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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얼굴에 무슨 공주야. 먹다 버려서 찌그러진 곶감 같은데. |
천천히 머리를 굴렀다. 분명 나는 자기 전 동생 동화책을 뺏어 '백설공주' 를 읽었고 쓸데없이 감수성에 젖어 박경에게 문자를 날렸다. 정말 그거 뿐이었다. '미친 나 백설공주 되고 싶어' 그리고 오는 박경의 냉담한 답을 씹고 잤을 뿐이다. '지랄까지 말고 자라'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처음 보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천장, 나무로 만든 듯했다. 분명 침대에서 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떴을 땐 딱딱한 맨바닥에 몸을 눕혀있었고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니 끼익, 이라는 기분 나쁜 소리가 귀를 찔렀다. 여긴 어디지. 부스스한 머리를 쓸며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휙휙 주위를 살피는데 웬 난쟁이 똥 마루같은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박혔다. 미친, 아니. 난쟁이 똥 마루같은…. 이 아니고 진짜 난쟁이 같은데…? 순간 소름이 싸악 끼쳤다. 상황 파악은 무슨, 일단 여길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조심스렇게 반쯤 일으킨 몸을 다 일으키고는 막 도망치려는 내 뒤에서 웬 낯선 목소리가 소리친다. 어! 야! 일어났어!
" 아악! 씨발! 이 새끼들 뭐야! "
그 낯선 소리침과 동시에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한 5명 정도 되어 보이는 좆만 한 난쟁이들이 쏙쏙쏙 튀어나와 내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 볼을 툭툭 건드리고 신기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이내 두렵다는 표정으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난다. 아, 씨발. 진짜 뭐야! 어딘가 몰려오는 기분 나쁜 불쾌함에 막 몸을 옮기려는데 계속 다리가 뭔가에 걸린 것처럼 거치적거렸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내리는데,
" 와, 이건 또 무슨 지랄이지. "
동생이 보는 만화에서만 나올 것 같은 밝은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넋 놓고 드레스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 설마 여자 된 거 아니야? 혹시나 싶은 마음에 드레스를 들춰서 확인하려는데 한 난쟁이 새끼가 꺄악, 거리며 내 손을 제지한다. 손이 턱 잡히자 또다시 불쾌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잡힌 손을 재빨리 빼고는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봐 주니 그저 눈을 끔뻑이며 다시 한 번 내 얼굴을 살핀다.
" 공주님? "
난쟁이의 조심스러운 말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다른 난쟁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공주님? 뭐? 공주님이라고? 응?
" 공주님이 분명해! 저번에 사진으로 봤단 말이야! "
" 웃기고 있네. 저 얼굴에 무슨 공주야. 먹다 버려서 찌그러진 곶감 같은데. "
" 진짜라니까! 이 드레스를 보고도 모르겠어? 경아, 저번에 같이 봤었잖아! "
" 그렇긴 한데…. 그때 봤던 공주님은 코가 저렇게 안 컸단 말이야. "
이 새끼들이 지금 뭐라는 거야. 내 얼굴이 뭐? 찌그러진 곶감?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버버거리고 있는데 난쟁이 중에서 제일 작은 난쟁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 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저! 저! 목걸이! 난쟁이의 말에 모든 시선이 내 목에 걸린 목걸이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잉? 언제 내가 이런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목걸이를 확인하니 웬 처음 보는 꽤 비싸 보이는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목걸이를 보고 있는데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난쟁이들이 넙죽 내 앞으로 와 절을 하기 시작했다. 공주님! 나한테 먹다 버린 곶감 같다는 막말을 한 턱긴 베이비 같은 난쟁이가 나에게 '공주님' 이라고 칭했고 빠르게 뒤바뀌는 상황전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끔뻑댔다.
" 내가 공주님이라고? "
" 백설공주님이시잖아요. 이런 난쟁이 집에 어떻게…. "
" 아, 씨발. 뭔 개소리야. 내가 공주님이라니? 아, 잠깐만…. 백설? 뭐? "
" 백설공주님! "
와, 경아. 니 말대로 지랄까지 말고 잠이나 처 잤더니 백설공주 됐다.
* * * *
나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는 난쟁이들의 말에 무작정 바닥에 누워 죽치고 누워있었다. 나른하다. 박경, 태일, 민혁, 유권, 재효, 이게 난쟁이들의 이름이란다. 존나 초 현실적인 이름들인데…. 그중에 제일 눈에 띄는 '박경' 은 나보고 지랄까지 말고 자라던 박경이랑 존나게 닮아서 깜짝 놀랬다. 그리고 이름도 똑같다니…. 미친, 존나 끔찍해. 치가 떨려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마을에 가서 과일 좀 사오겠다는 난쟁이들이 나간지도 한 시간이나 지났다. 왜 이렇게 안 와…. 잠이 왔지만, 혹시나 자다가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까 봐 쉽사리 자지 못하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데 누군가가 똑똑,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몸을 일으켜 묻자 잠시만 열어보라는 말에 몸을 꼼지락대며 힘겹게 일으켰다.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문을 여니 한 남자가 사과가 잔뜩 담긴 바구니를 들곤 히죽 웃으며 서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알아챘다. 독 사과구나. 아, 잠시만. 독 사과라면 이 사람이 왕비인 거야? 미친.
