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
14
결국 우리는 별을 보지 못했다. 밤하늘은 유독 검었다. 구름 한 점도 볼 수 없어 떠있는 달만 밝게 보일 뿐이었다. 당연히 예상했던 하늘이었다. 나를 그대로 연습실에서 떨어진 벤치로 데려간 지민은 옆에서 손만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도 별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금 전 나를 달래기 위해 했던 말을 후회하고 있는 듯 했다. 아무리 보아도 검은 하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어쩔 수 없었던 실언인 것을 알았다. 굳이 별을 찾으려 들지 않아도 나는 충분했다는 소리였다.
나는 사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눈물까지 흘려놓은 마당에 우스갯소리 같은 말인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저 놀랐을 뿐이었다. 내 옆에 그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어 그랬던 거였다. 그의 말대로 그만 있다면 아무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그녀를 다시 마주친대도 나를 해하지 못할 것을 잘 알았다. 물론, 그것은 지민이 내 옆에 있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그는 내게 머물러 있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한 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아, 춥다.”
“…들어갈까?”
무의식적으로 춥다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갔다. 그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그는 아직 별을 찾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었다. 이내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를 포기한 것 같은 그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실수했다 싶었다. 내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있었던 그였는데 눈치 없이 춥다는 말을 뱉은 거나 다름없었다. 괜찮은데. 말꼬리를 어색하게 늘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몸이 덜덜 떨렸다. 그는 몸을 떠는 나를 보더니 작은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아, 춥다. 그가 말했다. 그가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의 따뜻한 온기에 추위가 조금 덜한 것 같았다.
“어, 별이다.”
갑자기 걸음을 멈춘 그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지목하는 곳을 눈으로 좇자, 거짓말 같이 하늘에는 별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던 별이었다. 나보다 그가 더 신난 것 같았다. 별을 한 번 보았다가, 나를 다시 한 번 보고는 실없이 웃었다. 나는 여전히 밤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어디 있었는지 모를 별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왜인지, 우리의 미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는 꿈을 꾸었다. 비가 내렸다. 눈을 감고 있으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 생생하게 들려왔다. 머리로, 어깨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온몸이 아렸다. 거세게 내리는 비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내 뒤에 서 있는 것은 내 친모였다. 그리곤 알아차렸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옆에는 내 친부가 있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 아무리 자세히 보려고 애써도 검게 번진 얼굴뿐이었다. 그는 그녀의 목을 졸랐고, 그녀는 발버둥을 쳤다. 아아, 그래. 그는 그녀보다도 더한 사람이었다. 무턱대고 진 빚을 남은 우리에게 맡겨두고 도망을 친 그는 우리에게 정이라고는 없던 사람이었다. 나는 애초부터 그의 정은 바라지도 않았다.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랬다. 귓가에는 피아노 선율이 맴돌았다. 그의 피아노 선율이었다. 나는 내 집에 놓여있던 부서진 피아노를 떠올렸다. 그녀가 내리치고 내리쳤던 그의 피아노. 나는 그것에 손을 올렸었다. 그녀는 끔찍이도 싫어했던 그 선율, 내가 닮아버린 그의 선율. 그는 그녀의 목을 조르는 것을 그만두었다. 비는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벌떡 일어선 그가 나를 한 번 보더니 그대로 반대편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았다. 무섭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꿈이라는 것을 알아서였는지, 아니면 이미 벌어진 과거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아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축축이 젖은 흙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에는 내 집에서 나던 곰팡이 냄새까지도 섞여 있었다. 나는 가만히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바닥에 누워있던 그녀가 나를 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비에 젖어 그녀의 립스틱 색이 씻겨 내려가고 없었다. 저것이 그녀, 본연의 색이던가. 익숙지 않은 색이라 나는 꽤나 한참을 뜸 들여 생각했다.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하는 그녀를 보다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거세게 내리는 비가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가까워질 때쯤, 누군가 나를 뒤에서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리니, 비에 잔뜩 젖은 지민이 있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현실이 아닌 것은 지레 채고 있었으나,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네가 여기 있으니까. 내 어깨너머를 본 그가 나를 자신의 쪽으로 잡아 당겼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그녀는 없었다.
12월에는 예술제가 있을 예정이었다. 학교를 벗어나, 더 큰 무대에 서게 될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교수님들과 학생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것이었다. 교수님은 나와 지민이 함께 무대를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고, 나중에는 단도직입적으로 우리가 함께 무대를 할 것을 제안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와 나는 당연하게도 그 제안을 승낙했고, 더불어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면 된다는 소리까지도 들었다. 한참 앞자리에 앉은 예나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어떡해?”
