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Pet
마이 펫
띵동ㅡ
모처럼 오랜만에 집에서 쉬며 얼굴에 떡하니 팩을 붙이고서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 그 짓도 지루해질 즈음 경쾌한 초인종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택배인가? 뭐지. 나 택배 시킨 거 없는데. 얼굴에 있는 팩을 떼며 현관문을 열었을까, 아무도 없음에 언 미친 새끼가 아직도 벨튀를 하고 지랄이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문을 닫으려고 할 때 문에 무언가 걸림에 밑으로 시선을 내렸더니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엥. 진짜 택배인가? 머리를 긁적이며 상자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와 거실에 퍼질러 앉았다. 나 요즘 빈털터리에 텅장이라 사고 싶은 건 널렸지만 그림에 떡 마냥 늘 구경하다 입맛만 다시고 말았었는데…. 의아함에 조심스레 상자를 뜯었더니.
오 마이 갓.
“……토끼?”
동물이랑 거리가 먼 것은 물론이고, 털 알레르기가 있는 나에게 이런 복실복실한 토끼를 보낸 미친 깡을 가진 새끼는 도대체 어떤 새끼야? 평상시에 토끼를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기 했으나 이렇게 토끼를 선물로 받게 될 줄이야. 경악을 금치 못한 얼굴로 상자 안에 담긴 토끼를 조심스레 내려다보면 똘망똘망 큰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1초 2초 3초……. 하다 못해 내가 동물이랑 아이컨택을 하고 있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 일어나 혹시 상자를 두고 간 사람이 아직 있을까 싶어 현관문으로 다시 향해 문을 열었지만 썰렁한 차가운 바람만 나를 맞이할 뿐이다.
“진짜 어떤 미친 새끼야? 걸리기만 해라, 아주.”
저 토끼를 어떻게 해야 하나 깊은 고뇌에 빠졌다. 다시 밖에 버리자니 얼어 죽을 것 같고. 키우자니 내 알레르기가 도져서 내가 죽을 것 같고. 그렇담 동물 병원에라도 맡겨야 하나? 아니다. 동물 좋아하는 김태형한테나 줘 버릴까. 시발. 이 사단을 어떡한담? 한숨을 내쉬며 온갖 잡생각에 머리를 꽁꽁 쥐어 싸매고 다시 집 안으로 발걸음을 돌렸을 때, 난 놀라 자빠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왜? 왜 눈 똘망똘망한 턱 복실이 토깽이 하나가 있어야 할 자리에 버젓이 덩치 큰 사내 하나가 배시시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냔 말이다.
“안녕, 주인아.”
내 토깽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Episode 1
“주인아.”
“왜 또.”
토끼. 그러니까 전정국. 전정국의 주인 인간 김탄소. 원치 않는 주종 관계로 원치 않는 동거가 시작된 후 약 일주일이 지났고, 그 짧은 시간에 토끼인 전정국을 살펴 본 결과. 아가야다. 아주 아가란 말이다. 산만한 덩치와 큰 키 그리고 근육질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토깽이 전정국은 고작 많아봤자 7살도 안 되는 지능을 가졌다. 그 즉슨, 먹는 것도 많고 잠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그 나이란 말이다. 이 말을 통틀어 고작 일주일이지만 그 일주일 동안 나는 7년은 늙어버린 기분이다. 저 먹는 것도 많고 잠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토끼 전정국 때문에.
“주인이도 토끼야?”
“뭐?”
“주인이도 꾸기랑 똑같이 생겼어!”
부들부들. 이젠 그것도 모잘라 저와 같은 토끼 취급을 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사람이란다. 이 개, 아니. 이 토깽이 자식아.
Episode 2
“야, 토깽.”
“……….”
“대답.”
“……….”
하루 종일 옆에 붙어 먹을 걸 달라, 잠을 재워달라, 놀아 달라, 이게 뭐냐. 등등 나를 귀찮게 굴어야 할 전정국이 조용했다. 나 지금 삐졌어요. 라는 티를 팍팍 내며 구석에 박혀 얼굴을 무릎에 묻고서는 아무리 불러도, 아무리 찔러도 반응이 없었다. 삐진 이유라고 하면 며칠 전부터 약속해놓았던 고깃집을 가지 못한 탓이었다. 과제에 시달려 피곤함의 극치를 달리던 나는 계속해서 나를 보채던 전정국에게 화를 내며 이거나 먹고 떨어져! 라는 소리와 함께 빵 조각 하나를 집어던졌다. 물론 내 잘못이지만 하루를 꼬박 저 구석에 박혀 집 안 전체를 우울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으니. 저 망할 토깽이를 어떻게 풀어줘야 하나에 대한 고민은 10초 채 지나지 못 하고 그쳤다.
“너 당근 주스 안 줘.”
“주인 미워!”
그렇다. 난 토깽이의 머리 위였다.
Episode 3
“아야! 미쳤냐? 왜 물어!”
“흥!”
토끼 주제에 개 코스프레 하는 것도 아니고. 요즘 들어 이갈이를 시작하는 건지 뭔지 이것저것 내 옷이든 소파든 베개든 눈에 보이는 것들은 죄다 물고 다니더니 오늘은 기어코 내 손가락을 물고 말았다. 또 내 옷가지들을 어질러 놓았기에 손가락질을 하며 혼 내켰더니 내 손가락을 냅다 물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걸 진짜 어따 갖다 팔아버릴 수도 없고. 물려진 손가락을 감싸고 노려보니, 적반하장으로 날 노려다 보고 있다. 뭐. 또 뭐!
“주인이한테 이상한 냄새 나!”
“뭐?”
냄새? 무슨 냄새? 킁킁 거리며 옷 냄새를 맡아보아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나 봤자 네 옷이랑 같이 빨아서 똑같은 냄새일 텐데 뭐가 불만이야? 씩씩 거리며 날 노려다 보는 토깽이를 나도 질세라 노려 보았다.
“주인이한테는 꾸기 냄새만 나야 돼!”
“아,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건데!”
“몰라. 꾸기 냄새만 나야 돼!”
저 새끼가……. 무슨 냄새를 말하는 거야, 대체. 고뇌를 하며 머리를 굴리다 아차. 저 놈이 저렇게 반응할 냄새라면 분명 김태형네 집에 잠시 놀러 갔다가 김태형이 키우는 강아지, 가 아니라 개. 순심이가 미친듯이 들러붙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순심이 냄새가 배겨서 그럴게 분명했다. 토깽이 주제에 개를 질투하다니.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 웃기지도 않아, 토깽이.
“아, 순심이 냄샌가 보네~ 순심이는 말도 되게 잘 듣던데. 순심이나 데려와서 키울까.”
“헉. 쥬이나, 안 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 손가락을 잡은 토깽이에 이전에 없던 말로만 듣던 심쿵을 당하고 말았다.
My Pet
마이 펫
“주인아.”
“응.”
“꾸기랑 결혼해.”
내 나이 스물 둘에 개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양이도 아닌. 수줍게 물든 귀와 볼로 당근을 양 손에 꼭 쥔, 주인 밖에 모르는 아가 토깽이와 고군분투 동거 중이시다.
*
아가 정국이 박제할래 ㅠㅅ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