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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몬스타엑스 샤이니 온앤오프
고개들고어깨피자 전체글ll조회 91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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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으면 보름이 되는 날, 세자빈에 대한 수사를 종결 짓을 것이다. 그 때, 네가 세자빈으로 간택 되는 것이야.”



이판 대감은 최근, 왕과의 거래를 마쳤다. 세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대신, 자신의 여식을 후궁으로 들이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세자빈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후궁의 자리로 가겠지만, 그녀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제 딸이 그 자리에 오를 것이다.
궐에 살고 싶다던 딸아이가 제 말에도 반응이 없었다. 심상치 않은 딸의 표정에 아버지는 되물었다. 세자빈이 되는 것이 두려우냐? 
아버지의 말에 딸은 대답을 망설였다. 최근, 궐에서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조정에서 은밀하게 세자빈의 자리를 놓고 여러 거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배경으로 그 자리를 갖게 됐다. 
그 날은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주상전하를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나가는 길에 잠깐 세자빈의 궁을 보고 싶어 들렀다. 며칠 후에는 자신이 있게 될 궁이었다. 
지금의 궁은 황량해 보였지만, 봄이 되서 꽃이 피고, 새싹이 돋으면 아름다운 궁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연못에 물고기를 키울 것이다. 
정원을 둘러보며, 어떤 꽃을 새로 심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던 차였다. 
잠깐 연못에 정신이 팔려 앞을 보지 못했는데, 어느새 누군가 앞에 서있었다. 고개를 들기도 전에 옷차림으로 알 수 있었다. 세자였다.
뜻밖의 만남이었다. 며칠 후면 제 지아비가 될 사람이기도 했다. 서둘러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고개는 숙였지만 잠깐 사이에 세자의 얼굴을 보았다. 궐안의 무서운 호환마마라는 별명과 달리, 어린아이 같이 순박한 얼굴이었다.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4 | 인스티즈




“이판대감의 여식, 김영희라고합니다.”
“제 집을 보러 온 게로구나.”



 세자는 자신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디서 들은 것일까? 주상전하께서는 세자에게 새 후궁을 들이는 일을 숨겨 왔다고 들었다. 
당혹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세자가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근데, 이곳에 살던 주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주위를 둘러보며, 마치 너에게만 비밀을 말해 주겠다는 듯이 다가왔다. 세자와의 거리는 주먹 한뼘 차이로 좁혀졌다. 
가까이서 보니, 아이 같이 순박해 보이던 찢어진 눈매는 저를 유혹하는 사내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저도 모르게 심장이 요동쳤다. 
제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세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내가 말이다....' 세자는 목소리가 세어나갈까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죽여서 궐 밖으로 보내버렸네.”



속삭임의 설레임도 잠시, 세자는 섬뜩한 말을 내뱉었다. 
당황스러워 고개를 들자, 세자는 싱긋 웃었다. 방금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네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아까와 달리 그 미소는 섬뜩하게 느껴졌다. 마치 궐 안으로 오면, 너도 그렇게 될 것 이라고 말하는듯 했다. 




궐에 갇힌 달 1장 4화




 도겸은 봉과 몇 가지를 약속 했다. 한가지로 요약하자면 하인들 있을 때, 서로 아끼는 티를 내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런 약속을 지킬 겨를도 없었다. 서로 마주치기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안방마님의 생신이라 아침부터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분주했다. 하인인 봉이는 잔치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주인인 도겸은 멀리 오신 손님들을 맞이하고, 인사하느라 바빴다.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4 | 인스티즈

 관직에서 물러난 후, 주인대감은 검소한 생활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여태까지 집안의 모든 행사들은 소박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안방마님의 부탁으로 몇 십년 만에 크게 잔치를 연 것이다. 좀처럼 열지 않는 잔치였기에 집안에 많은 손님들이 왔다. 예상 보다 더 많은 손님들에 주인과 하인 모두 정신이 없었다.

 요리를 하면, 금방 빈 그릇으로 돌아왔다. 봉이는 주방과 식재료 창고를 오가며, 심부름을 도맡아 쉴 새가 없었다. 그럼에도 잠깐이라도 도겸과 마주치길 바랬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본 도겸은 무척이나 정신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장남이라 방 안을 돌아다니며, 손님께 인사하고, 어르신들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시느라 바빴다. 문 사이로, 창문 너머로 잠깐 보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음식을 나르고, 그릇을 씻고. 계속해서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해는 지고, 잔치도 끝이 보였다.
 손님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갔지만, 아직도 몇몇 집안 어르신들이 남아 있었다. 
봉이 잔치 때문에 어질러진 창고를 정리하고 나오는데, 그 앞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도겸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손님이 주시는 술을 종일 받아 마셔 상태가 좋지 못할 것이다. 
속이 괴로운 것인지 도겸은 눈을 감은채, 천천히 크게 숨만 내뱉고 있었다. 

