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알람이 울렸다. 이불 밖으로 손만 꺼내 핸드폰이 놓인 서랍장 위를 더듬댔다. 아, 왜 이렇게 안 잡히는거야... 웅얼대며 팔을 더 밖으로 빼는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야... 아파라..."
그대로 침대 밖으로 떨어졌다. 뭐, 침대라고 해봤자 고작 내 몸 하나 겨우 누일 작은 사이즈의 매트리스이긴 하다. 아침부터 되는 일 드럽게 없어. 바닥에 찧어 얼얼한 엉덩이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등학교 마지막 3학년 개학 첫 날부터 아침 기분이 안 좋다. 이제 정말 개학이라 안 나갈수도 없는데, 이미 글러먹은 정신은 지각을 하라고 외쳐대고 있었고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란게 있는 내 입은 안 돼... 지각은 안 돼...를 외쳤지만,
"으, 푹신 푹신해."
빌어먹을 이 몸뚱이는 편안한 매트리스 위에 눕고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 올렸다, 이거다. 서랍장 위에 놓인 핸드폰을 들어 친구에게 카톡을 날리려고 상단바를 내렸는데, 역시. 우리 우정. 우리 6년 우정 어디 안 가. 입으로 작게 나이스를 외치며 친구의 카톡에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오래 만나면 닮는다고, 이런 쓸 데 없는 것 까지 닮을 필요는 없는데.
개똥
야 , 김여주.
나 오늘 좀 늦는다. 오전 7시 45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야 나도 늦음. 이왕 늦는 거 니네 집 앞에서 만나서 같이 가.
오전 8시 8시 30분까지 감.
개똥
ㅇㅋ 오전 8시 1분
같이 늦는 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몸이 더 노곤해지는 거 같았다. 정말 이렇게 더 누워 있다가는 약속한 시간까지도 못 맞출 거 같은 예감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이불을 요란스럽게 걷어차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욕실로 향했다. 방금까지는 기분 안 좋았는데, 어쩐지 좋아진 거 같기도 하네. 콧노래를 기분 좋게 흥얼 거리며 머리를 감으려고 샤워기를 틀었는데,
"아 엄마!!!!!!!!!! 온수!!!!!!!!!!!!!!!!!!!!!!!"
아무래도, 오늘 아침부터 기분 좋게 나가기는 틀린 거 같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어쩐지 되는게 없다 싶었다. 알람을 끄려다 매트리스 위에서 떨어지지를 않나, 머리 감으려고 샤워기를 틀었는데 분명 온수 쪽으로 제끼고 틀었는데도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이 나오지를 않나. (온수 안 나온다고 엄마한테 빽빽 거리며 소리 질렀다가 욕실까지 쫓아온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는 건 비밀이다. ) 같이 늦을 거라고하던 친구놈은, 엄마가 데려다준다는 유혹에 빠져 나를 두고 먼저 학교에 도착해버리지를 않나. 하나부터 열까지 되는게 없다. 심지어는 고데기를 하다가 검지 손가락 손끝도 살짝 데었다. 욕이 나올 뻔 한 걸 겨우 겨우 참았다. 음, 뭐. 하나부터 열까지 라고 하기엔, 아직 열가지는 채운게 없네. 이러다 열가지 채우는 게 아닌 가 하고 생각하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와중에.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 위로 팔을 두르며 내 쪽으로 무게를 실어왔다. 까만 손에, 좋다고 미친 듯이 실실 웃어대는 걸로 봐서 이건 분명...
"야. "
"야 아니고 이동혁인데요."
이동혁이다.
"존말 할 때 놔라."
이동혁의 얼굴 위로 물음표가 가득 떴다.
"네가 언제 나한테 좋은 말로 했다고 그러냐. "
"......즌믈 흘 뜨 느으르그 흐뜨."
"아, 또 손 물어. 그니까 네가 언제 좋은 말로 했냐고."
"...좋은 말 말고. 존, 나 말할 때 놓으라고 했지!"
아, 야! 때리지마! 여자 애가 무식하게 힘만 세! 아, 풀어, 풀었어. 풀었다고!! 이동혁의 팔을 퍽퍽 때리고 옆구리를 찔러대자 이동혁이 소리치며 내 어깨 위로 두른 팔을 풀었다. 그러게 진작 말할 때 풀었어야지 꼭 이렇게 맞고 나서 그만 둔다니까. 이동혁이 잔뜩 아픈 표정을 하며 자신의 옆구리를 문질렀다. 근데, 얜 평소에 지각 안 하는 애가 웬일로 지각이래. 문득 궁금해졌다.
