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마법사와 동양 마녀 1
w. Dpel
"헉, 헉..."
1926년 겨울 밤, 뉴욕 한복판, 동양 어느 나라에서 온듯한 외모를 가진 검은 머리의 소녀는 거리를 뛰어가고 있었다. 저 동양 마녀를 잡아라! 저쪽이다! 펄럭이는 망토가 거슬렸는지 소녀는 곧 망토를 풀어 팔에 두른 채 건물들 틈 사이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쪽이야! 소녀는 뒤를 힐끔 돌아보다 곧장 오른쪽으로 꺾었다. 말굽이 다그닥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소녀는 숨을 고르다가 무작정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소녀는 뛰는 것을 멈추었다. 두 뺨이 열에 달아올라 있었고, 코는 추운 바람에 붉어져있었다. 후우, 숨을 내쉬자 추운 바람 사이로 짙은 입김이 뿜어져 나갔다.
소녀는 바지 주머니 안에 넣어둔 천주머니를 꺼내었다. 짤랑거리는 경쾌한 소리가 뉴욕 뒷골목에 울렸다. 소녀는 웃으며 건물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은화를 세었다. ...서른 둘, 서른 셋, 서른 넷. 소녀는 꺼낸 은화를 다시 집어넣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스물, 스물하.. 은화를 하나씩 집어넣던 소녀는 은화를 반대로 잡아당기는 힘에 주머니에 고정시켰던 시선을 손으로 옮겼다. 어? 소녀는 은화를 잡아당기고 있는 검은 생물체를 바라보았다. 낑낑거리며 은화를 잡아당기던 '그것'은 소녀가 은화를 잡고있던 손가락에서 힘을 풀자마자 제 배에 있는 주머니에 은화를 집어넣곤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골목길 사이로 뛰어갔다. 내 은화! 소녀는 재빨리 망토와 천주머니를 들고 무작정 '그것'을 따라갔다.
네발로 달리는 '그것'의 뒷모습은 마치 두더지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달빛에 비친 윤기나는 털뭉치는 요리조리 소녀를 피해 뛰었지만 소녀의 걸음은 '그것'의 걸음보다 살짝 더 빨랐다. 잡았다! 소녀는 소녀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꿈틀거리는 '그것'을 두 손으로 잡았다. 소녀는 '그것'을 위아래로 뒤집어 탈탈 털었다. 짤랑이며 떨어지는 은화 위로, 금화, 지폐, 목걸이, 금괴, 반지들이 떨어졌다. 뉴욕의 '가난한 거리' 바닥 위에 어마어마한 값어치의 것들이 쏟아져내렸다. 소녀는 놀라며 '그것'을 도로 뒤집어 '그것'의 얼굴과 마주했다. 소녀는 바닥에 쏟아진 것들과 제가 손에 쥐고있는 생물체를 번갈아 보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소녀처럼 그 생물체도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곳 무언가 못마땅하다는듯이 주황색 입을 삐죽거리는 모습에 소녀는 망토에 '그것'을 싸매어 벨트로 묶었다. '그것'들 둘러 싼 망토를 품에 안은 소녀는 자유로운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바지 주머니에 마구잡이로 쑤셔넣곤 다시 달렸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소녀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따듯한 물이 끓는동안 소녀는 망토를 살살 풀어 안에서 잠들어있는 '그것'을 조심스레 꺼내었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그것'의 배에 소녀는 끓은 물과 찬물을 섞은 물을 수건에 적셔 닦아주곤 몇년간이나 텅 비었던 새장에 도톰한 담요와 함께 넣었다. 남은 물로 간단히 씼은 후, 소녀는 딱딱한 침대 위에서 잠들었다. 일단 지금은 너무나도 피곤했다.