" 어이구, 예쁘게 생기셨네. "
" 아, 그래요. "
" 어디, 예쁘시니까 사과 하나 드릴게요. "
" 감사합니다. "
" 지금 한번 맛보세요. "
" 사과는 씻긴 다음에 먹어야 제맛이죠. "
받은 사과를 들고 가 일부러 깨끗한 냇물에 빡빡 씻어 보이자 남자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져 간다. 빡빡 한참을 씻고 남자 앞으로 걸어가 상큼하게 한입 물어 보이자 남자의 미간이 얕게 좁혀져 간다. 그 반응이 존나 웃겨서 더욱더 상큼한 표정으로 한 두 입 더 베어 물곤 꼭꼭 씹어먹었다. 아, 맛있네요. 내 말에 굳은 표정의 남자가 씨익 웃으며 그렇죠? 라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웃음이 비집고 나오려는 걸 힘겹게 참았다. 남자 앞에서 기어코 사과를 다 먹고는 맛있었다면서 싱긋 웃어 보이자 남자가 하하하 웃으며 다음에 또 올게요, 라며 홱 몸을 돌려 재빨리 뛰어간다. 그 모습에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며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뒹구고 있는데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난쟁이들이 그제야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안으로 들어온다.
" 공주님. 왜 그렇게 웃고 계셔요? "
" 아, 몰라. 몰라. 바나나 줘. "
내 말에 바나나를 조심스렇게 건네주는 태일. 멋스럽게 껍질을 까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존나 달아.
" 달죠. 가다가 어느 남자가 준 건데. "
" ? "
" 바나나 한 번 맛보라고 주셨는데 딱 공주님이 드시네. "
" ? "
" 표정이 왜 그래요? 맛없어요? "
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씨..씨발… ! 눈앞이 캄캄해진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바나나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린다. 그 덕에 바나나가 보기 안 좋게 바닥으로 떨어져 괴상하게 찌그러졌고 나도 그대로 바닥으로 몸을 떨구었다. 미..미친.. 씨발들아. 모르는 새끼가 준 과일을 아무 의심 없이 들고오는 새끼가 어딨….
그대로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백마를 타고 숲 사이를 힘차게 달리던 지훈은 이상한 광경에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5명 정도 되어 보이는 난쟁이들이 꺼이꺼이 울고 있는 것이다. 뭔 일인가 싶어 백마에 내려 조심스레 다가가니 아련하게 찌그러진 바나나가 옆에서 눈을 감고 쓰러져있는 드레스를 입은 한 남자…. 지훈은 순간 정신을 놓을 뻔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그대로 넋을 잃고 보다가 서둘러 난쟁이들에게 물었다. 이 예쁜 남자는 누군지. 엉엉 목놓아 울던 민혁이 지훈의 물음에 히끅히끅, 울음을 힘겹게 참으며 답한다. 백설공주세요…. 백설공주? 지훈은 '공주' 라는 말에 소유욕이 불타올랐다. 이 공주는 내 것이 되어야만 하는, 그런 불타는 소유욕. 지훈은 재빨리 쓰러져있는 지호를 안아 올렸다. 그리곤 손쉽게 지호를 백마 위에 올리곤 자신도 재빨리 백마에 올라탄다.
" 이 공주님은 내가 납치한다! "
지훈의 외침을 스타트로 백마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야로 사라지는 백마에 난쟁이들은 입을 바보 같이 벌린 채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저 인간은 누구지? "
" 몰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오, 공주님이면 돈 존나 많을 텐데. 아깝다. "
" 내 말이. "
한참을 달리던 지훈이 헉헉, 힘겹게 숨을 들이쉬며 백마에 내렸다. 축 몸이 늘어져 있는 지호도 조심스레 눕히고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인간적으로 너무 예쁘잖아…. 속눈썹을 툭 건드려보다가 하얀 볼을 한 번 매만졌다. 두툼한 입술도 매력적이었다.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드레스를 바로 펴주고는 지훈은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지호의 모든 것을 눈으로 스캔하려고 애썼다. 아무리 보고 봐도, 이 공주는 너무 섹시하다.
" 일어나봐요. "
" ……. "
" 공주님. 일어나봐요. 좀. "
" ……. "
아무리 몸을 흔들어보아도 일어날 생각도 않는 지호에 지훈은 답답했다. 어떻게 하면 깰까. 잠시 지호의 앞에서 곰곰이 생각하던 지훈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지호의 두툼한 입술에 머물렀다. 키스를 하고 싶은 충동이 감돌았다. 조심스럽게 누워있는 지호의 양쪽 어깨를 약하게 잡았다. 천천히 지호의 입술로 다가갔다. 두툼한 입술은 말캉했다. 무슨 젤리처럼. 지훈의 입술이 느리게 맞닿았고 그 순간.
" 에이취! "
지호의 눈썹이 치 껴 올라가더니 이내 기침을 내뱉는 지호. 그 덕분에 지호랑 초 밀착 돼 있던 지훈의 얼굴엔 지호의 침으로 범벅되었다.