"야. 이동. "
"뭐."
"너 지각 안 하잖아. 오늘은 왜 늦게 나와?"
"...개학 내일인줄 알았어. "
"어이구. "
가만보면 이동혁 얘도 꼼꼼한 거 같으면서도 이상한 곳에서 덜렁댄다. 어릴 때 부터 그랬다. 이동혁과 나는 서로의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말이다. 태어나고 말하고 걷고 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동혁과 나는 소위 말하는 불알친구로 자랐다.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라 이거다. 틈만 나면 서로의 코를 쥐어 뜯었고, 서로의 얼굴을 긁지 못해 안달이었다. 아, 여기서 하나 말하자면 이동혁 눈 위에 작은 흉터가 있는데 유치원 때 이동혁이 내 장난감 뺏어가서 내가 쥐어 뜯어서 생긴 상처라고 했다. 하여튼 우린 그렇게 자랐다. 지금도 별 다를 건 없다. 조금은 차분해졌다, 지만. 여전히.
"아!"
"길 가면서 핸드폰 하면 박 깨져 임마. "
아무렇지 않게 내 뒷통수를 후려 갈기고 낄낄 대는게, 이동혁이라는거지. 방금전에 했던 차분해졌다는 말 취소, 다 취소다. 아직 겨울 아니지만 산타 할아버지. 제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이동혁 저 새끼 잡아가주세요. 선물 그런 거 다 안 바라니까, 이동혁 쟤만 잡아가주세요. 이동혁 갉아 먹고 지옥가겠습니다. 닿지도 않을 기도를 속으로 웅얼웅얼하며 소리 없이 꺽꺽거리며 웃는 이동혁의 코를 쥐어 잡고 세게 잡아 당기려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김여주 어디야?"
"나 정문 코 앞. 거의 다 왔어. "
"빨리 와. 담임 곧 들어온대. 이동혁이랑 같이 있냐?"
"아, 어. "
"너네 둘만 안 왔어. 맞다, 그리고."
"왜?"
"아니다. 오면 얘기 해 줌. 빨리 와. "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뭐야, 궁금하게. 얘도 사람 궁금하게 하는데 뭐 있는 애다. 핸드폰을 마이 주머니에 집어 넣고 여전히 붙들고 있던 이동혁 코를 세게 흔들다 아래로 잡아 당기며 놓았다. 이동혁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이는 게 보였다. 쌤통이다. 이동혁이 자신의 코를 매만지며 내게 물었다.
"김소영? 뭐래. 빨리 오래?"
"응. 우리 둘만 안 왔대. "
이동혁이 내게 시선을 뒀다.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날 이렇게 쳐다보는 이동혁의 눈빛은 분명...
"김여주 내가 너보다 빨리 갈 거야! 늦게 오는 사람이 초코빵!!!"
이동혁이 와아아 소리 지르며 정문을 지나쳤다. 그것도, 엄청 빠르게 뛰면서. 여전히 유치했다. 하지만 더 웃긴 건.
"아 반칙 새끼야!!!!!"
저런 유치한 행동을 하는 이동혁에게 지고 싶지 않아 똑같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나라는 거다.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이동혁이 세게 문을 열었다. 야, 김, 여주. 오늘, 내가, 이겼,어. 숨이 차 단어가 뚝뚝 끊겨 겨우겨우 문장을 완성해 나가는 이동혁이었다. 문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상체를 숙이고 헉헉 대는 이동혁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뭐래, 야, 내가 먼저 교실 들어왔으니까, 니가 초코빵 사. "
정신을 못 차리는 이동혁을 뒤로 하고 맨 뒷자리 창가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문 밖으로 때가 일러 아직 채 다 피지 못한 벚꽃 나무가 보였다. 고개를 쭈욱 빼 교실을 둘러보자 앞 쪽에 앉아 있는 김소영이 보였다. 입모양으로 내게 뭐라 뭐라 말을 전해왔다.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팔을 휘저어 가며 못 알아 듣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김소영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톡톡 두드렸다. 아, 핸드폰 보라고. 알겠다는 손 사인과 함께 마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꺼내어 들자마자 김소영에게서 문자가 빠르게 왔다.
[야, ㄷㅐ박인 거.]
[뭔데?]
소영이에게 답장을 보내자 이동혁이 내 핸드폰을 힐끔대며 내 옆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런 이동혁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발로 이동혁을 툭툭 쳐대며 앞자리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앞에 가서 앉아. 자리 있잖아. 나 혼자 앉을거임."
"너무해. 우리 사이가 고작 그것밖에 안 돼?"
