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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날 네가 어떻게 할 건데."
"사랑해줄게요." 
"그게 다야?"
"그러면요?"









[세븐틴/규훈] 사랑과 강아지는 | 인스티즈










[규훈/ 사랑과 강아지는]









여기는,







[세븐틴/규훈] 사랑과 강아지는 | 인스티즈






 중국이라는 쓸모없이 땅덩어리만 넓은 이 나라에 익숙한 한국향토의 냄새가 뿜어져 나오는 곳, 코리아타운과 비슷하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이곳은 조금 특별한데... 그래도 따라 올래요? 싸게 해줄게.
여자도 남자도 있고. 술? 대마?.. 아아. 그런 거 좋아하시는구나. 푸흐, 알겠어요. 저만 따라오세요.








 한국의 향토냄새 라는거 사실 난 잘 몰라요.
여기서 남창으로만 지내왔거든요. 아, 지금은 몸은 잘 안 팔아요.

... 아쉬운 표정하지 말아요. 그 대신에 이거 어때요?
















쉼 없이 반짝이는 네온사인 덕분에 눈이 맵게 느껴지는 밤 골목. 그렇다고 정말 늦은 밤도 아니다. 10시가 조금 넘었을 걸.
보급형 코리안 타운으로 불리는 이곳의 이름은 없다. 그저 여기에는 본능에 미친 사람들만 존재할 뿐.
굳이 이곳의 이름을 붙이고 싶지는 않지만...그럼 하나 지어줘요, 당신이. 그거 좋다.



조금 큰길가는 평범한 서울의 홍대라는 곳과 비슷하다. 그 길에서 조금만 비틀어져 골목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유흥업소들이 눈에 띈다. 통 유리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아가씨들. 중간 중간에 보이는 근육질 몸매의 오빠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몸을 비틀며 있었다. 조금 예쁘고, 되는 애들은 호객행위를 하기도 했다. 가슴을 내밀고 팔에 부비며, 나 오늘은 아무도 안 샀는데- 따위의 영양가 없는 뻔하다 뻔한 멘트를 하면서 말이다.
물론 여기도 괜찮은데, 진짜는 따로 있다. 어음... 이건 에피타이져?

방금 그 거리에서 10분만 더 걸으면 길의 분위기마저 바뀌어 버리는,

큰길가에서 비추어지던 네온사인 간판의 불빛이 보이지 않고 누런색의 형광등이 주를 이루는 이곳엔 코를 찌르는 페로몬 향수와 대마초의 냄새가 기분 나쁘게 뒤섞여 진동을 한다. 여기가 보급형 코리아타운의 메인구역이다.

골목골목 나체로 쭈구려앉아 구식 장담배를 피우는 여자아이들이 보인다. 많아봤자 13살 정도. 앞에서 말했다시피 여긴 본능에만 충실한 곳이다. 법률과 문화가 없는 단절된 곳이기에 그들에게는 이 좁은 골목과 모텔이 세상의 시작과 끝이다.


그래, 지금 당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남자아이 같은 애들 말이야.












[세븐틴/규훈] 사랑과 강아지는 | 인스티즈





"저기... 약, 안하세요?"


오늘은 제가 좀 싸게 드릴 수 있는데...


밋밋한 눈매를 가지고서는 당신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그의 모습은 힘껏 뻗은 앞머리에 눌려져 있는 귀여운 형광색 비니에 그에게 조금 과하게 커 보이는 청자켓에 무릎주변이 힘껏 찢어진 청바지. 남자애 치고는 왜소한 체구에 걸맞은 작은 키.

아니, 키로 따지지 않아도 그는 그저 어려 보였다. 끽해야 15살 정도로.

당신은 웃으며 '약같은거 안 해요.'라며 받아쳤다. 그러자 그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며 아쉬움의 한숨을 푹 쉬고선 당신의 손을 꼭 잡아보였다.
이상할 정도로 하얀 손등이 마냥 차가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따듯했다.


