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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재현]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 인스티즈 

 

 

그만하자,이제. 헤어지자. 그럴 때가 온 것 같아. 

 

잠시 망설이던 기색은 어디가고 한치의 떨림도 없이 딱 떨어진 말 뒤에는 침묵만이 오갔다. 

 

이거,이혼서류야. 너만 도장 찍으면 돼. 

 

하얀 손 끝에서 떨어져나와 나에게 내밀어지는 종이들은 지금 이 상황을 실감하게 한다. 

 

아무래도 좋다.
그래,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결혼은 현실이었고, 단순한 연애와는 거리가 멀었다. 뜨겁게 타올랐던 것들은 어느새 재가 되어 차갑게 식었다. 

 

그래,헤어지자. 

 

후련하지도 않았다. 시원섭섭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랬다. 말 그대로 '그냥 그랬다'.
우리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이 종이위에 내 도장이 찍히고 나면 그것뿐, 우리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각자만의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관심도 없고, 다툼도 없고, 애정도 없는, 그저 내가 살아왔던 일상으로. 

 

차갑게 식어서 바닥을 뒹굴던 재들은 이제 바람에 흩날린다. 흔적도 없이.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사라진다. 

 

 

 

 

 

 

 

 

 

 

[NCT/재현]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 인스티즈 

 

 

"일어났어?" 

 

뜨인 눈 앞에 어젯밤 잠들기 전 보았던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잠결에 눈을 온전히 뜨기도 힘이 들지만 그 얼굴만은 또렷이 보인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자고있는 네 모습이 보이니까 너무 좋다." 

 

아침이라 잠긴 나른한 목소리로 얘기한 남자가 다정하게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남자가 내 머릿칼에 자신의 뺨의 부볐다. 내가 남자의 허리를 끌어당겨 꽉 껴안자 남자가 나른한 웃음을 흘리며 질세라 나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언제부터 나 자는거 보고있었어? 

 

내가 남자의 목 언저리에서 입술을 우물거리자 간지러운 듯 웃은 남자가
좀 오래?
다시 내 머리칼에 자신의 뺨을 부비며 대답했다.
 

 

사람 자는거 쳐다보고 있고,변태.
 

장난스럽게 흘기듯 말하자 남자가 예뻐서,라고 말하며 웃는다.  

 

 

 

 

 

 

 

 

 

 

 

[NCT/재현]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 인스티즈 

 

 

"여주야. 들어가서 자자."

 

...왔어?

웅얼거리며 묻는 내 말에 응,기다렸네. 남자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린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잠든 나를 깨운 남자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나를 안아 방으로 이끌었다. 

 

"씻고 올게, 자고 있어."

 

남자가 다정한 손길로 내 머릿칼을 쓰다듬고 내 뺨을 쓸어내렸다.
다시 얕은 잠에 빠져들자 남자가 씻는 물소리가 귓가에서 웅웅거린다. 

 

어느새 다 씻고 침대로 돌아온 남자가 내 옆을 파고들더니 가볍게 나를 끌어안았다. 남자의 손이 내 뒷머리를 감싸안았고 내 머리가 남자의 가슴팍에 기대어졌다.

 

 

 

 

 

 

 

 

 

[NCT/재현]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 인스티즈 

 

 

나 오늘 늦어. 

 

짧은 한마디와 함께 빠르게 끊긴 전화는 언제 전화가 오기라도 했었냐는 듯 다시 새까만 화면으로 나를 비췄다. 

 

차려놓았던 밥상에 혼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일찍 얘기하지.
속상한 마음에 자꾸만 목구멍이 막혀왔다.
밥,삼켜야하는데. 

 

결국 밥도,반찬도,국도 한 입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치워버렸다. 

 

바쁘면 바쁘다고,늦으면 늦는다고 일찍 연락 주는게 그렇게 힘이 들까. 내가 밥 안 먹고 기다리는거 알면서.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경질적으로 반찬통을 냉장고안에 내려놓았다. 

 

 

 

 

 

 

 

 

 

 

[NCT/재현]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 인스티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방으로 향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옷을 벗어 걸어두는 소리, 씻는 물소리, 스킨로션을 바르고 다시 잠옷을 입는 소리가 차례로 들렸다.
그러고나선 침대에 걸터앉아 한참을 핸드폰만 들여다보던 남자가 내 옆자리에 등돌아 눕는 것이 느껴졌다. 

 

잠이 든 듯 규칙적으로 새근대는 숨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지만
한번 잠에서 깬 나는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왜인지 모를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서. 