*
소녀가 눈을 뜬건 덜컹거리는 새장소리 때문이였다. 벌떡 일어나 새장을 보자 자신이 바라보는걸 눈치 챈 듯 '그것'은 화들짝 놀라며 새장에서 손을 때었다. 꼬르르륵- 소녀의 배에서 새어나온 소리에 소녀는 하품을 하고 딱딱한 빵과 반쯤 얼어붙은 우유를 나무상자에서 꺼내어 먹었다. 새장의 철심을 양 손에 하나씩 쥔 채 자신을 바라보는 '그것'에 소녀는 자신이 먹던 빵을 조금 잘라 '그것'에게 내밀었다. 빵 조각을 받고 그것을 갸웃거리며 바라보던 '그것'은 이내 빵 조각을 오리처럼 내밀어진 부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빠르게 빵 조각을 집어삼킨 '그것'은 더 달라는 듯 한쪽 팔을 철심 사이로 내밀었다. 소녀는 제 몫의 빵을 또 잘라 '그것'에게 내밀고, 우유병의 뚜껑에 우유를 담아 내밀었다. 철심 사이를 통과하지 못하는 뚜껑에 '그것'은 부리를 잔뜩 내밀어봤지만 결국 우유에 닿지 못했다. 소녀는 조금 더 작은 병뚜껑에 우유를 따라 건네었고, '그것'은 우유를 마신 후 담요 위에 앉았다. 소녀는 식탁 겸 책상 위에 놓인 천주머니를 열었다. 금화, 지폐, 목걸이, 반지들을 꺼낸 소녀가 새장쪽을 바라보자 '그것'은 철심을 붙잡고 아련히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다시 그것들을 천주머니에 담아 옷을 껴입은 후 망토를 입고 머리엔 챙이 넓은 모자를 걸친 채 좁디 좁은 방을 나섰다. 갔다 올게! 새로 생긴 친구에게 인사는 빼먹지 않고.
소녀는 은화로 부츠 한 켤레와 부드러운 빵과 사탕을 사고, 지폐로 과일을 샀다. 은화를 모두 쓴 소녀는 전당포에 가 목걸이와 반지를 건네고 돈을 받았다. 생각보다 큰 금액에 소녀는 짐짓 놀라지 않은 척을 하며 전당포를 나왔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소녀는 무엇을 살까 속으로 기분좋은 고민을 하며 길을 걸었다. 소녀는 주머니에서 보름 전에 훔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No witchcraft in America... 작게 속삭이는듯한 목소리를 향해 소녀는 다가갔다.
깔끔하다 못해 숨 쉬기 힘들정도로 단정히 잘린 머리카락을 보고 소녀는 천천히 걸어갔다. 크레디, 작게 말한 소녀가 그 별명의 주인공에게 미소를 지어보이곤 골목으로 사라졌다. 조금의 시간차를 두고 어두침침한 골목에 다른 이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크레디, 이쪽. 골목 안쪽으로 꺾여들어간 샛길에서 소녀의 머리가 빼꼼, 튀어나와 있었다. 크레디라 불린 아직 아이 티를 벗어나지 못 한 소년이 엉거주춤 소녀를 향해 다가갔다. 손. 소녀의 말에 소녀의 손바닥 위로 손바닥이 보이게 한 손을 올린 소년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끔뻑, 끔뻑, 눈을 깜빡이는 소년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은 소녀는 상처투성이의 까슬한 소년의 손을 어루어만졌다.
소녀의 손이 닿자 소년의 손바닥에 즐비했던 상처가 하나씩 천천히 사라져갔다. 다른 쪽 손. 소녀의 말에 그는 익숙히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그 손 또한 두 손으로 잡고 어루어만지던 소녀는 상처가 사라진 쪽의 손을 빤히 바라보는 그에게 말했다. 다 커서 왜 아직도 엄마한테 맞고 사냐.. 다 됐어. 소녀는 자신보다 키가 반뼘 더 큰 소년의 볼을 양 손으로 잡고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크레덴스. 언제라도 생각이 바뀌면 말해. 기다릴게. 소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 디펠.. 진짜 괜찮아요.. 이걸로 충분..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웅얼대는 크레덴스에 소녀, 아니 디펠이는 쓰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어 크레덴스에게 건네었다. 아, 이건.. 사탕과 저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크레덴스에 디펠이는 결국 사탕 서너개를 크레덴스의 웃옷 주머니에 넣고 하나는 자신의 입에, 하나는 크레덴스의 입에 넣었다. 혀에 사탕을 올려놓고 멍청히 있는 크레덴스에 디펠이는 손가락으로 크레덴스의 두 입술이 맞물리게 만들었다. 사탕의 인공적인 달달한 향이 좁은 골목을 메웠다.
메리가 보기 전에 어서 가. 디펠이의 말에 크레덴스는 고마워요, 디펠. 여전히 서툰 발음으로 작게 속삭이곤 골목길을 먼저 나섰다. 잔뜩 웅크려진 등허리를 보다가 디펠 또한 골목을 나섰다. 거리엔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있는 크레덴스를 바라보던 디펠이는 방향을 틀어 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