 그런 도겸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에 지나가는 하인들이 있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을 때, 도겸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봉과 눈이 마주쳤다. 
몇 초간 봉을 응시하던 도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 괜찮아.’


 한글자마다 또박 또박 소리를 내지 않고 말했다. 
어찌 제 속을 읽어낸 것인지, 도겸은 걱정에 대한 답을 해줬다. 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의 눈치를 보던 도겸이 하인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봉이에게 걸어왔다. 그리고 봉이의 손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딱딱하고 따뜻한 것이 만져졌다. 
아래를 보니 천으로 감싼 뜨거운 돌이 보였다. 고개를 들자 마주친 도겸이 웃어보였다.



“날이 많이 차다.”
“......”
“직접 녹여주고 싶었는데, 오늘은 내가 바빠서 이것으로 대신할게.”



 도겸이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 말에 반응을 할 틈도 없이 봉을 지나쳐갔다. 
봉도 주변 눈치를 보며, 도겸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고 소매를 내려 도겸이 준 돌을 감췄다. 
손안에서부터 따뜻함이 곧 온 몸으로 퍼졌다 추운 날씨에 꽁꽁 얼었던 손이 녹아 내렸다. 

 시끄러운 주위소리에도, 봉이는 오로지 제 심장 소리만 들렸다. 쿵쿵쿵. 유독 큰 소리로 들려왔다. 
짧은 몇 초간의 말과 행동이었지만, 이 설렘은 몇 시간이 갈지 장담 할 수 없었다. 




*




 돌의 온기는 해가 완전히 지면서 사라졌다. 봉이는 돌을 싸고 있는 헝겊을 풀었다. 매끈한 모양의 돌이 나왔다. 흑색에 모난 곳 하나 없이 반듯한 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돌은 아니었다. 잠깐 쓴 것임에도 혹여나 때라도 묻었을까 입김을 불며 돌을 소매로 닦아냈다. 그리고 방금 꺼진 아궁이 불의 장작속에 조심스레 넣었다. 꺼진 불에 잠깐이나마 넣어놓으면, 다시 따뜻해질 것이다.



“그게 무엇이니?”



 돌을 집어넣자마자, 주방으로 말순이가 들어왔다. 말순이는 안방마님의 수족 중 하나였다. 하녀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말순이 안방마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봉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안방마님께 고하고 나서부터다. 
 눈치가 빨랐던 말순은 봉과 도겸의 사이를 알아 챘다. 둘의 사이를 모르는 하인들에게 다른 대우를 일일이 말하며 퍼뜨리고 다녔다. 그리고 며칠 가지 않아, 집안의 안방마님께서 말순이를 불렀다. 입조심을 하지 않으면, 네 목이 날라갈 것이다. 무섭도록 혼을 내던 마님께서는 다시 목소리를 낮춰 은밀한 제안을 했다. 이제 하인들이 아닌, 내게 가장 먼저 알리라고.

 평소 저를 아니꼽게 보는 말순이를 알기에 봉이는 황급히 일어섰다. 그리고 아궁이를 가렸다. 그러나 말순이는 봉을 밀치고 막대기를 집어 아궁이를 쑤셨다. 봉이 달려들어 막았지만 말순은 다 타버린 장작 속에서 돌 하나를 찾아냈다.
 말순이 재 묻은 돌을 닦아내었다. 매끈한 표면이 드러났다. 달라는 봉이의 외침에도, 말순은 무시한채 돌을 살펴보았다.


“보통 돌이 아닌 듯 한데, 이 귀한 것을 네가 왜 들고 있느냐?”


봉이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도겸과 엮이지 않으려면 거짓말을 해야 했기에 마땅한 변명을 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봉이의 태도에 자신을 얻은 말순이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너 훔친거구나. 그렇지?” 




*




세자빈이 사라진지 열흘 째였다. 그녀를 찾는 벽보는 전국 여기저기 붙여졌다. 그러던 중 유독 수상한 한 마을이 발견됐다. 
이름도 들어 본적 없는 작은 마을에서, 세자빈을 봤다는 제보가 몇 번이나 들어왔다. 최근에 벽보를 훼손하다 붙잡힌 여인이 사는 곳과도 일치했다. 마을에 세자빈과 관련된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우가 직접 수사팀과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원우는 순영에게 전했다. 하지만 세자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세자빈이 발견될 거라는 작은 기대 조차 걸지 않는 듯 했다.

 혹시나 했건만, 허탕이었다. 어디선가 봤다는 말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상금에 눈이 멀어 비슷해 보이는 아무 사람이나 제보하고, 돈을 요구하는 듯 했다. 이번엔 진짜 같아 직접 찾아 내려왔건만, 또 아니었다. 

 마을을 떠나려던 원우에게 익숙한 얼굴의 하인이 달려왔다. 지금 민규 도련님께서 이 근처에 계십니다. 도련님이 제 말을 듣질 않아서요.
하인의 간절한 부탁에 원우는 그를 따라 갔다.