“뭘?”
“예술제.”
내 연습실은 그의 두 번째 연습실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연습실보다 내 연습실에 있을 때 더 편해 보였다. 내 이불 위에 앉아 등을 벽에 기댄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내 꿈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그 선율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되도록 빨리 그 멜로디가 잊히길 바랄 뿐이었다. 의미 없이 건반을 눌렀다. 짧게 툭 끊기는 소리가 울렸다. 그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벽과 한 몸이라도 된 듯 몸을 딱 붙이고 있었다.
“잘되겠지.”
“아니, 뭘 해야 잘될 거 아냐.”
그럼 우리 무대에서는 즉흥으로 하자. 헛소리를 내뱉는 그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왜. 이제는 그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게 요즘 빠져가지고. 장난스러운 내 말투에 그가 이불에 얼굴을 묻은 채로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그가 여전히 열심히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새벽까지도 그의 연습실에는 불이 꺼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가 피곤한 듯 눈을 느리게 깜빡거렸다. 좀 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졸리잖아. 내 말에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하는 거 봐줘야지, 내가.”
“안 그래도 되니까 잠깐 자고 일어나. 깨워줄게.”
싫어. 그가 고집을 부렸다. 잠투정을 하는 어린 아이 같았다. 그래, 그럼. 그를 뒤로한 채로 연습을 시작했다. 메트로놈은 나를 무의식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그때만큼은 내 손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이 곡도 괜찮은데, 어때?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가 잠들어버린 탓이었다. 고개가 금방에라도 바닥으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의 앞에 앉았다. 내가 연주를 멈춘 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이럴 거면 그냥 말 듣지. 어깨를 툭 밀자 옆으로 쓰러지는 그의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기울어지는 그의 몸을 붙잡았다. 꽤나 세게 잡은 탓에 고개를 번쩍 든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오히려 그가 내 몸을 끌어당긴 탓에 나까지도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기울었다. 잠깐만 잘게. 그의 느릿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몸이 땅에 닿았다. 그가 간헐적으로 고른 숨을 내뱉었다. 나는 결국 연습을 할 수 없었다.
그가 눈을 뜬 건 그로부터 삼십 분 후였다. 자세가 불편한 모양이었는지 잠시 눈을 뜬 것 같았는데, 마주친 내 얼굴에 당황한 것은 그였다. 왜, 왜 여기 있어? 잠결에 찌푸렸던 눈이 크게 뜨여지는 모습이 보였다. 네가 여기 있어서, 꿈에서 그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뒤로 밀어냈다. 네가 끌어 당겼어. 아무렇지도 않은 체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그도 뒤늦게 몸을 일으켰다.
“안 잔다더니.”
“아, 그게….”
“됐고, 이거 괜찮은지 물어보려고 했어.”
그는 얼떨결에 정신을 차리고 경청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연주를 마치고 나니 그가 나를 보며 웃었다. 좋네. 잘될 거라니까. 그가 말했다. 그간 그가 자신에게 해오던 말과는 상반되는 말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한계치까지 몰아넣고 학대하던 그는 없었다. 아직도 간혹 웃는 얼굴로 다른 이를 압박하는 모습은 버릇과도 같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어, 내가 옆에서 그를 제지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았다. 입 끝에 걸린 욕을 내뱉으려다가도, 다시 삼키곤 했다. 변화가 얼마나 힘든지 나는 잘 알았다. 나 역시도 쉽게 변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의 핸드폰으로 곡을 전송시켰다. 이제 나머지는 네 몫. 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잘될 것이 분명했다.
연습에 매진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 갈수록 날씨는 추워졌고, 내 옷은 두툼해졌다. 기숙사로 온 선물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선물을 받아들고 그것을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지민의 어머니가 보낸 것이었다. 항상 저녁식사에서나 받을 수 있던 것이었다. 근래에는 약속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오히려 나는 그녀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받은 것은 코트였다. 계절이 바뀌어 보낸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항상 받아왔던 것이었으나 항상 낯설었다. 코트 주머니에 종이가 삐져나와 있었다. 나는 어쩌면 그 종이의 정체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손을 뻗어 그것을 꺼내어 들었다. 종이에는 꾹꾹 눌러쓴 글씨가 있었다. 구석에는 잉크가 물에 번져 있었다.
