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보고 싶었어
w. 엔돌핀
분명, 그렇게 얘기했다. 나를 보고 싶었다고.
그 사람도, 내가 보고 싶었다고.
뭐?
그의 대답에 일순 애틋한 감정을 비집고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현실로 끌려나왔다.
분명히 자기도 날 보고 싶었다고 했어.
왜? 나도 그 사람을 모르고 그 사람도 날 모를텐데.
근데 난 애초에 보고 싶었단 말을 왜 한 거지?
현실 사람한테 그랬으면 난 진작 미친 년 취급 받았을 거야, 하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1월이라 찬 바람이 코를 뚫을 듯 불어왔고, 그에 감각이 얼어붙는 건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 중인 내 몸뚱아리뿐이었다. 미안하다, 이런 주인이라. 너한테까지 피해를 주는구나. 아, 그냥 확 죽어버릴 걸 그랬나.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지면서 바라고 기대하는 법을 잊어버린 나는 삶의 지속에 대한 욕구가 미약했고, 살면서 누리는 기쁨보다는 삶을 끝냄으로써 느끼는 해방감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하지 않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긍정을 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을 시도 따위는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쓰잘데기 없이 감정 깊숙히 자리잡은 두려움에 구차하게 발목을 잡혀있는 중이었으니까.
그래, 한심하겠지. 현실을 바꾸려하지도, 그렇다고 죽을 용기도 없는데다 스스로를 인생의 패배자라 생각하는 잉여 인간한테는 한심하단 표현도 모자랄 테다. 아, 인생 험난하다. 이 험난한 인생 얼마나 더 살아내야하려나.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하고, 버텨내야한다는 걸 느낀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즐겁게 지내긴 글렀다는 걸 깨달은 게. 그래서 설렁설렁 살기 시작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내 일이지만 남의 일을 보는 것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나한테도 무심한데 남한테라고 다를까. 공감을 쏙 빼먹은 채 말하고 행동하는 나를 지켜보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내가 그은 선 안에 나만 존재하게 만들기, 다른 변수는 생길 수 없도록. 아니면 난 감당하지 못할테니까. 이 지긋지긋한 삶을 견뎌내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내가 감당할 몫을 내가 결정하고, 다른 이가 곁에 머물 자리를 없애면서 스스로 모든 짐을 짊어지려하는 아주 피곤한 습성이 생겼다. 혹여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정말 말리고 싶다. 절대 그렇게 살지 말라고. 나처럼 될 테니까. 내 인생은 이미 무채색이지만, 그래도 당신 인생은 알록달록해야되지 않겠냐며.
허어, 이런 생각 할 시간에 너나 달라져라 멍청아.
어린왕자라는 책에 나오는 주정뱅이가 떠오르는 짓이다. 술을 마시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그걸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거지같은 순환 논리. 이래서 생각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에비, 에비. 그만 두자. 어차피 아무 것도 못할 거면서. 넌 귀찮아하는 거 못 고치면 아무 것도 못해. 어머, 이건 엄마가 나한테 정말 자주 하는 소린데. 그 뒤에 따라오는 말은 아마 이럴거다. 넌 네 아빠 싫어하는데, 네가 싫어하는 아빠 게으른 거 너랑 똑닮은 거 알지?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니까, 쯧쯧.
그래, 나 게으르다. 그래서 뭐. 나도 안단 말이다. 나 게으르고 성질 머리 고약한 거 안다고. 가습이 답답하고 숨이 탁 막히는 게, 이게 혈압 오르는 건가 보다. 이러다 내가 내 명에 못 살지. 한심하다, 한심해. 김여주 세상 최고 한심한 멍청이. 비겁한 년. 그냥 나가 죽어라.............
지이잉-
아. 자기비관의 클라이막스였는데, 아깝게 진동 소리가 흥을 깨버렸다. 누구야.
[정시 넣을 대학 알아봐라. 시혁대는 니 앞에 두 명 빠질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안 빠지네. 니 성적으로는 서울권은 못가겠던데 이제는 그냥 안되겠다 생각해라. 니가 그 정도 밖에 노력안했다는 뜻이니까.] - 엄마
위로를 할 거면 위로만 하라고 제발. 왜 마지막 말을 붙여서 사람 신경을 긁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은 혼자만 하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 19년을 저런 화법과 함께했지만 듣고 볼 때마다 짜증이 치미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캬, 역시 난 집을 나가야 쓰겠다. 하하....하.. 지금 내 눈에서 흐르고 있는 건 슬프고 아픈 감정에 의해 촉발되는 눈물이 아니라 겨울 바람에 눈이 너무 시려서 나오는 생리학적 현상인 거다. 내가 불쌍하고 한심해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다, 절대로.
그 남자나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좀 괜찮아질 것도 같은데.
어때? 나 보니까 이제 좀 괜찮나?
..........................................어?
어젠 왜 그냥 갔어, 나도 너 기다렸는데.
뭐야, 이거.
여기서는 솔직해도 되는데, 진짜로.
진짜,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여전히 따뜻한 미소로, 여전히 포근한 눈빛으로.
이거 꿈은 아니겠지. 아니다, 이건 꿈이다. 꿈이 아니라면 그를 만날 수 없었을테니까. 그래, 어차피 꿈이니까.
여기서만큼은 솔직해져도 된다고 했으니까.
어, 나... 그 쪽 보니까.....이제야 좀 살 것 같아.
내 꿈에 다시 나타나줘서, 웃어줘서, 고마워. 진짜로.
지금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절대 슬퍼서, 아파서 나는 게 아니라
기뻐서, 기뻐서 나는 거다.
여기서는 덤덤하지 않아도 돼. 마음껏 웃어도, 울어도 괜찮아.
내가, 있어줄게.
그 남자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이틀만인가요...ㅎㅎ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댓글 달아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_<
암호닉 신청해주신 살사리님!! 감사합니다!! 이번 글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댓글 써주신 다른 독자분들도 제 사랑을 받으세요-♡
근데 이거 분량이 많은 편인가요...? 이번 편은 5시간 걸려서 쓴 건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이 얼마 안 되는 것 같은 느낌...?
그래도 5시간 쓴 거라서 염치 없지만 5포인트 걸었어요..하핳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