 

 

 

 

 

 

 

 

 

 

[NCT/재현]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 인스티즈 

 

 

"많이 늦네." 

 

방으로 조용히 들어오던 남자가 어둠속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서 놀란 듯 그 자리에 멈춰섰다. 

 

"오늘 일이 많아서. 안 잤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람은 생각도 안하지? 늦는다,먼저 자라 문자 한 통 넣는게 그렇게 어려워?" 

 

"알잖아,나 요즘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거." 

 

집에서까지 나 힘들게 하지마,응? 


남자가 이런 내 모습이 피곤하다는 듯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나를 쳐다본다. 

 

"너만 바빠? 나도 바빠. 나도 회사 갔다가 힘들게 집에 와. 그리고 피곤한 몸 이끌고 너 배고플까봐 저녁 준비해. 그런데 연락도 없이 늦게 오면 내 기분이 어떤 줄 알아?" 

 

쏘아붙이는 나를 남자는 질린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안 그래도 혼자 이 큰 집에 덩그러니 남겨져있던 내 모습이 더 비참해짐을 느낀다. 

 

 

 

 

 

 

 

 

 

 

[NCT/재현]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 인스티즈 

 

 

간만에 둘 다 집에 있는 휴일이지만 집은 적막하기만 하다. 티비속 사람들이 왁작지껄 웃어대는 소리만이 공중에서 흩어진다. 

 

나는 서재에, 남자는 티비 앞에. 집이라는 한 공간안이지만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다. 

 

같은 침대에서 서로 등을 돌린채 아침을 맞이하고, 같은 식탁에 앉아서도 아무 말도 없이 각자의 것만을 먹고, 각자 해야할 것을 하고, 각자 하고싶은 것을 하고. 

 

그래,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은'게 아니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게 맞는 표현이지. 

 

 

 

 

 

 

 

 

 

[NCT/재현]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 인스티즈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보이는 새카만 집이 낯설다. 구두를 집어던지고 방으로 향하면 곤히 잠들어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항상 내가 먼저 잠들어 있었는데, 반대로 남자가 먼저 잠들어 있으니 그 모습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구나.
혼자 먼저 잠이 든 내 모습을 저 남자는 수십번이고 수백번이고 봤을텐데 나는 처음이라니. 

 

침대로 향해야 할 발을 돌려 거실의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 낯선 상황이, 낯선 느낌이 싫었다. 

 

지금 이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NCT/재현]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 인스티즈 

 

 

"어떻게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려?"

 

"다른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어. 알잖아,나 요즘 날짜개념 없이 사는거."

 

"니가 어떻게 그래? 내가 저번에도 그랬지. 너만 바쁘냐고."

 

"알겠어,알겠다고. 나도 바쁜데 너도 바빠. 그래도 나를 좀 이해해줄 수는 없어?"

 

"나쁜놈.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하지."

 

"알았어,내가 미안해. 그렇지만 나 좀 이해해 달라고. 나 진짜 너무 바쁘고,힘들고,피곤해. 챙길 여념이 없었어."

 

나 그만큼 바빴다고. 결혼기념일이 우리가 이렇게 언성을 높여야할 만큼 중요해?

 

결혼기념일이 그만큼 중요해? 그 말 뒤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자리했다.
이 상황이 진절머리 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마른세수를 하는 남자와, 할 말을 잃고 벙진 나. 

 

고개를 들고 나를 응시하는 남자의 눈에는 짜증만이 가득하다.
따뜻했던 인상은 어느새 서늘해져 있었다.
남자의 얼굴에 싫증,권태,넌더리와 같은 감정들이 스친다. 

 

"그럼,그럼 너한테 중요한 건 뭔데? 일? 일을 통해서 얻는 명예?"

 

나는? 나는 니 인생에서 뭐야? 그저 부수적인 존재일 뿐이야?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목이 계속 메여왔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면서 더듬더듬 말했지만 남자는 아무말이 없다. 

 

그대로 뒤를 돌아 집을 나왔다.
남자를 나를 부르지도, 붙잡지도 않았고 나 역시 이 상태로 그 자리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일상으로 돌아온지 2주가 지났다. 


그 날, 남자가 내민 이혼서류에 내 도장을 찍음으로써 남자와 내가 정말로 끝이 났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내가 정말 몰랐던건지 사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던건지, 이미 찢겨나갔다고 생각했던 남자는 나에게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늦은 저녁에 기다릴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익숙치 않았고, 아무리 늦은 시간에라도 내 곁에 와서 눕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쓸쓸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혼자 보내는 주말은 삭막하게 느껴졌다.

 

"야,괜찮아?"