아미.
고맙다.
종이에 적힌 것은 두 문장뿐이었다. 이미 한 번 다른 종이에 썼다가 다시 쓴 모양인지, 물에 번진 잉크가 멀쩡한 글자와는 상관없이 끄트머리에 남아 있었다. 나는 한참이나 그 글씨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완전한 김아미로 보여진 것이 처음인 까닭도 있었고, 지민의 상황이 괜찮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숨을 멈춘 채로 눈을 감았다. 지민이 보고 싶었다. 코트의 소매를 매만졌다. 부드러운 소매 끝이 손끝에 닿았다. 낯선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쪽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코트는 옷장 손잡이에 걸어두었다.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무작정 연습실 건물을 향해 뛰었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숙사 밖으로 나가려는 마음이 없어 갈아입었던 맨투맨 차림으로는 당연히 따뜻할 리 없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 얼굴 위로 떨어졌다. 손등으로 떨어진 빗방울을 닦아냈다. 내가 왜 달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머리칼이 바람이 날렸다. 귀 끝이 시렸다. 입으로는 더운 숨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둥글게 말아 쥔 찬 손에는 땀이 맺혔다. 신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것은 내 심장 박동 소리 같기도 했다. 그냥, 그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연습실에는 당연히 그가 연습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언제나 그는 이 시간에 연습을 하고 있었으니,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4층까지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숨이 찼다. 한참이나 벽을 붙잡고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아릿한 것이 퍽 고통스러웠다. 눈앞이 컴컴했다. 아린 가슴에 손을 올리곤 숨을 골랐다. 살짝 촉촉하게 젖은 머리칼도 손으로 털어냈다. 어깨에는 물방울 자국이 옅게 남았다. 지민을 사석에서 처음 만났던 그날 보았던 얼룩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불길한 조짐이라는 느낌도 없었다. 내게 남을 흉터 같지도 않았다. 어느새 열두 시가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핸드폰도 챙겨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의 연습실 문 앞에서야 알아 차렸다. 문을 두드려도, 그는 연습에 집중한 것인지 도통 듣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한참이나 문을 두드리다 포기하고는 그의 문 앞에 주저앉았다. 핸드폰이 있었더라면 연락이라도 했을 거였는데, 무턱대고 달려온 것이 실수였다. 아직도 거친 숨을 골랐다. 다시 일어서서 문을 두드렸다. 그의 연습실 비밀번호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열어줬으면 했다.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습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나도 모르게 열리는 문에 뒷걸음질 쳤다. 열린 문 사이로 땀을 흘려대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의 연습실 안에서는 내가 그에게 보내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어 재끼자, 그가 비켜섰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연신 털어댔다. 왜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어. 비밀번호 누르지. 그가 말했다. 그가 음악을 껐다. 연습실에 가득 퍼지던 소리가 멎자 아직 남은 소리가 벽에 부딪혀 울렸다. 다짜고짜 그를 안았다. 아, 나 지금 땀…. 나를 밀어내는 그의 팔을 무시했다. 그가 결국은 나를 밀어내는 것을 포기하고는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이제 정말 너는, 괜찮을 거야.”
확신에 가득 찬 말이었다. 그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대도 상관없었다. 그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질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의 등 뒤에 붙은 거울로 내 모습이 비쳤다. 그에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추운데 이러고 왔어? 그가 물었다. 내가 했던 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는 이미 예감이라도 한 것 같았다. 그가 내 볼에 자신의 손등을 가져다 댔다. 내 얼굴이 너무나 찼던 탓에 그의 온기는 채 느껴지지도 않았다. 너 보고 싶어서 왔어. 신경 쓰지 말고 연습해. 그의 젖은 앞머리를 옆으로 젖히며 말했다. 그가 거울 앞에 놓여있는 수건을 집어 들곤 땀이 흐르는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이미 감정이 벅차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조금 더 편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는 춤을 추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바깥 상황은 알 수 없었다. 빗줄기가 굵어졌을지, 그것이 아니라면 벌써 비가 멎었을지. 그의 연습실을 나가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우산이 없었고, 그의 연습실 안에도 우산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기숙사로 돌아갈 때 맞게 될지도 모르는 거센 비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우산이 없는 것은 그도,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잠시 졸았던 모양이었다. 어느새 그는 옷까지 갈아입은 채였다.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연습하고 있던 그를 다짜고짜 찾아와 뒤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이 미안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 가자.”