"아아... 아쉽네요. 혹시 마음에 드시는 분을 찾으시면 저 골목에서 절 찾아주세요."



잡은 손을 놓지 않으며 턱 끝으로 좁아 보이는 골목을 가리켰다.


"이지훈이에요. 내 이름. 아, 혹시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면 절 찾아와요. 위로해줄게요."


당신은 매력 있게 생기셔서 그럴 리 없을 거 같지만요.

작은 새끼 여우같이 그 밋밋한 두 눈을 예쁘게 접으며 웃어보였다.
지훈은 청자켓의 소매를 매만지더니 당신에게 손을 흔들며 가로등도 없는 그 골목으로 빠지듯이 들어가 사라졌다.


















"아아. 씨발. 생긴 건 강간도 하게 생긴 새끼가 약을 안 한다네."

"네가 손님 보는 눈이 없는 건 아니고?"

"그런 걸까."


지훈이 아까의 수줍음은 어디가고, 잔뜩 날이 서서는 툴툴거리며 카운터에 앉아있는 사람의 맞은편에 앉아서 한숨을 푹 쉬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봐 형.


좁아 터질 듯 한 골목에 비슷비슷한 건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작은 가게처럼 보이는 곳은 색 조명이 지훈을 비추었다. 이 지역에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마약판매량을 자랑하는 곳, 윤정한의 가게이다.
여기서는 자부심 이라는거 차릴 것도 없지만.




여자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남자라고 하기엔 이목구비가 너무 예쁜 그 역시도 사창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특이 취향을 가진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게 생겨서는 한 번도 몸을 팔아 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라는 작자는 누구든 쉽게 건들지 못하는... 그 뭐랬나. 그래, 이 구역의 총 관리자였나.

쉽게 말해 우두머리지. 윗대가리. 그래서 그는 이런 큰 약장사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븐틴/규훈] 사랑과 강아지는 | 인스티즈



"그러게 굳이 나가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이지 형. 이런 곳에 나를 일하게 해줬잖아?

자훈이 살짝 웃어보이자 그를 비웃듯이 카운터만을 비추던 하얀색조명이 깜빡였다. 오늘 따라 졸려 보이는 정한의 눈이 조명에 따라 느리게 감겼다 떠지기를 반복했다.

눈 아파?

지훈이 조명을 흘끗 보더니 자신도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눈물이 찔끔 흘러 나왔다.


"조명 사올게."


지훈은 오른쪽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정한은 역시 아까와 똑같은 속도로 눈을 감았다 뜨며 지훈을 배웅했다.
짤랑. 흐릿한 날씨와 다르게 낡아 떨어진 문에 달려있는 종소리만이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지훈은 자신이 나간사이에 비가 오겠냐는 출처 없는 믿음을 마음속으로 다지고선 발을 가볍게 움직였다.

그나저나 여기 주변에 조명가게가 있었나?
















여름비가 무섭게 내린다. 가게 통 유리창으로 보이는 굵은 빗줄기에 민규는 한숨을 푹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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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는 어떻게 가나, 이거.

민규가 대걸레를 두 손으로 꼭 잡고선 온몸을 그에 기대며 통유리 창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 즈음 점장이 민규에게 말을 걸었다.


"现在回家也行。这些天老是下雨。"
(이제 집에 가도 돼요. 요 며칠은 비가 계속 오네요.)

"... 谢谢!"
(...감사합니다!)


송곳니와 함께 짧은 중국어를 내보이곤 허리에 꽉 묶었던 앞치마의 끈을 풀었다.
앞치마를 곱게 접어 주방 옆에 있는 좁은 직원 휴게실에 가져다 놓고선 자신의 가죽가방을 들어 등에 맸다.


"有雨伞吗?"
(우산 있어요?)


점장은 선뜻 가게의 천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민규를 보고선 우산을 내주며 물어봤다.

민규는 두 손으로 우산을 냉큼 받아 챙겼다.


한동안 안 썼던 우산인걸까. 쇠에 녹이 슬었는지 듣기 싫은 소리가 민규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아무렴 어때 빌리는 처지인데.