 하인을 따라 찾아간 곳은 기생집이었다. 자주 오는 곳이 아니었기에, 입구부터 술취한 남녀가 부둥껴 안은 모습들에 원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인을 따라 들어가니 입구부터 화려한 큰 방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방안에서 여러 기생들과 함께 있는 제 벗이 보였다. 
가운데서 앉아 있던 민규가 저를 발견하고는 손짓을 해보였다. 눈을 크게 뜨고도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중심을 제대로 서지 못해 비틀거렸다. 그제서야 원우의 눈에 상 위의 널 부러진 여러 개의 술들이 보였다. 



“왜 네가 온 것이냐?”
“너는?”
“너처럼 세자빈 찾으러.”



민규가 허탈하게 웃으며 술잔을 입에 갖다댔다. 술을 삼키고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동네에 조금이라도 닮은 사람을 한명도 보지 못했다. 하긴, 그 얼굴을 닮은 여인이 있을 리가 없지.”



민규가 잔을 원우에게 내밀었다. 원우는 고개를 저었다. 



“저하께서 기다리셔. 다시 궐로 돌아가 봐야해.”
“....저하라면, 궐에 호환이라 불린다던 그 자를 말하는 것이냐?”



 웃으며 말하던 민규는 세자라는 말에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원우가 거부한 술을 제 입에 넣었다. 
다시 술잔을 드는 민규를 보고 원우가 기생에게 눈짓을 보냈다. 
기생이 옆에서 말렸지만 민규는 뿌리치고 기어코 제 잔에 술을 따라 부었다. 



“제 곁에 있을 땐 그리 괴롭히더니, 찾으면 또 어쩌려고 그러시나.”
“......”
“나는 오늘처럼 너보다, 세자보다 먼저 그 애를 찾아 갈 거야.”
“그래.”
“근데 혹시, 만약에. 진짜 만약에, 네가 나보다 먼저 그 아이를 찾게 된다면. 그래서 내게 먼저 데려와 달라고 하면 너는....”



 민규는 끝말을 삼켰다. 원우의 표정이 대답을 대신 해주고 있었다. 빈말이라도 못하는 성격의 제 벗은 지금도 세자의 편이었다. 
미안해하는 원우에게 민규는 아무렇지 않은척 애써 담담히 웃었다. 이렇게 그자의 편을 들으라고 왕실에 너를 추천 했던게 아닌데. 


“근데 어찌 네가 온 것이냐?”
“내 직접 이 수사를 빨리 끝내려고. 세자 저하께서 요즘 또 악몽을 꾸셔.”
“악몽? 혹시 어릴 때 세자가 죽인, 그 꿈 말이냐?”


원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 또한 세자의 꿈에 대해 알고 있었다. 
세자와 사촌지간인 민규는 어쩌면 원우보다 그 꿈에 대해 자세하게 알 것이다. 뜸을 들이던 민규가 입을 열었다.



“너 근데, 세자가 죽인게 뭔지 알긴 아느냐?”
“고양이라 들었다.”
“...고양이? 고양이라, 그렇게 들었단 말이지...”


 민규가 작게 중얼거렸다. 민규와 있을 때는 일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세자의 꿈에 대해 자세히 물어본 적이 없었다. 
시원찮은 반응을 보니, 그 날의 일을 정확히 아는듯했다.
 술에 취해 제대로 서지도 못하던 민규가 원우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한 걸음 옮길 때 마다, 중심을 서지 못해 기생이 붙잡았지만 기어코 뿌리치고 제 스스로 걸으려 애썼다.


“너 내가 그 날의 일을 제대로 말해주면...뭐 해줄래?”
“장난치지 말고 똑바로 말해. 그 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말하면, 뭐 해줄거냐니까. 세자가 아닌, 내게 세자빈을 찾아 주겠느냐?”


 원우를 향해 걷던 민규가 기생의 치맛단을 밟고 넘어졌다. 세자빈을 들먹이며 유치한 거래를 하자고 걸어오다 쓰러진 벗을 보곤, 원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되었다, 내가 술 취한 애랑 무슨 대화를 한다고...
 바닥에 넘어진 민규는 다시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


“귀하신 분이니 잘 모시고, 너무 취하지 않게 해라. 혹여나 문제라도 생기면 이곳에 책임을 물을 것이야.”


 기생에게 당부를 하고 원우가 방밖을 빠져나갔다. 벗이 떠났음에도 민규는 누운 그대로 천장만 바라봤다. 
 하얀 천장에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만져보았지만 희미해져갔다. 
제 품에서 초상화를 꺼냈다. 실물 보다 더 못한 그림이었지만 지금은 이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보지 못했다고 벌써부터 그녀의 얼굴이 희미해져갔다.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4 | 인스티즈


 세자빈 간택 전, 그녀에게 물은 적 있다. 왜 내가 아니라 그를 택했냐고. 
그녀는 대답했다. 너는 세자가 아니잖아, 민규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밝게 빛나는 달이 되고 싶다는 그녀를 기꺼이 놓아줬다.
너만 행복하다면, 예쁘게 빛날 너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려 했다.
하지만 너는 하늘에 뜨기도 전에, 빛나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간택 전, 그 때 너를 데리고 도망갔더라면 지금 너와 나는 행복했을까? 
차라리 그 때 욕심을 더 낼 볼 것을 후회했다. 

