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같은 선배와의 전쟁
by. 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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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주 간단하게 얘기하지, 고등학교라는 큰 언덕을 오르면 꿈과 로망으로 가득 찬 무릉도원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언덕을 오를 동안엔 목숨도 바쳐 죽어라 달려야 하지만 저 무릉도원의 앞자락에 닿으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누누히 말씀들을 하시지. 그리고 지금 딱 이 상황에 떠오르는 생각, 총 199999분의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3가지. 1순위- 시벌, 언제 끝나냐. 2순위- 세상 한 번 살기 존나 힘드네. 3순위- 그저 물 흘러가는대로 사라질까. 전체적으로 브리핑해보았을 적엔 무릉도원에 도착하면 꿈과 로망이 펼쳐진다는 그런 개잡소리적인 문장들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사라져야한다고 나뿐만 아니라 이 테이블에 앉아있는 모든 학생들이 입을 모아 수긍할 것이다.
" 야, 마셔. 마셔. 마셔.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아직 초저녁이라고."
" 선배, 새내기 그만 잡고 일어납시다. 시간이 몇시긴 집에 갈 시간이에요."
" 민윤기, 어쭈바리. 많이 컸다. 내가 이 새끼를 3학년때부터 봤는데 아주 잘 자랐어."
" 저 20살 민윤기 아닙니다. 신체검사 1급 받은 건장한 사내라고요."
이름, 민윤기. 말술이라더니 순 개뻥이다. 술 못 마실 것처럼 생겼다더니 의의로 잘 마시는 내 모습에 심히 감동을 받아 주구장창 술잔을 들이밀던데 졸업반 선배와 서로 부둥켜안고서 정확히 저 4마디만 30분째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명문대라더니 학생들 모습은 어느 학교나 다 똑같구만. 난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과외란 과외, 학원이면 학원.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3년을 죽어라 달려왔다. 그렇게 한 결과로 장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목에 달고 입학했다. 모두들 나를 보면 장하다면서 칭찬했다. 내가 만약 이 대학교가 아닌 다른 곳을 갔더라도 그렇게 대우해줬을까. 헛웃음이 났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그지같은 나라는 어찌된 게 대학교로 사람들의 순위를 매긴다. 난 그 점이 아주 좆같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국가에 이게 가당키나 하는 말인가. 그래서 내가 카스트제도 아닌 이 신분제를, 이 미친 세상을 바꾸기 위한 그 의지 하나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호프집 문이 열린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한 듯 종소리가 잠시 내 귓가에 울렸다. 윤기 선배가 반갑다며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냐면서 칭얼댔다. 방금 들어온 저 사람은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밖에 나갔다 들어왔을 뿐 술자리가 시작될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몇 안 되는 선배들 중의 하나다. 물론 나와 같은 과는 아니고 다른 학과로 옆 테이블에 연석으로 앉아있었다. 반듯한 외모라 굉장히 사근사근할 줄 알았는데 정확히 헛다리 짚었다. 겉으로는 평범해보이지만 은근히 성격 있는 그런 뭐랄까, 좋게 말하면 차가운 이미지이고 나쁘게 말하면 싸가지의 정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애매모호한 느낌이다. 방금 전엔 잘 웃기도 하더니 밖에서 하고 온 통화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인상을 한껏 구기고 들어오는 꼴이 가관이었다.
"솝, 어디 갔다 왔어? 한참 기다렸잖아. 너땜에 게임도 못하고."
"솝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술 좀 작작 처먹어, 정신도 못 차리는 게 게임은. 니네 과 애들이랑 해. 우리 과는 빼고."
말투하고는, 아주 제멋대로인 성격에 허를 둘렀다. 항상 그를 보면 드는 생각이지만 인상부터 마음에 안드는 게 다른 학과 선배라 마음을 편히 놓았다. 그 선배는 일이 있는 듯 급하게 의자 뒤에 걸려져있던 가방을 뒤지며 자리에 앉았고 주도자인 윤기 선배를 따라 술 게임이 다시 시작됐다. 게임을 시작한 지 어엿 30분이 지나고 술을 아예 못 마시는 태형 선배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멸했다. 괜히 승리자가 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주변을 둘러보다 태형 선배하고 눈이 마주쳐 살짝 미소지었다. 선배의 다정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너랑 내가 단둘이 해치워야하는 쓰레기들이야, 나한테만 맡기고 튀면 알지. 암묵적인 신호였다. 어제 친구들과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너구리, 해물라면, 나가사키 얼마나 다채로워 새끼야.
맞습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 고래고래 술고래, 꿈나라에 상륙한 잠충이 얼마나 다채로워, 시발. 이마에 손을 짚었다. 차라리 잠 자는 인간들은 조용하기라도 하니 그나마 버틸 수 있겠는데 저 망아지들은 어찌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야구방망이를 들어 대가리에 내리쳐서 기절시키는 단 한가지, 신의 한 수밖에, 딱 그거 하나....... 그 순간 쾅하며 테이블에 맥주잔을 세게 내려놓는 한 인간때문에 호프집이 조용해질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성격 하난 존나 지랄맞네, 정호석.
아, 선배라는 명칭을 깜빡해버렸다.
"수준 차이나서 같이 못 있겠네."