검은색 우산을 쓰고선 가게천막을 드디어 벗어나왔다.
분명 출근 했을 때는 날씨가 맑다 못해 더웠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민규는 괜스레 어두운 날씨에 기분도 어두워 졌다. 이럴 때는 노래를 들으며 가야하는데 마침 이어폰이 가방에 있었다는 사실을 민규는 뒤늦게 생각 해냈다. 아 맙소사.

그저 이어폰을 꺼내기 귀찮았을 뿐이라며 민규는 자신의 청바지 속에 있던 아이폰을 꺼내 들었다.

우산에서 튕겨져 나오는 빗방울들이 휴대폰 액정 위에 앉았다. 그에 신경 쓰지 않는 듯 한 민규는 액정 위를 몇 번 두드리더니 휴대폰에서 작게 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리운 한국어가 영화처럼 아무도 없는 타지의 길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듯싶었다.

'강변북도 위를 달려서 지금 너에게 가고 있어.'

민규는 가벼운 허밍을 흘리며 찰박이는 걸음들을 이어 나갔다. 자신의 집으로.








"아 씨...설마 했더니."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더냐. 지훈은 양손에 조명을 하나씩 들고선 조명가게의 천막밑에 멍하니 서있었다.
비가 오는 것을 구슬픈 눈으로 보며 날씨를 탓하던, 아까 정한의 가게에서 우산을 안가지고 나온 자신을 탓하던 이 비를 멈출 도리는 없다. 그걸 아는 지훈은 더 답답한 마음에 천막에 둔탁한 소리를 내는 빗방울들의 화음소리만 듣고 있었다.

하필이면 오늘 '그 거리'에 있던, 자신과 굉장히 친한 형인 지수의 공구상이 문을 닫았다.

지수는 항상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 일주일에 두세 번 꼴로 여자를 한두 명씩 대리고 와선 룸을 빌리곤 했었다. 오늘도 여자를 꼬시러 가셨는지 가게의 문을 꽁꽁 잠가놨더랬다.

지수의 가게에서 허탕을 친 지훈은 애꿎은 문에게 화풀이를 하고선 결국 큰 길로 직접 걸어 나왔다.
그 거리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이런 경우는 지훈에게 흔하지 않았다. 무언의 룰 같은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몇 벌 없는 찢어진 청바지와 중국인과는 확실히 다른 이목구비, 화려한 머리색이 쪽팔렸을 뿐 이였다.
나갈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친구인 순영에게 떠맏기는게 다반사였다.
그런 사람이 날씨가 좋을 때에도 나올까 말까인데 더군다나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까지...

지훈에게는 오늘이 최악의 날이 될 것만 같다.













'네가 불안할 땐 힘껏 안아줄게. 맘껏 울어도 돼 괜찮아.'


지훈이 그저 계획 없이 비에 유일하게 젖지 않은 땅에  무릎을 끌어안고 주저앉아 멍하니  있을 때, 조금 멀리서 들리는 한국어로 된 노랫소리가 지훈의 정신을 깨웠다.

굉장히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에 절로 시선이 노래가 들리는 쪽으로 옮겨졌다.
비로인해 흐릿한 시야 속에 보이는 건 훤칠해 보이는 길이가 전부였다.

지훈의 근처까지 걸어온 그가 결국 지훈의 불같은 시선을 눈치 챘는지, 지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친 빗방울 사이에서 그들은 짧지 않은 정적사이에서 눈을 마주했다.
지훈은 한국인이냐고 말 한마디 건네다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못된 말 이였다. 아쉽게도.

뭘봐 새끼야.


"지금 저 보고 말한거에요?"

"그럼. 누가 있냐, 여기에 한국인이."

"...그러게요. ...누구 기다리세요?"

"알 바야?"

"같이 가요. 어디 살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한 맑은 눈동자가 젖은 앞머리사이로 또렷하게 보였다. 왜인지 그 눈동자 속에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비추어보이는듯 한 기분에 지훈은 날카로운 말만 뱉었고, 그에 아무렇지도 않는다는 듯 말을 곱게 무시하고선 지훈에게 한 발짝 두 발짝 다가왔다.