 민규는 천천히 그녀의 초상화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줄곧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생이 말을 걸었다. 
이 아가씨께서 나리께서 계속 말하신 그 분입니까?
민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눈 떼버리면 그녀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잊혀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초상화만 바라보았다.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바라보던 민규는 초상화를 품에 안고 잠들어버렸다.





*





 이 작은 마을에 뭐 볼 것이 있다고, 오늘 기생집에서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양반 도련님들이 찾아오셨다. 
덕분에 모든 기생들이 각자의 몫을 챙기러, 그 방에 들락날락 거렸다. 하지만 라희는 그분들을 보러갈 기운이 나지 않았다. 
명문가 도령이 오던, 임금이 오던 자신이 보고 싶은 사내는 따로 있었다. 

 힘없이 지나가던 라희를 설화가 불러내었다. 
설화는 눈치를 보더니 품에서 종이를 꺼내 펼쳐보였다. 웬 여자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오늘 도성에서 오신 나리 알지? 지금 제일 큰방에 계신 나리말이야. 그 방에 있던 나리께서 꺼내서 보신던 건데, 내가 어디서 본 것 같아서.”


라희의 시선이 초상화로 향했다. 여인의 얼굴은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라희였지만, 한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요 며칠 제 마음을 아프게 했던 도련님이 아끼는 계집종이다.


“이 여인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궐에 있는 사람까지 보냈다니까. 게다가, 큰방에 계시는 젊은 나리랑도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더라고.”


 라희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림에 그려진 여인은 영락없는 그 계집종이었다. 
궐에 나온 나리와 도성에 사는 나리가 왜 시골에 사는 계집종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계집종은 제 주인 도련님과 애틋한 관계였다. 
천한 계집종 하나에 몇 명의 사내가 얽혀있자, 라희의 머릿속이 복잡해져갔다.
 

“이곳에서는 손님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는 것을 절도로 칭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궐에서 나왔다던 나리가 라희의 앞으로 걸어왔다. 앞으로 성큼 와서는 라희의 손에 있던 초상화를 낚아챘다. 
 나가기 전에, 다시 방에 들렀던 원우는 기생들이 세자빈의 초상화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세자빈을 찾는 벽보가 아닌, 그녀를 보기 위한 초상화였고 민규가 아끼는 물건이었다. 


“송구하옵니다. 그저, 여인의 얼굴을 확인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기생의 변명과 사과에도 원우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제 손의 초상화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그 모습에 화가 단단히 난 것으로 생각한 설화는 쩔쩔 매며, 거듭 사과를 하였다.
 한편, 라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앞에 서있는 궐에서 온 나리와, 방 안에 계신 부잣집 도련님이 그 계집종을 찾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왕실과 엮인걸 보면 작은 일은 아닌 듯하다.
 초상화의 여인이 계집종과 동일 인물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애꿎은 아이가 괜한 일에 휩쓸리게 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제 서신에 답 한번 주지 않은 도겸이 야속했고, 여전히 도겸의 곁에 있는 계집종이 거슬렸다. 


“그 여인 말입니다.”


 라희의 말에 초상화를 접던 원우의 손이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라희는 제 머릿속에서 계산을 마친 뒤였다. 
무심하게 바라보는 원우에게 라희가 미소 지었다. 


“제가 그 여인을 본적 있는 것 같습니다.”




*




처음 보던 날 생각했다. 역시 천한 피는 못 속이는구나. 
주인 대감의 손을 꼭 쥐고 들어온 아이의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제대로 씻기는 한건지 뗏국이 흘렀다. 딱 보기에도 양반은 아니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작은 아이가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이는 눈치가 빨랐다. 자신을 어머니 대신, 마님이라고 불렀다. 
그 때는 그 호칭이 만족스러웠다. 아이를 갖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데려온 아이였다. 제 호적에 올렸지만, 천한 피가 섞인 부끄러운 아이였다.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나이었지만 정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는 제 감정을 티내지 않고 묵묵히 양반가의 아이로 자랐다. 
계속해서 그렇게 거리를 두려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그 거리는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까맣던 얼굴은 점점 하얗게 변해갔고, 부르튼 입술은 혈기가 돌면서 새빨갛게 변했다. 코는 오똑해졌고, 조그맣던 키는 점점 자라 제 아버지 보다 커졌다. 어딜 가든 아이의 훤칠한 외모는 눈에 띄었다. 성격 또한 바르게 자랐다.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누구하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양반가에서도, 하인들에게서도 신임을 얻었다. 또한 아이는 총명했다. 한번 보고 들은 것을 잊지 않았다. 스승으로부터 항상 칭찬을 들었다.
 아이의 외모와, 성품, 그리고 학식은 소문 내지 않아도, 알아서 퍼져갔다. 모임에 가면, 도겸을 칭찬하기 바빴고, 그 중 딸 가진 부모들은 도겸을 사위 삼으려 안달이었다. 몇 년간, 숨기기에 바빴던 아이는 자랑이 되었고, 어느새 일생에 작은 기쁨이 되었다.

