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10시. 지민이에게서 근처 술집인데 잠깐 나올 수 있냐고 전화가 왔다. 살짝 혀짧아진 말투와 취기 오른 듯한 목소리 상태를 보았을 때, 조금 아니 좀 많이 취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라 여주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운동화를 구겨 신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긴긴 8년이란 시간동안 끈질기게도 지민이를 좋아했기에 가끔씩 이런 일이 생길 때도 귀찮아하기 보단 오히려 왜 또 술이냐며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는 여주였다. 지민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사이즈가 잘 맞지도 않는 운동화에선 질질 뒷꿈치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밤이 되어 더 화려해진 거리의 수많은 간판들은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다가 여주는 지민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거칠어진 숨을 진정시키고, 머리를 단정하게 쓸어 넘기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홀로 테이블에 앉아 술병을 기울이며 잔을 비워내는 모습이 어딘가 쓸쓸해보여서, 여주는 다가가 술잔을 든 지민의 손을 제지하곤 그 옆에 착석했다. 청승맞게 왜 또 혼자 술이세요? 테이블 위로 늘어져있는 술병들에 여주가 걱정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퉁명스레 말이 나갔다. 지민이 실 없이 웃으며 와줘서 고마워. 하곤 그녀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기대려는 시늉을 하자 여주가 기겁하며 하지마 떨어져. 했다. 지민이 너무 싫어하는 거 아냐? 라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갑작스레 스킨십하면 지민이는 의미없이 한 행동일지 몰라도 눈치 없는 제 심장은 요동을 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 오늘은 어떤 이유로 술을 이렇게나 마셔대는 건지, 이유나 들어봅시다"
"응? 내가 막 마셔댔나아? 아닌데 쪼금 아주 쪼금 마셨는데"
"확 가버린다"
여주가 일어나려는 척 하자 지민이, 잔인하네 정마알! 하며 고래고래 소리친다. 각각의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저와 지민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자 여주가 곤란한듯 알았어 나 안 가. 안 간다고오. 하며 다급하게 지민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제서야 잠잠해진 지민이 제 입술을 틀어막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자리에 앉히며 어디 가기만 해 봐. 하며 웃었다. 못 말린다니까.... 그에게 졌다는 듯 여주는 고개를 젓는다.
방금 전 분위기와는 다르게, 지민이가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유진이- 하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여주는 그 뒤에 붙을 말이 무엇인지 그의 눈빛만 봐도 짐작 할수 있었다. 평소에도 그가 친구 유진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익히 알고있기에 이번에도 또 유진이 마음을 얻는 게 너무 힘들다며 하소연을 할 거라 생각했다. 여주는 조금씩 굳어지는 표정을 숨기려 했으나 마음과는 다르게 점점 어두워져 가는 낯빛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응, 유진이가 왜. 이미 알면서도 굳이 지민이에게 되묻는 여주였다. 그녀의 물음에도 한동안 말이 없던 지민이는 아, 하고 드디어 말을 떼려나 싶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지민아"
"혼자 사랑하는 건 이렇게 힘들다 여주야...?"
"....."
어떻게 하면 유진이가 날 좋아할 수 있을까. 나 전혀 모르겠어. 지민이가 술잔을 입에 털어넣으며 쓸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미 그의 눈엔 툭 하면 곧 쏟아질 것만 같이 눈물이 가득했다. 여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포기하라고 말하기엔 지민이에게 너무 잔인하고, 또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어떠한 조언 조차 건넬 수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제 친구 때문에 몸 상할 정도로 술을 마셔대곤 이젠 짝사랑이 너무 힘들다며 울기 직전인데,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 보다 더 힘든 게 어딨겠냐며 그에게 모든 것을 토해내고 싶을 정도였다.