어디에 산다고 해야 할까. 씹창가? 아니면…….

지훈이 눈을 곱게 감고 고민하는 그 사이에 민규가 코앞까지 다가와 가로등을 가렸다. 옅은 그림자가 졌다.

그 그림자가 눈을 스치며 지훈은 눈을 떴고, 그 눈에 보이는 건 민규의 웃고 있는 얼굴과 송곳니였다. 뭐가 좋아서 이까지 활짝 내보이며 웃고 있는 건지.


"나 어차피 퇴근하는 길이라 근처까지 대려다 줄게요."


한국인을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는 바보 같은 이유 때문이란다. 뭐가 모자란 아이는 아닌 거 같은데.
지훈에게 내밀어진 민규의 투박한 손을 툭 치고는 일어났다.

우산 속에 빠르게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제야 안심한다는 듯 그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지훈의 어깨에 자연스레 손을 올렸다.

어디까지 모실까요?



"그 거리 알지? 근처 씹창가."

"...비 오는데 즐기러 가시나 봐요?"

"아니. 나 거기서 일해. 남창은 아니고."



순간 그의 표정이 굳었다.
지훈은 표정관리가 안됨을 확인하고 오히려 덤덤했다.
그래, 씹창가에서 숙식하는 나에게 뭔.

손에 들린 전구를 꽉 쥐었다.

지훈의 어깨에 올려진 민규의 손에 힘이 빠져감이 느껴졌다.

그 반응이 재밌지도 않은 듯 지훈은 그저 땅만 보고 걸었다.
천이 조금 찢어진 지훈의 운동화의 코가 흠뻑 젖었다.
한참을 침묵의 우산 속을 유지하다가 익숙한 가게의 네온사인이 보이자, 지훈이 그 침묵을 깼다.

여기야.


"한번, 한번 놀러갈게요."

"지랄. 술도 안할 것 같은 애기가."

"애기라뇨!"

"오지마, 여기. 다시는 보지 말기로?"


고마웠어. 우산남.

지훈이 일할 때 쓰는 예쁘장한 웃음을 보이며 민규의 어깨를 툭툭 치고선 우산 속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두 명이 들어오기엔 좁았던 우산이 지훈이 나감과 동시에 넓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던 민규는 괜스레 죄 없는 콧잔등을 긁었다. 우다다 뛰어가는 뒤통수가 다 사라지기전에 발을 옮겼다. 집으로, 자신의 집으로.
우산남이라니. 이름이라도 알려줄걸.


"그래도 웃는 거 예쁘더라. 아까."


벌써 운동화가 흠뻑 젖었다. 집에 어서 가서 쉬고 싶었다.
운동화 때문도 아니고, 그냥 오늘따라 피곤했다.














"어디 다녀왔어?"

"전구 사러. 나갈 때 말했는데."

"올 때가 지났으니까 물어봤지."

그러네. 어쩌다 보니까.

지훈은 짧게 말을 줄이며 정한의 카운터책상에 새로 사온 전구를 올려두었다. 아직도 전구는 바쁘게 깜빡였다.
정한에게 잠시 옷좀 갈아입고 오겠다며 문고리를 잡는 순간, 정한이 급하게 말을 걸어왔다.

왜요.

너 최승철 알지.

급격히 지훈의 숨소리가 줄어들었다.


"승철이가 너 좀 보자는데..."

"안가요. 내가 왜,"

"...너 안 오면 거래 끊어 버릴 거래.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


최승철. 그 세글자는 지훈의 치를 떨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는 가게의 거의 유일한 물자 보급원이였다.
그와 더불어 윤정한에게 손을 대려고 했던 유일한 사람이였고. 그래서 지훈은 더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지훈에게 들리는 소문으로는 기괴한 섹스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남여 상관하지 않고 매일 파트너가 바뀌는데, 그 파트너를 다음날 볼 수가 없다- 와 같은 것들인데. 그게 또 거짓이 아닌 게, 하루 만에 최승철에게 돌아온 정한의  몸엔 붉은 자국이 많았었다. 지훈에겐 그저 맞았다고 했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는 그저 사람을 이용해 거래를 해왔었는데...

