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kerBell
엉키고 엉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조차도 모르는
각자의 이야기들이
조금씩 풀어졌다.
긴 시간동안 묵혀놨던 어색함도,
권순영이 없는동안 수십 번, 수백 번 다짐해왔던 내 마음도,
그렇게 하나하나 몽땅 풀어졌다.
별 거 없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큰 의미 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저 지금 내가 너와 마주앉아 있는 것 자체가
그리고 가만히 앉아 내 말을 들어주는 권순영이 좋았다.
-
한참을 얘기하다 문득 시간이 지난 걸 느끼고 밖을 바라보니 이미 어두워질대로 어두워진 하늘이다.
- 그나저나 벌써 캄캄해졌네.
- 니 얘기할 거 다 하고 이제 가라고 눈치 주는 거야?
- ㅋㅋㅋ늦었으니까 가야지.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잖아.
- 그냥 계속 붙잡혀 있으면 안 돼?
- 응, 안 돼. 얼른 가.
단호해진 내 말투에 입술을 삐죽 내밀며 천천히 일어나는 권순영이다.
그러다 문 앞에서 갑자기 나를 돌아보고는,
- 카톡할게. 0.1초라도 늦게 보면 다시 돌아오는 수가 있다.
- 아, 알겠어. 얼른 가, 제발.
- 오빠 간다.
문이 닫히고 다시 공허함이 온 집안을 채워버린다.
혼자에 익숙해졌었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내 마음은 더 크게 텅 빈 느낌이다.
알 수 없는 허무함에 쇼파에 털썩 누워 눈을 감자마자 카톡 소리가 울린다.
간 지 몇 분 됐다고.
늦게 보면 다시 돌아온다는 니 말이 우습다.
빨리 달려가 핸드폰을 확인하는 내 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온다.
[성이름 문 잘 잠가. 집 다 털리고 싶지 않으면]
[ㅋㅋㅋㅋㅋ말 참 예쁘게 한다. 그리고 어차피 털릴 것도 없어]
[니 책상 위에 내 지갑 있어. 안 털리게 보관 좀]
지갑을 놓고 갔다는 권순영의 말에
방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책상 위 한가운데에 검은색 지갑 하나가 있었다.
나이가 몇인데 칠칠맞게.
[연예인이 지갑 관리 철저히 안 하고 뭐하는 거야. 이런 걸 까먹고 다녀?]
[일부러 놓고 온 건데. 다음에 만나자고 할 때 너 빼도박도 못하게.]
-
그 이후로 다시 주말이 오기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아니 거의 쉴 새 없이 카톡이 왔다.
[일어났어?]
[응, 어제 대본 수정하느라 늦게 자서 지금 일어났어.]
[뭐해?]
[일하지. 곧 시작이야. 이따 끝나고 다시 카톡 할게.]
[언제 끝나?]
방송이 다 끝난 뒤에 카톡이 온 걸 알았다.
두 시간 뒤에야 답장을 보냈다.
[지금 끝났어. 이제 정리하고 집 가려고.]
오늘도 역시 정신없이 바빴다.
그저 집에 빨리 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정리를 하고 내려왔다.
언제 또 집까지 가ㄴ,
- 얽!!!!
갑자기 누가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묵직한 비명을 질렀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인지 확인하려 얼굴을 한껏 구긴 채 바라보니
웃고 있는 권순영이 서 있었다.
- 야, 너 뭐야? 여기 왜 있어?
- 그냥 근처 나왔다가 본 건데?
- 아, 그래? 타이밍도 참ㅎ..
- 타이밍 죽이지? 이왕 만난 김에 데려다 줄까 오랜만에?
데려다 주냐는 말에 당연히 데려다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걸친 것 없이 그냥 온 걸 보고 안되겠다 싶어서 둘러댔다.
- 아니, 나 오늘 무지 피곤해서 버스 타고 빨리 집 가서 쉴 거야.
- 마스크랑 모자 가져왔어. 걱정하지 마.
직접 말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귀신같이 알아챘다.
같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살짝 기뻤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그래, 그럼.
-
요즘 들어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나는 그래도 단단히 챙겨입고 나왔지만
권순영은 꽤 얇게 입고 나왔는데..
가수라 관리 잘해야 될 텐데 괜히 나 데려다 준다고 설치다가 감기 걸리는 거 아닌가.
자꾸 신경이 쓰여서 결국,
- 권순영, 내 꺼 입을래?
- 뭐야 드디어 벗어주는거야? 아까부터 계속 기다렸는데.
그럼 그렇지.
- 한 번 거절도 없이 넙죽 잘도 받는다.
- 당연하지, 니 성격에 두 번 권할리는 없어.
그렇게 애처럼 서로 투닥투닥거리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조금 천천히 걸어올걸 그랬나.
둘이 밖에 걸어 본 거 되게 오랜만인데.
너무 빨리 와 버린 것 같아서 피곤함은 어느새 가시고 아쉽기만 했다.
그래도 얼른 올라가라는 권순영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될 것 같았다.
- 데려다줘서 고마워. 너도 얼른 숙소 가고.
끄덕거리는 너를 보고 그렇게 집으로 올라왔다.
어김없이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다음엔 얇게 입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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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와서 미안해요ㅠㅠ 앞으로는 꼬박꼬박...열심히.... 중간에 기억하고 와 준 에스제로님 감사합니다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