 

벌써 몇잔째 술만 들이키던 나에게 동영이 안주를 집어주며 물었다.

 

"안 괜찮을건 또 뭐야. 나 괜찮아."

 

괜찮지 않아도 난 괜찮았다.
괜찮다며 너스래를 떨자 동영이 말없이 내 어깨를 감싸고 토닥였다. 

 

"야,나 정말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보다 더 아픈 표정을 짓는 동영을 도리어 내가 다독였다.
그리곤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리에 계속 앉아있다간 이런 대화가 김동영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이 뻔하다.
벌써 가냐며 아쉬워하는 친구들에게 일일히 인사해준 뒤에 귀를 쿵쿵 울리는 술집을 빠져나왔다. 

 

집에서 더 마시고 잠이나 자야지. 


그래,나는 단지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집에 왔다. 편의점에서 산 맥주들을 짤랑이며. 내 예상 밖의, 너무나도 예상 밖이면서도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NCT/재현]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 인스티즈 

 

새빨개진 귀를 하고서 내 집앞에 서 있는 그 남자를, 2주만에 마주했다.

 

 

"정윤오."

 

내 부름에 남자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정면으로 보니 더 붉은 남자의 얼굴은 얼마나 기다린건지 가늠하지도 못하게 한다.

 

"이제 와?"

 

자신의 얼굴이, 몸이 빨갛게 얼은 것은 상관치 않는다는 듯이 남자가 웃는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남자의 따뜻한 웃음으로. 

 

"니가 왜 여기에 있어? 그리고 이렇게 추운데 뭐하는거야."

 

바보같이.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바보같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므로. 

 

생각 많이 해봤는데, 내가 잘못한게 많더라.

 

남자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내 모든 것에 네가 많더라. 네가 없는게 없더라. 내가 너무 안일했나봐."

 

남자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물기가 어려있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내 머릿속의 천사는 안된다며 나를 붙잡고 악마는 된다며 안 될게 뭐가 있냐며 낄낄댄다. 

 

"여주야."

 

남자가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윤오야,이성적으로 생각하자. 그거 지나면 괜찮아질거야. 자연스럽게 다 지울거야. 그리고 우리, 이미 이혼까지 했잖아. 돌이키긴 힘들어."

 

"사실,나 이혼서류 안 냈어. 내려는 순간에 이게 잘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계속 생각했어. 그리고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야."

 

"나,나는 무서워,윤오야. 다시 시작하는게 결국은 우리를 이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들을 반복하게 하는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겁부터 나."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생각하자.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잖아. 한 번 넘어졌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보자. 응?"

 

남자가 다정하게 나를 다독였다.

 

이게 정말 아닌 길이라면 그 때 가서 결정해도 괜찮잖아. 나한테 다시 한번만 기회를 줘.

 

꼭 애원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남자에 결국 나는 무너진다. 외면하려했지만 사실은 나도 남자를 그리워하고 있었으니까.

 

와락 눈물부터 흘리며 안기는 나를 남자가 마주 끌어안는다. 내 뒷머리를 감싸는 남자의 손이 잔뜩 얼어 서늘하게 느껴진다. 하기만 그게 무색하게도, 오랜만에 안기는 남자의 품은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다시는 이런 일 반복 안 해. 그럴 일 없어. 내가 없게 할거야."

 

내 목덜미에서 웅얼거리며 말 했지만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단호하다.

 

그렇게 나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0209

사실 이 글은 처음 시작부분을 쓰면서 그 뒤를 쓰게 된 글인데요, 처음에는 짧은 조각글로 쓰려고 했으나 쓰다보니 거의 6000자를 육박하는 단편글이 되었네요! 흰색으로 쓰여진 부분은 현재시점, 회색으로 쓰여진 부분은 과거시점입니다. 첫 글인데, 읽으시는 분들이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결혼의 현실적인 면을 반영해서 쓰려고 했는데 저도 결혼경험이 없으니 잘 모르겠네요 하하! 어쨌거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2월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도영아 생일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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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앙...설레 이런 글 너무 재현이한테 잘어울려...
7년 전
독자2
우와 완전설레요....사라해요
7년 전
독자3
이런 글 넘나 좋아요..❤ 추천 남기고 총총..[달탤]로 암호닉 신청도 하구 가욤
7년 전
독자4
이런 분위기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짱짱 재밌어요❤️❤️
7년 전
비회원9.79
잘 읽었어요.
7년 전
독자5
...ㅠㅜㅠ 뭔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기분이네요...그래도 다시 돌아가서 다행이에요ㅠㅅㅠ 잘 읽고갑니당!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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