 사랑을 받지 못했음에도 아이는 제게 원망의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게 고맙고 대견했다. 하지만 그것이 큰 문제가 될 줄 몰랐다.
 아무도 반기지 않은 집에서, 외로웠던 어린 아이는 제 또래의 여자아이와 마음을 주고받았다. 상대가 신분이 낮은 천한 종이었음에도 말이다. 
그저 외로워서 생긴 감정이니 크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그 감정은 갈수록 더 커져갔다. 
그리고 마님은 그 모습에서 이십여년 전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지금의 대감은 천한 기생에게 마음이 뺏겨, 저를 바라보지도 않았고, 그녀의 아이까지 낳았다. 
배신감을 느꼈지만 제 상처와 상관없이 두 사람 사이에서 자신은 그저 악역일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 여인의 아이가 제 아들로 자라고 있다.
 숨겨뒀던 분노가 끓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제 아버지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굳이 아들의 모습에서 제 상처와 마주하는 것도 싫었다. 제 아버지처럼 천한 종을 사랑한다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것도 싫었고, 제 아들이 무너지는 것도 보기가 싫었다. 

 이번 자신의 생일에 잔치를 크게 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부러 혼기가 찬 여식을 둔 지인들을 불렀다. 
 역시나, 딸자식을 둔 손님들의 반응은 좋았다. 선한 인상의 도겸이 마음에 들어 정식으로 혼담을 주고받길 원한다는 의견을 전해주고 간 대감들이 몇 되었다. 잔치가 끝나자 마자 부부는 아들을 불렀다.



“오늘 낮에 인사드린 김대감을 기억 하느냐?”
“네, 기억이 납니다.”
“그분의 여식의 혼기가 차서, 너를 맺어주고 싶다고 하는 구나. 다음번에는 정식으로 제 딸을 소개 시켜주고 싶다던데.”



 줄곧 마님의 눈치에 마침내 이대감이 이야기를 꺼냈다. 찻잔을 들어 올리던 도겸의 손이 멈췄다. 
도겸이 빨리 혼례를 올리는 것. 혼례를 올려 이 마을을 벗어난다면, 그 계집종과의 연도 끊길 것이다. 



“다음번에 정식으로 소개시켜주고 싶다던데. 네 생각은 어떠냐? 이른 나이지만, 너도 혼례를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대답을 망설이는 아들을 보고 이대감이, 다정히 덧붙였다. 아직 혼인 생각이 없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도겸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결심이 선 듯 잔을 내려놓았다.



“저는 이미 마음에 둔 여인이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그 여인과 혼례를 올리고 싶습니다.”



설마 했던 대답이 흘러 나왔다. 도겸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 상대가 누군지 아는 마님으로써는 당황스웠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아들이, 제 아버지 앞에서 천한 종과 혼례를 올리고 싶다고 밝히려 할 줄은 몰랐다.



“그래. 네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그 여인이 누구더냐?”



다시 이대감이 다정히 물었다. 도겸이 대답하려고 할 때, 밖에서 시끄러운 언쟁소리가 들렸다. 두 부자의 눈길이 문으로 향했다. 
잠깐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마님은 벌떡 일어섰다.



“밖이 소란스럽구나. 무슨 일 있는 것이냐?”



 도겸이 대답할 순간을 마님이 가로챘다. 때 마침, 밖은 전 보다 더 소란스러워졌다. 하인들 사이에 언쟁이 오고가는듯했다. 
이대감과 도겸의 시선이 문으로 갔다. 마님은 직접 일어서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를 둘러 싸고 있는 하인들이 보였다. 몇몇은 그 곁에서 감싸고 있었다. 중앙에 있던 하인은 하필 또 그 아이였다. 
봉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리둥절한 제 아버지 옆에서,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에 저 표정을 본적이 있다. 말 잘 듣던 아들이 처음으로 제게 반항했던 날이었다. 