"넌 너 좋아해주는 사람 만나 여주야. 짝사랑 그런 거 하지 마"
"...됐어 그런 얘기를 왜 하는 거야"
"나한테 너는 엄청 소중한 친구니까 상처 받지 말라구"
상처는 이미 자기가 줄 만큼 줬으면서 무슨 그런 모순적인 말이 다 있나싶은 여주였다. 술기운에 상체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도 지민은 기어코 술병을 집어 들었다. 나 유진이한테 지인짜 잘해줄 자신 있는데. 그가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는다. 여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진이라는 이름이 그 입에서 나올 때면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술이 땡기네. 안 마시려고 했는데 뭔가 오늘만큼은 꼭 마셔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좀 마시자. 그녀가 지민이의 손에 들린 술병을 뺏곤 남은 술을 탈탈 잔에 털어넣어 이내 입으로 가져다댔다.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는 술을 따라 속도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말없이 술잔을 비우는 여주를 보던 지민이 어허 그만 마셔. 하고 술잔을 도로 빼앗았다.
"술이 아깝다 이거냐"
"그게 아니라아. 넌 취하면 안 되지! 나 데려다 줘야 하는데에."
"참나... 그냥 니가 좋아하는 유진이한테 전화하지 그러셨어요?"
"어유, 안 돼요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이시간에 전화하면 진상이라고 싫어하게 될 거야."
"내가 널 싫어하게 될 거란 생각은 안 해봤니 지민아?"
"너느은, 내 소중한 친구잖아 베스트 프렌드! 히힛."
오늘따라 저 친구라는 소리가 왜 이렇게 듣기 싫은 건지. 제 속도 모르고 자꾸 친구라고 강조하며 대못을 박아대는 지민이 밉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못하는 여주였다. 생명의 은인도 아닌데, 단지 마음 잘 맞는 친구였던 지민이는 힘들 때 마다 위로해주고 가끔 같이 놀러 가고 이렇게 술마시면서 고민 털어놓고 한 게 전부인데. 여주는 인생의 3분의 1을 지민이를 좋아하는데만 흘려보냈다. 마음을 고백하려고도 해봤지만 지민이를 잃게 될까봐, 오히려 지금 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될까봐 그게 두려워서 꾹꾹 마음을 억누르던 여주였다. 참 길고 외로운 짝사랑이 아닐 수가 없다.
이모 여기 술 한 병 더 주세여. 지민이 손을 번쩍 들며 꼬인 발음으로 술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여주가 그만 좀 마셔라. 응? 하고 말려봐도 지민은 손가락으로 숫자 1을 만들며 요거 요거 딱 한 병만 마실게. 하고 눈이 휘어져라 웃었다. 드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와 함께 여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어 왜 일어나?! 지민이 여주의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자 그녀는 안 가. 잔 갖고 오려고. 라며 지민을 안심시켰다. 아 놀랐짜나. 그가 또 웃는다. 평소에도 웃음기가 많은 편인데 술이 들어가니 더 웃음이 많아졌다.
"지민아 자?"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자정에 가까운 시각. 테이블엔 더 많은 술 병들이 쌓여있었다. 지민을 따라 술잔을 채우고 채우다 보니 어느새 주량을 넘어버린 여주였다. 전보다 눈의 깜빡임이 느려지고, 살짝 몽롱해진 정신과 열이 온 몸을 휘감은 듯한 기분이었다. 지민은 이미 테이블 위로 엎어진지 오래였고, 그녀는 앞쪽으로 쏠리는 상체의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자신만은 취해선 안 된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볼까, 그러면 정신이 좀 깰려나 싶은 나머지 여주는 지민에게 말을 걸었다. 지민아 자?
그녀의 부름이 무색하게 테이블 위로 엎어져 있는 그의 작은 정수리는 미동 조차 없었다. 여주는 빤히 그의 까만 머리 만을 응시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 끝으로 까만 머리칼을 살짝 어루만져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지금이 바로 제 속마음을 지민이 앞에서 부담 없이 얘기할 수 있는 때가 아닌가, 하고. 그런 생각을 갖게되니 갑자기 몸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여주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말 해도 어차피 못 들을텐데 이래봬도 지민이 앞이라고 이젠 목 울대 마저 달달 떨리는 것 같았다.
