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부터 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 나라가 생긴 이유이며 근본을 나타내는 이야기.
단군
그 이야기 위로 전해지는 또 다른 이야기
虎妹傳
호랑누이뎐
一
" 할아버지! 할아버지! 단군 할아버지 이야기 또 해주세요! "
의자에 앉은 할아버지에게 조르는 아이의 모습은 퍽 신나보였다.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어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 이야기는 말이지, … "
그 이야기는 지금으로 부터 약 사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와 쑥과 마늘을 주어 백일을 참고 인간이 된 곰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르니
그 아이는 단군이요, 나라를 건국하니 그 이름은 고조선이라
한 신화가 내려 전해져 왔다.
환웅은 하늘을 숭배한 왕이였고 그 국가는 하늘이였다. 하늘에게 왕후가 있으니, 그 왕후의 가문은 곰을 숭배했다.
왕은 진정 곰의 여인을 사랑하지 않았는지 후사가 없었고 나라를 다스렸다.
그로 인해 나라는 날이 갈수록 힘이 세지고 권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태양이였다.
왕의 권력 아래에는 더러운 진흙싸움이 계속되었다. 왕의 발바닥이라도 핥으려 드는 간신들과 승은을 입어 총애를 받으려 치장하는 수많은 후궁들
소리없이 더러운 판은 백성들의 시전판이 아닌 요란스레 피가 튀기며 싸우는 궁의 권력판이였으리라.
그 가운데 중전으로 곰이 권력을 잡으니 배가 앓지 않고 배길 수 없는 호랑이가 있었다.
어떻게든 곰을 끌어내리리. 곰을 끌러내려 내 권력을 잡고 천하를 내 손바닥에 얹으리.
호랑이가 계략을 꾸미고 있는 와중에 숨을 조이고 벼랑으로 이끌어내리는 것은 중전의 출산. 사내아이 였다.
호랑이의 표정은 썩어들어갔고 다 잡은 듯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겠는가. 내 손으로 잡아 끌 수 없다면 남의 손을 빌리면 되지 않겠는가.
사람에게 가장 힘이 될 수 있으면서도 가장 발목을 잡아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바로 그것.
사랑
사랑을 이용하면 되겠구나.
호랑이의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천하를 울렸다 하더라.
호랑이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누이. 누이에게는 미안하였지만 이미 욕망으로 눈이 뒤덮혀버린 호랑이에게는 무엇 하나 들리지 않았다.
오직 욕망만이 그를 벼랑으로 인도할지, 하늘로 인도할지 그것은 모르는 일 이였다.
밤 벌레가 울고 바람이 불던 저녁에 누이의 방에 호랑이가 들어섰다.
누이는 호랑이의 발 걸음에 환히 웃어보였지만 호랑이는 웃지 못했다. 아니 웃지 않았다.
" 오라버니, 이 밤중엔 어인 일로 … "
" 내 누이, 연아 들어라. 너는 내가 행복해 지길 바라느냐? "
" 그 물어 뭐하겠습니까. 행복을 바라지 않는 누이가 어디있겠어요 "
다짜고짜 묻는 호랑이에게는 욕망의 냄새가 났다.
사실 누이는 그가 올 것이라는 것도, 그가 전할 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중전의 아이가 글을 배우고 있었으니까 왕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였음을 알고 있었기에.
누이는 호랑이, 나의 오라버니가 행복해기를 소원했다.
그것이 나의 희생으로 이루어 낼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 너를 이용해서 까지 나의 행복을 이루어내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 연아 "
" 정말 그것이 오라버니의 행복이 될 수 있습니까? "
그의 탄식이 담긴 이야기는 방 안을 울렸다. 탄식이 곧 기대로 바뀌고 기대가 곧 욕망이였다.
그렇게 나를 희생하기로 하였다.
계획은 생각보다 늦어졌다. 해가 몇번이나 바뀌고 겨울이 녹아 봄이 되었다.
호랑이는 아버지를 뒤 이어 호랑이의 수장이 되었고 세자의 해도 세번이나 바뀌었다.
그리고 고대하던 왕이 후궁을 호랑이에게 간택하였다.
아직은 쌀쌀한 봄에 누이가 시집을 간다.
시집을 가던 날, 누이는 꽃마차를 타기 전 호랑이와 눈을 마주했다.
짧지만 오고가던 그 눈빛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뜻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전할 수 있었다.
꽃망울이 환히 피어나려고 준비를 하는 것이 호랑이와 퍽 흡사했다.
곧 누이는 시집을 간다.
" 건강히 잘 계세요. 태형 오라버니 "
그렇게 누이는 꽃 마차를 타고 왕에게 갔다.
곧 궁에는 바람이 불 것이다.
봄 바람인지 피 바람인지 그것도 아니면 꽃잎으로 눈을 가리고 코를 가린 바람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