그가 내미는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의 연습실에서 나오자 건물 창문으로 보이는 것은 거센 비였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기숙사로 돌아가야만 했다. 어, 비 오네. 어쩌지? 그가 물어왔다. 거센 비는 단숨에 그칠 것 같아보이지도 않았다. 아침까지 끊임없이 내릴 것만 같았다. 그냥 가자.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감기 걸릴 거야. 꽤나 단호한 말투였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는 이미 건물 입구에 서 있었다.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비를 맞을 것이었다. 그럼, 방법은 있고? 내 말에 그가 다시 웃었다.
“너 추울 텐데.”
“나는 괜찮은데. 네가 춥겠지.”
나는 이미 그가 건네준 그의 외투를 입고 있었다. 차라리 외투로 비를 막으면 어떻겠냐는 내 말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 입으라고. 억지로 그가 다시 옷을 입혔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렇게 빗속을 걸어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가 내 어깨를 감쌌다. 하나 둘 셋하면 뛰는 거야. 알았지? 하나, 둘…, 셋. 결국 우리는 빗속을 뛰어가기 시작했다. 거센 비가 가차 없이 우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는 내 속도에 맞추어 뛰고 있었다. 달리기 시작하자 그가 내 어깨를 더 단단히 잡았다. 나는 그렇게 비를 맞으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손을 펼쳐 머리 위에 올려두고는 고개를 숙였다. 안 그래도 멀던 기숙사가 더 멀어보였다. 그러나 나는 멀어진 것만 같은 거리가 차라리 더 좋았다.
“완전 다 젖었네.”
“와, 추워.”
기숙사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머리를 털었다. 이미 축축하게 젖어버려 아무리 털어도 소용이 없었다. 어, 너 여기로 오면 어떡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여자 기숙사 입구였다. 그가 가야할 곳은 이 건물의 바로 반대편에 붙어있는 기숙사였다. 애초에 연결되지 않은 건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방으로 가려면 다시 나가 건물의 뒤편으로 돌아가야 했다. 비에 쫄딱 젖은 생쥐 꼴을 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웃으면서도 우리는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꼴이었다. 그의 외투를 벗었다. 이미 다 빗물에 다 젖어버린 터라 그에게 둘러주기도 뭐했다. 그냥 외투를 받아든 그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얼른 들어가, 감기 걸리지 말고.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빗속으로 냅다 뛰어들었다. 나는 급하게 뛰어나가는 그를 쫓아 입구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으나 그는 빠르게 뛰어갈 뿐이었다. 머리 위로 다시 떨어지는 비에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와야만 했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이끌고 들어온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을 틀었다. 몸이 노곤했다. 내가 받은 그 쪽지도, 이미 그것을 예감한 지민도 모두 꿈같았다. 샤워기 호스에서 떨어지는 물이 마치 빗물 같았다. 아까 전부터 자꾸만 실없이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와 함께 맞는 비는 정말로, 괜찮았다.
불안정不安定, 나는 이제 그 단어가 무엇인지 잘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나를 괴롭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주 까마득해졌다. 나를 족쇄처럼 묶고 있던 것들, 나를 불안에 떨게 하던 것들이 아주 먼 기억처럼 아득해졌다. 나를 도태시키려던 그 무언가, 나를 괴롭히던, 내가 끝끝내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던 불不자들, 내가 거부할 수 없던 것들. 그것들이 모두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예감했듯, 나 역시도 그녀를 다시 만나더라도 그가 내 옆에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우리를 도태시키려던 그것들로부터 승리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아침마다 걷는 커튼도 일상이었다. 더는 햇살이 두렵지 않았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뱉는 숨이 고통스럽지도 않았고, 두려움에 허덕이지도 않았다. 거친 비를 맞으며 눈물 흘려야 했던 과거도 까마득했다. 내 꿈에는 더 이상 그녀가 나오지 않았고, 눈을 감으면 들려오던 욕지기도 멎은 지 오래였다. 밥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토기를 삼키는 일도 이제는 잊었다. 내가 누구인지도 잊고 피아노를 쳤었다. 나는 그저 잘하기만 되는 것이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남들에게 보여 지는 내가 김아미가 아니더라도 나는 괜찮았다. 내가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할 것이 없었다.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사실은 내가 누군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그가 불러주던 내 이름은 내 온전한 정신에 나를 다시금 각인시켰고, 각인된 내 이름은 나를 일깨웠다. 그렇게 드러난 진짜 나 자신을, 그가 깨운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들은 온전한 나를 보아 주었다. 그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예감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정말로 괜찮아질 수 있을 것이었다.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 쳐야만 했던 우리들에게로 햇살이 쏘아진 기분이었다. 이제 우리는 정말로, 괜찮을 것이었다.