"지민아-"
차분하게 그의 이름을 먼저 불러보았다. 역시나 아무런 반응도 미동 조차 없는 그였다. 긴 8년 동안 하지 못했던 얘길 갑작스레 이자리에서 하려니 여주는 긴장감에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 같았다. 지민아. 그녀가 지민의 이름을 불렀다. 곧이어 또 지민아, 하고 입술을 달싹거린다. 입 안에서 맴돌던 말을 꺼내기까지 지민아- 만 네 다섯 번을 외친 그녀였다. 이렇게 계속 망설이다간, 지민이가 깰 것 같기에 여주는 맘 속에 품고 있었던 말들을 조심스레 꺼내기 시작했다.
"지민아, 그래 내가 많이 좋아해. 내가 너 진짜 많이 좋아해.
스쳐지나가는, 아주 순간의 감정이라고만 생각 했었는데...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 속에 머물러 있는 거 있지.
넌 못 듣겠지만... 이렇게 말해도 부질 없는 거 알지만,
좋아해 지민아. 내일도, 한 달 뒤에도, 일 년 후에도. 늘 여전히 좋아할게.
좋아해... 좋아해 박지민... 좋아해."
여주는 말을 끝마치자 마자 지민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다행히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이 업어가도 모를 사람 처럼 미동이 없는 그였다. 속이 후련했다. 이렇게 후련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말할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그간 8년 동안 하지 못하고 꾹 억누르기만 했던 감정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게 감격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이렇게 얘길 해봐도 지민이는 어차피 아무것도 모를테니까 라는 감정이 뒤섞여 울컥한 여주였다. 지민이가 친구 유진이 말고 자신을 좋아해준다면, 얼마나 꿈 같을까. 물론 그런 기적이 생길 리가 없었다. 저를 완전히 친구로만 생각하는 지민이었기에. 유진이는 무슨 복을 타고 났길래 지민이에게 사랑을 받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멍 때리고 있던 여주가, "나도" 라는 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그의 정수리를 응시했다.
"나도 좋아해. 내가 더 좋아해…"
여전히 엎드려 있는 상태로 눈을 감은 채 도톰한 입술만 움직이는 지민이였다. 여주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며 심장이 미친듯이 요동쳤다. ...뭐, 뭐라고 지민아? 그의 대답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까지 더듬거리며 그에게 재차 되물었다. 설마 자신의 말을 모두 들어버린 걸까? 여주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말에 대한 지민의 대답이 너무 현실감 없게 느껴져서 혹시 이게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민이가 흐으음... 소리를 내며 슬쩍 미동을 하자 여주는 그 작은 움직임에도 헉, 하고 온 몸이 경직되어 버렸다.
"나도... 많이 좋아한다구...
유진아."
..... ....그래. 여주는 씁쓸하게 웃으며 차라리 그게 더 나은 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난 또. 지민이가 들은 줄 알고 기겁을 했네. 그리고 혹시 얘가 날 정말 뜬금없이 좋다고 그러면 어쩔 뻔 했담. 그런데 왜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아깐 상처 받지 말라고 할 땐 언제고, 끝까지 저에게 큰 상처만 남기는 그였다. 속으로 운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이는 걸까 속이 쓰린 게 어쩐지 술 때문 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마지막 술잔을 채우다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아, 잘 참을 수 있었는데. 속절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지민이가 들을까봐 일부러 아랫 입술까지 깨물어가며 우는 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는 여주였다.
호에에에엑...... 이게 뭐람....?..... 마지막 끝마무리가 이상하네요... 역시...
글잡에서 늘 댓글만 달고 눈팅만 했던 저라서, 이렇게 글 쓰는게 어색하기만 하네요... 굉장히 못 쓰기도 하고요... 하하... 하!하!하!
부족함을 느끼셨더라도 부드럽게 양해 부탁드려요... (♡)
네! 이번 글은 단편입니다! ((저렇게 끝내다니 작가가 미쳤나?)) 라고 생각하시는 독자님들... 뀨우... 용서해주세요...
작가는 글을 쓸 때 그냥 막 떠오르는 대로 타자를 톼톼톼! 휘갈기는 편에 가까워서욥.....
다른 작가님들 처럼 구상을 한다거나 계획적이지 못해서 장편은...잘...안쓸...ㄱ.. 그리고 제 글솜씨가.. 큽... .....
(이번 첫글도 노래 듣자마자 떠오르는 대로 끄적 거렸다는 소문이)
그럼 슈망(?)은 다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신 독자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