 오라며 재촉한다. 신발을 신고 나오니 현관문을 닫고는 이번엔 재빠르게 엘리베이터를 잡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지호 옆에 선 지훈. 1층, 2층, 한층 한층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얼빠진 채로 보던 지호는 이내 8층에 도착하자 빠르게 몸을 옮긴다. 지훈도 따라 타고는 익숙하게 1층을 눌렀다. 말없이 거울만 보는 지훈이 이상하다고 느낀 지호가 요모조모 살피더니 1층에 도착했다는 엘리베이터 알림에 이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저렇게 방방 뛰다가 혹시나 배터리가 더 빨리 닳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미친 지훈은 재빨리 지호 뒤를 쫓아 천천히 가자며 지호를 멈춰 세웠다. 입술을 삐죽 내밀며 지훈의 발에 맞춰 걸어가는 지호.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을 바라본다. 뒤숭숭한 게 오후부터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우산이라도 챙겨야 하나…. 아, 간단히 산책만 했다가 돌아가야겠다.
" 공원에 갈까? "
" 응. "
눈을 밝히며 정신없이 주위를 살피던 눈이 그제야 앞을 본다. 야상이 거치적거리는지 몸을 한 번 뒤척이며 인상을 찌푸리는 지호. 사실 로봇이라 추위를 안 느끼는 건 알지만, 혹시나 이상하게 볼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 해 이리저리 두껍게 입힌 지훈이었다. 약간 긴 야상 소매가 짜증 나는 듯 주머니에 푹 손을 눌러 넣고는 말없이 앞만 본 채 생각에 잠긴 듯한 지훈을 천천히 바라본다.
" 아, 공원 보인다. "
그리고 이내 지호가 자그마하게 말하자 지훈은 잔뜩 굳어있는 표정을 풀고는 느릿느릿 자신의 발걸음에 맞춰 걸어가는 지호에게 시선을 돌린다. 벤치에 앉자.
지호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또 익숙한 냄새가 지훈의 코끝을 스쳐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