*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려 했으나, 말순은 일을 크게 벌였다. 집안의 하인들을 모으더니 자신을 도둑으로 몰았다. 
누군가에게 받았다고 말해도 그것을 듣지 않았다. 평소 봉을 곱게 보지 않던 하녀들도 가세했다. 
 그러면서 소란은 점점 커졌다. 몇몇 하인들은 봉이의 말을 들어주었지만 그것은 분쟁이 되어 더 큰 소란이 되었다. 
단순한 트집이었다. 논리적으로 밀리자, 말순은 마당으로 돌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제 편인, 안방마님이 듣도록 더 크게 말했다. 
런 말순을 말리고, 또 그걸 말리는 하인들에 의해 또 한참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채의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문이 열리고, 안방마님의 모습이 보였다. 
말순은 의기양양해져서, 소리쳤다. 혹시, 잃어버린 물건이 없으십니까? 그리고 제 손에 쥐어진 돌을 내밀어 보였다.



“그게 무엇이냐?”
“봉이가 가지고 있던 온돌입니다. 저희 같은 종이 가지기엔 값진 것인데, 이 아이가 들고 있었습니다.”



마님의 시선에 돌이 머물렀다.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이대감이 나섰다. 



“그것을 네가 어찌 가지고 있느냐?”



 어느새 이대감은 방 밖으로 나왔다. 
봉이는 저를 쳐다보는 도겸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가 나설까봐 황급히 대답했다. 
지난 장날에, 제 어머니가 사다주신 것입니다. 침착하게 말을 하려 했지만,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저리 비싼 것을 우리 처지에 어찌 산단 말이야? 하녀들의 수군대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 반응을 지켜보던 이대감이 인상을 찌푸린채 입을 열었다.



“거짓을 고하고 있구나. 바른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내 벌을 엄하게 내릴 것이다. 그것을 네가 어찌 가지고 있는지 물었는데도!”
“참말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제가 준 것입니다.”



 대감의 호통에도 겨우 정신을 붙잡고 말을 이어가는데, 도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도겸에게로 향했다. 



“날이 추워, 혹여나 손이 상할까 걱정되어 제가 준 것입니다.”



 도겸의 발언에 집안의 모두가 일시정지 된 듯 멈추었다. 아무도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주인집 도련님과, 종의 사랑. 그간 모두가 쉬쉬하며 감추었던 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도겸은 봉과 했던 약속을 깨뜨렸다. 
하지만 곤경에 처한 봉이의 앞에서, 약속을 앞세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을 꺼낸 이유는 사랑하는 그녀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제 마음을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 친어머니께 그랬듯이 신분이 낮다고 함부로 대하거나 사랑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대감은 대답 하지 않았다. 아들의 시선을 피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벌을 내리시려거든, 제게 주십시오.”
“되었다.”
“제가 그 돌을....”
“되었다 하질 않았느냐.”



다시 몇초간 정적이 흘렀다. 이대감은 마당에 모인 하인들을 둘러보고는 애써 웃어보였다.



“하인들의 몸 상태를 걱정해 주는 모습이 기특하구나. 이리 심성이 깊다니, 올곧은 선비의 모습이다.”
“....아버지.”
“하찮은 것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대견하구나.”
“아버지!”
“...오늘 밤은 너무 늦었으니, 그만 들어가도록 해라. 너희들도 그만 들어가고.”



걸음을 옮기려던 이대감이 휘청거렸다. 마님과 하인들이 서둘러 다가왔지만 이대감은 괜찮다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마님이 곁눈질로 도겸과 봉을 훑어보고는 그 뒤를 따라갔다. 다시 마당에 정적이 흘러들었다.
 하인들이 눈치를 보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마당을 빠져나가는 하인들 틈에서 봉이 보였다. 도겸과 봉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도겸이 무어라 입을 열려는 찰나, 봉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때 마침, 방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겸이는 잠깐 손님방에 들어가 있거라.
 여전히 봉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도겸이, 다시 한 번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결국 걸음을 옮겼다. 




*




어제 밤, 도겸의 발언 이후 집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제 일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지만, 집안에서 전과 다른 긴장감과 차가움이 돌았다. 
봉이에게 시비를 걸던 하녀들도 더 이상 그러지 않았다. 평소처럼 일상이 흘렀지만, 모두가 봉이에게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점심이 지나고, 하인의 부름에 봉이는 대문 밖으로 나갔다. 대문을 나서니, 그 앞에 도겸이 봇짐을 매고 서있었다. 
도겸의 뒤에는 말 한필도 보였다.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 처럼 보였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신발로 흙을 모으던 도겸이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봉을 발견하고는 늘 그랬듯 밝게 웃으며 다가왔다.



“미안해. 너랑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어제 밤 그 일 이후로 처음 마주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봉이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도겸의 첫마디는 사과였다. 
어젯 밤 내내 저와의 약속을 깨뜨린 것을 속상해 하고 사과를 준비 했을 도겸을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봉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도겸의 시선을 피했다. 마주쳤다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봉이의 시선이 도겸의 뒤로 향하자, 도겸이 뒤를 힐끗 바라봤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말을 가리켰다.



“큰 아버지댁에 열흘만 있다가 오래. 아버지 말로는 할머니께서 날 보고 싶어 하셔서 그런 거라는데...”



