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주야.
오늘은 비가 쏟아지려 해.
네가 그리도 싫어하던 번개도 칠 것 같아.
이런 날이면 널 토닥여 주곤 했는데.
나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야.
낯설다. 이 곳이 갑갑해졌어.
보고 싶다.
우산 꼭 챙겨.
_ 20xx 년 5월 16일 권순영
너 없이 안 되는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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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네 말대로다.
하늘에서 뚫린 구멍은 너의 허탈함의 크기 이는지.
주룩주룩 뱉어내는 빗줄기에 청승 떠는 네 모습이 떠올라 버렸다.
무려 4년 전 나를 떠나버린 그 날과 똑같아.
아직도 비가 거세게 내려오는 날이면 묵직한 다리 한쪽이 시큰거린다.
네 울음소리가 내 발 밑까지 전해진다면 허영의 거짓, 고작 그 따위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정말 너의 짙은 머스크향은 차박 거리는 발 밑으로 물웅덩이와 같이,
튕겨나가고 퍼져나갔다.
네게 답장을 보내도 받았다는 말 한마디 없으니 당최 보낼 맛이 나야지.
왜 나는 편지 끝 자락, 잉크로 내 이름 석 자를 적어낼 때면 물방울이 도르락 떨어지듯이,
또 왜 손가락으로 거세게 문대듯이 번져가는지.
난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순영아,
인간은 죽음 끝자락에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 따위로 선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네 가설이 기억나?
네가 없던 4년과 지금 앞으로의 1년.
이 곳이 지옥인데 나는 죽어서 또 굳이 지옥을 삼켜내야 해?
오늘도 끔찍한 꿈을 꿨다.
4년 전의 네가 무자비로 날 떠난,
장대비에 걸맞은 꿈을 꿨다.
그 웃는 모습에 눈 앞이 선해 목구멍을 뚫고서야
무언가를 토해내고만 싶었다.
너라는 인간 하나가 가진 힘이 이렇게도 방대했던가.
내가 아는 너의 모습은 무향.
그 자체의 표본이었다.
향수를 뿌리고 가는 날이면 짙은 키스를 꿈꾸게 하던 그런 무향이었다.
혹여나 내 향이 입혀질까,
혹여나 무향인 너의 심기가 거슬릴까.
한 떨기의 꽃과 같은 네 모습은
만질 수 없는 도자기 그 자체로 보존되어야 마땅했다.
나의 의미 없는 독백에도 넌 어느 한 좌석을 지키고 있을 것만 같았고
그러므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날 지켜보는 그 눈빛은 공허했기에 더욱 수치스러웠다.
늘 너를 잡아끄는 내 손으로는 너를 잡아둘 수 없다는 사실도
간과하고 있었다.
난 알고 있었음에도,
난.
넌 내게, 당장이라도 똑 떨어질 것만 같은 빠알간 사과이고,
또 내게,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말라가는 나비이니,
하여 내게, 당장이라도 눈가리개를 풀어헤쳐줄 만한 이질적인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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