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카디] 우울한 불꽃, 그리고 너와 나
w. 홀리데이
* 이번 편은 프롤로그 식의 에피소드 입니다.
* 어떻게든 글 다시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독자님들이 달아주신 댓글에 위안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녀올게. 지난 번처럼 안자고 나 기다리지 말고, 일찍 저녁 먹고 자. 알았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려 현관 앞에 선 종인은 다소 뻣뻣하고 투박한 손길로 경수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마치 고양이 머리라도 쓰다듬는 마냥, 투박하지만 특유의 부드러움이 섞인 손길에 경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이제는 둘이서 함께 하지 않는 식탁이 어색해질 정도로 서로와 함께라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여태껏 지내온 과거의 기억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나는 너에게 익숙해져 있다. 경수는 아직까지 잠이 채 가시지 않는 얼굴을 하고서도 끝까지 두 눈은 집을 나서는 종인을 향해 있었다. 매일 매일 집을 떠나는 종인의 저 뒷모습이, 마치 자신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하려는 것만 같아 심장이 쿵하고서 내려 앉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그런 직업이었다. 늘 사람들의 안전과 생사를 책임지지만 그들 자신의 안전과 생사는 되려 잘 챙기지 못하는. 가족들에게는 늘 불안감을 안기는 그런 직업. 경수는 종인과 한 집에 같이 살게 된 이후부터 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종인을 확인했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네가 없을 것만 같아서 두려워. 너와 함께 했던 그 저녁이 나에게 마지막 만찬이 될 것만 같아 무서워.
경수에게 그런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강이나마 알고 있는 종인은 늘 경수를 달래려 애를 썼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신이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경수의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 놓으며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들려주려 애썼다. 경수야, 난 이렇게 살아 있어. 종인의 노력에도 경수의 불안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경수 본인이 화재 사고로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종인은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었다.
"알았어, 너도…조심하고.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들어가지 말고. 꼭 세훈씨랑 움직이고. 알았지?"
뒤 돌아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종인의 옷깃을 붙잡으며 잠긴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을 이어 오는 경수를, 종인은 몸을 돌려 자신의 품에 끌어 안았다. 경수는 종인의 품에 안겨 그에게서 나는 자신의 스킨 냄새와 더불어 종인 특유의 알싸한 냄새를 맡으며 덜 깬 잠때문에 무겁게 내려 오는 눈꺼풀을 겨우 지탱한채 끔뻑 끔뻑 눈을 감았다 뜰 뿐이었다. 종인은 자신의 품에 안겨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수의 볼에 짧게 작별 키스를 건네고는 현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경수는 오늘도 불안한 마음을 애써 추스리며 종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 일도 없을거야, 괜찮을거야. 스스로를 독려해보지만서도 쉽사리 그 불안감은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경수 불안해 하지 말자. 종인이가 괜찮다고 했잖아, 괜찮아 경수야. 종인이 출근하고 나간 둘의 집은 어느덧 차가운 냉기가 돌고 있다. 경수는 얼른 종인이 돌아와 따뜻한 불꽃을 피워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인에게서 피어 오르는 따스한 불꽃은 누군가를 해할 정도로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았다. 딱 좋은, 적당한 온도. 그 온도 속에서 경수는 보살펴지고 있었다.
힘들었던 그 과거와, 아프던 그 기억들을, 경수는 천천히 시간 속에 흘려버리고 있었다. 종인의 그 따스한 불꽃 속에서.
***
"들어가지마! 김종인 지금 들어가면 너 죽어! 죽는다고 이 새끼야!! 집에 있는 경수씨 생각해서라도 너 들어가면 안돼! 김종인!"
거칠게 타오르는 불길과 위태로이 버티고 있는 콘크리트 더미들, 그리고 반쯤 무너진 건물. 이제까지는 어떻게 겨우 부상자들과 생존자들을 구해오는데 성공했다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번 불길로 뛰어들겠다는 것은 아무도 구할 수 없는 자살 행위밖에 더 되겠는가. 생존자를 보았다며 불길로 뛰어들려는 종인을 뒤에서 세훈이 붙잡으며 말리지만 이미 구하겠다 마음 먹은 종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산소통의 산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종인은 산소통을 곁눈질로 슥 확인하고는 이내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이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건물 안으로 뛰어 들었다. 종인은 이마를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훔치고는 아까 내려오며 보았던 생존자를 찾기 위해 건물 안을 뛰어 다녔다. 분명 콘크리트 더미 속에 깔려 겨우 목숨만 유지하고 있던 것으로 생존자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종인은 점점 더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며 집에서 혼자 자신을 기다릴 경수를 한번 생각하고, 건물 밖에서 자신을 애타게 기다릴 세훈을 한번 생각했다. 분명 경수를 생각하면 이 건물로 뛰어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도 위험한 선택을 내린 이유는. 콘크리트 더미 속에 깔려서도 그 흔한 살려달라는 말조차 외치지 않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며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려는 그 사람의 모습이, 처음 보았을 때의 경수같아서. 그래서 쉽사리 구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미련 없는 척,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 자신의 입장으로써는 구해달라고 안달난 사람처럼 보여 종인은 세훈의 만류에도 불길 속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그 사람의 모습에서 7년 전의 경수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죽음을 맞이하려는 그 모습마저도, 자신은 구해야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소방관이니까.
***
"…경수씨, 미안해요. 내가 들어가지 말라고 더, 더…뜯어 말렸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불길에 뛰어들기는 왜 뛰어 들어서 죽기를 자초해. 왜, 대체 왜. 경수는 못 본 새에 잔뜩 수척해진 얼굴을 하고서 자신을 마주하는 세훈을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두 볼을 따라 굵은 눈물 줄기가 연신 흘러내렸다. 불안감은 쉽사리 가지 않았고, 결국 그 불안감은 종인을 자신에게서 앗아 갔다. 종인은 콘크리트 더미 속의 생존자를 구하고 자신의 얼마남지 않은 산소 호흡기를 생존자에게 씌워준 채 건물 밖으로 뛰쳐 나왔다고 했다. 세훈에게서 종인의 이야기를 건네 들으며 경수는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윗니로 깨문 아랫 입술이 얼얼하게 아려왔지만 눈물을 참기 위해서는 참을만 했다. 그리고 이 아픔은 종인이 느꼈을 그 뜨거움에 훨씬 덜 미칠 것이 분명했으니까. ***
신이시여, 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 소방관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