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부장 정재현 X 체육젬병 너심 00
Written by. 츄츄
4월 중, 반 아이들과 친하다면 친하고 어색하다면 어색할 아주 애매한 때다. 작년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 몇 명과 또 같은 반이 되었지만 그 아이들에게 딱히 정을 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다. 작년에 그나마 친했던 김동영마저도 다른 반이 되어버렸다. 시발.... 갑자기 걱정되네. 나 이러다 왕따되는 거 아냐? 주위를 둘러보니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 이미 왕따인 걸수도 있겠네.
휘리릭- 오늘따라 손가락에 꽂아 돌리는 연필이 잘 돌아간다. 무서울 정도로 잘 돌아간다. 평소에는 맨날 놓쳤는데 이거 혹시 숨겨진 재능인가. 예전에 티비 보니까 연필 돌리는 걸로도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데 나가던데 나도 학교 때려치우고 이거나 연습해? 생각하기가 무섭게 연필이 책상 아래로 떨어지면서 내 생각이 아주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걸 증명해주었다.
담임 시간은 언제나 지루하다. 선생님께서도 딱히 수업에 열정이 있어 보이시지는 않지만 담임 시간만 되면 아이들이 그렇게 꾸벅꾸벅 졸더라. 물론 나도. 아이들 반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다는 걸 이제서야 아신 담임 선생님께서 항상 들고 다니시는 길다란 막대기로 교탁을 탁탁 치신 후, 입을 여셨다. 막대기로 교탁을 치는 소리가 날카로워, 엎드려 자던 아이들이 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올린다. 단체로 몸을 움찔거리는 모습이 꽤나 웃겨 풉 하고 웃음소리가 삐져 나왔다.
곧 체육대회 준비를 시작할 거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좋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망쳐졌다. 대체 학교는 체육대회 같은 걸 왜 만드는 거야? 학교에서 숨겨진 인재를 찾아 국가대표를 만들 것도 아니고 목적은 반의 단합을 위해! 라지만 단합은 지랄, 체육대회만 하면 더 싸우는 것 같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체육대회를 싫어한다. 그것도 엄청.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사실 내가 체육을 존나 못한다. 웬만한 체육젬병들을 모두 평타로 고쳐놓으셨다던 전설의 작년 체육 선생님께서도 나는 포기하셨다. 그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난 절대로 체육을 할 몸이 아니라고... 그래요... 나도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돌직구로 말씀하시면 제가 뭐가 됩니까... 예..? 안 그래요...?
"종목은 긴 줄넘기, 짝피구, 장애물 달리기, 손님찾기, 2인 3각 등등 칠판에 적혀있는 거 보고 하고 싶은 종목에 손 들면 돼."
선생님, 전 하고 싶은 종목이 없습니다만? 작년처럼 긴 줄넘기에서 줄 돌리는 역할이나 할까 하고 긴 줄넘기에 손을 들었다.
"시민이 긴 줄넘기 참가하는 거야?"
"음... 긴 줄넘기는 맞는데여.. 줄넘기 뛰는 거 말고 줄 돌리는 거...."
"줄만 돌리는 거?"
"아 네.. 그거요..."
담임 선생님께서도 내가 체육을 어지간히 못하는 걸 아시는지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칠판에 적혀진 긴 줄넘기 칸에 줄 돌리는 사람 칸을 따로 만들어 내 이름을 쓰셨다. 그 때, 뒷자리에서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민아, 너 작년에도 줄 돌리는 거 했지 않아? 너만 그렇게 쉬운 거 하면 다른 애들은 뭐가 돼? 반 애들은 뭐 다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니?"
내 이름을 부르며 정확히 날 저격하는 여자아이의 말에 빡침이 올라왔다. 저 년 저거 분명 일부러 저런 거야. 백퍼센트. 작년에 같은 반이었을 때도 시비란 시비는 다 걸고 다녔던 아이인데 올해도 내가 타겟인가보다. 망했네. 내가 체육을 존나게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러잖아. 내가 체육대회 참가하면 피해 준다고 욕 먹을 거 아니까.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맞아, 시민아. 너 못한다고 계속 그렇게 빼면 실력 더 안 늘어"
"아무거나 해, 그냥"
"저거 하나 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저렇게 목숨을 거냐"
시발... 저 망할 년의 친구들까지 합세해 날 다굴시키고 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머리 끝까지 화가 뻗쳤다. 마음 같아서는 할머니께 배웠던 구수한 욕 한 바가지를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그건 그저 내 상상 속 드라마...^^ 현실의 나는 소심+찌질+친구없음의 트리플 찐따니까...^^ 입술을 꽉 깨물며 올라오는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식혀질 열기인가. 식히려고 하면 할 수록 더욱 더 화가 나는 건 기분 탓?
"자기가 하기 싫다는데 왜 너네가 나서서 그러냐"
그 때, 여자 아이들의 비꼬는 말로 시끌시끌하던 교실을 조용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체육부장인 정재현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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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앗 처음 써 보는데 이렇게 쓰는 거 맞나유ㅎㅅㅎ 많이 부족한 글인데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나... 아~주 혹시나 암호닉을 신청하시려는 분이 계신다면 감사하게 받을게요!! 그 전에 댓글이라도 달리려나 모르겠슴다... 이런 필력을 가지고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되겠져.. 그럼 모두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