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
사랑도 미움도 없지만
내 가슴은 고통으로 미어진다.
-베를레느
이렇게도 멍청한 아이를 두려워하다니.
나는 언젠가부터 그를 주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필요한 것이 노리개란 것을 알았을 때,
난 그의 품에 들어가 아름다운 노리개가 되어 줄 것을 약속한다.
우습게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난 그 이후, 몹시 단순한 삶을 보장받는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삶이었다.
어찌 보면, 지루한 일상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둥지를 틀고 싶은 어리석은 제비 처럼, 이동혁 몰래, 내 시선들은 쏘다닌다.
그리고 그 시선은 누가 봐도 모범적일 법한 인물에게 잠시 머물러 간다.
모범적인 인물,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기 마련인,
모두가 곧 그이를 사랑하게 된다. 필연적이게 말이다.
그에겐 매혹적인 힘이 있으니까, 사랑받아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힘.
나도 그런 이유에서 그를 마음에 담았는지 모르겠다.
나재민이라 하였다. 그가 짓는 부드러운 웃음 뒤로 날선 외로움이 보였던 것은 언제쯤이었지.
*
이동혁과 나는 점심시간이면 자연스레 학교 옥상으로 올랐다.
사람이라곤 우리 둘 뿐인 공간, 탁 트인 전경. 우린 이곳에서 자유로움을 실감하곤 했다.
특히 나는 그 곳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그날도 나는 바닥에 누워 하늘을 감상하곤 했다.
평소 대로라면 동혁이 내 옆에 앉아 담배를 물곤 했을 텐데,
그날은 웬일인지 옥상 난간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이 얼마나 민망하고 신경 쓰이던지.
그가 담배를 한대 입에 물고 나서야, 난 그의 눈길을 잊을 수 있었다.
높고 푸른 하늘을 감상하던 중, 난 무언가에 홀린 마냥, 나재민을 기억해낸다. 하늘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다니.
우스운 마음도 어느덧, 나는 구름 위로 이름 세 글자를 그려본다. 그 구름을 타고 날아가 버리길.
이동혁의 담배가 언제 다 타들어 갔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한참을 보내었다.
*
그에게 가진 호기심 덕이었을까. 나재민과 나는 꽤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런 우리에, 학급 아이들은 늘 의문을 남기곤 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 어째서?
그는 그 가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방과 후 시간, 텅 빈 교실. 웬일인지 이동혁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나재민이 보였다.
내 앞에 선 그는 묻지 않던 진실이라도 되는 듯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 넌 왜 이동혁이랑 어울리는 거야?
좋아하는 건 아닌 거 같던데. "
" 무슨, 좋아해. 그러니까 사귀겠지. "
난 매마른 거짓을 너무나 쉽게 내뱉는다. 그러자 그는 다시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인다.
*
그 다음 날 부터인가.
이동혁은 제 자리에 앉아 나와 나재민을 번갈아 보곤 했다. 난 그 시선을 알게 모르게 무시한다.
그는 원체 무심한 성격이었으니까. 이러다 말겠지 하고 그의 행동을 가볍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갈수록 나재민을 더 차갑게 바라봤다.
그의 무리가 재민을 건드리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했다.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는 재민의 인상 쓰는 모습을 즐겁단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옆에서 그의 횡포를 바라본다.
말리지 않았다. 나에게 다가오지 말지 그랬어, 잔인한 눈길만을 연신 해대었다.
*
재민은 놀랍게도 굴하지 않았다.
나에게 일상적인 질문을 건네는 것도, 나를 향해 새삼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도.
이젠 오히려 동혁의 싸늘한 시선마저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 이상해. 온통 네 생각 밖에 안 나는 거 있지? "
.. 와 같은 시답잖은 농담까지도.
*
오늘도 동혁과의 아지트 생활이었다.
내 옆에 앉은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라이터만을 껐다 켰다 반복해댔다.
" 라이터 닳겠다. "
그가 정적을 깨뜨린 나를 끈덕지게도 응시한다.
그 눈빛으로 내 모든 움직임을 쫓는 듯했다.
" ..넌 나랑 어떤 사이야? "
그가 그런 물음을 꺼낼지는 생각도 못해 보았다. 서둘러 고민해보았지만, 답은 가까이에 없었다.
애초에 난 우리의 관계를 정의하기 힘들었을지도. 친구 사이일까, 연인 사이일까.
분명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시선이 내 입술에 닿는다.
" 사랑한다고 말해봐. "
난 너의 한낱 노리개일 뿐인걸,
하고 싶은 말을 굳게 참으며 묘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 듯, 난 하늘을 바라보며 눕는다.
" 사랑하겠지. "
여전히 높고 푸른 하늘 아래서 모호한 대답을 건넨다.
*
며칠 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을 때쯤, 외출을 한다.
병원에 갈 것을 핑계로 난 다시 학교 옥상으로 오른다. 점심시간 동안까지만 있기로 생각한다.
그럼 곧 이동혁이 이리 오겠지.
점심시간 끝 무렵에도 이동혁은 옥상으로 오지 않았다.
안 오려나 보네, 괜스레 섭섭한 마음을 꾹 눌러 담은 채 교실을 향한다.
교실 복도는 꽤나 북적거렸다. 처음엔 그냥 점심시간이니까라고 넘겼는데, 가만 보니, 수군거림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수군거리는 아이들 틈을 비집고 난 내 학급 속으로 들어갔다.
..조금만 더
늦게 도착할 걸 그랬나 보다.
" 너도 참 불쌍하다.
걘 너 이용하고 있잖아. "
".."
" 너 같은 머저리를 왜 좋아하겠어. "
상황은 꽤나 심각해 보였다.
이동혁은 나재민의 멱살을 죽일 듯 쥔 채였다.
아, 저 살기를 오랜만에 본 것 같다.
곧, 동혁과 눈이 마주친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달고는, 나를 무섭게도 노려보고 있었다.
우린 한동안 눈을 마주한다.
오랜 눈 맞춤에, 그는 힘이라도 풀린 듯, 재민의 멱살을 놓아준다.
시선을 나에게로 꽂은 채로 동혁은 제 앞 책상 한 대를 발로 차 엎는다. 무거운 욕설 역시도 서슴지 않았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행동이었다. ..일부러 의도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얼마 안 가, 그는 나에 대한 시선을 냉정하게 거둔다. 뒷문으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두려워진다.
그래, 그렇지. 날선 외로움은 저런 행동을 낳았지. 내가 그러했 듯.
1. 너심이 필요한 이동혁
2. 너심과 닮은 나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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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독방에 이 글로 한 번 찾아왔었는데요! (아쉽게?) 글 내용은 똑같습니다ㅠㅠㅠ 제가 혼자 짧게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데 이 김에 필명도 새로 만들어 단편 글들을 올리려고 해요! ㅎ,ㅎ 독방에 올린 글은 삭제했어요ㅠㅠ 스크랩했던 심들 죄송합니다..ㅠㅠㅠ |