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울보 아니에요 10년이나 지났어요, 누나 '
" 야 니가 왜 여기있어? "
한가로운 주말 아침부터 초인종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보통 같았으면 무시한 체 자고 있을 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 이게 누르는 덕에 온 통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 무시를 할 수가 없었다.
방에서 나와 머리를 묶으며 우유를 들고 인터폰 화면을 보는데 화면에는 예상외로 권순영이 자기 키만 한 짐가방과 함께 서 있었다.
권순영은 짜증 난 표정으로 폰을 만지더니 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강아지 같은 미소로 ' 누나!! 얼른 문 좀 열어봐, 나 아~~까부터 기다렸어 '
나를 향한 애교 섞인 목소리에도 나는 누나는 무슨, " 누가 니 누나야 나 동생 없어. " 차갑게 말이 나간다
내 말에 권순영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할지 뻔히 다 안다,
분명히 눈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 거라는 걸, 전화를 걸어서 엄마~ 누나가 ~ 이런 식을 얘기하겠지
내가 독립하기 전 항상 하루에 한 번씩은 일어나는 일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권순영은 강아지처럼 달려와 현관부터 내 방문까지 옆에서 누나 누나 걸렸고, 나는 그런 권순영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아빠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에게 ' 순영이 네 동생이다 ' 라고 나를 다그쳤다.
그럴 때마다 나는 권순영이 들으라는 듯 더 크게 ' 권순영이 왜 내 동생이야 나 동생 없어! '라고 소리쳤고, 이 말을 문 앞에서 귀 대고 엿듣고 있던 어린 순영이는
'으앙앙앙앙앙 엄마~... 뉴나가.. 흡... 순영이가.. 뉴나... 동생이... 흡.. 아니래요ᅲᅲᅲᅲᅲ'라며 내가 소리치는 거보다 더 크게 울었다.
그때에 비해 덩치도 크고 나이도 먹긴 했지만 내 기억엔 여전히 울보 어린 권순영으로 남아있었다.
권순영은 내 말에 표정 변화가 없더니
" 그럼, 여주야 문 좀 열어 "
내 예상과 다른 대사가 나왔다. 마시고 있던 우유가 입 밖으로 나와 인사를 하고 너무 놀라서 문을 열어서 앞에 보이는 권순영에게
" 야 여주야? 내가 네 친구냐 " 라며 따지기 시작하니
권순영은 웃으며 내 입가에 묻은 우유를 닦더니
" 네가 누나 아니라며 여주야 나 들어간다 "
'네가'라는 말을 8살 어린애한테 들으니 충격이 쉽게 가지 않았다 내가 잠시 멍 때리는 틈을 타 권순영은 우리 집으로 들어오더니
" 여기 내방으로 쓰면 되는 거야? 아 참, 누나 남자친구 있어? "
" ...누나 아니라니깐? 근데 그걸 네가 왜 물어 "
" 있으면 남자친구가 질투할 거 아니야 키 크고 어리고 잘 생긴 나 같은 남자랑 같이 산다고 하면 남자친구 입장에서 매우 불안할 텐데 "
분명히 외모는 어릴 때 봤던 권순영이 맞는데 애 성격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변했는지 당황스럽기만 했다.
아직 문도 안 닫고 놀란 체도 권순영을 쳐다보고 있자 권순영은 씩 웃으며 나에게로 와 문고리를 잡고 있는 내 손을 잡더니 문을 닫았다.
" 누나 많이 놀랐어? 어디에 놀란 거야, 큰 키? 아니면 잘생긴 얼굴? 아님 그 짧은 사이에 내 매력이라도 본 거야? "
권순영이 갑자기 들어오는 바람에 당황은 했지만 이런 상황이 어이없고 화가 나기 시작해 10년 만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아빠 "
' 응 여주야 오랜만이구나 순영이 잘 도착했니? 순영이 아침밥도 안 먹고 갔어 누나한테 간다고,
순영이 생활비는 내가 부족하지 않게 보내줄 테니 네 동생 잘 챙겨줘라 아빠가 다음에 또 전화할게 '
10년 만에 통화가 무색하게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말할 시간도 안 주고 권순영 걱정 밖에 안 하는 아빠였다.
아빠랑의 통화를 끝낸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이불안으로 들어가 그때처럼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