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어. 입시 끝나면 알바하라고. 씨. 주택가 카페 오전 알바는 심심하다. 이 동네는 특히 더 아줌마들밖에 안 오는지라 아침에 일어나는게 의미가 없다. 씨, 진짜 누가 그랬냐, 입시 끝나고 남는 시간에 알바하라고. 출근하시는 분들은 회사 앞에서들 커피를 사드시겠지. 그러니까 오픈타임이 이렇게 한산한거겠지. 하루치 원두를 준비하고 커피머신을 닦고 더치 커피를 내리고 매장 바닥을 치우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테이블을 정돈해도 이제 겨우 11시다. "푸우-" 내가 왜 괜히 3시까지 하겠다고 설쳐서. 아침 눈 비비며 일어나 기껏 출근했더니 아줌마 서너분 뒤치다꺼리 하느라 왼종일이 가는데. 할거면 빡세기라도 하던가. 보람없네. 노잼. "말상대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같이 알바하는 누나는 오후 타임이라 1시는 되어야 온다. 아이구 세상에, 권순영 내가 못 산다. '손님한테 말을 걸수도 없잖아.' 생각해보니 얼마전부터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 하나가 오긴 한다. 뭔가 열심히 하느라 늘 정신이 없는게 문제지만. '지금 시간에 올거 같으면 쟤도 입시 끝났다는건데.. 동갑인가.' 흘끔흘끔 훔쳐보면 노트북이며 스케치북에 뭘 그리 열심히도 하는지. 맨날 녹차라떼 하나 시켜놓고 나 퇴근할때까지 앉아 죽치는데 4시간을 어쩜 저렇게 한결같이도 바쁠까. "학생! 나 여기 리필 좀-" "아, 네!!" 아줌마 한 분이 부르신다. 소녀는 머릿속에서 슥슥 사라진다. - "순영아 밥 먹었냐-" "누나 오셨어요?" 오후 타임 누나가 왔다! 점심밥을 데워먹을 시간이다. 누나가 유니폼을 갈아입는 동안 치킨 브리또 두 개를 꺼내 렌지에 돌린다. 두개 먹어야지. 배고파배고파배고파- "야, 에이드라도 만들어먹지, 목 멜텐데." "아, 괜찮아요! 물 마시면 되죠, 뭐." 이제 퇴근까지 2시간 남았어! 따끈따끈한 브리또를 들고 와앙- 먹으려는데, "저기," ? 그 애다. 뭐지? "네. 뭐 도와드릴까요?" "아 저, 피치에이드 하나만.." 오, 웬일이래. 두 잔을 주문하는건 오늘이 처음이다. 기분이다. 복숭아 통조림 한 조각을 더 넣어주었다. "주문하신 피치에이드.." "아 그거," "?" "아," 말이 엇갈린다. 쟤 얼굴 빨개진다. 부끄럼을 많이 타나봐. "그거, 그쪽 드세요!" 여자애가 노트북을 끌어안고 카페를 뛰쳐나간다. 뭐지 이건..? "에이, 나 복숭아 싫어하는데." 카운터 안쪽에 올려두고 브리또 두 개를 냠냠 먹어치운다. 앞치마 리본을 동여매며 누나가 나온다. "? 순영아 이거 피치에이드 뭐냐?" "아 그거, 오전 타임에 계속 오는 애가 주문한건데 그냥 저 주던데요. 누나 드세요, 저 복숭아 싫어해요." 누나의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헐, 뭐야, 뭔데. 왜 나만 모르는데. "그, '여자애'가 준거야?" "? 네. 왜요?" "걔 어디 갔어?" "몰라요? 집 갔나보죠, 뭐." "그냥 보낸거야?" "그럼 그냥 보내죠, 따라가요? 히히." 누나가 갑자기 박장대소를 한다. 뭔데, 뭐냐고. 누나 왜 웃지? 왜 나만 모르는거 같지?! "아이고, 순영아. 너 둔한거냐 상여우냐?" "네? 뭔 소리에요." "아 못살겠다, 진짜." 누나는 카운터를 잡고 주저앉아서까지 웃음을 그치지 못한다. 손님들이 쳐다보자 나까지 얼굴이 달아오른다. 아니 왜. 피치에이드 이거 뭔데. 뭐길래 그렇게 웃는데? 왜 나만 모르는데,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