"...존말 할 때 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으며 이동혁에게 말하자 이동혁이 대꾸 없이 앞 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아까 손 깨물고 옆구리 찌른 보람이 있네. 어디서 오는지 모를 이상한 뿌듯한 기분에 휩싸여 김소영에게서 온 문자를 마저 확인했다.
[반배정 날에는 몰랐는데]
[응]
[오늘 전학생 온대.]
뭐야, 전학생? 김소영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하고 '전학생'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꽂혀 답장을 하지 않고 문자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때, 앞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앞문을 바라봤다. 반배정 날에 봤던 익숙한 얼굴을 한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고, 그리고 그 뒤로.
가슴팍에 영어로 된 낯선 명찰을 단 단정하게 생긴 남자애가 따라 들어왔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교실을 둘러보는 그 남자애의 눈과 내 눈이 맞닿았던 것 같기도 했다. 선생님께서 늘 들고 다니는 회초리를 교탁 위로 두어번 탁탁 두드리자, 고개를 숙이며 책상 아래로 핸드폰을 두들기던 아이들의 시선까지 순식간에 선생님과 그 남자애에게 쏠렸다
"새로온 전학생이다."
이동혁이 몸을 틀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전학생? 그런 말 없었는데. 이동혁의 말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참 이상했다. 별 다를 거 없는 똑같은 남학생인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자꾸만. 그애와 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물렸다. 평소 같았으면 별 관심 없이 시선을 거둬들였을 나였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마치 날 옭아매는 올가미 같았다.
"자기소개 해 볼까?"
선생님의 말 마저도 느릿하게 귀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선생님의 말에 조용하게 서 있던 그애가 교탁 앞 쪽으로 발 걸음을 옮겼다. 그애가 걷는 몸짓 하나하나가 전부 다 느리게 보였다면, 거짓말일까.
"캐나다에서 왔어. 이름은, 마크 리."
그애의 입이 열리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머릿속에서 삐뽀 삐뽀 경고음을 울려댔다. 안 돼, 더 보다간,
"부르기 불편하면 그냥 이민형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
차라리 착각이라고하면 좋겠다. 느릿하게 자신의 이름 석자 이민형,을 부르며 시선이 나에게로 닿았다. 불에 덴 듯이 뜨거웠다. 눈도 깜박일 수 없었다. 그저 이민형을 오롯이 바라보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어찌 할 줄 몰라 허둥대고 있을 때 선생님은 이민형에게 내 옆자리를 가르키며 저쪽으로 가서 앉으라고 말했다. 이민형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잘 부탁해. 라는 말을 덧붙이고는 머리를 살짝 헝클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쿵, 하고 울렸다.
이민형의 한 걸음에 내 심장 박동이 거세게 귀를 울렸고, 이민형이 내 옆자리로 다가와 안녕, 하며 말을 걸기까지 나는 그애를 바라보지 못했다. 위험해, 이건 위험해.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안녕."
이민형이 내 옆 책상의 의자를 빼 앉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 우리, 짝궁 맞지? 내게 물어오는 이민형의 목소리가 달큰하게 들렸다. 내게 내밀어진 그애의 손을 잠시 빤히 바라봤던 것 같다. 아니, 바라봤다. 내가 아무 반응 없이 손만 쳐다보고 있자 이민형이 살풋 웃으며 다시 말을 걸었다.
"나 손 민망한데."
"아, 어 미안. "
"손 안 잡을거야?"
이민형이 내뱉은 말에 당황해 내밀어진 그애의 손을 맞잡았다. 고개를 숙여 맞잡은 우리의 손을 바라보던 이민형이 고개를 들었다.
이민형의 입가로 살며시 웃음이 번진 것 같았다. 이민형의 시선이 내 가슴팍 위의 명찰로 와 닿았다. 김여주. 작게 읊조린 이민형이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 순간, 아까 이민형이 걸어 들어왔을 때 머릿속에 울리던 경고음이 다시 울렸다. 삐뽀, 삐뽀. 더 바라보다간 아마.
"손 따듯하다. "
아, 어떡하지.
"김여주. "
이건,
"이름도 예쁘네. "
내가 허락하지 않은, 습격이다.
여러분, 오랜만이에요ㅜㅜㅜㅜ 글잡에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무려 6개월전에 글을 쓰고 안 썼더라구요...
하하,,, 앞으로는 자주 오겠습니다 암호닉은 다음화에서 언급해 드릴ㄹ게요!! 두서없는 글 읽느라 고생 하셨어요...
ㅇㅣ건 다 민형이가 잘생긴 탓이죠... 빠른 시일내에 다음화 들고 ㅇ올게요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