" 뭐, 뭐야! 이 원숭이 같은 새끼는! "
지호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는 뒤로 물러나자 지훈은 얼굴을 재빨리 닦고는 씨익 웃으며 지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 공주님. 일어났어? "
" 뭔, 얼어 죽을 공주님이야. 씨발. 난쟁이들 어딨어. "
" 난쟁이들이 나쁜 짓 하려는 거 내가 구해왔지. "
" 뭐, 뭐? 나쁜 짓? 허. 그 새끼들…. 그런데 넌 대체 누구…. "
입은 옷차림으로 보아하니 꽤 잘사는 집안 같은데…. 지호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내 헉, 입이 떠억 벌어졌다. 동화책을 읽은 결과 분명히 이 상황은 저 원숭이 새끼가 바로 왕자님이란 거다. 아, 씨발! 경악을 금치 못하고 굳은 채로 멍하지 지훈을 바라보는 지호. 지훈은 그런 지호을 힘으로 억지로 꾸욱 눕혔다.
" 아악! 뭐야! "
" 잘 때 진짜 섹시했는데. 일어나니까 뭔 개마냥 왜 그렇게 정신이 없어. "
" 아, 좀 놔봐! 미친! 나 존나 멘붕 오거든? 아, 씨발. 이게 뭐냐고! "
" 왜. 왜. 멘붕? 그게 뭔 말이야. 지금 도망치려고 해도 소용없어. 여기가 어딘지 알고. "
" 여기가 어딘데? "
" 나도 몰라. 말 타고 존나게 달리다가 내렸더니 여기네. "
백설공주 우지호는 미아가 되었다.
* * * *
이놈의 드레스는 왜 그렇게 거치적거리는지 모르겠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뭐가 좋은지 히죽히죽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죽겠다. 동화책 결말이 뭐였지. 그래. 왕자님이 키스하고 행쇼였는데…. 그럼 이 원숭이 새끼랑 키스를 하라는 거잖아. 아 왓더. 지호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공주행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물론 이 원숭이 새끼의 부담스러운 시선까지도. 지호는 지훈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갑작스러운 지호의 행동에 지훈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간다. 뭐야. 지훈의 중얼거림에 지호는 인상을 작게 찌푸렸다. 답답한 드레스를 하나하나 벗었다. 아, 존나 덥네. 하나하나 벗기 시작하는 지호의 행동에 지훈의 동공이 격하게 확장된다. 뭐, 뭐 하는 거야. 공주…. 결국 팬티차림이 된 지호가 부끄러움도 잊은 채 지훈의 양볼을 덥석 잡았다.
" 키스하자. "
" 어? "
" 키스하면, 모든 게 끝나. "
" … 뭐가 끝나는데? "
" 난 공주님이 아니라고. 씨발. 이게 뭐야, 진짜. "
지호는 지훈의 입술을 거의 삼킬 듯이 맞추었다. 지훈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넣어 천천히 굴렀다. 치아 하나하나 다 훑으며 빨아들이는데 눈을 약간 찡그리며 지호의 입술을 받던 지훈이 이내 약간 기울어져 있는 몸을 바로 하고는 자신의 볼을 잡은 지호의 손을 떼어냈다. 그러곤 지호의 어깨를 잡으며 지호의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고는 지호의 혀를 강하게 감아올렸다. 점점 농도가 깊어지는 키스에 지호는 정신을 놓을 뻔했다. 힘겹게 계속 끊기려는 정신을 부여잡고는 밀어붙이는 지훈의 키스를 힘겹게 받아냈다. 그저 이 모든 게 끝나길 바랐다.
" 공주님. 다음에 만나. "
지훈의 나긋한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서서히 눈이 감았다.
* * * *
물론 돌아왔다. '공주님' 우지호가 아닌 '평범한' 우지호로. 눈을 감고 떴을 땐 익숙한 천장이었다. 이게 꿈인지 아님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갔다. 그 남자. 이름이 뭐였을까. 지호는 일어나서 밥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찌 몸도 개운하다. 지호는 엄마가 차려준 밥을 싹싹 다 긁어먹고는 씻고 교복을 갈아입었다. 왠지 오늘은 뭘 하든 잘 될 것 같은 느낌.
" 우지호, 기분 좋아 보인다? "
" 아, 몰라. 씨발. 지랄 말고 자라던 니 문자에 잤더니 존나 개운하네. "
" 뭔 소리야. 어제 너랑 문자한 적도 없는데. "
" 어? "
시끌벅적한 교실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앞문을 열고 천천히 들어오는 선생님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몸뚱어리들이 재빨리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천천히 교실을 쭈욱 훑어보던 선생님께서 인자하게 웃으며 전학생이 왔다며 말했고 '전학생' 이라는 말에 조용했던 교실이 다시 시끄러워진다. 그런 시끄러움 속에서 천천히 들어오는 전학생. 지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 작은 눈을 몇 번이고 비비고 끔뻑였지만 똑같았다. 선생님 옆에 딱 선 전학생은 소개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천천히 입을 연다.
" 안녕. 표지훈이라고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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