하필. 승철은 지훈을 불러냈다.


지훈은 생각이 많아졌는지 한참을 문고리만 잡고 서있었다.
비가 아직도 내리는지 거친 비바람이 그 문을 열어달라는 듯이 두드렸다.
정한이 긴 머리를 긁적이며 결국 말을 끝맺었다. 그러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하기 싫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지훈은 그저 아무 반응 없이 듣기만 했다.


"내일 오후 6시에 저 거리 앞이야."

"..."

"...늦지 않게...  미안해, 지훈아..."

"..."


지훈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정한의 우울한 정수리를 보고도 어떤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어떤 인사도 없이.

아, 이놈의 비.

아무생각 없이 딛은 발걸음으로 찢어진 운동화에 질척거리는 진흙이 잔뜩 묻었다. 물웅덩이에 쏟아지는 빗방울과 누런 가로등빛 사이로 흐릿하게 지훈의 얼굴이 비추어 보였다.

그의 얼굴은 진흙보다 더 어두워보인다.
시발. 지훈의 긴 앞머리가 비에 젖어 자꾸 눈을 찌르는 게 거슬렸는지 대충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지훈에게는 최악의 날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출근도 하지 않고 단칸방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집에 누워만 있었다.
배가 고프니 밥을 해먹었고 졸리니 미루어 놨던 잠을 잤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것도 하지않고 집을 나섰다. 승철과 만날 시간이 10분정도 남음을 방시계로 확인하고선 말이다.
오랜만에 꺼내 입은 단정한 바지가 자꾸 밑으로 내려감이 느껴져 신경 쓰였다. 살이 빠졌나.

자신의 집에서 나와 큰길로 나오기까지 정확히 10분이 걸렸다. 저 맞은편 시계방에 있는 시계의 시간이 올바르다면 말이다.
지훈이 큰길로 나오자 크고 반짝반짝한 새 차가 보였다. 이 거리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왠지 회장님이 탈 듯 한 외제차. 그 차를 본 지훈이 익숙한 듯 뒷좌석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까맣게 잘 코팅된 창문이 무겁게 내려가자 승철의 밝은 미소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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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아 오랜만이다?


여자같이 긴 속눈썹과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정장이 왜인지 낯설었다.
그러게요. 존나 반갑네요.

승철이 들어오라며 창문 넘어 손짓을 했다.


"뭐 마실래? 아니면 뭐 줄,"

"본론은요."

"새끼. 재미없게."


갑갑한 차안공기가 지훈의 마음속을 더 어지럽혔다. 그저 어서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승철이 그런 지훈을 귀엽다는 듯 보다 헛웃음을 쳤다.

자신의 목을 죄고 있던 넥타이를 조금 잡아당겨 헐겁게 만들었다.


"그래. 지훈아. 나랑 한번만 잘래?"

"...씨발. 뭐라고,"


지훈이 인상을 팍 쓰며 차문을 열려 들자 승철이 지훈의 뒷목을 잡아당겼다.

지훈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손톱이 파고들어 아팠다.


"형이 요즘 돈이 없어서 놀러갈 돈이 없네?"

"..."

"그래서 협박이란 걸 좀 하려고. 형이랑 안자면 네가 그렇게 아끼는 정한이형이랑 거래 끊을 거야."


그렇다. 지훈은 어느 정도 예상과 마음정리는 하고 차안에 들어왔고, 승철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정한의 시무룩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며, 그래도 한번은 해봤으니 상관은 없을 거라며 지훈은 다시 복잡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꾹꾹 누르며.

