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그대는 죽음을 각오하라
03. 사건의 실마리
w.향(香)
끼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조용한 B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아까의 A팀과는 다르게 냄새같은 건 나지 않았지만, 건조하고 텁텁한 실내공기가 다른 곳보다도 심했다. 다들 안경을 접어두고 팔짱을 낀 채로 잠든 모습이 서로 서로 비슷했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팀의 분위기에 눈을 한 번 굴린 호석이 어떡하냐는 표정으로 석진을 쳐다봤다.
석진은 문 앞에 있던 책상을 주먹으로 두어번 두드렸고, 팀원들은 그 소리를 듣고서는 하나 둘씩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팀원들은 서 있는 석진을 보더니 급하게 인사하기 바빴다. 혹시 제가 드린 임무는 좀 진전이 있나요? 석진이 B팀의 리더인 박현우 형사를 향해 물었고, 그는 책상 위의 안경을 끼며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여기, 정리해둔 서류요."
석진이 오자 설명 할 준비를 분주하게 시작했던 A팀과는 달리, 미리 서류로 정리해 둔 모습이 다들 철저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읽으면서 작은 오타도 발견하지 못 했다. 석진이 서류를 훑어보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B팀이 내 놓은 서류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우선 안구 적출의 이유는 단순한 페티쉬거나 경찰에 대한 반항심이나 선포 같은 것일 것이라 적혀있었다.
또한 살인 동기는 강간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았을 때, 성욕을 해소하고 그것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고. 비교적 그들을 깔끔히 죽인 것을 보았을 때 '살인'이라는 것에 아주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지는 않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추측하건대, 그는 어렸을 때의 강렬한 자극을 받아서 그 기억을 지우려고 살인을 하는 것 일수도 있다고 적혀있었다.
이 세상에 살인만큼 위험하고, 강한 자극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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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박형사님. 일단은 대기해주세요. 조사할만한 다른 게 생기면 바로 보내드릴게요."
"예. 수고하세요 김경사님."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가벼운 목례를 했고, 호석은 그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한 후에 문 밖으로 나간 석진을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이 회의실에서 빠져나와 몸을 돌려 C팀의 회의실로 향하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급하게 뛰어 오는 소리가 났고 석진과 호석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사님...!! 왜 다들 나를 부를 때에는 저리도 급해 보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애타게 찾고 있었던 듯 해 보였다. 흔들리는 그의 눈빛에 나 마저도 불안해져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직까지 미치지 않은 게 다행일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번 사건의 담당자인 만큼 부속 팀원들에게 만큼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왜 그러나?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는 나에게 알 수 없는 택배 상자 하나를 건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택배의 상자 크기가 커서 무거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벼워서…"
그는 나에게 상자를 건네주며 숨을 골랐다. 요즘 일 때문에 힘들텐데, 빨리 달려와 줘서 고맙다고 그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며 대답한 후에 테이프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자, 여주가 평소에 자주 쓰던 향수와 여주의 신발이 들어 있었다. 여주가 사라지기 며칠 전에 내게 알바비를 모아서 새로 산 운동화라며 자랑을 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택배 앞에 붙어있던 종이를 뜯어내어 호석에게 건넨 석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호석은 손을 떨고 있는 석진의 모습에 덩달아 긴장을 하며 서의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인터넷에 접속을 해 발신 주소를 검색해보니, 얼마전에 개발지로 간택되어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었다. 보낸 사람은 '글쎄'라고만 적혀 있었기에 더욱 더 미칠 노릇이었다.
석진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그는 작게 욕을 뱉으며 호석의 손에 쥐어진 종이를 다시 가져와 꼼꼼히 눈으로 훑었다. 근데, 이 주소… 뭔가 이상해. 석진이 미간을 좁히며 주소를 가리키자, 호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어느 부분이요? 호석의 질문에 석진은 대체 뭐가 걸리는 거지. 라며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를 반복해댔다. 어딘가 낯이 익은 주소였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고, 기억력이 비상했던 석진인데 저 주소는 어렴풋이 알 것만 같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무슨 주소인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저 주소지, 어떤 곳이었는지 알아봐 줘. 석진은 종이를 호석에게 건네고는 근처의 의자에 앉았다. 바퀴가 돌아가며 30cm 정도를 미끄러졌고, 석진은 의자 등받이 너머로 벽에 기대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끌어들여 자신의 무언가를 풀려는 사람. 아니 어쩌면 사람도 아닌 짐승…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잡고 말 것이다. 잡아서 내 손으로 직접 벌을 가하리. 주먹을 세게 쥐며 중얼거리던 석진은 몰려오는 졸음을 참을 수 없던 건지, 잠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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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아 안녕, 나는 오늘부터 너의 …가 된 사람이야. …지만, 신경 안 써도 된단다. 잘 부탁해
-미안하다, 난 …해서 네 곁에 남아있을 수 없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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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내게 붙어 있는 저 남자 덕분에 속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같이 사는 가족도 없고, 석진 오빠는 일로 바쁘기 때문에 혹시 내가 없어진 걸 눈치채지 못하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앞섰다. 민윤기가 시킨 신문을 우연히 읽어보다가 알게 된 건데, 애초에 나는 신문이나 뉴스에 실리지도 않았었다.
민윤기가 내게 재밌는 것을 이야기 해준다고 했던 그 날의 신문을 아무리 읽어봐도 민윤기가 소개했던 내용은 없길래, 왜 내게 거짓말을 했냐 물었더니 민윤기는 내가 조금 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희망을 크게 가져야, 석진오빠가 나를 찾아내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이 더 클 거라고. 그런 상실감에 가득 찬 나를 보고싶다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는 단단히 미친놈이구나 싶었던 나는, 작은 계획을 세웠다. 민윤기를 바깥으로 나가게 하는 것. 내가 탈출하는 목적이 아닌, 그를 최대한 밖으로 돌아다니게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CCTV와, 블랙박스에 찍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은 거짓말을 했다. 원래 있던 지병인 천식을 조금 더 심한 척 하는 것. 그게 다였다.
"며칠간 기침이 심하네, 어디 아파?"
"워, 원래 천식이 좀 있어서요... 지금은 약도 못 먹고 있고..."
"어떡해야 해? 약은 가서 처방 받아야하잖아."
"호흡기… 아세요? 흔들어서 쓰는 건데…"
"응, 알지. 영화에서 몇 번 봤던 것 같다."
"저는 심한 정도는 아니라 그것만 있어도 숨통이 조금 트이거든요..."
걸려들었다. 며칠간 연기를 펼친 덕분에 민윤기는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것 같았고, 나는 조금 더 기운 없는 척을 하며 약하게 웃어보였다. 괜찮아요. 그러자, 민윤기는 거짓말처럼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었다. 금방 갔다 올테니까 혹여나 허튼 생각 하면 죽는다는 말을 남기고서 밖으로 나간 그를 보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사담 |
새로운 편입니다! 으아앙 드디어 왔어요... 오히려 독자분들이 잘 써질 수 있을 거다, 천천히 써 와라.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잘 써진 것 같아요! 앞의 내용들을 정리도 할 겸 수정한 것도 내용 정리에 한 몫을 한 것 같고요. 암호닉은 다시 받겠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알게 된 건데, 저번에 독방 추천해주신 분 너무 감사드려요!ㅠㅅㅠ) |
암호닉은 다시 받습니다.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