도겸이 말끝을 흐렸다. 
뒷말은 하지 않아도 안다. 어제의 일로 도겸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봉이는 도겸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애초에, 어제의 일은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는 괜찮을 거야. 순순히 다녀오는 대신에 부모님께 약속도 받았거든.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빠르게 내게 말해주기로 약조한 하인도 있어. 근데, 큰일이네. 그동안 네가 보고 싶으면 어쩌지?”
“......”
“며칠 동안 보지 못하는데, 뭐라고 할 말 없어? 나 네 목소리 못 듣고 가면 억울해서 잠도 못 잘것 같은데.”
“......”
“....왜 울고 그래.”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속상함과 미안함. 그리고 저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고마움. 
결국 참았던 눈물이 흘러 내렸다. 도겸이 다가와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저를 껴안고, 조용히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리 울음이 많아서, 너를 어찌 두고 가냐.”
“미안해.”
“내가 더 미안해.”
“잘 다녀와, 석민아.”



 등을 두드려주던 도겸이 봉을 천천히 때내었다. 그리고는 매고 있던 짐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한쪽 면이 평평하게 깎여진 고동색의 나무 가락지였다.



“...갔다 와서 전해주려 했는데 안 되겠다.”



도겸은 조심스럽게 봉이의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워주었다. 
노리개는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신발은 주면 도망간다는 미신이 있어서. 수많은 장신구 중에서 한참을 고르고, 또 골라 산 것이다. 
 봉이 울음을 그치고, 제 손의 가락지를 바라보았다. 손가락에 비해 반지는 컸다. 
도겸은 같이 산 줄을 꺼내, 가락지를 묶었다. 그리고는 다시 봉이의 목에 걸어주었다.



“가락지가 나라고 생각해. 힘들 때는 이걸 보고.”



대문이 열리고, 남자 하인이 나왔다. 이제 가야 할 시간입니다. 
봉이 도겸에게서 떨어졌다. 하인은 눈치를 보다 말을 이끌었다. 도겸이 봉을 보고는 처음처럼 웃어주었다.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4 | 인스티즈


“다녀올게, 봉아.”



봉도 애써 웃어보였다. 석민아, 기다리고 있을게. 한참을 말에 올라타지 못하던 도겸이 하인의 재촉에 결국 올라탔다. 
말을 끌고 떠나면서도 도겸은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봉이는 가락지를 어루어 만졌다. 




*




도겸이 떠난지 이틀째가 되던날. 아침부터 말순이가 봉을 불렀다. 
그녀는 안방마님의 수족이었다. 때문에 봉이는 따라가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욕실이었고 생뚱맞게 향긋한 꽃이 띄워진 욕조가 보였다. 

 향긋한 꽃냄새가 가득한 물에서 다른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평생을 시중만 들다가, 반대로 대접받으니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마냥 즐거워 할 수도 없었다. 
목욕을 마친 후에는 곱게 화장을 하고, 고운 새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다듬었다. 옷 또한 평소에 입던 옷이 아닌, 양반들만 입던 비싼 옷이었다.


 꽃단장을 마친 봉이 나오자, 마당에 가마가 놓여있었다. 안에 마님이 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말순은 봉보고 그것을 타라고 했다. 또 장난질을 하는가 했더니, 말순과 하녀들의 표정은 전과 다르게 진지했다. 
처음 타보는 가마임에도 봉이는 마냥 즐길 수 없었다. 꽃단장을 하고, 가마까지 타고 간다니.
천한 종인 저에게 가마를 타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함일텐데. 봉이의 마음이 불안해져갔다. 

[세븐틴/권순영/이석민/김민규] <궐에 갇힌 달> 1장 - 04 | 인스티즈

 한참을 타고 가던 가마가 멈추었다. 가마가 내려지고 봉이 내린 곳은 제가 모시던 주인집보다 더 큰 집이었다. 가마에서 내리자, 대문 앞의 처음 보는 하인이 봉을 안내했다. 그 넓은 집 안의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하인의 말에 봉이는 고개를 숙인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궐을 나오는 길에 세자가 졸래졸래 쫓아왔다. 이번에 또 그 마을로 가는 것이냐? 지난번에 찾지 못했다며? 
순영은 지난번과 달리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원우는 세자가 기대를 갖지 않도록 최대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기대감이 들었다. 얼굴을 본 사람도 존재하고, 데려 온다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정말 시골 마을에 세자빈이 나타난 적이 있는게 분명했다.

 세자빈을 찾는 벽보는 그 마을까지 아직 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원우는 기생에게 초상화의 여인이 세자빈이라는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신분을 알게 되었을 때, 나쁜 마음을 품고 벌일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었다. 

약속 했던 장소로 나오자, 기생 라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머뭇거리던 라희가 원우를 안내했다. 
그리고 그 걸음은 한 방앞에 멈춰섰다. 