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승철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나와야지.
승철이 지훈의 입을 뒤에서 손수건으로 막았다. 놀라 큰 숨을 들이쉬자 눈앞이 순간 밝아졌다 어두어졌다를 반복했다. 쥐뿔도 안 먹힐 반항이 순간 이루어지다 손이 툭, 떨어졌다.


그렇게 지훈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민규와 지훈의 만남이 있던지 딱 일주일이 흘렀다. 그리고 이날, 딱 일주일전 날씨마냥 비가 내렸고 민규는 그날과 똑같은 곳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날과 다른 점은 딱 하나.  

민규가 우산을 준비했다는 것.
 

민규는 일주일전 많은 일이 있던 것도 아니였고, 일주일동안 바쁘게 지낸 것도 아니였는데 지훈과 있었던 일과 시간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민규는 가득한 손님들 사이로 보이는 빗방울에 문득 지훈이 생각났다.

그저 아무생각 없이 그를 생각하고, 아무생각 없이 그 거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름 석 자도 제대로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 이 넓은 거리에서 그를 찾을 방도는 없었다.

민규에게 치대는 여자가 부담스러웠고 통 유리창으로 보이는 속옷만 입은 남여의 모습에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해매다, 결국 어지러운 거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러고 드는 생각.

'그래. 내가 그 형을 찾아서 뭐하게?'


깔끔하진 않지만 간단한 민규의 생각은 놀랄 만큼 금방 정리가 되었다. 그래 그들의 관계는 이정도 까지였음을 그는 인지함이 분명했다.

무의식 결에 자신의 꼬라지를 확인하다 바지가 눈에 띄었다. 뛰어다닌 것도 아니였는데 청바지가 빗물에 더럽혀져 있었다. 아 이거 어제 빤 거였는데.
민규는 옅게 욕을 흘리고선 다시 집으로 몸을 돌렸다. 뭘 바랐을까 나는.

오늘따라 가는 길마다 진흙 이였다. 민규가 짜증을 잔뜩 내며 바닥만 보고 걷는데 민규의 시야에 검은색 컨버스화가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확인하자 익숙한 실루엣 이였다.
지훈이였다.

지훈은 고개를 다리사이에 푹 묻어 잘게 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봤을때보다 훨씬 더 초췌해보였다.

잔뜩 찢어진 소매라던가, 목에 보이는 피멍... 잠깐 피멍?

민규는 우산을 지훈쪽으로 숙이며 다리를 접어 지훈과 시선을 맞추려 했다.


"형? 저번에 우리 봤죠. 무슨 일 있어요?"


민규의 다급한 목소리에 지훈이 어깨를 크게 움찔거리며 고개를 들어 보였다. 얼굴은 찢어진 소매보다 더 가관이였다.

눈은 울었는지 퉁퉁 부어있고 목은 무언가에 조여 있었는지 목 주변이 붉은 자욱이 짙게 남아있었다. 입가는 찢어져 딱지가 앉아있었고 무엇보다 비에 젖어있는 앞머리가 그를 더 초췌해보이게 하는 듯 했다.


"무슨 일 있죠. 뭐에요. 뭔데 여기서 비 맞고 있어."

"저번...에... 그 꼬맹, 이..."

"형!"
]

지훈이 흐린 시선으로 민규의 얼굴을 확인하다, 다시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민규에게 온몸을 던지듯 쓰러졌다.
차가운 몸덩어리가 신경 쓰여 떨어진 우산을 다시 줍지 않은 체 지훈을 안아 올리고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평소와는 다른 이불의 감촉에 지훈이 눈을 스르르 떴다.

허리에 느껴지는 매트릭스의 폭신함이 달라서도 있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이 승철의 집의 천장도, 자신의 집의 천장도 아니였고.

지금 자신의 발치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사람의 뒤통수는 누가 봐도 승철이나 정한은 아니였다. 둘 다 이렇게 밝은 갈색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러면... 흐릿한 자신의 기억을 되짚을 때쯤 민규가 곡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한참을 하품을 하다가 그제야 지훈을 확인하고선 호들갑을 떨었다.