<암호닉>
ㅈㅈㄱ / 미리내 / 0418 / 복동 / 1116 / 요괴 / 치즈 / 정구가 / 따슙 / 정꾸기냥 / 꾸뭉 / 베기 / 동상이몽 / 나비 / 홈매트 / 설탕 / 침침커밋 / 침침참참 / 0523 / 0221 / 오아시스 / 침맘 / 니나노 / 미니미니 / 주네 / 태태태탯 / 난지민덕 / 쩡구기윤기 / 현 / 비침 / 초슈 / 꿈틀이폴 / 쿠마몬 / 산딸기 / 국쓰 / 0103 / 0101 / 슈가버블 / 0328 / 민슈팅 / 박방탄 / 민윤기 / 가시버시 / 망개떡 / 크슷 / 6018 / 쉬림프 / 후세 / 뷔밀병기 / 방소 / 달콤윤기 / 몽총이덜 / 아조트 / 신냥 / 연서 / 뱁새☆ / 골드빈 / 윤기윤기 / 낑깡 / 허니귤 / 0910 / 파란당근 / 무사이 / 망개야 / 푸후후야 / 모윤 / 윤기 모찌 / 웃음망개짐니 / 1023 / 찬아찬거먹지마 / 655 / 민투구 / 1024 / 룰루랄라♥ / 감자도리 / 아야 / 카모마일 / 띠리띠리 / 은갈칰 / 삐삐까 / 용달샘 / 꽃오징어 / 오페라 / 또이 / 배고프다 / 소녀 / 0815 / 호비 / 민군주♥ / 초록창 / 마틸다 / 박력꾹 / 따르릉따르릉 / MM / 0956 / 도라희 / 10041230 / 0618 / 꽁꽁 / 삐삐걸즈 / 지니 / 야옹아 / 짱구 / 스페셜캔디 / 뉸뉴냔냐냔☆ / 흑슙흑슙 / 정국이융기 / 청보리청 / 유자쿠마 / 4월 / 유자차 / 쿠야쿠야 / 흥부짐니 / 슈슈 / 뀩 / 0320 / 순별 / 너구리 / 망개똥 / 수박 / 솔트말고슈가 / 토이 / 투슬리스 / 나의별 / 미스터 / 천재민윤기 / 사명감 / 파란 / 삼다수 / 슈가맨 / 입틀막 / 정글벙글 / chouchou / 브이백 / 들꽃 / 초코 생크림 / 슙슙이 / 늘봄 / 난나누우 / 세일러뭉 / 하루종일 / 입휴 / 데니스 / 베네딕션 / 유자청 / 자몽해 / 수니 / 줄라이 / 파자마 / 마새 / 바다코끼리 / 캔디 / 민홀리 / 순이 / 긍응이 / 종구부인 / 슙 / 박지민 / 연두 / 삼박자 / 무네큥 / 찌몬 / 젱둥젱둥 / 물결잉 / 초딩입맛 / 됼됼 / 엥 / 지미미 / 를르슈 / 유자모찌 / 찬란 / 초코에 빠진 커피 /
0331 / 쟈가워 / 민또 / 맴매때찌 / 요를레히 / 뜬구름 / 녹차맛콜라 / 딸기냠냠 / 쁄 / 어른꾹꾹 / 꿀떡맛탕 / 슈비 / 탄산수 / 영덕대게 / 똠양꿍 / 지민모찌 / 찌밍지민 / #침쁘# / 맙소사 / 색소폰 / 요정 / 침침하이 / 민트 / 윤기자몽 / 꾸꾸니♥ / 융봄 / 여니 / 망똘 / 토토로 / 코예 / 팡팡 / 나의별 / 룰루랄라 / 스치면인연 / 바닐라슈 / 땅위 / 저기여 / 1122 / 개구락지 / 청포도 / 빨빨 / 쵸코칩쿠키 / 침구 / 빵떡아좋아해 / 모찜모찜해 / 진라떼♡ / 마가린 / lunatic
암호닉 신청 해주신 분들 사랑해요. 쪽쪽 ♥3♥
거부는 거부합니다.
계속 신청 받아요, 주저 말고 해주세요!!!
<사담>
불가항력은 16화 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