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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현실속의 나는 혼자였다.
밥을 먹거나 등하교를 하고 아플때도, 그리고 집에서도
난 그렇게 혼자의 고독감을 맛봐야만 했다.
내말을 들어주고 나를 위로해 주는건 사람의온기가 아닌,묵묵히 웃고있는 캐릭터였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연신 보컬로이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티비에 나오던 그 누구처럼 쿠션을 껴안고 환상에 빠져 사는것도 아니다.
단지, 캐릭터가 좋아 만화를 보기 시작한 거고, 그 종류가 남들과 다르고, 보컬로이드를 좋아한다는 것 뿐.
처음에 나에게 다가왔던 아이들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오타쿠 라며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너같은애들을 오타쿠라고 한다며?"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존나 저 변태같은 오타쿠새끼"
"더러운 오타쿠새끼"
"야 이왕 좋아하는거 대학도 애니과 가서 하악하악거리지그러냐?"
"존나 나라망신. 매국노새끼야"
같은 반이 되었단 이유만으로 고등학생의 입시에대한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대상이 되어가고있었다.
단지, 좋아하는게 다르고 취향이 다른 것 뿐인데.
그 중에서도 유독 심한건 우지호를 비롯한 그 무리들이다.
"야 오타쿠"
".."
"아 존나 씹네. 야 오타쿠!"
"..."
뒷통수를 빡 갈기는 호된 손바닥에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야 짜증나게 하지마. 존나 찌질한게. 입없냐?"
"야야 둬봐 내가 해볼게."
"니가 하면 대답할까 설마.저 씹새끼가"
"야, 오덕. 오덕! 불렀으면 대답을해"
"..."
"아, 한국어 말고 일본어로 대답해도 되. 씨발, 나니? 이딴거 한번 해보라고. 나니?나니?"
".."
박경의 일본여고생풍 '나니' 묘사에 반 아이들이 자지러진다.
원하는 대로 대답해줄 마음은 없다. 뭘로 시비를 걸지 이젠 예상도 못하겠다.
"윽-"
머리채가 낚아채져 고개가 꺾였다. 내려다보는 우지호의 눈빛이 살벌하다.
눈을 똑바로 뜨고 우지호를 쳐다봤다.
"오타쿠새끼가. 이젠 말도 씹네. 야. 입은 뒀다 뭐하게.설마 말도 못하냐?"
"..놔"
"할줄 알면서 왜 안했을까?"
우지호의손이 올라가는 순간, 종이쳤다.
움찔- 하며 눈을 살짝 감았다 뜬 순간, 우지호의 묘하게 변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이 씨발."
.
처음 머리채를 잡힌 날 이후로 며칠이 흘렀다.
이젠 괴롭히는 방향도 점점 이상해진다.
"야 오타쿠"
"야, 오덕. 야"
"이새끼 말도 안하네. 딸딸이는 쳐 봤냐?"
"이새낀 또 뭔 뜬금포냐. 근데 진짜 궁금하긴 하다."
"..."
"야 오타쿠, 야 화내봐.억울하면"
"이새끼 때려도 말 안할것 같다."
쾅-
박경의 발이 내 책상을 차 넘어뜨렸다. 책상위에있던 교과서며 필통에있던 필기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괴롭힘은 반응이 보일수록 더할 것을 알고 있기에 조용히 책상을 다시 정리하려 일어났지만,
나는 그 길로 옆으로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와하하 저새끼 넘어진거 좀 봐. 야 뭐야 무슨일이야. 우지호가 오타쿠새끼 발로 걷었어. 오 시발 대박이네
우지호의 발이 묘하게 옆구리를 빗나간 골반쪽을 세게 걷어찼다.
일어나는 도중에 차여 옆책상에 넘어지며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아프다.
"윽"
삼선쓰레빠가 교복에 자국을 내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옆구리를 걷어차 그대로 바닥으로 웅크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너도나도 발길질을 하는 듯 했다.
"너이새끼들 이게 뭐하는짓들이야!"
어두운 교복들 사이로 점차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선생님인가보다.
제일 강하게 차인 옆구리가 욱씬거리며 아프다고 아우성을쳤다.
눈가도 살짝 찢어졌나보다. 눈 근처 머리칼에 끈적한게 엉겨 손에 묻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렸나보다.
몇번이고 시도해도 일어나질 못하는 날 보자 선생님은 누군가에게 시켜 날 보건실에 데려다주고 오도록 지시했다.
나서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자 결국 반장을 지목한다.
선생님에게 티나지 않게 얼굴을 굳힌 반장은 결국 거친 손길로 날 잡아끌었고
보건선생님에게 맡겨두고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표정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유권이랬던가? 쉬었다 가. 여기 입실증"
"감사합니다"
당기는 얼굴을 뒤로하고 말갛게 웃음을 지어 감사인사를 해보였다.
어머어머 하며 호들갑을 떨던 보건선생님의 치료가 끝나고 보건실 입실 허가서를 받아
햇살이 잘 들어오는 맨 끝쪽 침대로 갔다.
살며시 이불을 들추고 눕자 의외로 푹신한이불을 가져다 둔 건지 온 몸이 침대에 파묻혔다.
이불이 내 정신을 침대로 끌어 당기는 듯 했다.
앞이 빙글거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
그동안의 피곤함을 여기서 풀었던건지 점심시간에 왔건만 벽면의 시계는 어느 새 두시간이 훌쩍지나
7교시가 시작된 이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쑤시는 건 역시 마찬가지지만, 움직이는것은 그래도 한결 수월했다.
수업이 있으신건지,어딜 가신 건지 보건선생님도 없이 나 혼자였다.
드르륵-
"선생님이세요?"
침대에서 나와 보건실을 둘러보다 뒤돌아본 내 눈에 들어온건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지호였다.
미련없이 도로 뒤돌아 창문 밖에 비치는 하늘을 쳐다봤다.
"야 오타쿠"
".."
"우리 엿먹게 그대로 두고 여기 피신해있으면서 편했냐?"
"..."
선생님의 의자가 있어 창문이 어둡게 되어 거울같은 면이 되어버린 부분으로 보이는 우지호는
무언가 심히 뒤틀린다는 얼굴을 하고있었다.
나가려는가 싶더니 문을 잠..근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비틀린 미소를 띄고 어느새 내 앞까지 와있었다.
멍하니 고개를들어 올려다보았다.
양 손이 붙들려 침대위로 거칠게 눕혀졌고 눈을 꼭 감았다 뜬 순간 온몸으로 나를 누르고있는 우지호가 보였다.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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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능끝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