"형! 일어났어요? 좀 괜찮아요?"

"아으으... 내가 왜 여기 있어..."



시끄럽게 구는 민규를 뒤로한 체 머리를 두 손으로 쥐어보였다. 어지러워.
지훈의 좁디좁은 미간을 보더니 민규도 그제야 전후 상황을 설명했다. 조금 정신없게 설명했어도 알아들을 순 있었다.

지훈은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고 한참을 눈을 감고선 생각을 곱씹더니 하는 말이.


"... 그래서 여긴 네 집이고."

"네."

"내가 누워있는곳은 네 침대고."

"그렇죠."

"넌 여기서 쭈그려서 잤고."

"그렇게 되는 거죠."

"호구새끼."


퍽. 민규의 머리통을 지훈의 주먹으로 휘갈겼다. 억울한 강아지 같은 표정을 하고선 지훈을 또랑또랑하게 쳐다보았다.

형... 아파보여서... 그래서 그랬는데...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는지. 지훈은 피식 웃으며 한껏 귀가 축 처져있는 머리통을 쓰담으며 그런걸 보고 호구라 하는거야.


"그나저나. 이제 말해줘요."

"뭘."

"왜 거기 있었는지. 몸에 상처랑."


지훈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은데, 물 좀 가져다 줘.











지훈은 어금니를 계속 깨물어 흐린 발음으로 말을 해나갔다.

불안한 건지 계속 팔을 손톡으로 긁어댔다.

피부가 붉게 부어오름에도 계속.


최승철이 자신을 불러내어 강간을 했다.

정말, 정말 싫었는데 어쩔 수 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동안 갇혀 살다 겨우 빠져나왔다.


라는 어두운 이야기를 나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계속 심호흡을 해가며 말을 해 나갔으나 물기 젖은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나, 이제 정한이형 얼굴 못 볼거 같아... 나,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 이제 뭐하고 살지?

사창가에서 나고 자라 할 수 있는건 말하고 쓰고, 끽해야 손님을 조금 끌어다 모으는 것. 그것조차 잘 하지 못했는데,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서 살아야 할지도, 아무것도 정할 수 없었다. 그에겐 선택지같은건 없었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선택지는 없었다. 그저 사는 게 우선 이였으니까.
거리를 벗어난다는 최후의 선택지같은건 있었지만, 지훈에겐 자살과 다름이 없었다.

거리가 아닌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아니. 난 사창가에서 태어났으니까. 어느 누가 날 좋아라 하겠어."


물기 젖은 목소리는 눈 까지 번져 주체할 수 없는 우울감을 만들어냈다. 지훈은 이불을 말아 올려 품안에 안았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민규는 크게 흔들리는 지훈의 등을 한참을 보다 침대위로 올라가, 몸을 작게 말고 있는 지훈을 온몸으로 껴안았다.
민규의 어깨에선 이불보다는 옅은, 민규의 냄새가 났다.

조금 퀴퀴하지만 꽃향기 같은 게.


"제가, 제가 형 좋아라 해줄게요. 그니까... 네?"


왜 네가 울어. 병신아.

흐어엉 하고 바보같이 우는 민규의 울음소리에 지훈은 눈을 살포시 감으며 머리를 쓰담았다. 진짜 강아지 같네.

자신에게 온몸을 맏기고있는 민규가 꽤나 무거웠는지, 민규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제야 코를 훌쩍이며 지훈에게서 떨어졌다. 귀여워. 민규의 코를 아프지 않게 손으로 꼬집었다.


"그래서 날 네가 어떻게 할 건데."

"사랑해줄게요."

"그게 다야?"

"그러면요?"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민규는 예상치도 못한 반응에 조금 당황한 듯싶더니 허겁지겁 일어나 집안 곳곳을 뒤지더니 통장 몆개를 꺼내와 지훈의 앞으로 가져왔다.






나랑 한국가자.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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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이건....너무나 감사해♡
7년 전
비회원210.223
아ㅜㅜ 너무 좋아요. ㅜㅜ
7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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