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향기가 퍼지는 순간
" 지겨워. 헤어져."
그렇게 나는 박찬열의 표정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채 보건실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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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간.
난 정말 그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교실로 찾아오는 그를 피하려 커튼 뒤에도 숨어보고,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대화 한번 해보지 않은 남학생의 책상 밑으로도 들어가고
복도나 계단에서 그를 발견하면 반대쪽으로 뛰어가고,
다친다 해도 죽었으면 죽었지 보건실에는 가지 않았다.
내 상태를 보자마자 도경수는 상황을 물어왔고,
처음엔 말할 생각이 없었지만 김종인의 끝없는 질문으로 인해
결국 교실 안에서 도경수가 난리를 쳐댔다.
학교에서는 그래도 참을만했는데, 집에만 오면 그렇게 무섭다.
요 며칠 째 비도 와서 하루 종일 어둡고, 밤에는 악몽을 꾼다.
그렇게 매일 밤 잠을 설치고 수업시간에 쥐 죽은 듯이 잤다.
그게 일주일.
박찬열을 보지 못하고 두려움에 휩싸인채로,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거다.
그리고 전화와 문자를 미친 듯이 해대며 날 찾던 그가 오늘은 하루종일 연락이 없었다.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가 더 이상 날 찾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슬펐다.
그렇게 힘없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익숙한 차가 눈에 띄었다.
이 주변의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주인을 닮은 차.
" 얘기 좀 해. "
그리고 그 옆엔 박찬열이 있었다.
나를 붙잡는 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가려하자 뒤에서 나를 안아온다.
배려따위는 하지 않는채 날 잡아야겠다는 심정뿐인지 억세게 어깨를 감아오는 팔에 작게 신음을 흘리자
그제서야 놀란듯 살짝 힘을 푼다.
빠져나가려는 내 행동을 가볍에 무시한채 끌어안은채로 내 목에 얼굴을 묻고 나에게 말을 건넨다.
" 얘기 좀 하자고...제발..... "
" 할 얘기 없어요. 돌아가. "
" 난 있어. "
" 듣고 싶지 않아. "
" 들어야 해... "
떨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고,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이 봐왔던 그 얼굴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분명 나보다 더 아픈 표정을 짓고 있겠지.
미간을 좁히면서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겠지.
심장을 찌르는 감정에 눈물이 차오르자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겨우 마음을 다잡았는데, 그가 나를 돌려 마주보게 했다.
그의 눈동자에 비쳐진 내 모습은,
한없이 못났고, 바보같았고,
미웠다.
둘 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본격적으로 쏟아져내리는 비가 주변 공기를 차게 만들고,
내 귀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세차게 천둥이 쳤다.
" 왜 피하는지 알고있어. "
그가 하는 말에 무너지려는 감정을 추스렸다.
정신을 차렸다.
여기서 들키면 여태껏 했던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겠지.
그의 아버지가 했던말이 기억나자, 잔인하게도 얼굴은 가면을 쓰고
입은 그를 아프게 할 말을 내뱉었다.
" 그날. 연락이 안됐던 날. 그 남자 만난거지? "
" 누구를 말하는거야? "
" 내 아버지라는 사람. "
" 아아, 응. 만났어. "
" 그 남자가 했던 말은 다 잊어..... "
" 왜 잊어야해? 선생님이랑 내 사이를 갈라주겠다는데. "
" 백현아. "
" 놓치기 아까워서 그렇게 불러주는거야?
내가 원할때는 어쩔 수 없이 했으면서. "
" 그런거 아니야...... "
" 괜찮아, 상관없어. 이미 헤어졌는데. "
내 어깨를 잡고있던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화를 참고있는게 눈에 보였다.
최대한 절제하고 있었다.
" 미워? 화내도 돼. 어짜피 끝난 일인데 뭐가 그렇게 신경쓰여?
아, 몸 섞은 상대니까 재미 좀 봤다고 예의상 막 대하지는 못하겠어? "
" 변백현. "
신경을 긁고 심장을 찌르는 내 말에 이를 꽉 깨물며 내 이름을 부른다.
낮고 굵은 그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하나하나 내뱉을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다.
흔들릴 것 같은 목소리에 아주 천천히 그에게 말하자 점점 표정이 굳어가는 그가 보인다.
" 그래, 먼저 접근한건 미안하게 됐어. 그러니까 나 좀 놔줄래? "
너무 오래 비를 맞은 탓에 몸이 차가워지고 이빨이 덜덜 떨려왔다.
없는 힘을 다 짜내서 그를 뿌리쳤다.
집으로 걸어가는데 눈물이 났다.
어짜피 뒤도 돌아보지 않으니 대놓고 흘렸다.
따뜻한 눈물이 비와 만나 얼굴을 타고 흐른다.
줄줄 나오는 눈물을 닦으려는 순간 뒤에서 그가 달려와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아픔을 들켜버렸다.
" 제발....울지마...왜 네가 더 아파하고 있어.
나한테 그렇게 말해놓고서, 왜 그런표정을 짓냐고. "
" 흐윽....흡....으으.... "
" 내가 미안해. 그날 그렇게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이러지 마... "
" 흐으.....흐읍....박찬열....... "
" 응. "
" 나 힘들어.... "
" 알아. "
" 무서워 죽을 것 같아. "
" 미안해...... "
" 날 조금이라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날 놔줘.... "
" 아무데도 가지 말라고 그랬잖아. "
두근거리는 심장에, 떠오르는 기억에 그를 바라봤다.
흔들림 없이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말해주고 있다.
" 내가 없는 곳에서 있지말라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살지 말라고.
분명 그렇게 말했어. "
" .....기억이..... "
" 내가 평생 함께 하자고 그랬잖아. "
눈물이 끝없이 흘렀다.
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입을 맞춰오는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내 심장을 감싸 안아왔다.
' 조금이라도...아주 잠깐이라도...행복하고 싶어..... '
이 날이,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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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사실 얼마 안남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