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또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시간이 돌아가기를, 너와 행복했던 그 때로 돌아가기를. 정말 너와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오늘도 방문에 기대서 두 손을 모으고 창에 비치는 달에 기도했다. 하지만 눈을 슬며시 뜨고 휴대폰을 확인하면 변하는 건 없었다. 일정하게 옆에 위치한 탁장 시계는 째깍, 째깍, 일정한 소리를 내며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증명 해 주었다.
“##너봉아.”
조용히 너의 이름을 불러도 들려오는 건 허공에 맴도는 내 목소리뿐이었다. 점점 내 기억에서 잊혀 가는 너의 목소리가 싫어 내 휴대폰으로 너에게 전화를 걸면 ‘이 번호는 없는 전화번호입니다’ 라는 안내원의 음성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지금 이 시간이면 너의 전용 벨소리가 울려 너의 전화를 받고 웃으며 웃고 있어야 할 내가 이제는 방문에 기대어 조용히 너의 이름을 부르는 그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너와의 추억도 잊기 싫다며 아직 발악으로 남겨놓은 내 휴대폰 앨범으로 들어가면 이곳, 저곳을 다니며 너와 찍은 사진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렇게 예쁜 넌데, 지금도 내 옆에만 있을 것 같은데.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김과 동시에 두 눈에 맺힌 눈물에 시야가 흐려졌다. 흐려진 너의 모습이 마치 지금의 내 현실 같아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아 내었다.
방 이곳, 저곳에는 너와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 많았다. 탁자위에 탁장 시계는 네가 나와 커플로 샀다며 자랑하던 시계였으며, 책상위에 있는 몇몇 작은 인형들은 나를 닮았다며 내가 생각이 났다며 사 준 인형들이였다. 옷장을 열면 너와 맞춘 커플룩과 너와 쇼핑을 하며 산 옷들이 가득 했고, 내가 들고 있는 이 휴대폰마저 이 기종이 출시되자마자 나와 커플 핸드폰을 맞춰보고 싶었다며 3개월 정도 남은 약정을 깨버리고 바꿨던 핸드폰이었다. 이 말고도 부엌으로 가면 곳곳에 인스턴트는 많이 먹지 말라며 붙여져 있는 포스트잇이 자리 잡아있었다. 부엌에서도 너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가끔씩 내 자취방에서 지내며 남기고 간 후드 티와 추리닝 바지, 그리고 반팔과 반바지, 얇은 맨투맨들은 아직도 옷장 서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늘도 네가 내 방에 남기고 간 침대에 놓여 있는 곰 인형을 끌어안았다. 아직도 남아있는 너의 향과 반대로 느껴지지 않는 너의 온도는 나를 더욱더 외롭게 만들었다. 지갑에 있는 너의 증명사진을 꺼내 들고는 밤하늘에 물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너에게 사랑해라고 외쳤을 때 너는 언제쯤 대답을 해 줄 수 있냐고. 아니면 언제쯤 네가 나의 꿈에 나와서 준휘야, 하고 나를 부르며 웃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 현실을 알기에 더 절망스러웠다.
오늘도 혼자 남았다는 생각에, 그리고 널 저 하늘로 떠나보냈다는 현실에 껴안고 있던 곰 인형에 고개를 묻고 숨 죽여 울었다. 아직 나는 널 보낼 자신이 없는데, 나는 아직 이 현실을 직시하기 싫은데. 주위에서 들려오는 모든 말들은 현실이며, 나는 내 스스로가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의 죽음을, 네가 하늘로 떠나버렸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네가 나의 빛이고, 한줄기의 희망과도 같았기 때문일까? 오늘도 나는 내 힘들었던 생활에 한 줄기 빛과도 같이 다가와준 너를 잊는다는 건 힘든 일인가보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기 싫은 것이라 그렇게 믿고 싶었다.
곰 인형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오늘도 하늘로 비행기를 접어 올릴 종이를 꺼냈다. 정확히 말하면 네가 있을 납골당에 두고 올 쪽지를 적기 위해 펜을 꺼내 들었다. 네가 가장 좋아했던 색과 매치되는 종이의 색깔과 네가 가장 좋아했던 펜으로 오늘도 나는 너에게 쪽지를 적어내려 한다.
‘##너봉아, 나는 아직도 내 일상생활을 잘 견뎌내면서 너를 기다리고 있어. 언젠가는 이 현실을 인정하겠지만 아직은 꿈이라고, 이것이 꿈이라고 믿을게. 나는 매일같이 너의 추억이 맴도는 이 곳에서 너의 향기가 풍기는 이 곳에서 계속 있을게. 내가 이 현실을 인정하게 될 때 즈음에 널 내 아름다운 청춘으로 기억하고 있을 때에는 정말 내 꿈에 나타나서 한 번 웃어 줬으면 좋겠다. 그때에는 네가 내 꿈에 나와서 준휘야, 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고 꿈에서 단 한번만 너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에 가서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너를 잊을 자신도 없고 이 현실을 인정할 자신도 없지만, 내가 이 현실을 인정하게 되는 그 날 꼭 꿈에서 다시 만나자. 항상 사랑하고, 내 인생에서 한줄기의 빛이 되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보고 싶어 너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