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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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5분 거리에 편의점이 있고, 옆집에는 큰 강아지 노을이가 있고, 학교는 스쿨버스를 타면 된다. 나는 요즘 새로운 집과 주변을 익히려 노력 중이었다. 그 노력 중 가장 공을 들이는 건 새로운 학원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에 대한 욕심과 긴장이 배로 뛰는 탓에 거의 하루를 새로운 학원 상담에 바치다 싶이 하고 있었다. 오늘도 다를 건 없었지만 학원이 집과 많이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 주변 정류장에 내릴 수 있었다. 가로등이 군데군데 꺼져있어 동네가 어둑한 게 갑자기 등골이 서늘한 기분이 들어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집 앞에 도착했는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인지 이석민이 마당을 이리저리 쏘다니며 손톱을 잘근잘근 물고 있더라.
" 이석민 너 뭐 해? "
" 뭐야 너 언제 왔어. "
뒷걸음질 치면서까지 놀랄 일인가.
" 나 방금. 넌 여기서 뭐 해 지금 12신데. "
" 아니 그냥 잠이 안 와서 바람이라도 쐴까 싶길래... "
" 오늘도 학원 상담 다녀왔어? "
집에 들어오니 학원 상담의 긴장이 녹아내리듯이 풀어졌다. 이석민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곤 너도 얼른 자라고 등을 떠밀자 이석민은 자리에서 또 한번 주춤거린다.
" 안 졸린건 알겠는데 밖에 추워 그러다 감기 걸려. "
" ...야. "
방으로 올라가려 계단을 밟고 있는데 뒤에서 이석민이 날 부르는 소리가 이어 들렸다. 왜?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황급히 입을 가리고 돌아선 네가
" 아니 얼른 자라고. "
한마디 하고 쏙 문 너머로 넘어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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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러졌었나 싶을 정도로 어젯밤에 대한 기억이 없다. 씻고 잠들긴 했나. 급하게 머리를 빗고 거실로 내려가니 한창 아침상이 차려지고 있었다. 거들러 옆으로 다가갔지만 이미 좀 늦었었나 보다.
" 이름 얼른 앉아 밥 먹자. "
주로 밥상에서의 대화는 많이 오가는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얘기를 한다고 치면 대화의 반은 건너편 이모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 우리 엄마도 안 하는 내 걱정부터 시작해서는 집안 살림 이야기를 늘어놓는 게 매일 아침마다 반복이었다. 밥을 먹다가 괜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니 평소완 다르게 젓가락으로 제 국을 휘휘 저으며 눈치를 보던 이석민이 눈에 들어왔다. 마주치니 황급히 돌아가는 시선.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그 뒤로도 자주 이석민과 식탁 위에서 시선이 부딪혔다. 볼 한가득 꾹꾹 씹어먹는 날 쳐다보다가 눈이 맞고, 이모 얘기 듣던 내 옆모습을 또 힐끗 쳐다보던 너와 눈이 맞고. 이쯤 되면 눈치가 안 보일 수 없겠더라.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설거지 당번이었던 나는 팔을 걷어붙이며 싱크대 앞으로 다가섰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이석민이 나보다 빠르게 고무장갑을 낚아챘다.
" 내가 할게. 너 들어가서 쉬어. "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렸지만 듣지도 않는 것 같았다. 오늘따라 설거지가 하고 싶다는 둥, 제가 그릇을 많이 꺼내놨다는 둥.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늘어놓다가 결국 너의 설거지가 시작되었다. 네 말에 못 이겨 자리를 내어주기는 했지만 같이 있어줘야 할 것 같아 나는 식탁 의자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설거지하는 이석민 큰 덩치 한번 봤다가 네가 둘러맨 덩치에 비해 조그맣게 보이는 이모 앞치마를 보자니 웃음이 났다.
" 그래서 할 말이 뭐야? "
잔잔하게 이어지던 네 콧노래가 끊겼다. 응? 잔뜩 굳은 목소리로 되물어보는 네게 할 말 있는 것 같길래. 아냐? 하고 받아치자 조금의 정적이 이어졌다. 찰랑이던 물줄기가 세졌다.
" 별건 아닌데... 나랑 과외할래? "
아니 이 주변에 가까운 학원 없어서 밤늦게 다니면 되게 피곤하잖아. 안 그래도 학교도 좀 먼 편인데 학원은 학교 끝나고 가니까.. 그리고 또... 한참을 길게 말을 늘이는 너다. 나는 네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간 틀린 말은 없는 것 같아서 미리 수업을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 과외 수업이 언제야? "
" 오늘 저녁 8시. "
" 그럼 오늘 수업 들어봐도 돼? "
" 내가 연락드려 볼게. "
우리의 대화와 너의 설거지가 끝났다. 난 식탁에서 일어나 고맙다며 네 손에 초콜릿을 쥐여주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네 손에 가득했던 게 땀이었는지, 물이었는지. 나는 잘 분간이 안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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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민 긴장 좀 해야겠는데. "
미리 준비해 오셨다는 문제들이 난이도가 있다는 말에 긴장을 했었지만 다행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이석민이나 그 옆에 앉은 승철쌤도 꽤나 놀란 눈치였다.
" 공부 잘하네. 몇 등급 정도 나와? 1에서 2? "
" 아... 네. 욕심이 좀 많아서... "
민망함에 고개를 숙이고 웃기만 하자 쌤은 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석민이 표정 좀 보라며 크게 웃어넘기셨다.
" 얘 봐봐. 지금 동공 지진 난 거."
위로 힐끗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돌처럼 굳은 이석민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굳을 일인지는 몰라도 그냥 멍한 그 표정이 나름 웃기길래 픽 웃었다. 창피한지 이석민의 목 언저리가 붉게 올라왔다. 그렇게 이것저것 서로 문제도 풀어보고 궁금한 것도 물어보다가 과외가 끝났다. 마음에 드는 수업이었다. 쌤은 문제집 위에 제 번호를 적어주시곤 연락 기다린다며 다음에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셨다.
자리를 정리하다 말고 코코아 마실 거냐며 물어오는 이석민에게 그러자고 했다. 부엌에서 몇 번 달그락 거리더니 네가 내 앞으로 김이 폴폴 나는 코코아를 내밀었다. 고마워.
" 그래서 너 반은 나왔대? "
" 안 그래도 어제 전화해봤는데. "
큽, 이석민의 입가에 코코아가 묻어 나왔다. 뜨거운데 조심히 좀 먹지. 건넨 휴지를 받아든 네가 입가를 닦으며 내 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4반이래. 놈이 씩 웃는다.
" 같은반이네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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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괜찮나요!
나름 고심해서 골라봤답니다ㅎㅇㅎ
진도 너무 안나가고 속터지지만 우째요...
후.. 연애 못해 슬픈 사람... 달달한 글 못 써 눈물이 납니다..
오늘도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려요! 사랑합니다 ♡뿅뿅♡
재밌게 읽으셨다면 독자님 댓글 한개 부탁드립니다! 힘이 불끈불끈나서 업뎃 주기 빠르도록... 도와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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