“이 안에, 네가 봤다던 초상화 속 여인이 있느냐?”
“...네, 그러하옵니다.”


문 건너에 세자빈일지도 모르는 여인이 있다. 원우는 심호흡 후, 문을 열었다. 머리를 올리고 앉아 있는 여인이 보였다. 
뒤를 돌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원우가 방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마, 원우이옵니다.”


여인은 제 부름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원우는 얼굴을 확인 하지 않았음에도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데....뒤를 돈 그녀의 얼굴은 세자빈이 아니었다. 





*





“고개를 들어보거라.”

고개를 들어보니, 봉이의 앞에 겉보기에도 지체가 높아 보이는 양반 대감 두분이 앉아 계셨다. 
왼쪽에 앉아 있던 대감은 머리가 하얀 백발의 노인이었고, 골골 거리며 숨 쉬는 것 조차 힘들어보였다. 
이대감과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대감께서 앉아 계셨다. 한쪽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보니, 두 사람은 부자지간인 듯 했다. 
눈을 뜨기도 힘들어 보이는 영감이, 봉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이대감 댁에서 봤던 아이가 맞다.”
“이 아이로 하겠다고 전하거라.”


 할아버지의 말에, 그 아들이 신속히 하인에게 전했다.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봉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하인이 봉을 데리고 나왔다. 
방을 나오면서도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저를 훑어보던 영감의 시선이 불길했다. 

 하인을 따라 방밖을 나오는데 기다리고 있던, 나이 먹은 하녀가 다른 종에게 눈짓을 보냈다.


“아직 혼례를 올리기 전이니, 말은 높이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를, 사랑방 뒷방으로 데려가거라.”
“저 말입니까? 제가 혼례를 올린다구요?”


당황한 봉이 나이 든 하녀의 팔을 붙잡았다. 뒤를 돌아 봉이의 표정을 보고는, 되려 그녀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 주인에게 듣지 못 한 것이냐?
“...무엇을 말입니까?”
“네가 이 집 영감님께 첩으로 팔려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

오랜만이에요.
사진 문제시 댓글로 남겨주세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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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진짜 기다렸어요ㅠㅠㅠ너무 재밌어요
7년 전
비회원126.236
헐ㅠㅜㅠ첩이라뇨ㅠㅜㅠ그리고 라희는 누굴 데려온걸까요 일부러 봉을 보호해주려고 그랬던거라면 라희가 그렇게 나쁜 여인은 아닌가봐요ㅠㅜㅠ진짜 보는내내 심장쫄깃했어요!!진짜 작가님 글이 그리웠는데 딱!!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게 잘읽었어요!
7년 전
독자3
진짜 재미있어요ㅠㅠㅠ다음편이 기대되네요!!
7년 전
독자4
너무 늦게보러왔네요... 작가님 정말 작가님 글을 읽고 있으면 잘 짜여진 영화나 드라마 각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야기가 진짜... 너무 잘 짜여있고 다음 전개가 궁금해지네요...ㅠㅠㅠㅠ 어떻게 표현해야 제가 받은 감정을 다 말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ㅜㅜㅜ 그냥 진짜 작가님 글을 읽고 있으면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장면들이 떠오르고, 내용이 너무 흥미롭게 진행되면서도 어색한 부분없이 흘러가고, 글 짜임도 그렇고 내용 구성도 그렇고 그냥 다 너무 놀라워요... 정말 정말 이 글을 읽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이런 훌륭한 글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분량도 진짜 많고 ㅠㅠㅠㅠ 다음 편도 기다릴게요!!! ^3^❤
7년 전
독자5
인돼...첩이라니...ㅠㅠㅠㅠㅠㅠ안돼요...석민이 아버님께서 이해해주실 줄 알았는데..안돼요ㅠㅠㅜㅠ진짜 안방마님 못돼셨어..원우가 본 여인은 봉이 아닌 것 같은데 너무 궁금하네요..이번 편도 재밌게 봤습니다
7년 전
독자6
안돼!!!! 첩이라뇨ㅠㅠㅠㅠ진짜 나쁘시다...신분차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사고 팔다니요ㅠㅠㅠㅠ그러려고 도겸이 보낸거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구하러 와주라ㅠㅠㅠ
7년 전
독자7
봉이 진짜 세자빈이 아니란걸 원우는 알아챈건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니꺄 석민아 구하러 와죠 퓨ㅠㅠㅠㅠ
7년 전
독자8
????첩이라뇨ㅠㅠㅠㅠㅠ안도ㅑ요ㅠㅠㅠㅠㅠㅠㅠ석민이랑 결혼해야돠는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10
아정말 너무재밌어요ㅜㅜ 석민이가 다녀와서 여주가없을때 얼마나 슬플까요ㅜㅜㅜ 너무나빠요ㅜㅜ
7년 전
독자12
안돼ㅠㅠㅠㅠㅠㅠㅠ 첩이라니ㅠㅜㅠㅠ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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