시끄러웠던 술집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수준차이? 어이가 없었다. 같은 학교 재학생끼리 수준 차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동등한 하늘 아래 같은 사람끼리 수준차이? 자기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준이 차이나서 못 있겠다는 말을 지껄이는거지. 태어나 어느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 번 들어보며 산 적 없었다. 우리 학교가 다른 대학교에 비해 심리학과를 더 밀어주기도 하고 많은 인재들을 배출해 짱짱한 선배님들까지 있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과도한 자부심 아닌가. 술 기운도 살짝 도는 게 더 이상은 다른 선배님들처럼 가만히 참고 있지는 못하겠다.
" 뭐요? 수준차이라고 말씀하셨어요? "
"그래, 수준 차이."
직면으로 당당한 얼굴을 마주치자 속에 들끓던 화가 더 끓어올랐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하지만 아직은 때가 이르니 꾹꾹 눌러참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입에 장착하고서 말을 이어나갔다.
" 사과하세요. 같은 재학생끼리 수준 차이라는 건 좀 심한 거 아닌가요? "
" 사과라.... 어떤 게 네가 원하는 사과인데. 무릎 꿇는거 아니면 말로 그냥 미안하다고 하는 거? "
"................"
" 그것도 아니면 맥주 한 병 더 시켜주면 되나? 이모, 여기 맥주 1500cc 두 잔요."
" ................"
" 마음에 들어? "
그가 웃었다. 이는 비웃음의 상징이기도 했다. 태형 선배가 결국 자리에 서 있던 채로 얼이 빠져있던 나를 자리에 앉히고서 정호석 그 인간에게 다가갔다.
" 호석아, 왜 그러냐. 쟤가 좀 술이 취해서 그래. 워낙 다혈질이기도 하고 좀 봐줘라. 우리가 많이 시끄러웠기도 했고, 내가 대신 사과할게."
" 경영이면 경영답게 놀자, 태형아. 학교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아무 잘못도 없는 태형 선배가 나 대신 사과하는 모습에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랐다. 저새끼가, 결국 입에 머금고 있던 안전장치를 제거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호석 선배에게 아주 가까이, 그 앞에 다가섰다.
" 그럼 심리학은 심리학대로 놀으셔야죠. 듣는 사람 기분 더럽게 그게 뭡니까, 미래의 상담사가 될 분이."
" 야, 미쳤어 정시우."
" 태형 선배, 이건 아니죠. 아버지가 이사장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거들먹거리는 거 굉장히 거슬리거든요. 갑질 그만하시죠, 선배님. 소문으로는 선배님께서 이런 소리 듣기 싫어하신다는 말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던데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즐기시는 것 같은데요."
" 그래서? "
" 그래서라니요. 경영인이면 경영인답게 놀으시라고 조언해주시길래 나중에 상담사 하셔서 돈 버시면 저한테 전화하시라고요."
테이블에 있던 호석 선배의 폰을 집어올렸다. 잠금화면을 풀어달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한껏 오기를 부렸다. 제가 자금 관리 아주 잘해드릴게요. 선후배 사이로 디스카운트도 해드리고요. 선배가 어이없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골 때린다며 태형 선배가 머리를 짚는 게 눈에 선했다.
" 아직 서툴러."
" .................."
" 혹시 모를까봐 해주는 말인데 진짜 경영인이라면 패를 보여줘선 안 돼, 상대방이 넘어오기 전까지. 너처럼 그랬다간 눈치싸움에서 발려버리거든."
한 방 먹었다. 역시나 했는데 그는 우위었다. 소위 저 사람 말대로 감히 까불다가 발려버렸다.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던, 그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었다. 공부로나 말싸움으로나. 좆됐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술이 터져 피 맛이 비릿하게 입 안에 맴돌았다.
" 멘탈이 살짝 위태로워보이는데 상담 필요하면 연락해. 최고의 상담사가 되어 줄 자신 있으니까."
호석 선배는 내가 그 전에 자기에게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 남자새끼가 되어가지고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주지 않고 뻐기는 건 그 이상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선배님이 그렇게 요구를 하시는데 뭔들 못 하겠습니까, 잠금화면을 풀어 당당하게 다이얼을 그에게 넘겼다.
" 아, 심리학은 심리학대로 놀으라길래 한 번 그렇게 놀아보려고. 어떤 패기 넘치는 갓병아리가 그렇게 조언해주더라, 겁대가리 상실해서는."
뒤이어 나오는 말은 훨씬 보다 더 가관이었다. 보기 좋게 완패당했다. 마치 남한과 북한의 만남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서로 불바다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첫만남은 엿같았다.
- X 같은 선배님과의 전쟁 -
Coming Soon
신년을 맞아 새로운 작품을 질러버렸습니다........ 한 작품이라도 잘해야 할텐데 말이죱 ㅠㅠㅠㅠ
그리고 저는 절대루 대학교의 어느 학과도 편애하지 않습니다. 모든 대학생들을 존중해요★
혹시 오해하실까봐........
기존에 호구 IN 남사친의 탄님들(= 암호닉분들)은 제가 모두 기억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찾아와주세욧♥!!!!!!!!!!!
♥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저의 글은 항상 읽어만 주셔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