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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드디어 의미있는 외출을 하는 첫 날이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사실이 기쁜 삼촌은
좋은 선생님을 모셔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설레는 첫 발, 스무살.
배우려면 늦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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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려면 늦겠네요. "
" 네 ...? "
" 피아노 한번도 쳐 본 적 없다면서요. "
" 그렇긴 하지만 ... "
" 그래도 코드정도는 배워왔을 거 아니에요 "
" 아 ... 아니요? ... "
" 그럼 이거 풀어봐요. "
되게 부정적인 이 선생님은 첫 마디 내뱉을 때 부터 사람 자존감을 짓밟더니,
코드에 대한 이해도 없는 나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A4용지 하나를 내밀었다.
장음정 단음정 쉼표가 어쨌고, 잇단음표가 어쨌고... 무슨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기 ...선생님 ..."
" ..."
" 모르겠는데요 ... "
" 풀 수 있는 것만, "
" 풀 수 있는게 없어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
" ... 하 "
" ... "
" 당분간은 피아노 치지말고 두시간 다 이론으로 합시다. "
" 그치만 저는 피아노를 배우러 온건데요. 이론은 피아노 치면서 배우는 거 아니에요? "
" 그러는 김탄소씨는 하나도 안 돼 있잖아요.
6살 짜리 꼬마아이도 피아노 배우러 가면 손가락 번호부터 배워요. 무작정 띵가띵가 치는 게 아니라. "
" ... "
삼촌은 거짓말쟁이다. 저런 까칠이가 좋은 선생이라니.
모르면 차근차근 알려주면 될 것이지, 무작정 문제를 풀어보라질 않나 ( 분명 나를 쪽주려고 그런 것 같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온 사람에게 이론만 하겠다고 하지를 않나.
진짜 확실한건 저 사람 첫인상이 완전 별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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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민윤기에요. 25살이고 누굴 가르쳐 주고 할 성격은 못되지만,
피디님 도움 많이 받는 사람으로써 받은 부탁이니까 열심히 해봅시다. 선생이라는 호칭은 안해도 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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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어땠어 , 탄소야? "
하지만 내 이십평생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하루만에 선생을 바꿔달라느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어 삼촌, 사람은 왕별론데 괜찮은거같아. 잘 배울게. "
"하하하, 되게 똑똑한 사람이야. 음악도 잘하고. 언제 같이 만나서 밥 먹자. "
"응 삼촌, 안녕! "
전화를 잡아 던지고 내 몸도 침대로 던졌다.
" 그래, 내가 찬물 더운 물 가릴 처지가 아니지 뭐, "
" 니 팬티나 가려. "
" 어 ? 뭐야. 언제 왔어 ? "
" 방금. 찬물 더운물은 무슨소리야 ? "
"아, 야 이리와봐. 내가 오늘있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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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그 잘난사람 이름이 뭔데 "
"민윤긴가 개윤긴가 그래. "
" 와 씨발 "
" 그치 진짜 왕너무 하지 않냐 ? "
" 존나 니는 병신이냐 진짜로 ? "
" 어...?"
"아니 진짜 와 김탄소 멍청한 건 알았는데 이번 건 심했다. "
"왜 ... ? '
" 와 진짜 와 ... "
" 아니 그니까 왜 ... "
"와 진짜 와 ... "
" 왜그러냐고 진짜 개새끼야 !!!! "
감탄사만 연발 해대던 김태형은 배게로 쳐맞고 나서야 이유를 입에 담았다.
"민윤기 트리오 모르냐? 재즈 할거라매. 것도 모르고 가면 어떡해 "
" 되게 대단한 사람인거야 ? "
" 그래! 천재야 그사람은 ! "
" 치 넌 되게 뭐 알고 말하냐 ? "
" 당연하지 ! 너보다는 잘 알 걸 ? 색소폰 분 세월이 얼만데 ! "
아 김태형도 음악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색소폰은 아주 멋진 악기라며 자랑자랑을 했지만
보여달라고 했을 때는 이미 좀 퇴화된 실력이였다.
이후에는 EDM으로 재창조해서 막 불어댔었다.
" 잘 불지도 못하는게 ! "
"뭐,.. 뭐? 뭐? 하! 췌 ! 하... 이씨 ... "
그렇게 태형이는 문을 박차고 우리집을 떠났다.
이후 나는 서양수박에 민윤기트리오를 검색했다.
진짜 그 이름으로 된 음원이 많이 있었다. 하트 수들도 왕 많고.
나는 그 노래들을 모두 재생목록에 담았다.
하나같이 다 너무 좋은 곡들이였다.
엄청 큰 바이올린 같은 악기랑 드럼소리가 들렸다.
사람은 이렇게 까칠해도 피아노 선율은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